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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5.10 행복
  3. 2012.04.30 이것저것 사서 보는 글 2
  4. 2012.04.23 이것저것 분석해 봤더니 4
  5. 2012.04.21 오키나와 여행 (2012.3월) -6 3
  6. 2012.04.16 민생고 4
  7. 2012.03.31 오키나와 여행 (2012.3월) -5
  8. 2012.03.31 3월에 문닫는 서고를 보며
  9. 2012.03.27 오키나와 여행 (2012.3월) -4 2
  10. 2012.03.24 후회 2

셀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수 많은 우연한 만남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뗄 수 없는 감정이 깃들더라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마음을 전달할 수 없는

거지같은 인연도 분명 존재한다.



아마 전생에

백혈구와 감기바이러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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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믿거나 말거나 2012. 5. 10. 17:41

살면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잃어 버린 뒤에서야 사람들은 자신이 누려온 안락함이 무엇이었는가 생각해 본다. 마치 낚싯바늘에 입이 꿰어 뭍으로 건져진 물고기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물에 의해 호흡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 깨닫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가정이 부서지고 신체가 부서지고 난 뒤에 그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던 많은 행복들에 대해서 고민한 지도 벌써 4년이 지나고 5년에 접어든다. 그 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들은 나를 핍절하게 만들 뿐, 곳을 채워주지는 못하였고 더불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은 심해졌으나 그것에 이르는 길은 점점 험해지기만 하였다.


삶이라는 것은 늑탈된 것을 복구하거나 욕망이 원하는 것을 약탈하거나 둘 중의 한 과정으로 귀결되어진다. 나는 후자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전자로 돌아섰고, 전자를 충족할 가능성이 떨어지자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약탈하고 싶어한다. 삶이라는 것은 배고픔과 성욕의 총합이나 같은 것이다. 사람의 인생은 문자와 값진 예복으로 자신을 치장한 짐승의 갈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언젠가는 다시 나도 내가 전에 가졌던 것을 회복하며 즐거워 하겠지'라는 망상과 목표를 설정하고 오늘도 나는 그를 향해 움직인다. 하지만 해는 지고 길은 멀고, 이제 남은 삶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주위에서는 지치지도 않고 나를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가려 애 쓴다. 나는 고삐와 안장을 채워도 발을 떼지 않는 고집으로 버틴 삶이거니와, 그렇게 살아서도 안된다는 것을 얼추 알고 있지만 이제는 힘이 부친다.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 내 삶에서 어느 방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구심마져 생긴다.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인생은 경주라고. 하지만 그 경주의 끝에 상급이 있을까? 그것은 모를 일이다. 그것이 행복일지 아니면 또 다른 목마름일지 나는 지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하루가 풍성하고 은혜롭지못하다면, 아니, 소소한 행복일지언정 뭔가 촉촉하게 나를 적셔주는 힘이 주어지지않은 채로 푸석푸석한 인생 항로를 얼마나 더 끌고 가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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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에서 조공으로 팔려갔던 기씨 처자가 황제의 눈에 들어 기황후가 된 뒤에 갑자기 바뀌게 된 고려의 위상 (씨발...이게 자랑인가. 하긴 전엔 사위의 나라였다지.) 덕에 문물의 교류가 많아지자 당시 역관들에게 원나라 생활중국어 교범이 생겨났다. 이것이 [박통사]라는 것이다. 이 책은 나중에 계속 증보 번역되어서 조선시대에도 역관들의 TOEIC교재가 되었다. 읽어보면 별 말 없다. 헬로 스미스 하우아유 파인, 하우머치 이스 디스, 갓 댐 베리 익스펜시브 같은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당시의 풍습과 인물상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랄까...그런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글이다.



기자들의 취채기는 재미있다기 보다 "이걸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양지에 사는 이들에게 음지의 실상을 알려주는 일은 참으로 거북한 일이다. 유영철 사건이후의 챕터를 읽어보려다가 잠시 덮었다. 주진우는 우상이 아니고, 그 역시 언제 타락할 지 모르는 연약한 인간유형이다. 그러나 그가 만나보고 취재한 음지의 인간들(하지만 모두 햇볕 아래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니는 성공한 인간들이라는 게 문제지)을 지면으로 봤을 때 나오는 토악질이라는 게 만만치않다. 기자라는 직업은 장수하기에도 힘들고, 지조를 지키기도 힘들고 건강을 지키기도 힘든 직업이다.

