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에 해당되는 글 40건

  1. 2011.08.21 2011.08.21
  2. 2011.06.20 2011.06.20 소사 2
  3. 2011.05.28 버스 안에서
  4. 2011.04.11 2011.4.10 2
  5. 2011.03.27 내 이야기 4
  6. 2011.03.13 2011.3.13 소사 8
  7. 2011.03.09 즐거움을 잊지 마라 2
  8. 2011.03.07 교회에서 사고친듯 8
  9. 2011.03.04 이상한 헤드헌터 아저씨 7
  10. 2011.02.28 2011.02.28 7

2011.08.21

작은 방 한담 2011. 8. 21. 23:18
1.
오랫만에 동네 놀러온 교회 후배 밥 사주고 차 태우고 드라이빙 시켜준 담에 목적지에 데려다주고 집에 왔다. 10년 전이나 할 법한 짓을 지금 하자니 우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걸리적 거리지 않는 신분상의 무제약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대학생들 때나 하던 짓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니 참 웃기지 않는가.

연령만 바뀌고, 지워주는 책임만 달라질 뿐. 인간의 행동과 삶이라는 것은 과거를 답습해도 상관없는 것 같다. 자기 자신만 겸연쩍어지지 않는 한.

그 놈도 참 오랫만에 붙어서 얻어먹었을거야. 그 나이에. 이히히


2.
펜싱을 배울까 생각중이었는데
아마 다음 주에 가 볼 것 같다.
월회비도 싼 것 같고, 학교 교실 하나 빌려서 배우는 것도 예전의 진검배우던 기억 비슷해서 재미질 것 같다.

이것만 배우면
난 검도와 권투와 펜싱을 다 배우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가 20대에 세웠던 인생의 목표 하나가 성취되는거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의 목표.

근데 예쁜 여자는 어디서 찾는다


3.
그건 그렇고 호구지책은 참으로 난감하다
어떻게 이렇게 부동산 비용이 올라갈까?
주식도 벼락맞은 쥐새끼처럼 땅바닥에 태질을 당하는 판인데
왜 이렇게 현금이 돌지를 않을까?

지금 이 동네는 빈 상가가 여러채 있는데
상가 주인이 임대료를 내리지 않아서 쉽게 입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같은 물가에 말도 안되는 임대료. 하지만 내릴 생각이 없나보다.

실물경제와 부동산은 어디서부터인가 괴리되어 있다. 그런데 이게 정작 맞닿기 시작하면
이 나라 파국으로 치달을 것 같아서 그것도 걱정.

어이구
내 먹고 살 일이 빠듯한데 뭔 나라걱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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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은 돈 있는 몇 퍼센트 소수만의 보금자리를 위해서 모든 이들이 피땀을 쏟으면서 봉사하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그 몇 퍼센트는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족속이라고 치부하고,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자 시절에 열심히 운동해서 난자랑 결합해서 부잣집애 태어난 것을 노력이라면 노력이라고 하겠다만
뭔가 참 서글픈 일이다.



2.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지.



3.
자꾸 먼저 해야 할 일이 미뤄진다.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영영 안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럴 때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4.
날은 점점 더워지고 몸은 점점 축나고. 
확실히 한해 한해 갈수록 몸이 피곤해진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건만.




 
Posted by 荊軻
,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별로 멀지 않은 거리라 뒷문 쪽으로 냉큼 옮겨가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머리를 베컴형 닭벼슬로 세운 젊은 인간이 나를 보더니 눈을 홉뜬다.

아니 뭐야
해보자는 거냐

해보긴 뭘 해봐, 그냥 젊은 놈이 시비거리를 찾는거냐 하면서 똥꼬에 남몰래 힘을 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와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아이고, 집에 가시나 봐요?"

"아..그렇지요."

"저는 반포쪽에서 내려요."

"아아 그렇구나"

"운동하고 가시는 건가요?"

"그렇죠 뭐. 요즘 어때요?"

"하하 저도 그래요."

차는 밀려서 갈 생각을 하지 않는데
이 친구는 천사같은 밝은 미소와 백옥같은 치아를 보이며 나에게 급호감을 보인다
대화를 복기해 보니 우리는 이미 옛날부터 잘 알고 있었던 사이인 것 같다.

