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에 해당되는 글 121건

  1. 2012.11.03 아빠 쉬마려 2
  2. 2012.08.13 산적소굴
  3. 2012.08.06 거울이 깨졌다
  4. 2012.06.23 오랫만의 잡설 5
  5. 2012.05.11 인연인지 뭔지 2
  6. 2012.05.10 행복
  7. 2012.04.23 이것저것 분석해 봤더니 4
  8. 2011.12.18 담배 & 술 & 망년회 4
  9. 2011.11.24 빤스 4
  10. 2011.11.20 미쳤나보다 6

한 달 쯤 전 일요일의 일이다. 나름대로 가을남자, 추남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서 와이셔츠를 하나 사러 아울렛에 들렀다. 와이셔츠와 추남의 정취 간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아리송하긴 한데, 하여간 그 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각설하고, 와이셔츠를 사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오전 교회에서 나눠 준 떡이 발동이 걸렸다. 갑자기 배가 와르르 소리를 내면서 아프더라 이거다. 다행스럽게도 아울렛의 일요일 오전 화장실은 조용하고 사람들도 없었으니 고요한 리비도의 쾌감이나 얻고 가려고 들어갔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조금 있으니 옆 사로에도 사람 하나 들어온 것 같더라. 하여간 낯 모르는 사람 둘이 앉아서 일요일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데 조금 뒤에 어디선가 칭얼칭얼대는 소리가 하나 들리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조금 칭얼대는 딸내미와 많이 자상한 아빠의 목소리였다.


"우리 oo이 쉬마려? 조금만 기다려~"

그러더니 남자 화장실 문을 노크하는거다. 아니 엄마는 어디다고 아빠가 딸내미 화장실을 끌고다녀! 라는 생각은 그렇다 치고 열시히 노크 답을 해 줬다. 나도 살아야지. 아빠는 화장실들을 다 노크하더니 다시 터덜터덜 화장실 밖으로 나가더라. 거기까지야 다 그런 거지.


그런데 말이야.

"OO아, 지금 사람들이 모두 들어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알았지? 못 참겠어? 사람들 곧 나올거야. 응응 그래그래 조금만 기다리자. 힘들면 아빠한테 말해~"


참 무지하게 자상한 아버지더라. 화장실 입구에서 다 들리게 말을 하면 뭐 어쩌라고. 나도 인간적인 양심이 있는데 급한 거 해결되고 나면 아버지와 딸의 애처로운 대화가 귓구멍을 간지럽히지 않겠는가. 어린애가 급하다는데 내가 유유자적할 상황이 아니지. 얼른 나가주자 그러고는 대충대충 뒷수습하고 물 내리고 밖으로 나섰는데


옆 사로가 비어있더라고.


그런데 그냥 비어있는게 아니고, 누군가가 옴팡지게 싸 놓고 물을 안 내리고 간 것이었다. 물 안 내린 놈은 손이 없었나보다. (똥쌀 때 지퍼는 어떻게 내렸지? 바지를 안 입고 다니나?) 하여간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면서 밖으로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딸내미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훤칠한 아저씨랑 마주쳤다. 그런데 훈훈하다는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고 성질부터 확 올라왔다.


"저놈의 인간은 지가 남의 똥 물내리는게 싫어서 옆에서 잘 싸고 있는 사람 밖으로 내몬거야?"


딸내미가 쉬마렵다고 끙끙대면 손바닥으로 똥을 퍼내서라도 화장실을 쓰게 하던가. 남이 물 내린 화장실에 꼭 들어가겠다는 것은 뭔가. 똥포비아라도 있는 놈인가. 거 참 희한하게 가탈스러운 인간일세. 설사가 터져도 물 안 내린 화장실 앞에 가면 바지에 쌀 놈이로다. 혼자 궁시렁궁시렁 거리면서 나는 집으로 들어왔다. 아무쪼록 이름도 모르는 딸내미의 방광이 아버지의 결벽성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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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소굴

믿거나 말거나 2012. 8. 13. 22:58

얼마 안 된 삶을 반추해보면 참 묘한 것이


내 주위에 사람이 끊긴 적은 없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왕래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내 집에 사람이 안 들어와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무리 혼자 독거인처럼 행세를 해도 최소 일주일에 두세번은 집에 사람들이 들렀던 듯 하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 남자라는 것이다. 아마 비율로 따지면 0.000001% 정도의 여성이 오가긴 했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지극히 미미하고, 하나던 둘이던 모두 사내들이 들고 나가는데, 그것도 일정하게 오는 사람들은 몇이고 늘 오랫만에 보자고 전화하고 들리는 사람들이 하나씩은 있더라는 거다. 