진짜 기자라면.


중국도시사 (시바 요시노부: 서경문화사) - 중국의 기이한 도시형성과정을 서사적으로, 도시행정학적으로 풀어낸 학술서. 중세 유럽의 성문화나 별반 다를게 없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지는 것이 강하유역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상권과 객가인의 군집성. 그리고 도저히 기록에 남길수도 없는 수많은 이합집산의 중국인의 흐름. 그냥 성곽문화라고 중국을 이해하는 게 빠를 듯 싶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어려 성의 합일체이다.



복장과 배경, 풍경에 관해서 오타구의 범위를 넘어서 강박증까지 보이는 모리카오루의 작품.

전작 [엠마] 에서 산업사회 영국 메이드의 생활을 손에 닿을듯이 그린 작가가 이번에는

중앙아시아의 새색시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린다. 꼬마신랑과 아리따운 새색시 이야기.


아 그런데 너무 매력적이야. 이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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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AV 배우부터 미국 배우들까지 죽 나열하고 그 중에 내 맘에 든 사람들을 찾아본 결과 뭔가 묘한 공통점이 있긴 있더라. 딱 고양이 형상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얼굴들인데...뭔가 묘하게 살벌해보이긴 한다.


아는 사람이 그러더라.

"고난의 바다를 헤엄치며 평생 살아가야 할 스타일만 찾는다"


-.-;;맞는 말 같긴 한데 문제는 그런 스타일이 아닌 사람하고도 살아봤는데 고난의 바다를 가열차게 헤엄쳤다는 농담같은 사실.


누구 주위에 이런 사람 있으면 내쫓지 말고 소개부터 시켜주...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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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생크 탈출]이나 [원초적 본능]을 보면 주인공이 옆에 해변을 끼고 선글라스를 낀 채로 온갖 똥폼을 다 잡으면서 캘리포니아 1번고속도로를 우아하게 달리는 광경이 보인다. 참 멋져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옆으로 작렬하는 태양과 푸른 바다! 그리고 아무도 안 다니는 멋진 도로! 우왕! 나도 미국은 안 갔어도 오키나와에서 해 보고 싶었어!


라는 망상에 빠진 결과. 나는 오키나와 북단까지 가 보기로 한 것이다.


이게 미친짓인 것이, 내가 호텔을 잡은 나하시는 오키나와 남단 하부에 위치한 도시다. 오키나와 섬은 밀가루 반죽을 하다가 손에 힘 줘서 꽉 짜 놓은 것처럼 위 아래로 길쭉한데, 그 거리가 거의 100km.


(히밤...저 빨간 도시가 나하시다.)

말이 100km지 이게 서울시에서 강원도 홍천군까지의 거리다. 이걸 한국 지도에 맞춰서 생각을 한번만 해 봤다면 그런 뻘짓거리는 안 했을 것이다. 홍천군까지 가서 사진 한방 찍고 다시 서울로 오는 짓을 당일치기로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거 미친짓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그짓을 했다.



(이야 남태평양의...아니 동지나해의 호연지기가 느껴지는구나)

다시 올라가야지.



('눈물이 주룩주룩'이라는 영화를 찍은 등대라는데...영화를 안 봐서 몰라...)

다시 올라가야지~



(만명이 앉을 수 있다는 만자모...그 중 유명한 코끼리바위...그런데 날씨가 점점 왜 이래)


하여간 이렇게 북상하며 랜드마크들을 찍으면서 가고 있었다.

오키나와 북반구로 향하는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거의 없다. 그리고 옆에는 바다가 펼쳐진다. 처음 드라이브1시간 할 때까지는 정말 좋더라~ 신나게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이게1시간이 넘어가고 2시간이 넘어가니까 사람의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그 때 문득 머릿속에 들어온 생각


이국땅에 관광와서 이게 무슨 노가다야!


