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청소를 하다가 손거울을 손으로 건드렸는데 그만 땅바닥에 닿자마자 산산히 박살이 나고 말았다.
이게 야밤에 웬 소란인가. 청소기 돌리고 물수건으로 바닥 닦고 땀을 뻘뻘 흘리고 난 뒤에서야 처리를 다 마치고 앉아있는데
파경(破鏡)이라니.
갑자기 이 생각이 드는 것이다. 파경이라니. 내가 그 동안 남 몰래 사모하던 여인과 이제 영영 이별이라는 것을
전지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다시 한번 일깨워 주시려고 내 손을 빌어서 거울을 박살내신 것인가 이런 젠장.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갑자기 생각나는 춘향전 한 토막.
이럴 때는 기억력이 비상하다. 거 참 이상한 일이야.
"말대로 그러면 오죽 좋사오리까. 간밤 꿈 해몽이나 좀 하여 주옵소서."
"어디 자상히 말을 하소."
"단장하던 체경이 깨져 보이고 창전(窓前)에 앵도꽃이 떨어져 보이고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려 뵈고
태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말라 보이니 나 죽을 꿈 아니오."
봉사 이윽히 생각하다가 양구(良久)에 왈
"그 꿈 장히 좋다. 화락(花落)하니 능성실(能成實)이요,
경파(鏡破)하니 기무성(豈無聲)가. 능히 열매가 열려야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어질 때 소리가 없을손가.
문상(門上)에 현우인(懸偶人)하니 만인이 개앙시(皆仰視)라.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렸으면 사람마다 우러러볼 것이요.
해갈(海渴)하니 용안견(龍顔見)이요 산붕(山崩)하니 지택평(地澤平)이라. 바다가 마르면 용의 얼굴을 능히 볼 것이요
산이 무너지면 평지가 될 것이라. 좋다. 쌍가마 탈 꿈이로세. 걱정 마소. 멀지 않네."
춘향이가 옥에 갇혔을 때 악몽을 꿨는데, 맹인 점쟁이가 왔다가 그 꿈을 해몽해 주는 대목이다.
거울이 깨졌으니 소리가 없을소냐. 사람들이 떠들석하니 볼 일이로다.
춘향이는 꿈으로 꾸었지만 나는 내 손으로 거울을 깼으니
내가 떠드럭하니 세상을 놀라게 하겠구나. 얼씨구 좋구나.
역시 꿈보다 해몽이구나. 절씨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