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닭의 울음소리는 파사헌정의 뜻이 담겨 있다. 모든 사기와 악행의 그림자들은 떠오르는 일광과 함께 역사이 건너편으로 사라져 추악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세세토록 울며 굶주리며 고통받다 죽을 지어다. 우리 앞길에는 희망만 있을 지어다. 내 어린 아들과 내 아내와 내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광영이 있을지라. 오직 광영만이 남아 있기를 바라노라. 승리. 승리하리라. 김근태 선생의 유지대로 우리는 승리하여 살아갈 날들을 손아귀에 온전히 잡고 우리의 힘대로 땅을 갈게 되리라. 아멘아멘 주 예수여 우리의 소망을 들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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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사내가 글을 쓰다가 막히는 것이 있어 모르는 이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자신은 자신의 글을 쓰고 싶은데 읽어주는 독자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요즘 시류를 따라 보다 가볍고 자극적인 글을 써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 계속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는 전업작가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어했다. 그런 그에게 조언을 주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현실적인 대답을 주었고, 그는 그 길에서 답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풀어놓은 하소연 속에서 그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찾을 수 있었다. 필요한 것은 정당성이었지 자신의 글을 밀고 나가고 싶어하는 고집이 아니었다. 


그것을 탓할 수 없다. 내가 존경하는 김훈 선생도 자신이 풀어놓는 글이 돈이 되지 않는다면 바로 그 길을 때려치고 막노동이라고 할 것이다. (그 분이 누누이 시간될 때 마다 말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간단한 노릇이다.) 그런 마당에 전업작가가 되어 돈을 벌고 싶다는 사람에게 네 글을 온전히 지키고 그 안에서 도리를 찾으라고 감히 설교할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해서, 그 사내의 글 뒤에 엉망인 글으 ㄹ써서 늙어 죽을 때 후회하고 싶냐는 글을 달았다가 겸연쩍어 금세 지워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가진 재주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선 사내에게는 타인이 뭐라고 할 수 없는 결심이 있는 것이다. 그저 그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일 터, 나는 내 쓸모없는 오지랍에 입맛이 썼다.


2. 가만히 사내를 통해 나를 들여다본다. 난 지금 무협소설을 쓰고 있다. 지독하게 팔리지 않는다. 원하던 바와 다르게 작가주의 작가로 전직한 지 오래되었다. 난 내 글이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독자들을 어려워한다. 난 나이를 먹었고 인터넷으로 텍스트를 바라보는 이들은 한참 연령이 내려갔으며, 그들은 활자의 가독성을 그 안에 있는 함의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게 시대가 요구하는 것일진대, 나는 시나브로 작가주의 무협작가가 되어버렸다. 


나는 욕망을 거세한 유학자가 아니다. 나 역시 돈에 대한 미련이 누구보다 큰 사람이기에, 전술한 작가지망사내의 고민을 떨쳐버리지 못하였다. 문제는 내 글에 대한 두려움이다. 글은 사람의 생과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얄팍한 재주를 통해 밖으로 밀려나오는 것인데, 시류를 따른다고 하여 그것을 억지로 밀어넣으면 그것은 온전한 내가 아닌 것이다. 나는 글을 이런 식으로 밖에 쓸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미 글을 쓰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글로 표현되는 내가 진정한 내 내면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면, 나는 엄숙하고 진지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양쪽으로 갈라놓고 한 쪽에 저울을 대기 원하는 인간이다. 이런 사람에게 이렇게 혼잡하고 바쁜 세상에 맞는 글을 원한다는 것이 이미 글러버린 소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작가지망생 사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낙백한 사내의 허튼 소리일지도 모를 일이다.



3. 이런 연유로, 나도 반대급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상소리와 성교와 폭력이 서로 엇갈리며 쉽고 빠른 복수와 인간관계의 해결을 모토로 하는 간식같은 소설을 써 볼까 하는 생각이 가끔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아마도 몇 만자 정도 쓰다가 내 자신에게 화를 낼 것을 알기에 나는 더 이상의 상념을 이어가지 않는다.