정신이 그제서야 번쩍 들면서, 아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예요 라고 몸이 외치고 있었지만 어느 새 나는 북반구로 가는 마지막 휴게소에 멈춰서 있었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고 시간은 사람이 가장 미치기 좋은 오후 4시.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끝을 찍고 가자. 이젠 다른 방도가 없어."


그래서 다시 마지막 40km스퍼트를 내어 저녁놀이 지기 직전, 

나는 오키나와 북단, 해도곶(해도미사키)를 찍을 수 있었다.


(일본 최북단을 상징하는 동상....이 닭새끼 하나 보려고 100km를 달려왔다고! 우헝헝헝)


해도미사키에는 이것밖에 없다. 사실, 이 닭동상 뒤에 휴게소로 쓰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건 여름철에만 연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배틀로얄'에서 주인공 죽이려고 덤벼드는 녀석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폐가로 변해있었다.


이상이 내가 오키나와 방문 이틀째 겪은 여행기다. 나하시로 귀환하는 일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다. 정말 생전 처음 우핸들을 잡은 주제에 [심야 유료 하이웨이]를 타고 호텔로 들어왔다. 살아서 돌아온게 기적일 뿐이다. 카메라를 꺼낼 엄두도 못 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도중에 방광이 터져서 죽을 뻔한 기억을 제외하고.


내가 이걸 쓰는 이유는 딱 두개다.

1. 이딴 여행동선 잡지 마라.

2. 여자건 남자건, 동행 없이 드라이빙 해 봤자 1시간 지나면 그냥 처량해진다.


마지막 오키나와 여행을 앞두고 호텔로 들어온 나는 그냥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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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고

투덜투덜 2012. 4. 16. 19:43

어차피 살기 위해서 밥을 먹고 

소화기관의 열약함으로 인해 미각을 위한 식사는 곧 심각한 소화불량을 초래하는 바

별달리 음식에 대한 집착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지만

어떨 때는 정말로 살기 위해서 밥을 먹는다는게 참 넌더리 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감기가 오랫만에 단단히 걸렸는데

독한 약을 먹기 위해서 밥을 먹어야 하고

밥이 떨어져서 쌀을 씻고, 반찬이 떨어져서 남은 김치 다 넣고 찌개를 만들고.

그 와중에도 몸은 열이나서 욱씬욱씬 거리긴 하는데


어차피 결혼하건 누가 옆에 있건 이 상황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내가 아픈 건 개인이 온건히 담당해야 할 사안이고

아픈 건 극복하기 위해 약을 먹고 그 전에 위장을 보하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밥을 해 줄까?

그런 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것저것 합해보면 그냥 지금의 삶이 죽 이어진다고 봐야 하는데

사람살이라는 게  별다르게 뒤어난 감흥으로 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P.S)

지금도 어딘가에는 아파서가 아니라 배가 고파도 밥을 못 먹는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반이 넘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밥을 먹기 위한 행위 자체가 나하고는 전혀 다른 인생의 과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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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해 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이국 땅에서 차 몰고 돌아다니기'였다. 한 때 미국의 동서횡단 고속도로를 혼자 자동차로 여행하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여겼던 적도 있다.(그런데 사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하더라.) 

여행의 드라이빙이라는게, 어찌보면 일상에서 발현되는 환상이다. 꽉 막힌 도심에서 벗어나서 이국의 한적한 도로를 멋진 풍경과 작열하는 태양 아래로 달린다니 그 얼마나 좋을소냐!


그래서 나도 일본에서 한 번 해보려고 시도해봤다. 오키나와가 원래 그리 넓은 섬은 아니지만 대중교통이 여기저기 잘 뚫린 곳이 아니라서 차로 움직이는게 편하다는 것이다. 그런 가이드북의 말도 있고, 한번 내 소망도 이뤄볼 겸 해서...



렌트카를 빌렸다!

