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荊軻宿'에 해당되는 글 1419건

  1. 2013.06.02 조선 노비들, 천하지만 특별한
  2. 2013.05.19 5.18
  3. 2013.05.09 사람은 가끔
  4. 2012.12.29 레 미제라블 3
  5. 2012.12.25 선거소회 2
  6. 2012.12.20 2012년 12월 19일
  7. 2012.12.14 근황 6
  8. 2012.11.03 아빠 쉬마려 2
  9. 2012.09.20 가증스러움 2
  10. 2012.09.09 대화의 이유 2


조선시대의 산업동력이자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비]라는 계층은 그 존재와 처우에 대해 드라마와 소설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관조적인 위치로 보이는 집단이기도 하다.  갑오 경장 이후, 모든 사람들이 신분제가 혁파되기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모두 성씨를 가지고 있고 그 성씨의 연원은 번쩍번쩍한 귀족이거나 왕족, 심하면 신화속의 인물까지 소급된다. 이런 형편에 100년 전에 살던 내 조상 노비가 누구인지 알 필요성도 없고 그 계층이 조상인지 뭔지 관심조차 없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내 조상이 현실적으로 누구인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것보다 언젠가부터 내 이름 앞에 붙는 성씨로 인해 붙는 비현실적 족보를 탐구하는 것이 우리 정신건강에 훨씬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조선시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노비의 삶을 사료와 더불어 정리하고 있다. 가벼운 야사들과 민담을 몽해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구체적인 부분은 정사와 통계를 통해 실증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한마디로 조선은 노비의 나라였다는 것이다.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갑자기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달라진다.

조선은 노예제도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국가였다.



국방부터 경제에 이르는 모든 부분에 있어서 조선은 노비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곳이었다. 정부는 그래서 노비를 꾸준히 증가시켰고, 양인의 수를 억제했으며, 국가의 소유와 양반의 소유로 노비들을 묶어두는데 전력을 다 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법률은 노비를 어떻게 하면 계속 양산하며 [무한동력]을 끌어 내 체제의 존속을 가져오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양반 못지않은 권세를 지닌 노비도 있었고 학문을 하는 노비도 있었지만 결국, 노비는 생산력의 원천으로 존재 의의를 인정받았을 뿐이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뒤 드는 생각은 기묘했다.

지금 내 처지와 조선시대 노비의 처지는 전혀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조선정부의 일관된 정책은 신분제 고착을 통한 체제유지였고, 체제유지를 통한 엄혹한 형벌이 주가 되었으며, 경제활동과 세수확보를 위한 끊없는 회수작용,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영원한 착취]기 그 기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활동이 정확하게 통제된 성문화된 법에 의해서 움직였고, 조선의 시스템은 소름끼치도록 체계화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노비로 산다는 게 당시에는 그렇게 억울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다. 대부분이 그렇게 사는데 뭐가 억울하지? 옆집도 앞집도  나랑 똑같이 살고  내 부모도 그렇게 살다 갔는데 말이다. 세금이야 당연히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내는 것이고, 재벌들과 권력가의 집안이야 나하고 팔자가 다른 집안인데 비교가 가능이나 하냐 그 말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역사발전 과정은 지구상 어떤 나라들보다도 후진성을 띄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이런 기괴한 의문이 들게 하는 책. 노비에 대한 책. 내 조상들에 대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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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羞惡之心非人

무수오지심비인


사람이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하물며 타인을 위해 돌아가신 이들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거악을 향해 총칼을 든 이들에게 조용히 조문을 하지 못할망정 조롱하며 망동을 부리는 것은 듣고 자람에서 사람다움을 상실한 것이니


그것은 장난도 아니고 떼거리문화도 아닌 그 사람의 본성일 뿐이다.

그릇되었으니 곧 사람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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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가끔씩 실수를 한다. 그리고 나서 내가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후회한다.

사람은 가끔씩 짜증을 낸가. 그리고 나서 내가 왜 분노했는지에 대해 후회한다.

사람은 가끔 슬퍼한다. 그리고 왜 내가 그런 일을 했는지 따져보고 더 슬퍼하며

슬퍼할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을 보고 더 슬퍼한다.


사람들은 가끔씩, 아주 가끔씩 옳은 일을 한다.

그리고 격에 맞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래놓고 우리는 늘 우리가 옳고 격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때는 실수하거나 짜증나거나 슬퍼할 때 뿐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단지 반추일 뿐, 그것에 대한 예방책이나 대비책을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몇 번 되지도 않는 인생의 나이스 타이밍에 대해서

그것이 으레 일어나고 내 삶을 지배할 것이라는 헛된 희망만을 반복한다.


