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1.05.28 버스 안에서
  2. 2011.02.01 좋은 사람 2
  3. 2010.12.16 그런사람도있더라 6
  4. 2010.09.12 인간에 대한 탐구 2
  5. 2010.07.23 사람이나 축생이나 4
  6. 2010.03.24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2
  7. 2009.08.14 영화를 보다가...기억 6
  8. 2009.07.22 좋은 글 7
  9. 2008.12.31 혼자 내뱉던 소망이 현실이 될지도 4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별로 멀지 않은 거리라 뒷문 쪽으로 냉큼 옮겨가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머리를 베컴형 닭벼슬로 세운 젊은 인간이 나를 보더니 눈을 홉뜬다.

아니 뭐야
해보자는 거냐

해보긴 뭘 해봐, 그냥 젊은 놈이 시비거리를 찾는거냐 하면서 똥꼬에 남몰래 힘을 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와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아이고, 집에 가시나 봐요?"

"아..그렇지요."

"저는 반포쪽에서 내려요."

"아아 그렇구나"

"운동하고 가시는 건가요?"

"그렇죠 뭐. 요즘 어때요?"

"하하 저도 그래요."

차는 밀려서 갈 생각을 하지 않는데
이 친구는 천사같은 밝은 미소와 백옥같은 치아를 보이며 나에게 급호감을 보인다
대화를 복기해 보니 우리는 이미 옛날부터 잘 알고 있었던 사이인 것 같다.

그런데 너 누구니

등 뒤로 식은 땀이 줄줄 흐른다
내가 이 친구를 어디서 봤지? 우리 권투도장? 거래처? 교회? 지역사회? 내가 좋아한 여자의 남동생이나 애인인가?
아니면 혹시 뭔가 사고를 쳤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가? 단발성 치매? 아니면 그냥 훼이크? 몰카?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땅바닥을 기어가는 버스의 속도에 반비례하여 내 긴장감은 증폭되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그 친구는 내게 계속 뭔가 말을 시키고 가끔은 예예 거리면서 고개를 숙이는데
내가 무슨 연장자 행세라도 이 친구에게 단단히 한 것 같다. 이거 정말 미칠 노릇이다.

이래서 여자만 보고 다니지 말고 사내 얼굴도 좀 익히고 다니고 그랬어야 하는건데. 
 
천신만고끝에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느릿느릿 다가갔고
드디어 버스 뒷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지옥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느꼈으니
그때서야 나느 가슴을 펴고, 뭔가 굉장히 기분좋은 안부라도 나눈 양

"허허 나중에 다시 봅시다. 잘 들어가세요"

"예예 조심해 들어가세요"

라는 마지막 허세를 작렬시키고 집에 돌아왔다.
아오 난 정말 모자라는 놈 같아. 사람 얼굴을 왜 이렇게 기억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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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작은 방 한담 2011. 2. 1. 02:37
살면서 종종 만난다.

사람이 얄궃게 굴어도 그 얼굴만 보면
그냥 마냥 인생이 살만하구나 싶은 착각에 잠시 머물게 해 주는 사람.

이건 엄밀히 말해서 현실이 아니다.
옥시토신의 분비와 마찬가지로, 나 스스로가  한 개인에게 상정해 놓은 분위기의 쾌락일 뿐이다.

실체와는 다른 내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을 보고 내가 기꺼워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혼자 끄적거려 써 놓은 시를 보고
"아아 이런 절묘호사를 내가 짓다니!" 하면서 엉엉 울어대는 것과 비슷하달까.


하지만 그런 게 있으니
사람들이 서로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그렇게 세대를 이어가며
인생을 자기가 알지 못하던 것들로 채워가는 것 아니랴.

문제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어느정도 되느냐의 문제인데
살면서 조금씩 두 사이의 접점을 좁혀나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아도
어느덧 정신 차리고 나를 보면
그 둘 사이에는 천길 억겁의 절벽이 존재하고 있더라.

결론:  이래서 연애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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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 인생은 우주최강 심각한 절대가치의 존재인데 반해
남의 인생은 강풍에 날려가는 쓰레기에 붙어가는 먼지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더라.

세상이 나를 위해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는 과잉자아의 발현이라고 쳐도
모든 이들이 거기에 맞춰서 돌아가주고 장단맞춰야 한다고 믿는 것은 그냥 철부지 짓거리 아닌가.

