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11.07.04 평가 5
  2. 2011.05.20 봄이여 오라 2
  3. 2011.05.07 욕지거리 2
  4. 2011.04.25 2011.4.24 2
  5. 2011.03.31 혼사 6
  6. 2010.08.04 돈의 흐름 4
  7. 2010.05.05 閑事莫管 (한사막관) 3
  8. 2010.04.15 아는만큼 2
  9. 2010.02.18 희망 2
  10. 2010.01.07 우정으로 하늘을 뚫는다 하지만 4

평가

수련장 2011. 7. 4. 01:33
원래 사람을 잘 믿는 성격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특별히 여성에 대해서 혹독한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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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여 오라

작은 방 한담 2011. 5. 20. 02:29
세월의 지남과
사람의 끌림에 의해
남이 갖다주는 거 원하지 않으니

봄이여
내 봄이여

어서 오너라
어서어서 머리풀고 미친 년처럼 오거라

남들이 다 받아주지 않아도
나는 내 봄이니 가없이 맞아주련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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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거리

작은 방 한담 2011. 5. 7. 22:36
생활의 연속 가운데 블로깅을 하다보면
가끔씩 그냥 욕지거리를 가득 써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그날 상황이 정말 내 입맛에 맞지 않게 돌아가던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이 굉장히 처량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데 세상은 어시스트 하나 안하고 혼자 드리볼을 하고 있다는 심정이 들 때 그렇다.

하지만 감히 할 생각은 못하는게
내 블로그를 나만 보는 게 아닌 것이 첫째고,
내가 블로그를 읽는 사람들 기분까지 덩달아 망칠 이유가 없음이고
그렇게 욕지거리를 써 봤자 내 격만 떨어질 것 같은 것이 마지막 이유다.

그렇다고 일기에는 쓰느냐.
가끔은 쓰지만
며칠 지난 뒤에 읽어보면 왜 이런 욕을 써 놨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것도 안 한다.
사건경과를 일일히 기록하고 유추해서 "그래서 그 XX가 나쁜놈이야"라고 기록해 놓은 일기도
몇개 있긴 하지만 그건 이미 이성을 지니고 기록한 결과물이니까 화가 나서 쓴 욕지거리라고 볼 수는 없다.

결국, 욕이라는 건 그 순간에 사람의 심리를 진정시키기 위한 방어수단일 뿐이다.
길게 끌어 갈 것도 없고 기록으로 남길 것도 없다.
말 그대로 허공에 흩어져야 할 음성이다.

난 욕하는 걸 별반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꾸준히 열심히 하다보면 흡연처럼 습관이 되겠지만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줄이는데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 없을 때 혼자 해야지
들으라고 하는 건 스파링을 위한 몸풀기의 시작일 뿐이다.

그래서 예전부터도 
조상님들이 안 듣는데서는 임금욕도 상관없다고 하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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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24

수련장 2011. 4. 25. 01:01
1.
사람이 무언가를 계획할 때는
내 마음이 십리를 나갈 때 애써서 한 발자국 굳건히 디디는 심정으로 나가야 한다.

LG응원하고 있다. 엘레발치지 말자. 우리의 모토다.

사람 사귀던 다른 일을 계획하던
절대 설레발은 금물이다.

달걀 사오면서 부자 꿈꾸던 아가씨가 달걀 깨뜨리는 동화를
어렸을 적부터 봤으면서도 정작 커서는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2.
봄이 오긴 오는 것인가.



3.
글을 쓴다. 쓴다. 하지만 귀찮아서 안 쓰는 날도 있다.
하루하루 습관이 되지 않으면 그것을 업으로 삼을 수 없다.
지겨워도 써야 한다. 그것이 우선인데 난 아직도 습관이 그렇데 들지 않았나보다

머릿속에 장황한 스토리라인이 있으면 뭐 하나
이러다 술먹고 까먹으면 그만인데

얼른얼른 부지런히.
하지만 천천히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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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사

작은 방 한담 2011. 3. 31. 22:22
슬슬 혼사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저런 기타 상황도 중요하지만 일단 부모님은 결혼이 급선무라고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정작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화투목도 사 놓지 않았는데 밑장빼기를 하라는 말로 들리니 어찌한단 말인가.