만약 렌트카를 빌리고 싶다면 현지선택보다는 일단 여행 전에 여행사를 통해서 렌트카를 예약하는 것이 현명할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뭐 원하는 차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다 네비게이션 문제다. 일본어를 자국어처럼 완벽하게 히어링할 수 잇는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 없겠지만 야메떼밖에 모르는 나같은 인간에게 일어네비게이션은 아무런 거의 도움이 못 되지 않는가...물론 그림만 봐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오키나와 도로는 단순했지만. 여행사 통해서 먼저 예약하면 한국어로 더빙되어 나오는 네비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100% 받는다고 장담은 못한다. 없으면 못 받지 뭐...)

저 차 이름이 뭐였더라? 하여간 토요타에서 하는 렌트카니까 토요타 경차였겠지. 실내 생각보다 넓고 에어콘하고 라디오만 있지만 자동차로써의 기능은 완벽했다. 어차피 작은 차가 운전하기는 더 편하겠지하고 서류에 싸인하고 길거리에 끌고나왔는데...



오 마이 갓. 왜 모든 섬나라 놈들의 핸들은 거꾸로 붙은 건지. 

난 생각보다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더라. 좌우가 바뀐다는 것은 시야각이 바뀌는 것이고 좌회전 대신 우회전에 주의를 해야 하는 것인데 이거 생각보다 머리가 아픈 일이었다. 저절로 등에 식은땀이 줄줄줄....그나마 자동차간의 옆공간이나 차선변경, 뒤차와의 거리같은 건 감각으로 하면 상관없는데 문제는 우회전. 오키나와의 우회전(우리나라 자회전)은 대부분 비보호라는 걸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정말 처음 운전하는 15분간 아주 죽는 줄 알았다. 그나마 도로가 직선이었으니 망정이지....

근데 직선도로로 오면 김여사도 F1 탑클래스 드라이버가 되는게 이 [운전]이라는 영역 아닌가!

어느 순간 되니까 신나게 운전하고 있더라~ 


(미친놈 죽을려고 용쓴다고...드라이빙도 정리 안 된 시점에 운전중 사진을 찍었다.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

그냥 죽 몰고 나하시내를 떠나 위의 미하마 아메리칸 빌리지로 향했다. 나름대로 거대한 쇼핑몰들이 있는 곳이고 위락시설을 꾸며놓은 동네이다. 미군기지 옆이 어떻게 되나 한번 보고 싶기도 했고...그런데 내가 간 곳은 말 그대로 쇼핑위락시설들이 있는 곳인지라 현재 미군 기지촌이 어떤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냥 놀러 간 거임.



(이게 오키나와의 한 단면이랄까...오른쪽이 군용지일거다.)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 도착하면 맨 처음 보는게 [항공자위대] 격납고다. 이 섬은 엄연히 군사시설이 그득한 전략도시다. 마천루 사이로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동네라는 것을 미하마에 도착해서 알게 된다. 마치 오사카나 동경의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스튜디오를 보는 듯한 쇼핑몰들...하지만 평일이라 한산하고 조용하기만 한 동네. 휴일이 되면 여기저기서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겠지만.


(어제의 유구국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

별다른 감흥이 없어져 버렸다. 그냥 규슈를 갈 걸 그랬나. 패망한 왕국, 패전한 일본의 영토. 현재는 미국의 기지. 그리고 묘하게 세 가지가 섞여 있는 동네. 이렇게 된 거 한 번 섬이나 돌아볼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출발 전 먹은  A&W 햄버거와 루트비어. 오키나와에 미군들이 정착하면서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햄버거 브랜드가 되었단다. 햄버거는 깔끔. 하지만 진짜는 루트비어. 루트비어는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는데


몰랐지.

그게 지옥의 드라이빙의 시작이 될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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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터미널에 들려서 책방 근처를 배회할 일이 생겼다. 생일선물로 책을 사주려고 근처를 돌아다니다 보니 영풍문고 옆의 신나라레코드가 오늘자로 폐업을 한 것이 보였다. 셔터를 반 쯤 내려놓은 사이로 이리저리 장식대가 넘어진 채 해체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음반시장이 고사한 지 하루 이틀인가. 그나마 남은 음반들은 MP3로 음원을 다운받던가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를 하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한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 어쩌면 음반가게의 쇠락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마져 들었다.