내 말인지 남의 말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가깝게 하기에는 버겁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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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탐구

수련장 2010. 9. 12. 00:13
예전부터 즐겨 찾던 블로그 중에 마피아의 역사와 형성, 충돌과정에 대해
놀랄만큼 집요하고 자세하게 파헤치던 블로그가 있었다.
거의 논문심사가 아니라 마피아 연대기를 쓰고도 남을만큼의 분량을 연재하던 분이었고
신문에도 자신의 글을 올리던 분이었는데 어느순간 절필을 하셨다.

그의 블로그 마지막 글에 이렇게 글이 남겨져 있었다.

"마피아는 에고의 긍국이었고, 더 이상 에고를 파헤치고 싶지 않다"

그분이 조사했던 글들을 읽어보면, 마피아는 탐욕의 역사였다. 혈연관계던 이익관계던 간에
그것을 지탱해온것은 DNA와 탐욕의 이중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실리부터 미국의 대도시들까지
이어지는 장엄하면서고 읍습한 자기애의 무한한 확장. 어쩌면 그 분은 환멸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서양철학자들은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소크라테스 이후부터 지금까지 게속되는 탐구를 하고 있다.
사람이란 욕망의 총아, 하지만 그 사유 깊숙히 인간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계속 알게 되면 그 안에 있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구원할수 있는 이성의 고갱이일까.

나는 개인적인 신앙적인 배경과 협소한 경험에 의거해
부정적인 답변을 도출할 수 밖에 없긴 하다. 하지만 그 안에 순수함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이 인간을 올바르게 정의하게 될까
두눈을 뜨고도 어지러운 이 세상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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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할 때 살아있는 생물과 같이 오랫동안 살다보면 둘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교감이 생기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 생물이 갑각류나 어패류같이 아예 극단적으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종이 아니라
같은 온혈동물이나 포유류같은 고등생물체(뭐가 고등이지..하여간)랑 살게 되면
대충이나마 감정의 교류도 이뤄진다.

뭐, 오래 산 것도 아니다.
고양이랑 산 지 한 3개월 되었나.
대체 사람하고 사는 거랑 뭐가 다른건지 이젠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배고프면 징징대. 성질나면 앙앙대. 내가 성질부리면 도망가
좀 있으면 다시 와. 그러다 시간 지나면 화해해. 화해하면 또 잘 지내
그러다가 또 삐지면 서로 삐져. 그러다가 다시 친해져

그냥 사람 사는 짓거리에 아무런 다른 것이 없더라.

이쯤되면 심각하게 고뇌하게 된다. 여자를 만나서 되지않은 작업에 돈 들여가면서
어떻게든 연분을 이어볼까 하는 내 노력이 과연 고양이랑 사는 것보다 얼마나 더 나은 생활을 제공하게 될 것인가?

2세의 탄생과 생리적인 욕구충족 말고 뭐 다른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같은 언어체계와 사유능력을 가지고 이것저것 공유하는 감정의 깊이야 고양이보다 낫겠지만
결국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은
배고파, 성질나, 삐졌어, 이리와, 토닥토닥, 잘해보자, 알라뷰
이것밖에 더 있는가 말이다.

물론 하나 있긴 하다.
내가 숨이 넘어갈 때 고양이는 119를 불러주지 않는다는 것.
결국 내 편협한 생각에 따르면
Emergency를 위해서 같은 사람과 동거해야 한다는 말인데.

생각이란 늘 발전하고 변화하고
바람이 방향을 바꾸듯 이리저리 바뀌니
어느 날, 내가 어떤 여자사람을 붙잡고 "당신 없으면 못 살것이오!" 따위 낯짝간지러운 이야기를 쏟아부을 지도 모르지만 (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지금 내 삶에 있어서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고양이 사료값만도 못하다.

거시적으로는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주위사람들은 말할테고, 나도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긴 하는데
뭐, 현재 감정이 이렇다는 걸 숨길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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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족하면 예절을 안다고 옛 어른들이 말하셨다.

확대해서 말하면
요족하고 품위가 생기면 사람의 거동과 태도가 바뀐다는 것이다.
아까 본 드라마 [추노]에서도 그런 말이 있더라
[양반 상놈은 거죽이라고, 좋은 옷 입은 놈 중 상놈 없고 떨어진 옷 입은 놈 중 양반 없다]고.

사람들은 그래서
두른 것으로 사람을 재고
가진 것으로 사람을 재고
누리는 것으로 사람을 재고
든 것으로 사람을 잰다.

나도 그러하고 내 글을 읽는 사람도 그러하다만.