그런데 너 누구니

등 뒤로 식은 땀이 줄줄 흐른다
내가 이 친구를 어디서 봤지? 우리 권투도장? 거래처? 교회? 지역사회? 내가 좋아한 여자의 남동생이나 애인인가?
아니면 혹시 뭔가 사고를 쳤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가? 단발성 치매? 아니면 그냥 훼이크? 몰카?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땅바닥을 기어가는 버스의 속도에 반비례하여 내 긴장감은 증폭되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그 친구는 내게 계속 뭔가 말을 시키고 가끔은 예예 거리면서 고개를 숙이는데
내가 무슨 연장자 행세라도 이 친구에게 단단히 한 것 같다. 이거 정말 미칠 노릇이다.

이래서 여자만 보고 다니지 말고 사내 얼굴도 좀 익히고 다니고 그랬어야 하는건데. 
 
천신만고끝에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느릿느릿 다가갔고
드디어 버스 뒷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지옥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느꼈으니
그때서야 나느 가슴을 펴고, 뭔가 굉장히 기분좋은 안부라도 나눈 양

"허허 나중에 다시 봅시다. 잘 들어가세요"

"예예 조심해 들어가세요"

라는 마지막 허세를 작렬시키고 집에 돌아왔다.
아오 난 정말 모자라는 놈 같아. 사람 얼굴을 왜 이렇게 기억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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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10

작은 방 한담 2011. 4. 11. 00:44
1.
아무런 근거없는 낙관과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무엇인가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는 듯 싶다.


2.
몸이 좋지않다고 혼자 여기다 보면 결국 자기가 소망하는 질병에 걸리게 된다.


3.
가만히 있으면 찾아오는 여자는 없지만
움직인다고 찾아오는 여자도 없다.


4.
하루종일 무언가를 먹는다. 그래도 살이 찌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주는 운동을 좀 줄여봤다. 몸이 무거운 것이 지방축적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앉아서 지방을 채우는 과정인데,
열심히 하다보면 체중이 느는 것인가. 회사가 해 주는 일은 체중을 늘려주고
여성단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늘 앉아만 있어서 정자수 팍팍 줄여주고 불임을 양산해서 인구수 줄여주고
결국 대한민국이 망하게 되는 것인가.

그렇구나!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이다!



5.
고양이들은 자면서 운다. 잠꼬대 하다가 울고 뽀르르 달려와서 나한테 온다.
아직도 엄마생각을 하는걸까.  무서운 꿈을 꾸는 걸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무서운 꿈을 꾸면
엄마 생각이 나게 되어 있는 거지.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되어서 더 이상 어머니를 뵐수 없더라도
무서운 꿈을 꾸게 되면 엄마를 찾게 되는 게 자식인 것 같다.

어느 날 그런 날이 오겠지.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공포와 고독감 뒤에 의존할 수 있는 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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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투덜투덜 2011. 3. 27. 23:58
언젠가부터 인터넷에 무언가 말을 쓰는 란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내 말만 적어놓고 나오는 경우가 태반인 것 같다.

사실 의도적으로 그러는 부분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뭐라고 한 마디씩 써 놓는 것에
일일이 토를 달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누구나 자신의 생애 대한 이야기 하나씩은 책으로 낼 법한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뭐라고 말 들을 이유도 없지 않겠냐는 생각인 듯 하다.

소통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냥 고독한 듯.
사람들은 모두 같이 어울려 살면서 고독한 듯 한데
어차피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 버릴 한 두 줄의 말에 의해
일희일비하고 싶지도 않고 찰나의 위안을 받고 싶지도 않기 때문인가보다.

어영부영 이렇게 시간은 또 지나가고
아뿔사
봄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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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13 소사

작은 방 한담 2011. 3. 13. 23:19
1.
손톱깎이가 사라졌다.
애들이 물고갔나 싶어서 고양이들을 졸졸 따라다녀봤는데 전혀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갈수록 건망증이 심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것 아닌가.

하긴, 어릴때도 뭐 잘 잊어먹긴 했으니.


2.
요즘 고등학생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난 저 아이시절에 뭔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싶기도 하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하루하루 사는 건 나나 얘들이나 별반 다를 바 없구나 싶으면서도
가끔은 전혀 다른 것들, 내가 그 때는 등한시하거나 접하지 못한 것들을 접하면서 사는 걸 보면
확실히 세상이 달라졌구나 싶다.