처연한 마음 가누지 못하고 영풍으로 들어섰는데 이게 웬 일. 다음주를 마지막으로 영풍문고도 폐업을 한다는 것이다. 강남 고속터미널 지하1층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풍문고가 문을 닫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게다가 여기는 늘 사람들로 붐비지 않았더냐. 뉴스를 찾아보니 임대료를 이기지 못한 모양이다. 풍설에 의하면 서점 자리에 작은 서점들과 기타 다른 것들이 들어올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다. 하여지간, 신나라레코드로 모자라 연거퍼 정신적 타격을 받아서 집에 돌아올 때 종내 꿈인지 생시인지 아득하였다. 동시에 뭔가 끝나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발품을 파는 시대가 끝나가는 것이다. 눈으로 실물을 확인하고 하나하나 손끝의 촉감을 동원하여 지식의 축적을 하는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책이라는 것, 음반이라는 것은 원래 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창고에 수백수천가지의 종류를 쌓아두고 그 곳에서 한참을 고심하며 내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종류의 지식취득이었다. 한참을 걷고 서서 쳐다보고 꺼내보고 다시 서가나 음반대에 꽂아두기를 반복하며 갈등하다가 하나를 선택해서 집에 오는 과정이 그간 내 삶의 당연한 결과물이었건만, 이제는 그것이 사라지는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예전 동네에 살 때 동네 서점과 동네 음반가게가 망할 때 느꼈던 가슴아리는 심정은 이제 찾을 수 없다. 그것보다 지금은 뭔가 막막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전자는 거대한 자본에 의해 작은 영세 지식상들의 몰락을 처연하게 지켜보는 감정이었다면, 지금은 패러다임이 바뀌고 지식습득의 단계가 급변하는 시대에 던져진 낡은 세대라는 생각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조만간 CD는 사라질 지 모르고 종이책이 사라질 시기가 올 지도 모른다.

솔직히 CD의 보관연한보다 디지털로 리핑한 음원이 훨씬 보관기간이 길고 (하드만 바꿔서 옮겨주면 이론상으로는 영원히 보관이 가능하지 않은가)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이 보관과 검색에 훨씬 용이하지 않은가. 그러한 편리함의 시대 속에 적응을 못한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이미 음반사와 출판사는 바뀌는 패러다임에 적응을 했을 것이고 (적응을 한 자들만 살아남을 것이고) 젊은 세대들은 그러한 과정에 익히 익숙해져 있을 것이며 아직 접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쉽게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쉰세대처럼 어리버리 옛것만 고집하며 살 지도 않으리라. 이미 리핑은 하고 있고, 전자책도 내 손아귀 안에서 움직이는 때가 곧 도래하겠지. 적응을 못하면 예전 내 아버지들이 컴퓨터를 보면서 두려워하던 그 시대의 모습을 할 수 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뭔가 부서져 나간 것 같은 아픔이 느껴지는 걸까. 자본의 힘 아래 지식과 사상이 종속되어 온 것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건만, 정작 실물로 내 앞에 나타나는 옛 방식의 해체라는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일까. 위험한 미래에 대한 불안일지도 모른다.인터넷 서점에서 정해진 것중에 하나만을 꺼내서 찾아봐야 하며, 상품리스트에 없으면 구매를 포기해야 하는 소비의 획일화 & 지식의 평준화가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헛헛한 것이니까.

책방 주인도 모르는 구닥다리 책을 구석탱이에서 찾아내어서 계산하던 시절의 감동은 이제 맛보지 못할 것이다. 이젠 절판된줄 알았던 CD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내 손으로 끄집어내던 순간의 희열같은 것은 이제 없으리라. 이것은 내가 삽십년 이상 해 왔던 시간의 추억. 행동의 잔재. 그리고 그 가운데 말로 표현못해도 몸으로 알고 있는 삶의 동선중 하나가 끊어지고 있음에 대한 한탄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우리는 도시마다 있는 도서관에 가서 문헌을 확인하는 일이 필요없을지 모른다. 아마도 모든 것이 내 구석진 방 한 군데에서 일어나고 끝을 맺을 것이다. 더 이상 같은 목적을 띈 사람들 사이를 활보할 필요가 없을 지 모른다.