사람을 알고 같이 가는 시간을 1-2년 아니라 평생을 본다면
사람의 거죽 속은 절대 변하는 법이 없더라.
물론 가진 게 없고 굶주려 사람이 자신없고 비굴해지는 경우도 있고
누리는 게 많아져서 여유가 생기고 관대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 속의 천성은 바뀔래야 바뀔 수가 없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 사람이 바뀐다고 혹자는 이야기 하더라
바뀌는 것은 그 사람이 그동안 갈고 닦거나 모은 것들로 장식된 것들이다.
지식을 갈고 닦으면 명민해지고 침착해 질 것이요
돈을 모았으면 경륜이 생기고 사람을 대할 줄 알게 되겠지만
그것으로 사람이 바뀌었다 말한다면
천하 근본을 오시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어려움은 같이 하나 복락을 같이 누리지 못하는 이]가 있고
[복락은 같이 하나 어려움을 같이 못하는 이]가 있다 한 옛 고사는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또한 그것이 사람이 갈고 닦아서 만들어낸 [성품]을 벗어난
[천성]을 이야기함을 또한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놓고 보면
어찌 절망스럽지 아니한가

내가 스스로 부족함을 내가 가장 잘 아는 데
그것이 변치않는다 생각하면 어찌 잠을 자겠는가.
[나는 스스로 이러하니 누구도 막지 못하리]라고 말할 자가
과연 이 세상에 누구이며, 그러고 어찌 세상을 살리오.

그래서 천성은 변치 않으나
성품을 닦아서 보(保)한다. 
천성의 훌륭함을 키우고 부족함을 메꾼다.
그것이 옛 유자(儒者)들의 평생 과업이었다.

사실 내 믿는 종교가 별반 다르지 않다.
천성의 악함을 알고 신앙으로 극복한다.
신성과 인성이 합일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평생에 가능하다 아무도 속단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아니하고
내가 드리는 노력은 한계가 있으므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바뀌었다 스스로 자고할 수 없는 것이니
거울을 들여다보면 난 예전의 나와 별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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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켄이 주연한 [내일의 기억]이라는 영화를 케이블에서 해 주더라.

잘 나가는광고회사 직원이 어느날 알츠하이머를 앓는 거다.
거래처 까먹고 이름 까먹고 그러다 점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까 먹는다.
여기까지만 봤다. 더 보기가 좀 부담스러운 영화더군.

저런 병에 걸리면 정말 어떻게 할 지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런데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은 까 먹어도
사랑한다는 감정은 잊혀지지 않는 것일까?

이름에 대한 기억이 먼저 사라지고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은 남아있는 걸까?
아니면 이름이 사라질 때 감정도 사라지는 걸까?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라는 것은 타자와의 구별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종의 규칙화된 코드라고 해 보자.
사랑한다 싫어한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특정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주관적 가치판단의 기준이라고 봐도 될까?

바꿔 말하면
알츠하이머같은 병에 걸렸을 때
타자에 대한 구별판단부터 사라지고 점차 가치판단의 기준이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동시에 둘 다 같이 사라지는 걸까?

어떤 도시가 있다고 치고
그 도시를 이리저리 구획짓는 도로가 있고
그 구역 안에 건물들이 있다고 치면

도로는 감정이고 건물은 사람이나 사물이 되는걸까?
하나하나 재개발되어 무너질 때 건물부터 무너지고 도로를 재설계하듯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기억을 잃어 본 적은 아직 없고
지금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은 감정도 남아있지 않는데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데 얼굴만 보면 가슴이 짜르르하게 아팠던 기억같은 걸
종내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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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수련장 2009. 7. 22. 14:56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

맞는 말이야

좋은 글이 유려한 명문이라는 게 아니다.

가슴에 다가오는 글이 좋은 글이다.

냉철한 이성을 가졌더라도

내내 자기정당화에 변명만 지껄이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한 줄로 사람들에게 살아있음을 각인시키는 글도 있다.

사람은

타인을 보듬지 못하면 결국 이기적인 야수인 게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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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연찮게 한 분을 만났습니당

살다보면
나랑 별 연관없는 사람인데도 가끔 가서 말을 걸고 싶은 부류의 인물들이 존재하죠.
저같은 경우에는 그 분이 그런 쪽이었죠.

뭐랄까.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유형이랄까요. 하다보니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하셨지만
어쨌거나 그 모습이나 과정이 그 분을 보게 된 계기니까요.

각설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내년에는 색소폰을 질러버릴지도 모르겠다는 강렬한 예감이...


-.-;;;;
요즘 대 놓고 질러대기 시작하는 제 자신이 싫습니당.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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