그게 나다.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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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見.聽,感 2012. 12. 29. 14:24

빅토르 위고 원작의 레미제라블은 이미 국민학교 시절부터 읽었고, 그 때도 참 구구절절한 인간사로구나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조금 뒤 청소년기에 들어가서 교회생활에 심취해 있을 때에는 '아 주님의 은혜는 이렇게 죄인의 삶을 통째로 바궈주시는구나."하면서 감동하며 읽었다.


그리고 지금 중년의 삶이 왔을 때는 역사적인 배경이 보이더라. 혁명 이후 다시 반동의 세력이 정권을 잡고 그 기나긴 시간동안 일과가 되어버린 투쟁의 나날, 타파되었다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계급의 그늘, 살기좋은 세상을 찾아 일으킨 혁명으로 점점 빈곤해지는 일상사와 약유강식. 아마 빅토르 위고는 이것을 기반으로 신앙적 바탕 안에 극적 장치를 설정했을 것이다. 빅토르 위고는 공화주의자였다. 복고의 시절을 견디지 못해 망명까지 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의 눈으로 본 프랑스의 형국은 절대로 푸른 하늘 아래 드넓은 초장이 아니었으리라.


어저께 뮤지컬을 각색한 영화 [레 미제라블]을 봤다. 나름대로 발성좋은 배우들의 연기였으니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 오히려 뮤지컬에서 볼 수 없었던 구도와 클로즈업의 묘미가 극적 감동을 더 가져왔달까. 재미있었다. 남의 나라 혁명과 거지의 이야기니까 극장에서 봤지 이게 대한민국 극작가가 쓴 글이었다면 아마 그 작가는 구속되거나 지금쯤 코렁탕을 먹고 있을 법 하다.


각설하고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책으로 읽으면서 놓쳤던 부분 하나는

남주인공 [마리우스]가 관여했던 학생운동은 처절하게 실패로 끝난다는 것이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책을 동화판으로 봐서 그랬나 아니면 로맨스에 몰입해서 숲이 안 보였던가? 아무런 고통과 회환도 없이 그저 슬쩍 지나가 버리는 혁명과 운동의 실패. 빅토르 위고도 별 다른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 뮤지컬이 축약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덤덤하게 지나가 버리는 혁명의 실패는 뒤 이어 나오는 코제크와 마리우스의 혼약에 묻혀버린다.


아마도 한국이었다면 불굴의 의지로 혁명이 성공하며 피에 물든 태극기를 날리는 민중들의 아우성으로 영화의 대망이 끝났겠지만 레미제라블은 그렇지 않았다. 난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참을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빅토르 위고는 왜 그랬을까.


아.

결론은 우리나라의 축약된 역사였다. 

프랑스는 혁명만 80년 가까이 끌어오면서 민주주의를 가져온 나라다. 사사오입해서 백년간 자국의 투쟁이 있었다. 빅토르 위고는 19년을 망명으로 보냈다. 한 두해 한다고 성공하고, 한 두명 대통령 민선으로 뽑힌다고 짜잔 나타나는게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흐름에 대한 인내, 희망에 대한 장구한 믿음이다. 피가 흐르고 흘러서 겨우겨우 맺히는 게 민주주의의 씨앗이거늘. 우리는 기껏해야 20년 아닌가. 아직도 60년이 남았고, 두 세대가 더 가야 하는 것인데.


언젠가 그 날이 오리라. 희망으로 노래하던 레미제라블의 엔딩이 오늘 아침에서야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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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욕먹을 말이지만 그냥 쓰련다. 

1주일이 넘었는데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니까.






우린 그냥 주인이 싸 주는 똥에 한없이 감사하며 혀내미는 똥개의 자식들이었던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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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16일 이후, 50여년간 줄기차게 투쟁해온 민주주의의 역사는 통째로 부정당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자결권과 권리에 있어서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 스스로가 주체가 되며 그것으로 인해 민의는 자유로움을 대변하는 국가운영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이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거대한 우로보로스가 되어 민주주의의 머리가 꼬리를 씹어먹으며 결국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다.


박근혜가 국정을 잘 운영하고 성군이 될 지도 모른다. 아버지 박정희와는 비교 안되는 대통령의 자질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박근혜 개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의 역사를 거꾸로 흐르게 한 국민들에게 비난의 말을 돌릴 수 밖에 없다. 가치판단의 근거를 역사에서 찾지 못하는 민족 앞에 무슨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리 오래 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다. 알 던 사람, 선배, 어른들이 그렇게 고생을 하며 죽음과 신체의 구속을 감내하며 투쟁하여 획득한 참정권을 가지고 독재자의 딸과 독재정권의 후신을 밀어줬다는 이 모순된 비극을 뭐라고 설명할수 있을까? 소포클레스가 글을 써도 이것만큼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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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작은 방 한담 2012. 12. 14. 22:02

많은 일이 있었다.