편리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게 있을까.  

아니, 다른 게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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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 여행을 끝나고 난 뒤에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 이제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약도를 보고 간 곳이 슈리성 건너편에 있는 타마우돈이라는 곳이었다. 우동가게가 아니다. 슈리성 왕들이 대대로 묻혔다는 일종의 납골당이다.


(오키나와에서 내내 사 먹은 블루실 아이스크림. 베니이모(고구마) 아이스크림은 이렇게 보라색이다. 참고로 오키나와 고구마는 껍질까지 다 가는지 고구마 관련 상품은 모두 벽자색이나 자색계열이다. 맛나다. 많이 먹음 방귀가 나온다.)

 


하여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무덤이라고 해서 가 봤는데

나 말고 아무도 없다.

그냥 장려한 돌로 된 납골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참고로, 아래 박물관 기념실에는 돈을 내고 보는 유료코스가 있지만 한글로 써 있는 건 없으니 안 들어가도 무관하다. 발굴된 토기같은 유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아마 타마우돈이 유구국이 아닌 일본의 왕릉이었으면 대우가 달랐을 것이다만...정말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작다.


 

 이걸 다 본뒤에 고민에 빠졌다. 이제 뭐하나? 
내친 김에 국제거리까지 보고 그 유명하다는 오키나와 스테이크나 먹고 들어가 자자...라는 결론에 이르러 오키나와국제거리에 들렀다가 들어가기로 했다. 

(가다가 맘에 들어서 찍은 거리...난 이런 작고 깨끗한 골목이 좋더라.)
 
2.
국제거리라는 게 뭐 국제적이라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간, 오키나와가 미국에게 태평양전쟁때 쌀밥이 미음이 될 정도로 뭉개지게 포탄을 두들겨맞고 쫄딱 망했을 때, 1년만에 다시 활기찬 시장통을 만들어낸 전설의 거리라는 풍문을 들었다. 미군들의 물자가 들어오니 그럴수도 있었겠지만 가슴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오키나와는 스팸이 시장 내에 많이 굴러다닌다. 그것도 미국스팸.
 
모노레일 마키시역부터 현청 사이의 직선 1km구간이다. (기적의 1km라고 불린단다) 하여간 거기 가면 우리나라 인사동과 이태원 고깃집이 짬뽕된 기이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여기저기 스테이크집도 많고 인파들도 북적거린다. 그런데 하나 말하자면...스테이크가 절대 싸지 않다. 일본여행갈 때 모스버거나 규동으로 한 끼 1000엔 이하 식사를 고집하던 내게 3000엔에 육박하는 스테이크는 말 그대로 처절한 낭비. 게다가 7-8시의 황금시간대에는 관광객들이 알짜한 스테이크집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혼자 여행다니는 외토리 여행가에게는 별반 즐겁지 않은 광경이다. 그나마 한적한 곳에서 대충 하나 얻어먹고 왔지만...고기 먹으러 오키나와 까지 가는 식도락가는 없기를 바란다. 차라리 국제거리 곳곳에 붙어있는 예전 재래시장통을 돌아다니는게 더 재미있다. 막상 국제거리까지 도달해서 저녁을 사 먹은 때에는 아무런 힘도 없어서 사진도 찍지 못했다.  아아 고달픈 도보여행...

하지만 그 때는 몰랐었다.
오키나와에 도착한 첫 날이 내가 보낸 오키나와 여행 중 가장 알찬 여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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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작은 방 한담 2012. 3. 24. 00:22
모든 것은 내가오고 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지만
어느 날 눈 앞에 하늘에서 떨어진 은혜라 생각했던 것은
빗물이 아니라 눈물이었나

해가 가고 날이 지고
눈을 거두고 귀를 막고 입을 막으면
무언가 감춰지고 잊혀지고 보이지않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내 발목을 잡고 있던 것은
가느다란 실같은 연심이 아니라
두꺼운 족쇄같은 열망이었나
 
지나면 없어지리라 생각했는데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는지

왜 이리 없어지지 않는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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