모사립고에 다니는 녀석은 클럽활동은 5개나 한다고 하는데
그 중에 국궁(國弓)을 배우는 시간도 있다더라. -0- 무지 부러웠다.
어떤 녀석은 가장 좋아하는 그룹이 오아시스라고 하는 노땅(?)도 있고 (그런데 특활부는 Debate...토론부란다)

난 그 시절에 뭘 했더라.

내 고등학교 시절 CA는 뭐였나 생각해본다.
1학년때는 [희랍비극강독부]라는 괴상한 부서에 들어가서 일년 내내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만 읽었던 기억.
2학년부터는 [불어회화부]라는 명목 아래 샹송 틀어놓고 한시간 내내 자던 기억 외에는 없다.

우리 때보다 훨씬 컨텐츠도 풍부해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 같더라.
좋아지는 걸까?
애들에게 조금만 더 여유를 준다면 참 바람직한 것 같은데.

여유, 한국인들에게는 천성적으로 부족한 것일지도.

3.

그렇게 오랫동안 읽는 걸 미뤄왔던 어슐러 르 귄 여사의 [어둠의 왼손]을 
오늘 하루만에 다 읽었다.
SF라고 하지만, 뭐랄까 내가 제목에서 유추했던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었다.

인식과 실체, 공감과 비공감에 대한 연구를 가상공간을 통해 구현한 상황극이랄까.

어슐러 르 귄의 소설을 읽다보면 이 사람은 SF를 가장한 의미론의 설파자라는 생각이 든다.
호칭과 사물과 언어의 상관관계에 대한 주제가 빠지지 않는다. 이 사람의 소설을 읽다보면
나는 늘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난다. 확실히 공감하는 바가 있다. 
언어가 갖는 [사물에 대한 호칭]이라는 능력은 확실히 대단한 것이다. 고대로부터 이것은
주술적인 의미가 다분히 있어왔고, 의미론적인 측면에서도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넘어서는 심도가 
있다고 믿는다. 성경의 창세기 처음이 하나님이 말로 천지를 하셨다는 것은 비존재에 재한 존재성 부여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상징적이다. 하여간 요즘은 이런 고민들을 종종 하곤 한다.


4.
한 주간 체해서 죽을 뻔 했다. 
이제 맛난 것보다 소화가 잘 되는 걸 찾아다닐 때가 되었나보다
어이구 내팔자야


5.
일본인들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난 솔직히 역사적인 가해자, 침묵의 방조자, 진실의 은폐자로써의 일본정부와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를 굉장히 혐오하지만
개개인에 대해서는 전혀 그런 감정이 없다. 
[소년H]를 읽고 나서는 더 심해진 것 같다.

어느 나라 역사를 보던간에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일반국민들은 정보취득에 무능하고 통제당한다.
이번에도 잘먹고 잘 살고 나라의 방향을 만드는 놈들은 죽은 놈 하나 없을 것이다.
그저 농사짓고 고기잡고 장사하던 평범한 일본인들이 천재지변에 휩쓸려 희생당한 것이다.
우리나라라고 다를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 청산을 원하지만, 그릇된 유산을 방패삼아 호가호위하지 않는 한
나는 연좌제를 반대한다. 

분명 그릇된 역사에 대한 자존심을 세우는 이들도 있을테지만...
원자로 노심도 녹고, 마을 하나가 다 휩쓸려 나가 죽어버린 사람들에게
지금 과거사를 반성하라고 다그치는 건 축생지심일 것 같다. 

그냥 더 이상 죽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荊軻
,
맨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누구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즐겁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일이 구체화 된 서술의 형태가 되어서 시각적 묘사와 심리적 묘사가 들어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지 못하는 강박관념 속에서 짐이 되고 있었다. 아무런 글을 쓰지 못하고 있던 순간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마 글쟁이로 사는 건 힘들것이라는 단념이 맘 속 깊은 속에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세상에 글을 보여주기 시작하면 찬사와 비평이 같이 들어온다. 둘 다 마음에 짐이 된다. 어떻게 써야 한다. 이렇게 써야한다 라는 나름대로의 강박관념이 생기기 시작한다. 강박관념이 생기면 걱정이 생기고 걱정이 생기면 일을 멀리하게 되고 일이 멀어지면 관심이 사라진다. 그렇게 일은 시들해지는 것이다.