4. 내가 진짜 재미로 쓰고 싶은 소설은 하나 있다. 내가 존경하고 닮고싶은 글을 가지고 있는 '자건'작가가 쓰다 만 [풍운비양]을 보면서 늘 느끼던 것이었다. 난 나중에 초한지를 한 번 써 보고 싶다. 그 안에 한 번 들어가서 이야기를 그대로 쓰고싶다는 생각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다음의 이야기다. 지금은, 그냥 혼자 앉아서 왜 사람들이 내 글을 읽지 않느냐며 화를 내는 중년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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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삶 중에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계절이 있으랴. 타인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린시절 부모의 그늘에 살면서 모든 것이 제 맘대로 된다고 믿었던 시절을 제외한다면, 내 삶은 말 그대로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쏟아지는 소나기를 기다리며 일광 아래 내려가서 땀을 흘리는 치기어린 행동을 일평생 반복한다 생각해보라. 삶은 어리석음으로 인해 끝없는 고난이 되어 내 앞날에 펼쳐질 수 있는 법이다.


박근혜는 어리석었다. 어리석었다는 말 하나만으로 지금 그가 보이고 있는 퇴행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무당의 딸에게 조종당하고 그에게 의식의 모든 것을 빼앗긴 채, 그가 시키고 행동하는 것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인 양 체화하며 국민의 세금과 국민의 권력과 국민이 그에게 빌려준 모든 힘을 동원하여 무당의 재산을 불려주고 죄없는 민중들과 이 나라의 앞날을 저당잡았다. 지금 박근혜는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이 되지 않는 것을 목격하고 있을 것이다. 왜 모든 것이 잘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작동하지 않은 것일까. 아마 그녀는 지금 그것을 의심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유년시절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이 나라 최고수장은 이니 산 나이가 살 나이를 뛰어넘어버린 지금 이 순간 그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삶은 어리석음으로 점철되어 있고, 그 결과물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끝없는 고난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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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

작은 방 한담 2016. 8. 12. 02:04

계절은 시냇물과 같다. 어디서부턴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되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넘어간다. 우리는 늘 같은 것을 겪고 느낀다고 하지만 한번도 같은 계절이 내 인생이 돌아온 적은 없다.


굉장히 무더운 날이 지속되고 있다. 94년 이후 최고의 더위라고 했다. 

  94년, 나는 그 때 웃통을 벗고 군대에서 진지보수공사 작업을 하던 청춘이었다. 뜨거운 햇살에 등이 시뻘겋게 익었고, 타이어에 흙을 채워 구조물을 만들고 다시 다음 해에 헐고 재공사를 하던 쓸모없는 반복작업 앞에서 나는 의미없이 지쳐갔다. 그 때 나는 절망적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같은 경험을 해 본 적 없는 막힌 사회의 폐쇄적인 집단생활이라는 것은 결코 26개월 후 나를 자유롭게 해 줄 것 같지 않았다. 하루의 무덥던 해가 떨어지고, 내무반으로 들어가 빨래를 하고 방전된 배터리처럼 구석에 처박혀 내일 아침엔 깨지 말기를 바라며 다음날 아침을 맞이했었다. 그 해 여름은 정말 덥고 절망적이었다.


2016년의 여름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나이를 먹었고, 아이가 있고 부인이 있으며 뭔가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이 천직이라고 생각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밥을 주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한다고 해서 밥이 나올 거라는 보장도 없다. 나는 열린 세상에서 가능성이 얼마인지 모를 세상일을 하기 위해 열기를 복사해 내뿜는 콘크리트 위를 오가며 지쳐간다. 뭔가 나를 자유케 해 줄 것만 같은 삶이 내 앞에 있는데 정작 나는 더위만을 꾸역꾸역 먹으며 오늘 올 지 내일 올 지 모르는 희망을 찾아 맴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일이 나를 자유케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는 다시 절망으로 빠져들까.


분명 더위는 똑같지만 같은 것이 아닌데.

왜 내 몸은 다르다 말하면서도 늘 이렇게 지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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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삼성의 늙은 회장이 접대하는 여인 셋을 아방궁같은 자신의 별채로 불러 성적 만족감을 고취시키는 서비스를 받은 것이 최승호기자의 뉴스타파에 걸렸다. 화대는 1인당 500만원.

