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1.06.26 비오는 날의 결혼식 4
  2. 2011.05.31 마지막 친구의 청첩장 4
  3. 2010.01.30 친구와 수술과 기타등등 10
  4. 2009.12.17 고교동창 망년회 6
  5. 2009.10.28 연락 2
  6. 2009.06.25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9
  7. 2009.05.15 친구의부탁 8
  8. 2009.04.24 그래도 남는 것은 붕우(朋友)뿐이라 2
  9. 2009.02.20 먼 친구놈에 대한 단상 4
  10. 2008.11.03 술 약속이 잡혔다 2
10년이 넘게 알아왔던 전 직장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말이 10년이지, 강산이 변했다.
그리고 그 직장 이후에도 나는 다른 직장이 몇 개 더 있었다. 말이 첫 직장이지 정이라고는 별반 남아있지 않은 회사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친구하고는 계속 연락이 닿았더랬다. 그 중에 나는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고
그 친구는 그 와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나름대로 정신없이 살아온 중년의 삶이었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일요일 오후, 처음 가보는 결혼식장에 들러서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고 왔다.
하객들은 죄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 내가 모르는 친구들. 아마 지금 있는 직장의 동료들이겠지.

기실, 그 직장을 떠난 뒤에 그 친구를 본 것은 너댓번에 지나지 않는다.
10년 간 너댓 번. 우정이 남아있을 수 있는 횟수랴
그런데 우정은 남아있었고
어느 날 말 없이 던져주는 청첩장에도
당연히 가야겠다는 맘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걸 보면,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에는 시간도, 횟수도, 방법도 중요한 것이 아님이더라.
한 번 보고도 그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불원천리 마다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고
매일 본다 하더라도 옆에서 죽어 나자빠지는 걸 본 들 119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가 버릴수 있는 게
또한 사람의 정이더라.

나는 의리가 돈독한 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매몰찬 이도 아니지만
사람마다 그 깊이와 관계하는 정리가 다름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는구나.

가정까지 생겼으니 내 이제 그 친구를 남은 일생에 몇번이나 보게 될까.
아마 지난 10년간 본 횟수만큼 더 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라고 여기고 있으니 인연이라는 것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묘한 게 있을까.

남아있는 자는 어김없이 남아있고
떠날 사람은 붙잡아도 떠나가는 것이 인생.

잘 살기를 바래 마지 않는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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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일하게
고등학교가 아닌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인간이
저녁에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을 보냈다.

멀리 나가기 싫어서 근처 삼계탕집에서 보았다.
불원천리 마다 않고 달려와서 봉투 하나를 건넨다. 청첩장.
남은 한 번 갔다가 다시 끝내고 그 과정을 잊을 때 쯤 되어서 장가를 가는구나.

"좋으냐."

"아니."

"뭔 소리냐. 아가씨 보면 좋지 않으냐."

"좋기야 하지. 하지만 예전같지는 않다."

"그러냐."

"우린 나이를 먹었잖아."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이 있으니 회사를 다니고 돈을 벌고 가정의 평범한 일상의 바퀴를 굴리고 그렇게 조금씩 나이를 먹는다. 아니, 그렇게 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나이를 먹었다.

뭐하는지를 묻는다.
이래저래 갈 길을 잡는 중이라고 했다. 기실, 나는 수많은 장애물과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한 치 앞을 안 보여주는 미래라는 놈을 없애고 싶은 마음 간절하건만, 그 녀석은 나를 보는 눈이 또 다르다.

"난 말이야. 때가 되면 말이지. 아무도 없는 섬에 내려가서 펜션을 하고 싶다. 정말이야.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펜션을 하고 싶어. 가끔 들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싶어. 그냥 바다를 보고 싶다. 아는사람 없는 곳으로 가서."

한 잔 반주에 말문을 연다. 자를 사람이 없는 회사에 다니는 녀석이 얼마나 사람에게 치였으면 저런 말을 하는 가 싶다. 나도 한 때 몸 담았던 곳이다. 그 녀석이 받는 돈은 부럽지만 그 삶은 추억하고 싶지도 않은 곳이다. 힘들것이다. 힘들거야. 장가갈 생각을 하니 더 암담하겠지. 앞으로도 십몇년을 그 곳에 시간을 묻어야 할 테니까. 장래가 보장되지 않은 사람이 장래가 보장되어 있는 사람을 걱정하고, 장가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무덤덤하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받아들인다. 인생은 감동을 뺏아간다. 우리는 더이상 청춘이 아님을 실감한다.

"일단 장가가면 애부터 낳아라."

"필요하냐?"

"내 경험으로는 필요하더라."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그 녀석은 결혼식날 보자며 총총히 개찰구로 사라지고, 나는 다시 젖은 지하철 계단을 올라와 집까지 터덜거리며 돌아갔다. 내가 편한 것인가 그 녀석이 행복한 것인가. 둘 다 아니겠지.
그래도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유일하게 
직장에서 서로 우울하게 보냈던 청춘의 기억을 나눈 사내인데.