이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다. 

끄적거리던 소설이 출판제의를 받았다.

팀장이 되어서 회사에서 no.2가 되었다.

좋은 여인을 만나서 결혼을 앞두고 있다.


후반기에 갑자기 밀어닥치는 호운에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이것은 내가 어느 읍습한 뒷골목에 누워서 꾸는 백일몽이 아닐까 싶은 순간이 있다. 일생의 대운을 내가 맞은 걸까? 그 동안 혼자 절치부심하던 삶의 보상인가? 이것저것 상상해 본다. 하지만 눈을 뜨고 방에서 일어나 해를 보고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아파트 문을 열면 다시 나는 내 처지를 날카롭게 인지하게 된다. 이것은 실제상황이구나.


감사를 해야 한다. 세상의 누구나 나 정도의 노력은 하고 산다. 나 만큼의 질고는 다 겪는다. 그리고 나만큼의 슬픔과 고난과 절망은 모든 사람의 가슴에 다 옹이져 있다. 그런데 나는 모든 것이 순탄하게 풀리고 있다. 이것은 그저 축복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리라.


더불어 나는 한가지 단어에 천착한다. 호사다마. 

기쁜 일이 있으면 곧 슬픔이 몰려오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다. 사탕을 하루종일 입에 물고 있으면 볼이 아리게 되는 법이다. 언젠가는 모든 것들에서 행복이 옷감의 물 빠지듯 서서히 내 손아귀 사이로 빠져 나갈 것이다. 염려가 아니라 그것이 삶의 과정이며 순환이라는 것을 나는 값을 치르고 배웠다. 나는 그 때 과연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할까.


아무쪼록 그 날이 오더라도 과거의 생채기를 반면교사삼아 대범해지기를.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고 돌아 행복한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말기를.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인생 순환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순응하기를.


나는 내게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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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쯤 전 일요일의 일이다. 나름대로 가을남자, 추남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서 와이셔츠를 하나 사러 아울렛에 들렀다. 와이셔츠와 추남의 정취 간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아리송하긴 한데, 하여간 그 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각설하고, 와이셔츠를 사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오전 교회에서 나눠 준 떡이 발동이 걸렸다. 갑자기 배가 와르르 소리를 내면서 아프더라 이거다. 다행스럽게도 아울렛의 일요일 오전 화장실은 조용하고 사람들도 없었으니 고요한 리비도의 쾌감이나 얻고 가려고 들어갔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조금 있으니 옆 사로에도 사람 하나 들어온 것 같더라. 하여간 낯 모르는 사람 둘이 앉아서 일요일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데 조금 뒤에 어디선가 칭얼칭얼대는 소리가 하나 들리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조금 칭얼대는 딸내미와 많이 자상한 아빠의 목소리였다.


"우리 oo이 쉬마려? 조금만 기다려~"

그러더니 남자 화장실 문을 노크하는거다. 아니 엄마는 어디다고 아빠가 딸내미 화장실을 끌고다녀! 라는 생각은 그렇다 치고 열시히 노크 답을 해 줬다. 나도 살아야지. 아빠는 화장실들을 다 노크하더니 다시 터덜터덜 화장실 밖으로 나가더라. 거기까지야 다 그런 거지.


그런데 말이야.

"OO아, 지금 사람들이 모두 들어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알았지? 못 참겠어? 사람들 곧 나올거야. 응응 그래그래 조금만 기다리자. 힘들면 아빠한테 말해~"


참 무지하게 자상한 아버지더라. 화장실 입구에서 다 들리게 말을 하면 뭐 어쩌라고. 나도 인간적인 양심이 있는데 급한 거 해결되고 나면 아버지와 딸의 애처로운 대화가 귓구멍을 간지럽히지 않겠는가. 어린애가 급하다는데 내가 유유자적할 상황이 아니지. 얼른 나가주자 그러고는 대충대충 뒷수습하고 물 내리고 밖으로 나섰는데


옆 사로가 비어있더라고.


그런데 그냥 비어있는게 아니고, 누군가가 옴팡지게 싸 놓고 물을 안 내리고 간 것이었다. 물 안 내린 놈은 손이 없었나보다. (똥쌀 때 지퍼는 어떻게 내렸지? 바지를 안 입고 다니나?) 하여간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면서 밖으로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딸내미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훤칠한 아저씨랑 마주쳤다. 그런데 훈훈하다는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고 성질부터 확 올라왔다.