가당치 않게 웃긴 뉴스다. 

최근 뉴스 중 가장 웃기고 서러운 뉴스라 할만하다. 


천하에 나라보다 귀하고 나라보다 큰 권세를 지녔다 타평하는 대 삼성의 노회장이 한다는 것이 겨우 별채에서 여자 셋하고 자위행위나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씁쓸하고, 그나마 그 짓을 하고 여인들에게 하나하나 돈을 세서 주는 것이 그냥 어느 동네 슈퍼마켓에서 봉지에 물건 담아 가는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 모습하고 다를바가 없어서 짠하고. 무엇보다 몇번 입질인지 손질인지로 싸낸 정액 값이 물경 인당 500만원이나 한다는 것이 서글프다. 힘들게 짜대는 정액에 500만원이나 붙여줘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고래등 같은 별채에 불려들어가서 007처럼 과업을 수행한 기쁨조에게 준 돈이 겨우 500만원이라는 것에 실소를 내야 하는 것인지.


인간의 욕망은 생각보다 훨씬 단촐하고 상하구별이 없이 원초적이다. 하지만 이보시오 회장님, 당신은 범법행위를 한 것이네. 그리고 1500만원이면 사회초년생의 1년 연봉이오.


2.

게임회사에서 성우를 자르고, 성우는 과격단체에게 낚이고, 과격단체는 다시 게임회사에서 데모를 하고, 이 일과 관계없는 웹툰 작가들은 자신들의 공분을 토로한다고 날뛰고.


사람이 사람을 경홀하게 보는 것에서 모든 문제가 출발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 반대급부로 타인을 경홀하게 보겠다고 작심하면 이미 그는 그때부터 비판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무자헤딘이 소련군을 조국에서 몰아낼 때, 그들은 세계 각지에서 원조를 받았다. 미국과 아랍의 제국이 모두 아프간을 응원하고 군사물자를 때려박아 넣어줬다. 그 덕에 군벌이 생겨났고 마수드 장군 같은 인격자도 생겨났고 인간 살인마같은 군벌들도 생겨았다.

하지만 그들을 모두 박멸해버린 것은 탈레반이라는 젊은 원리주의자들이었고, 그들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모든 자들을 척살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원칙에 어긋나는 모든 것들을 때려부수었다. 아직도 그들은 자신의 말을 정의라 믿을테지.


현재 우리는 탈레반보다 더 지독하고 악마같은 IS라는 족속들과 싸우고 있다. 


3.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들이 저런 잡다한 일에 가려지고 있다.

나라가 풍전등화다. 위정자는 정치를 모르고 내정을 모르고 외교를 모른다.

율사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썩어서 한 군데도 성한 냄새를 풍기는 놈이 없다.

나라가 머리부터 썩어문드러지는데, 이미 망국의 냄새가 사방으로 뻗쳐 호시탐탐 승냥이같은 제국들이 나라를 먹으려고 고개를 치켜든다. 범부도 아는 일을 왜 고위층이 모르랴. 교토삼굴이라. 남아서 피바다에 죽어가는 것은 저들이 아닌 우리 민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더위에 기분이 나쁜 것인지, 아니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이런 무분별한 혼란 때문에 숨이 막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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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디가서 변명도 하지 못 할 불혹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사람은 자신의 나이먹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도 학생시절의 일이 선연하게 머릿속에 잡힐 듯 생생한데, 이미 내 생체시간은 저 멀리 인식의 건너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럴진대, 배운 노인네들의 쓸모없는 수구 패역질이 어찌 가당하냐 여겼던 내 무식의 소치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혈기왕성한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는 나 만큼이나 말이다.