아무쪼록 순탄한 미래가 두 사람 앞에 열리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결혼 축하한다 친구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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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디스크수술을 받으셨다.
쩝, 허리가 안 좋은 것도 내 부주의가 아니라 유전학적 성질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나도 허리가 아픈 걸 그냥 참고 아프다고 오히려 내 허리에 성질을 부려서 허리가 탈난 거고
아버지고 허리가 아프다고 성질나서 골프장에 가서 스윙을 하셨다니 바로 그 담 날 수술...-.-;;;
(우리 집안의 가계도를 유전학적으로 살펴볼 수 없을까? 시실리섬 아니면 북유럽 스발바르제도쪽이 기원일지도)


요즘은 부분마취로 절개도 약간하고 통증을 최소화하고 회복도 빠르게 진행된다니 격세지감이다.
나 할때만 하더라도 디스크수술은 남자의 인생을 걸고하는 수술이었는데. (아, 난 살아남은 거지...-.-v)

갑자기 그 시절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난다.

수술날을 받아 놓은 수술전야.
가장 친한 친구놈이 병실을 찾아왔다.

눈물나게 고마왔다. 수술전에 내 병실을 찾아오는 친구라는 게 존재할 줄이야!
(지금도 만나는 몇 안되는 막역지우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놈이 갑자기 병원 구석탱이로 날 끌고가더니
거기 있는 탁자위에 뭘 꺼내놓는거다.
후라이드 치킨.

"야, 수술 전날엔 아무것도 먹음 안된다는데..."
수술 마치고 거동을 못하는 상태에서 음식물이 들어가고 소화활동이 시작되면 
화장실을 가야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의사선생님이 주의를 줬더랬다.

그러나 내 친구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다 이것도 추억이야. 그냥 먹어."

뭔가 이상하고 미묘한 느낌이랄까.
하면 안되는걸 알면서 저 말을 들으니까 괜시리 식욕이 땡기는 것이다.
분명 뭔가 홀렸을 것이다. 그 날 저녁 후라이드 치킨을 내 친구하고 다 먹어버렸으니.

그리고 수술 후

난 화장실에 못 가고 누워있는다는게
사람을 반쯤 정신나가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 부친의 병실에 누워서 간병하고 있는데
그 친구놈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디냐"

"아버지 병원, 수술, 허리,"

"아버지 어떠시냐."

"그냥 그렇지 뭐. 나이가 있으시니"

"우리 아버지도 나이드시니 이것저것 수술 많이 받으시더라."

"근데 웬일이냐."

"사실 어디 좀 놀러갈까 하는게 관광정보 좀 들으려고"

"넌 꼭 괴상한 타이밍을 잡더라"

"내가 원래 그래"

"네가 원래 그랬지."

...초록은 동색인 법이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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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부터 모이던 4명에 한 명이 더 끼어서 망년회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술도 잘 못먹고 그나마 마실 줄 아는 건 맥주밖에 없는 애들인데 그것도 한잔이면 족하다.
그러니 어디 가서 맛난 거나 먹자고 했다.
어차피 끼리끼리 비슷한 놈들끼리 모이는 법, 늘 이런 식으로 모여서 밥 먹고 커피집에서 아가씨들이 학을 떼고 갈 정도로 사내들끼리 수다를 떨다 가는 게 [고교동창 망년회]의 코스인데

오늘은 어째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지
들어가서 먹을 곳이 없었다.

다 멍청하니 서서
어디가지 어디가지
이러고 서 있다가

[그래도 피자 가게는 사람이 금방 나가니까 거기라도 가자]
는 의견에 의기투합해서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기고 간당간당하는 장정 다섯이 피자 큰 거 한 판 시키고 꾸역꾸역 먹고는
잘 놀았다 안녕~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이렇게 본 지 20년이 넘어간다.

머리가 다 빠지고 틀니를 할 때가 되어도
아마 이 사람들은 이렇게 모여서
어디가지 어디가지
피자나 먹으러 갈까?

이러고 놀 것이다.

그래도 같이 있어줘서 참 고마운 사람들
그게 친구라는 것일진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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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

작은 방 한담 2009. 10. 28. 11:46
이번 주에 결혼한다는 녀석이 어째 청첩장도 못 돌리고 있길래
'결혼은 하는 건지 안 하는건지' 이러는 찰나에 전화가 왔다.
사무실 쪽으로 오늘 점심이나 먹으러 오겠다고.

집도 서울이 아닌 녀석이 뭣하러 오냐고 하려다가
그래도 정성인데 말이지. 그러라고 하였다. 나만 보러 나온게 아니길 바랄 뿐.

사람의 소식이 막막하건 자주오건 간에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건 대충 태도를 보면 아는 법이다.
무늬만 친구인지 진짜 친구인지

그나마 연락없이 소원한 이들은 대충 걸러 정리하면 다신 연락이 오지 않더라.
사람과 사람이라는 것이 인연을 맺을 때도 그렇지만 끊을 때도 대충 서로가 감이
오는 법인데. 그래서 인생에 오랫동안 같이 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은 법일 것이다.