대한민국에서 인생사를 홀로 결정하는 문제란 참으로 힘들다.
사람을 만나고 겪고 헤어지는 문제는 나이가 아무리 들고 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늘 초심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문제다.
주머니에서 물건꺼내듯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다.

혼자 사는게 가끔은, 아니 종종 귀찮을 때가 있다.
밥도 혼자 해 먹고 청소도 혼자 하고, 아프면 끙끙대고 하는 게 귀찮긴 하다.
그렇다고 냉엄히 생각해보면 둘이 된다 하더라도 저건 내가 다 할 일이다.

결혼하면 밥을 내가 해 먹지않아도 된다고 믿는 부모님들에게 이리저리 설명을 하기도 귀찮을 지경이다.
결혼하면 살이 찔거라고 믿는 부모님들에게 뭐라고 설명을 할 수도 없고
결혼하면 뭔가 안정될 거라고 믿는 것에 대해서 쌍지팡이 짚고 나설 수도 없다.
가진 게 많으면 고민은 늘어날 뿐.

그리고 무엇보다 맘에 드는 처자와는 연분도 안 이어질 뿐더러
이어질만한 연결고리도 없다. 결국은 내가 어디 나가서 껄덕대야 한다는 이야긴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싫어하는 인간 하나가 그 꼴을 하고 돌아다니던 기억이 있어서
별반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솔직히 난 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하고 결혼이라는 단어와는 접점이 없다는 것을.
 
소개받을 사람들은 많단다.
경험상 뭐 하나 어울린 적 없었고,
인생 유일하게 내가 진상 갑(甲)질을 해 대는 게 선자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에도 눈 감고 그냥 해 버릴까.
대충 성격 좋아 보이면.
아, 천만에.
난 내 분별력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의 평판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도 이젠 잘 안 믿는다.

가만히 써 놓고 보니
한 두개 문제가 아닌 총체적인 부실이로세. 후쿠시마 원전의 연애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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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

투덜투덜 2010. 8. 4. 15:13
예전 어른들은 돈은 돌고 돌아서 돈이라고 하셨는데
요즘은 돈의 흐름이라는 것이 인위적으로 조작되어서 그런지
윗선에서만 빙글빙글 돌 뿐 아랫쪽으로는 아예 물길이 끊겨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들어오고 나감은 그냥 순리지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던데
이미 사람들의 욕심이 과해서 순리가 아니라 자연을 역행하는 것 같더라.

결론: 돈 구경하기 힘들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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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막관.

쓸데없는 일에 손을 대지 말라는 고사성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여기저기 기웃거리길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이도 뭔가 내게 관심을 써 줬으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여기에서 사람들간의 교류가 생기는 것이리라.

하지만 삶이라는 것은 욕심이 좌우하는 것.
사람은 [인정받고싶은]욕구라는 것이 있다. 특히나 자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 초패왕 항우가 진시황의 아방궁을 불태우고 뭔 짓거리를 했나. 초나라로 보화를 짊어지고 떠났다. 
'금의환향'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앞세워서 말이다. 천하를 앞둔 사내치곤 띨빵한 짓거리였지만 그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고향 초나라에 가서 친한 동네 사람들에게 무슨 성과가 있었는지 보여주고 싶은 게 그 욕심 아니었겠는가?

사람들은 여기서 좌절한다.
최소한 나를 이해해주고 내가가진 것을 저 친구는 그래도 가감없이 봐 주고 나와 함께 하겠거니 생각하지만
사람은 십인십색, 내가 신용한다고 그가 나를 신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저 사람이 내게는 [천명중의 한 명]일지 몰라도 그 사람은 나를 [천 명 가운데 있는 그러저러한 관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슬퍼할 일도 아니고 짜증낼 일도 아닌 것이다. 슬퍼하고 짜증낼 때 한사막관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이다.