정신과는 상관없이, 육체는 시간의 흐름을 충실히 이어받기에, 쓴 만큼 망가지기 마련이다. 허리가 먼저 망가졌고, 그  다음은 머리가 빠졌고, 그다음은 소화기관이며, 그 다음은 관절이다. 엊그제부터 아프기 시작한 무릎은 갈수록 아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물까지 차게 되었다. 오늘 병원에서 주사기로 무릎에서 뽑아낸 물만 해도 30CC에 육박하였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내 몸에서도 향상되는 것이 있었으니,망가지는 몸뚱이만큼 고통에 대한 인내력은 증가하는 듯 싶다. 아마 고등학교 때 주사기를 몸에 찔러넣고 물을 뽑는다고 하면 고문이라 했을 터이나, 나는 응당 내 부서지는 몸에 대한 고육책임을 통감하고 생면부지의 의사에게 몸을 맡겼더랬다. 언젠가부터 그러려니 하면서 고통에 몸을 맏기게 되었다. 서글퍼 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게 어디 될 일이랴.


이미 2세를 보았고, 나는 내 체세포가 다른 인격으로 분화하여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사실 자연의 섭리로 따지자면 이미 나는 내가 육신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마친 것 아닌가. 인간은 홀로 지고하고 교만하여, 조물주가 자연에게 내린 순환과정을 애써서 연장하고 파괴하여 자신의 삶을 허위허위 지탱해간다. 나도 어느 새 몸뚱어리를 지탱하는 실험군에 속해있다. 이제 하루이틀 더 지낼수록 하나 둘 망가지는 곳은 늘어날테지. 


몸이 안 좋아지니 마음이 분주하다. 무엇을 더 해야 할 것인지. 종생하기 전에 무엇을 더 준비해야 안락하게 마지막을 보낼 수 있을 것인지를 찾는다. 기실, 이 모든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그저 나무 안에 천조각에 둘러진 채 머리 위에 흙을 이고 그 위에 뗏장을 덮고 눕는 일에 불과하건만, 참으로 머리가 생각하는 일은 번잡하기 그지없다. 에둘러 생각해보니, 내 육신과 달리 생각은 여전히 세월을 건너편을 헤엄치고 다니며 기억의 편린들을 줏어 모아 스스로 자족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거를 돌아보며 즐거워 하면 이미 늙은 사람이라 누군가 말을 하였다. 참으로 옳은 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나는 애써서 과거의 추억을 돌아보지 않으려 하며, 앞에 놓은 얼마 안되는 삶을 경주해보려 애쓰긴 하지만 가끔 이렇게 몸이 안 좋고 맥을 풀리는 날이면 머리가 번잡해지는 것을 억누를 길이 없다. 누구나 그러할까?


누구나 그러하다면 이것 또한 사람으로 태어난 서글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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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구조가능한 300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이보다 더 참담한 해가 있었던가 

1980년 광주의 봄 정도랄까. 대구 상인동 폭파사건/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정도랄까.

그도 아니면 삼풍이 무너진 해였던가.



몯가 이제는 까마득한 과거의 일들이었을진대

추악한 지옥은 아직 여전히 우리 옆에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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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달 12일자로 나도 아빠가 되었다.

   이건 개인적으로 우주만큼 큰 일이니 소사(小事)라고 하기는 뭣한 감이 있지만, 현재 지구에는 초당 4명의 아이가 태어나고 있으니 범지구적으로 보건 국가적으로 보건 그리 큰 일은 아닐 성 싶다. 한 생명의 탄생이 계량화되면 정말 별 볼 일 없어지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거대한 수미산 같은 것이 떨어진 기분이다.


2. 아이가 쉽게 나오지 않아 난산을 거듭했다. 지금 뒷머리도 혹이 나오고 여기저기 구불구불하고 하여간 그렇다. 처는 이럴 줄 알았으면 제왕절개를 할 것을 그랬다고 후회하고, 이렇게 힘들게 낳고 돈이 깨질 줄 알았다면 태아보험을 들것을 그랬다고 후회한다. 뭐 어쩌랴. 인생은 원래 내가 빼먹은 과거지사에 대한 후회의 연속인데. 어쩌다 보니 내 첫 아들은 부부의 후회속에서 아둥바둥 탄생하게 된 꼴이다. 최소한 다른 사람들은 인생에 대한 회한을 나이 먹을 만큼 먹고 시작하는 법인데 내 자식은 아예 생득하고 있으니, 어찌보면 철 든 상태에서 커 나갈지도 모르겠다.