사람이 사회적인 대중성을 갖춰야 한다고 하지만 내가 그렇게 인상 좋거나 붙임성이 좋은 사람들도 아닐진대 꼭 집 앞에서 전화하고 들어오는 사내들로 넘쳐났다. 예전에 부모님하고 같이 살 떄도 그러했다. 거 참 이상한 노릇이지.


아마도 내 주변에 있는 남정네들이 모두 정이 많고, 이 인간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지만서도, 최소한 문지방에 먼지가 쌓일 수준으로 살지는 않고 있으니 나름대로 사내들과는 돈독하게 지내는 삶이러니 한다. 


살다보면 이제 그런 친구들에게서 소식이 온다. 돌잔치네 결혼이네 상사네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그럴때는 감연히 하던 일 다 때려치고 나가야 한다. 최소한 그 동안 쌓인 정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밖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집을 내 주고 그안에서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라면 그들과는 2차집단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야 하는 것이 도리인게다. 그럭저럭 살다 보니, 내 삶이라는 것은 거미줄처럼 한없이 하늘하늘한 가냘픈 관계들이 종횡으로 묶어져,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내 삶의 제석망이 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좋은 관계 유지하는 것 참 좋은 일이다. 그 사람들이 언젠가는 내 삶에 중요한 일부분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살이다. 하지만 애초에 그렇게 이익을 기반으로 만나거나 목적을 공유하고 만나지 않고 그저 사람을 보기 위해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관계가 주변에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둬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은 애초에 내 머릿속이나 내 손재주나, 내가 가진 어떤 것에 대한 흥미로 나를 찾은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 경홀히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길가에 떨어져 있는 보석들을 모아서 내 상자 안에 넣어두는 과정과 같다.


사람들의 평판에 의해, 사람들의 욕구에 의해 정련되고 닦여진 보석들을 모으는 삶이라는 것은 효율적이지만, 그것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의 방편일수도 있다. 내 보석상자에 담긴 것은 남에게 아무 가치가 없는 활석이나 황철광일수도 있는 노릇. 하지만 그것 역시 어딘가에서 수만년의 압력을 받아 돌로 빚어진 존재들일 터.


인생이라는 것을 어찌 타산적인 눈으로만 보겠느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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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청소를 하다가 손거울을 손으로 건드렸는데 그만 땅바닥에 닿자마자 산산히 박살이 나고 말았다.

이게 야밤에 웬 소란인가. 청소기 돌리고 물수건으로 바닥 닦고 땀을 뻘뻘 흘리고 난 뒤에서야 처리를 다 마치고 앉아있는데


파경(鏡)이라니.

갑자기 이 생각이 드는 것이다. 파경이라니. 내가 그 동안 남 몰래 사모하던 여인과 이제 영영 이별이라는 것을

전지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다시 한번 일깨워 주시려고 내 손을 빌어서 거울을 박살내신 것인가 이런 젠장.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갑자기 생각나는 춘향전 한 토막. 

이럴 때는 기억력이 비상하다. 거 참 이상한 일이야.


"말대로 그러면 오죽 좋사오리까. 간밤 꿈 해몽이나 좀 하여 주옵소서."

"어디 자상히 말을 하소."

"단장하던 체경이 깨져 보이고 창전(窓前)에 앵도꽃이 떨어져 보이고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려 뵈고 

태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말라 보이니 나 죽을 꿈 아니오."

봉사 이윽히 생각하다가 양구(良久)에 왈

"그 꿈 장히 좋다. 화락(花落)하니 능성실(能成實)이요, 

경파(鏡破)하니 기무성(豈無聲)가. 능히 열매가 열려야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어질 때 소리가 없을손가. 

문상(門上)에 현우인(懸偶人)하니 만인이 개앙시(皆仰視)라.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렸으면 사람마다 우러러볼 것이요.

 해갈(海渴)하니 용안견(龍顔見)이요 산붕(山崩)하니 지택평(地澤平)이라. 바다가 마르면 용의 얼굴을 능히 볼 것이요 

산이 무너지면 평지가 될 것이라. 좋다. 쌍가마 탈 꿈이로세. 걱정 마소. 멀지 않네."


춘향이가 옥에 갇혔을 때 악몽을 꿨는데, 맹인 점쟁이가 왔다가 그 꿈을 해몽해 주는 대목이다.

거울이 깨졌으니 소리가 없을소냐. 사람들이 떠들석하니 볼 일이로다.