오늘 우연하게 J.D 샐린저가 한 말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서 글을 쓰는 것이 글을 쓰는 이유다." 
이것은 당연한 명제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은둔해서 뭔가를 썼다. 작품을 발표할 성 싶더니 2010년 정월에 죽어버렸다. 뭘 쓰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뭔가 쓰고 있었다. 그는 즐거웠을 것이다. 머릿속에 까맣게 잊어버리고있던 공간에 다시 불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내가 좋아서 쓰는 거 아니었던가.

어슐러 르 귄 여사는 [어둠의 왼손]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더라.
"자기 안에 있는 신이 자기의 혀와 손을 사용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들이 아는 것은 뭐란 말인가?"

그렇다.
모든 것은 그런 것이다.
한 때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것들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빼앗기지 마라.

짐을 지우는 일은 굳이 찾지 않아도 세상에는 흔하니 네가 좋아하는 일을 [일]로 만들지 말라.

아멘. 
Posted by 荊軻
,
고등부 교사를 맡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진실이다. 아니 왜? 난 교사하면 안돼? 
그래, 안된다. 하지만 하고 있다.


사실 교회의 교육이라는 것은 성경과 교리공부지만
고등학생정도 되면 선생말 안 듣는다. 학교나 교회나 다를 바가 무어랴.
그리고 시간 많이 잡을 수도 없다. 아이들 학원 가야지 자기들 인생에 매달려야지
내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래봤자 15분정도다. 무슨 말을 하랴.
가뜩이나 기독교가 사회적 평판도 안 좋은데 잘 나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고등학교가 끝나고 대학부로 올라가거나 교회 청년부에 가면
교리공부는 끝. 그때부터는 정말 자기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신앙과 가치관으로 살아간다.
대학에서 많은 이들이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당연한 일이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민없는 신앙은 앙꼬없는 찐빵이다. 그 곳에서 교회를 떠나는 애들도 많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신의 섭리다. 내가 그래서 할 수 있는 건 가장 오소독스하고 비정치적인 교리문답만을 가르치는 것이다.
나중에 자기들이 판단을 할 때, 최소한 비교할 수 있는 신앙적 근거를 남겨주고 싶으니까.

그런데 오늘 좀 실수했다.

창세기2장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는 이야긴데...
(아이들 이런 거 이야기하면 이런 야한 이야기를 왜 하냐며 발버둥...사내놈들이)
하여간 이런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혼전순결이니 동성애니 하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너희들이 살면서 이것저것 배울텐데, 교회를 떠나서 인생선배로 이야기하자면
 첫째, 이성교제는 한 명에 꽂혀서 죽자살자 매달리지 말고 여러 사람 만나봐라.
둘째, 사람이 이성으로 통제 못하는게 마약과 섹스와 도박이다. 그래서 나라에서 개인의 행위를
형법으로 금지하는 유일한 세가지다. 너희들이 나중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성적으로 판단이
가능할 때만 선을 넘어갈 수 있도록 해라. 지나침은 아니함만 못하다."

라고 이야기했는데...

우리반 강백호처럼 생긴 건들건들 거리는 녀석이
"아, 선생님 1학년 애들에게 섹스랑 마약이 뭐에용~"

"아...?"

"엄마한테 이를거예용~"

"시끄러~"

조용하게 듣고 있던 말없는 반 아이도 한마디

"....정말 남고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예요."

(아이씨...우리반은 다 사내들 밖에 없어서 한 이야긴데....)

하긴 고등학교1학년이면 중3하고 별 차이 없는 애들인데
내가 너무 앞서나갔다는 생각이 말을 마치자마자 들었다.
이래서 선생은 애들하고 눈높이 교육을 해야 하는 법인데
사실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내 잘못인가. 

...아닌데....?
난 그때 다 알고 있었는데. 
이 급변하는 세상에 내 나이 또래보다 지금 애들이 빨리 아는게 정상 아니야?
교회 다녀서 다들 착한가?
아님 이놈들 밑장빼기 중인가?

하여간 애들이 꽁시렁꽁시렁 하길래
엄마한테 말하면 주거 하면서
오늘의 성경공부를 끝냈다

-.-a 다음부터는 정말 성경만 가르쳐야겠어.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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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목소리가 되게 귀여운 헤드헌터 언니가 [광고사에 지원해 보세용]하면서 몇 번 전화를 준 적이 있었다.
아가씨가 데이트 해줌 한 번 가 볼께~ 하려다 이건 성희롱에 해당되는 것 같아서 그런 얘긴 못 하고,
그냥 그 쪽방면에는 이제 지원 안 하려고 합니다 하면서 고사한 적이 있었다.