3.  이것저것돈 들어갈 일은 많고, 회사는 때려치기로 마음 먹고, 글은 제대로 써 지지 않는데 정작 집에 오면 아이때문에 쉴 수가 없으니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기운 나는 시절은 아니다. 아내는 아이를 보면서도 왜 울적해 하느냐며 우울해 한다. 하지만 이게 내 천성인 걸 어쩌랴. 기쁜 마음도 들지만 그 전에 내 주변 환경에 대한 긴장도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느끼게 되니 어쩔 수 없다. 난 어렸을 적에 서른이 넘어가면 인생의 나머지에 대한 고민이 대부분 풀릴 줄 알았다. 서른이 되었을 때는 마흔 정도 되면 반 정도 해결될 줄 알았다.


마흔이 되니 모든 것이 미련한 상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4. 뭔가 계속 쓰고 끄적대는 것도 훈련이다. 10년을 한 길로 매진하면 최소한 그 분야에서 밥은 먹고 못 살지언정 어디가서 헛소리로 한나절을 제낄 정도는 되어야 한다.(그렇게 믿는다.) 그러면 뭐가 되었건 계속 쓰면서 나 자신을 연마하는 수 밖에 없다. 어찌보면 인생이란 게 이런 부질없고 기약없는 단순반복적인 행위가 모여 무언가 가치있는 것을 창조하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라며 늙어가는 것일지도 모르지. 내가 어찌 아나. 아직 마흔밖에 안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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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작은 방 한담 2014. 2. 7. 00:33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원래 사회성이라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몇몇, 정말 말 그대로 손가락으로 셈을 하는 선에서 끝나는 내 우정의 한계는 그래서 그런지 뭔가 모를 집착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그들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사는 결혼을 한 지금까지도 유효한 것 같다.


예전 젊은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 어떠면 이 짦은 찰나의 순간 가운데 가장 영원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황금문자로 칠해진 내 인생의 유일한 부분 - 우정일 것이고 그것은 절대로 퇴색되지 않을 것이고 부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것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이제 우리의 삶은 부드러운 감촉이 다 하고 닳고 늘어붙어서 팍팍하고 거친 면들이 계속 나오고

가족이라는 또 다른 울타리로 내 삶이 둘러쳐지고

내가 꾸려가야 하는 삶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는 차안대가 씌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끝까지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 친구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도 풍문으로 들었다.

뭔가 해 주고 싶은 생각이 가슴 속에 있는데

내가 해 줄수 있는 것이 없고

이제 우리는 선의를 선의로 곱게 받을 수 없는 자존심이 있는 가장이 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


무언가 진심은 통하지만

그 진심이 전해지는 것이 슬프다는 것을 알 때


우정이라는 것 또한 사랑만큼이나 얄팍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라는 걸 보게 된다.

이건 단순한 상실감의 슬픔이라기보다는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아픔인 것 같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상실감보다 강하다는 것을

늘 깨닫고 깨닫는 순간


누구나 겪는 인생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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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작은 방 한담 2014. 1. 5. 23:24

허위허위 살다보니 벌써 2014년이 되었다.

40년이 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그리고 40년이 넘도록 뭐 하나 이룬 것이 없을 거라고

내 젊은 시절 언제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올 해 다행스럽게도 자식이 태어난다.

평생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다.


사람은 스스로 세운 계획대로 인생이 이뤄질 것을 희망하지만 그것이 성취되는 일은 드물고, 예상치 않았던 일에 대비하는 지혜를 갖추는 시간은 제 때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또한 닥친 일중에 헤어나지 못할 일 또한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아니, 이것은 지혜가 아니라 학습일 것이다.


2014년은 아무쪼록 내가 알 수 있는 일이 일어나고

내가 행할 일들이 과하지 않을 것을 바라며

내가 원하는 것들의 십분지 일이라고 성취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소망하는 것들이 더 이상 작아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여전히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겁먹고 소극적이 되는 것을 철이 든다는 미명으로 포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이 존속하기를 또한 소망하고, 개들은 어둠으로 꺼지고 사람이 양지로 나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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