춘향이는 꿈으로 꾸었지만 나는 내 손으로 거울을 깼으니

내가 떠드럭하니 세상을 놀라게 하겠구나. 얼씨구 좋구나.



역시 꿈보다 해몽이구나. 절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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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는 광고 이야기 안 쓰려고 했는데 밥을 다시 그쪽에서 먹게 되어서 한 마디만 써 보련다.


가장 병신같은 기획서는 잘 쓴 기획서다. 내가 봤을 때 더 이상의 흠결이 없도록 쓴 기획서가 세상에서 가장 병신같은 기획서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대부분의 좋은 기획서는 광고사의 입장에서 병신같은 기획서다. 광고주의 입장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도출해 주고 광고사는 거기에 밥 숟갈 살짝얻는 표시 날 정도의 기획서가 만점짜리이다.


물론 내 식대로 pt하고 대신 광고매체를 종합선물세트로 때려박는, 광고주보다 더 큰 대형광고기획사들도 있지만 그건 극소수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볼 때 즐거워한다. 남이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을 볼 때 즐거워 하고 그사람의 말에 조금이라도 맞장구를 치고 싶어한다. 인간의 삶은 욕망의 굴레를 타고 궤적을 그린다. 화폐경제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역사는 욕망의 역사이다. 


3. 

이성의 파도를 타면 본능의 벽을 타고 넘어 벽 뒤에 있는 인간성을 촉촉히 적셔줄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어느정도는 사람들의 시선이 객관화될 것이고 보다 평등하게 세상 일이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미안하지만 꿈과 같다. 이성의 파도를 뒤집어쓴 인간들은 이성으로 욕망에 덧칠을 할 뿐이다. 세상에서 유체이탈하여 모든 것을 관조적으로 볼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지 않는 한, 이성으로 조정되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솔직히 그렇게 사느니 종교적 도그마에 의해 일정수준의 계율을 지키고 사는게 더 편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으로 인해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은 일정수준의 연령이 되면 절대로 타인에게 설복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욕망의 발현방향을 바꾸기 전까지는  그러하다. 이성이고 과학이고 효과가 없다. 만약 그렇게 설복이 가능하다면 6월 항쟁 이후 한나라당은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공고하게 두 다리를 붙이고 서 있지 않은가. 인간의 탐욕은 이성에 우선한다. 그리고 제어할 수도 없다.


3.

왜 사업할 때 술을 처먹는가. 비이성의 영역에서 비공식적인 친밀함을 획득하기 위한 조건이다. 서구권은 이성적으로 해결할 것 같은가. 로비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한다. 한반도의 술문화는 소소한 로비의 총합이다. 어찌보면 한국인들은 모두로비스트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왜 생긴다고 보는가? 이성적으로는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다른 이들에게 보이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 기저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4.

요즘 보면 말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어른들이 있다. 그냥 자기가 쓰고 싶은 기획서를 쓰는 어른들이 많다. 직장 초년병 때 그런거 가지고 사장한테 가면 부모욕부터 처먹는다. 하지만 요즘은 그게 대세인가보다.


그래서 병신같아 보이는 기획서가 훨씬 이성적인 것이다.

최소한 그게 나에게 돈을 벌어다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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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수 많은 우연한 만남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뗄 수 없는 감정이 깃들더라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마음을 전달할 수 없는

거지같은 인연도 분명 존재한다.



아마 전생에

백혈구와 감기바이러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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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믿거나 말거나 2012. 5. 10. 17:41

살면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잃어 버린 뒤에서야 사람들은 자신이 누려온 안락함이 무엇이었는가 생각해 본다. 마치 낚싯바늘에 입이 꿰어 뭍으로 건져진 물고기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물에 의해 호흡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 깨닫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가정이 부서지고 신체가 부서지고 난 뒤에 그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던 많은 행복들에 대해서 고민한 지도 벌써 4년이 지나고 5년에 접어든다. 그 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들은 나를 핍절하게 만들 뿐, 곳을 채워주지는 못하였고 더불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은 심해졌으나 그것에 이르는 길은 점점 험해지기만 하였다.