어제도 한 명이 뜬금없는 메일을 보냈다. 
무슨 인터넷 광고업체인데 상당히 사세도 크고 괜찮으니 한번 지원을 해 보라는...
아, 바이럴 마케팅쪽은 영 취미가 없는데 싶어서 편지만 받아놓고 둥가둥가 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이었나
갑자기 전화가 오더라.
나이지긋한 아저씨가 전화를 하셔서

"저는 모모파트너스의 모모 이산데 말입니다. 제가 보낸 메일을 받으셨나요~?"
하는 거다. 얼레. 왜 나이 많은 양반이 나한테 메일을 보냈을까.

"예, 받았습니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사세확장중인 유망한 곳입니다."

"저기요, 저는 오프라인 광고쪽이었고 온라인쪽은 잘 모르는데다가 바이럴이 어쩌고 궁시렁궁시렁"

"그래도 괜찮은 회사고 대우고 구글정도로 해 준다는데~"

"그럴리 없다능 구굴에 내 친구 있다능 어쩌구 저쩌구 궁시렁궁시렁"

"아~ 그러지 말고 한 번 넣어봐요~"

-.-a?

나이 지긋하신 분이 그렇게 말하니까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이력서를 보냈다.


괴상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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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8

작은 방 한담 2011. 2. 28. 01:10
1.
사람은 지식인입네 하는 것보다 광대나 코미디언으로 사는게 훨씬 많은 걸 보고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광대나 지식인이나 별 다를 것도 없고, 솔직히 변별력도 없지 않은가. 둘 다 양복을 입혀놓으면 누가 누군지 모르는 게 세상 아닐까. 더군다나 민낯도 안 보이는 인터넷세상이라면 더하지.

그냥 적당히 나사빠진 듯 사는 게 모두에게 이로운 듯. 
하지만 현학자의 버릇을 던져버린다는 것도 쉽지는 않다.


2.
사람이 10년을 한결같기가 힘들구나.
사람에 대한 마음가짐이 난 20-30년은 가는 게 보통 기본이라고 생각했는데
짝사랑도 10년을 가지 못하는구나.

원한이 오히려 사랑보다 오래오래 머무는구나.
졸렬한 인생이여.


3.
교회 고등부에 교사들 기도제목을 지난 주 나누었다.
나랑 또 다른 선생의 기도가 가장 급했다.
둘 다 사회에서 원하는 포지션으로 가고 싶어했다.

이번 주는 한 명은 그리고 가고 한명은 그 자리를 자발적으로 포기했다.

뭐, 그러려니 한다. 어차피 갈 곳이 못되었기도 하지만
언젠가부터인가 익숙해졌다.

교회던 성당이건 불교건,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좀 낯선 광경이겠지만
어떤 갈망하는 소원에 대한 종교적인 기도행위라는 것은 주술적인 의미 이상의 것을 지니게 된다.
종교활동이라는 것은 그러한 인간욕망과 순리 사이의 조절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오성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의 개입을 목격하곤 한다.
믿는자는 기적이라고 하고
불신자는 우연이라고 하고
믿는자는 평안이라고 하고
불신자는 자기최면이라고 하지만...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단정지어서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설하고,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은 20년전부터 [hold & wait] 외에 답이 나온 적이 없다.

그냥 기분 나쁠 때 생각하면 [아 X바, 기도를 하던 안 하던 같은데 왜 기도를 해야하나]까지 갈 정도인데
솔직히 모를 일이다. 영험없는 부처는 발광(發光)도 못한다고, 딱 그 꼴이긴 한데...

유야무야 그렇게 지내온 게 20년이면
차라리 북두신권을 찾아다니는 게 더 빠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뭔가 계속 소실되는 기분. 아하, 종교활동에서도 이런 기분 느끼기 시작하면
밑도끝도 없는 슬럼프로 빠져들 뿐인데.

이것도 또 다른 자기최면이 될수 있으니
오늘까지만 불평하고 내일부터는 다른 희망찬 걸 생각해 봐야겠다.


4.
예쁜 여자나 찾아봐야지.


Posted by 荊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