"저놈의 인간은 지가 남의 똥 물내리는게 싫어서 옆에서 잘 싸고 있는 사람 밖으로 내몬거야?"


딸내미가 쉬마렵다고 끙끙대면 손바닥으로 똥을 퍼내서라도 화장실을 쓰게 하던가. 남이 물 내린 화장실에 꼭 들어가겠다는 것은 뭔가. 똥포비아라도 있는 놈인가. 거 참 희한하게 가탈스러운 인간일세. 설사가 터져도 물 안 내린 화장실 앞에 가면 바지에 쌀 놈이로다. 혼자 궁시렁궁시렁 거리면서 나는 집으로 들어왔다. 아무쪼록 이름도 모르는 딸내미의 방광이 아버지의 결벽성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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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증스러움

투덜투덜 2012. 9. 20. 22:56

한때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 목표였다. 많은 시간을 온전히 나를 향해 쓸 수 있기만을 바랬다. 시간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것을 가져봤다. 확실히 이것은 여타 어떤 것들보다 인생에 값진 행위였고, 나는 그 안에서 무한한 안락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시일이 지나자 참으로 얄궃고 미천한 것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돈이었다. 세상 만악의 근원이라는 것을 성경을 빌리지 않더라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법이지만, 마치 발바닥에 박힌 작은 가시처럼 금전적 핍절이라는 것은 내 신경을 부단히도 긁어대는 종류의 통증이었다. 맨 처음에는 견딜 수 있는 노릇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통은 점점 심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져갔다. 어느 순간, 이 작은 고통은 수미산같은 거대한 고통이 되어서 나를 짓눌렀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돈을 벌어야겠다. 돈이 있다면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그래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뒤 몇달간은 나를 짓누르는 고민이 사라진 것 때문에 행복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 불가피한 인생살이는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시간의 자유를 모두 늑탈했다는 것을 느끼면서 또 다른 절망에 빠져든다. 


사람이라는 것은 원래 모든 것을 가지면서 행복할 수는 없다. 시간을 가지고 있다면 돈이 없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며, 돈을 벌고 싶다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동물이 어찌 그러한가. 우리는 늘 그래서 슬프고 슬프다. 인간이라는 것은 한참 뒤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을 지켜보면서 그 가증스러운 추함에 치를 떠는 짐승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동물이지만 그 거짓말의 대부분을 자신에게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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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같은 종족과 정말 많은 대화를 한다. 의사소통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생물을 있을까 모르겠다. 솔직히, 그런 종류의 이야기라면 돌고래정도로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인간은 정말 말이 많다. 이메일도 있고 문자언어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을 한다. 왜 말을 할까.


심심하니까. 외로워서. 할 일이 없어서. 아마 이런 이유가 장황한 수다생물을 만든 원인 아닐까 싶다. 유희적 동물이라고 설파된 족속이다. 그러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나서 재미없는 이야기 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건 참으로 고역이다. 그렇다고 만나놓고 내 할일 있다고 면상에 사람 앉혀놓고 책 보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는 것이 일종의 노동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한, 사람의 만남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유희의 일종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전화를 통해서, 혹은 채팅을 통해서 쉴새없이 말을 주고받는 경우도 있다. 얼굴을 보지 않고도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하고, 그런 삶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전화는 몰라도, 채팅이라는 것은 업무나 시간의 흐름에 의해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유장하게 이어지는, 어찌 보면 시간을 유구하게 잡아먹는 기나긴 대화다. 사장이 보면 무척이나 싫어할 노릇이지만 그 빈도는 점점 늘어나지 않는가.


대화는 유희뿐 아니라 치유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말을 털어놓고 동정이나 감상을 얻어내는 것으로 사람은 건강함을 유지하는 듯 싶다. 


모든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 R.E.M이 노래한 것처럼.


그래서인가. 나이를 먹으면 내 이야기를 할 사람이 줄어들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고르는 것이 가탈스러워진다. 알게 된다. 저 사람이 건성으로 내 이야기를 듣는지, 저 사람이 나를 귀찮게 여기는지 아닌지. 

실망함도 상처의 원인이 되는 세상이다.  누군가와 격의없는 대화를 하는 것을 절실히 느낄수록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 점점 힘들어짐을 느끼게 된다. 결국 남는 것은 옛 친구들 뿐. 그리고 정말 마음 잘 맞는 극소수의 몇명일 뿐.


어느 순간, 대화할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리고 지금까지 조금의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내 수첩에서 지워져 갈 때, 우리는 느낀다. 아, 더 이상 인생의 확장은 없구나. 나는 나이를 먹는구나.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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