삶이라는 것은 늑탈된 것을 복구하거나 욕망이 원하는 것을 약탈하거나 둘 중의 한 과정으로 귀결되어진다. 나는 후자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전자로 돌아섰고, 전자를 충족할 가능성이 떨어지자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약탈하고 싶어한다. 삶이라는 것은 배고픔과 성욕의 총합이나 같은 것이다. 사람의 인생은 문자와 값진 예복으로 자신을 치장한 짐승의 갈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언젠가는 다시 나도 내가 전에 가졌던 것을 회복하며 즐거워 하겠지'라는 망상과 목표를 설정하고 오늘도 나는 그를 향해 움직인다. 하지만 해는 지고 길은 멀고, 이제 남은 삶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주위에서는 지치지도 않고 나를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가려 애 쓴다. 나는 고삐와 안장을 채워도 발을 떼지 않는 고집으로 버틴 삶이거니와, 그렇게 살아서도 안된다는 것을 얼추 알고 있지만 이제는 힘이 부친다.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 내 삶에서 어느 방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구심마져 생긴다.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인생은 경주라고. 하지만 그 경주의 끝에 상급이 있을까? 그것은 모를 일이다. 그것이 행복일지 아니면 또 다른 목마름일지 나는 지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하루가 풍성하고 은혜롭지못하다면, 아니, 소소한 행복일지언정 뭔가 촉촉하게 나를 적셔주는 힘이 주어지지않은 채로 푸석푸석한 인생 항로를 얼마나 더 끌고 가야 하는 것일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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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AV 배우부터 미국 배우들까지 죽 나열하고 그 중에 내 맘에 든 사람들을 찾아본 결과 뭔가 묘한 공통점이 있긴 있더라. 딱 고양이 형상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얼굴들인데...뭔가 묘하게 살벌해보이긴 한다.


아는 사람이 그러더라.

"고난의 바다를 헤엄치며 평생 살아가야 할 스타일만 찾는다"


-.-;;맞는 말 같긴 한데 문제는 그런 스타일이 아닌 사람하고도 살아봤는데 고난의 바다를 가열차게 헤엄쳤다는 농담같은 사실.


누구 주위에 이런 사람 있으면 내쫓지 말고 소개부터 시켜주...쿨럭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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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 술은 마실 줄 알지만 마시지는 않고 담배도 필 줄은 알지만 피지는 않는다.
둘 다 내 몸이 별로 안 좋다는 것을 자각하고 난 다음인데.
연말이 되면 담배는 피해도 가끔 술을 피하지 못하는 자리가 생긴다.
예전에는 되게 힘들었다. 젊은 시절에는 무작정 최연장자가 꽐라가 돼서 길거리에 반송장이 되어 나뒹굴 때까지 뒤에서 호종을 했어야 하는 회사에 있엇다. 무지하게 먹여댔다. 아, 정말. 그 당시 생각을 반추하면 위액이 밀려나온다.
하여간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도 술자리에 대한 은근한 거부감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나니, 술에 대한 사람들의 강제도가 확 줄어들었다.
마셔주면 좋고, 안 마셔도 뭐라고 강압하거나 첨잔하는 분위기는 확 줄어들더라.
아, 이래서 한국은 나이가 깡패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불어 왜 나이들수록 술자리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하게 되었다.

나는 조금만 먹어도 된단 말이지.



2.
정말, 어쩌다가 1년에 한 번 정도는 담배가 무지막지하게 피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누가 그랬다. 금연은 담배를 끊은 것이 아니라 계속 평생 참는 것이라고.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이제 서울 시내에서는 보행중,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지 못하는 하는 법안이 상정될 지도 모른다 한다.
건강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정작 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가중되겠지.

옛날에는 망우초라고 불리기도 했다. 근심을 잊게 해 주는 풀. 답답할 때 피워보면 나름대로 위안이 되어주던 물건 아닌가. 나도 인생이 꽉 막혔을 때 담배를 피워봐서 흡연자들에 대한 시선이 나쁘지는 않다. 그냥 냄새는 싫어도 그 피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이해를 하려고 한다. 그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라면 이해해줘야 한다.

대신, 여름철에 내 침실 아래층에서 담배피우는 놈은 때려주고 싶다.


일본에 나중에혼자 놀러가면 미친듯이 한번 담배나 피우고 와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이젠 거기 갔다가는 니코틴이 아니라 방사능이 쌓여서 올 것 같아 더 이상 못가겠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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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스

믿거나 말거나 2011. 11. 24. 23:18
급작스런 변의를 느껴 급하게 찾아들어간 화장실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도 없어서 오히려 내 집같은 안락함에 마음놓고 화장실에 들어갔건만
그곳에는 나는 무서운 것을 보았다.

화장실 휴지통 안에 곱게 접어서 넣어놓은 하늘색 트렁크 하나

나는 그 빤스에서 슬픔과 고통과 좌절과 의지를 보았다.


그 빤스의 주인공은 지금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
몸이 가벼워서 한결 서러울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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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나보다

믿거나 말거나 2011. 11. 20. 13:16
내가 내 글을 쓰다가 울어보기는 또 처음이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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