대저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붕(朋)이라고 할만한 이는 죽을 때까지 몇 이나 될 것인가?
내가 살아가면서 진짜 형(兄)이나 제(弟)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다섯손가락을 넘을 것인가?
내가 살아가면서 진정 사(師)라고 부를 수 있는 자를 죽기 전에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살면서 실제로 애(愛)할 수 있는 사람이...세상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삶이라는 것은 비정하고 얄팍하고 손이 갈수록 혼탁해지고 정성을 다하더라도 잡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인연이고 하늘이 내린 교우 아니면 힘든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것인데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용을 쓴다고, 내가 무언가를 구하려고, 취하려고 한다해서
그것이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둥바둥 거림은 말 그대로 쓸데없는 일에 손을 대는 일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임을 느낀다. 
그리고 쓸데없는 일임을 알면 거기서 손을 털고 조용히 빠져나와야 할 일인 것이다.

어디 나 혼자그런 생각을 했을까.

碧梧桐 심은 뜻은 鳳凰을 보려터니
내 심은 타신디 기다려도 아니오고
無心한 一片 明月이 뷘 가지에 걸녀셰라
 
옛 사람도 다를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뜬금없는 결론 : 고양이나 빨리 길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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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만큼

수련장 2010. 4. 15. 23:45
사람이건 사물이건 지식이건
딱 아는 만큼만 보인다.

그리고
스스로 원하는 노력이 없으면
더 이상 알게 되기도 힘들다.

지식의 습득, 관계의 발전
모든 것은 나이나 학력에 무관하며
사람이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호기심에서 출발하고
호기심이 사라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 가운데 과정에서 무언가 얻던가 깨닫던가
아니면 그르던가를 판단하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을 방해하는 것은
속단과 게으름이며
종당에는 스스로의 굴레에서 만든 편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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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작은 방 한담 2010. 2. 18. 19:20
수라도에 다름없는 세상에
오늘 내일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란

[내일을 알 지 못한다는 불명확성]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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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어서 사람을 만날 때
그 돈독함이 젊은 시절 친구만 못함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비록 나이 먹어 만난 사이가
두 사람 친분이 어렷을 적 막역지우를 만난 듯 하더라도
금새 사안에 따라 언제 봤냐는 듯 돌아설 수 있음도
다 나이를 먹어서가 아닌가.

사람 사이 틀어짐은 겁이 많고 셈이 많아서일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 지레짐작함이 두렵고
내가 이런 태도를 취하면 저 이는 곡해할 것임이 두렵고
저이가 이런 태도를 취하면 내 이런 것이 손해보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도 다 똑같았다.

기분 나쁘게 말하는 친구는 늘 있었고
셈이 빨라 자기 잇속 차리는 친구도 늘 있었고
친구는 친군데 어디 갔는지 찾지 않으면 안 뵈는 공기같은 친구(?)도 분명 있었으니

달라진 것은 오직 하나일 뿐.

[저 인간이 이랬으니 더 이상 보지 않으련다]
라는 마음이 어렸을 적에는 거의 들지 않았고
그런 건 원수간에나 하는 줄 알았을 뿐이고

나이가 든 뒤에는
친구라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아도 되고
오랫동안 보이지 않아도 되고
오랫 시간 같이 한 이를 잘라도
인생에 별 문제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저 그러한 것인가보다.
[정도와 범위를 벗어나지 않음]에 대해서 어렸을 적에는 알거니와
나이를 먹으면 그 모든 것을 다 깨버려도 삶이 유지됨을 알기에 스스로의 삶이 피폐해짐이니.

바꿔 생각해보면
북망산천이 내려다 보이는 황혼에 서로 만났다 치더라도
[관계의 파탄]을 염두해 두지만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친구로 지낼수 있음 아닌가.

물론 서로가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겠지만
예의를 벗어났을 때 얼마나 그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한계는
내 맘속에 어떤것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가 [그런식으로 나온다면] 인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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