한 사람이 친하자고 쫒아다닌다고 친분이 생기는 것도 아니더라.
그 사람을 받아줄 만한 여유가 없거나 눈이 없거나 기타 여하 다른 이유가 있으면 그걸로 끝이더라.

우정을 비굴하게 구걸 할 이유도 없거니와
어떤 사람이던 자신을 있는대로 받아줄 천금의 벗은 있더라.

* 추수할 계절이 오면 떨어지는 낟가리들이 있는 법.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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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과 부대끼고 사는 곳에는 늘 갈등이 있는데

가끔은 말이 씨가되고 묘목이 되는 경우도 참 많더라.

이 나라 떠나면 그런 꼴 안 보려나 해도

사람이라는 개체가 원래 그런 습속을 타고 나는지

어딜 가든 좋지않은 이야기 듣는 것은 다반사다.

명심보감에 그러하였다.

相識滿天下(상식만천하)하되 : 서로 아는 이가 세상에 많이 있으되

知心能幾人(지심능기인) : 마음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酒食兄弟 千個有(주식형제천개유)로되 : 밥 먹고 술 같이 하는 이 천 명이 있어도

急難之朋 一個無 (급난지붕 일개무) : 급하고 어려울 때 도와줄 이 없는 법이라

 

不結子花 休要種 (부결자화 휴요종)하고: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은 심지 말고

無義之朋 不可交(무의지붕 불가교): 의리 없는 친구는 벗하지 말라


어딜가나 모함하는 이가 끊이질 않고 험담하는 이 끊이질 않는다.

어쩔때는
정말 내 행로와 신상에 위난을 줄만큼 모욕을 당하고 비방을 당하는 일조차 생긴다.
그럴 때 필요한 게 가족이고, 가족이 멀다면 의지할 수 있는 벗이다.

예전부터 인용하던 싯구 중에 루드야드 키플링의 "The Thousandth man"이라는 시가 있었다.

Nine nundred and ninety-nine depend
On what the world sees in you,
But the Thousandth man will stand your friend
With the whole round world agin you.


999명이 세상이 보듯 널 대하여도
마지막 천번째 사람은
모두가 등을 돌려도 네 친구로 남으리

어쩔 때는 그러한 벗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성과, 법과, 논리적인 정황에서 밀린다 하더라도
끝까지 친구라는 이름 하나로 등을 빌려 줄 친구가 있다면
그것으로 그 삶은 무언가 이룬 것이다.
물론, 요즘같은 법치사회에서 저것은
협객지정(俠客之情)이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게 그리워 지지 않는가.

Posted by 荊軻
,

친구의부탁

작은 방 한담 2009. 5. 15. 11:08

며칠 전부터 뭔가 계속 부탁하는 친구가 있다.
일에 대한 거다.

사실 해 줘 봤자 남지도 않고
잘못하면 역마진 걸려서 덤태기 써야할 판인데

문제는 그 놈이 어디 다른데 부탁할 사람도 없다는 거고
못 하면 상사에게 깨질지도 모른다는 거다.

돈이 달리고 시간을 써야하니
사람이 얄팍해지는거다.

예전같았으면 그냥 해달라는대로 해 줬을테지만
나도 잘 모르는 분야의 일을 실비도 아닌 원가 그대로 줘야 할 상황에 처하니
자꾸 본전생각이 나는거다.

어쩌다 사람이 이렇게 변했을까
해줘야지 해줘야지 하면서도 막상 전화가 오면 부담스럽고
제발 혼자 해결해다오 하는 속마음이 울컥울컥 올라오고

사람이 이렇게 살면 안 되는거다.
뻔히 아는데
이러고 있고, 아직도 먼저 연락하지 않고 있다.
1주일 내내 이러고 뒤숭숭한데
그놈은 내가 이러고 있는거 아는지 모르겠네.
이것도 따지고 보면 본전생각일텐데.

그런데 글 쓰면서도 생각해보는데

사람이 이렇게 살면 안 되는거다.

Posted by 荊軻
,

오랫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생각나서 걸었다."

"그래 잘했다."

으레 시작되는 단어입니다.
고등학교1학년 때니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친구.

이젠 한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맨 처음 만났던 때는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고등학교 입학하던 첫 날 사귄 친구기 때문이죠.

제가 32번이었고 그 친구는 31번이었습니다.
제 앞자리에 앉아있었죠.

"31번"
"응?"
"나 32번이다."
"응, 그래."

그 친구 성격이 좋아보였습니다.

"야, 31번."
"왜?"
"우리 친구하자."
"그러자."

그걸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상당히 고풍스러운 방법입니다.
서서히 친해지기 시작해서 관계가 발전하는 게 보통인데
아예 처음부터 [우리 지금부터 벗으로 지내는게 어떻소?]라고 한 놈이 말을 던지면
[그거 좋소이다]라고 추임새를 넣는 것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친구가 된 지 20년입니다.
그것도 끈끈하게 이어져서
지금까지 지내오는 걸 보면
확실히 사람의 우정이나 사귐은 때와 시가 분명히 있는 모양입니다.

따져보건데
절친한 이들을 만나 시기를 살펴보면 모두가 30 전입니다.
그것도 대학에서 만난 친구는 하나도 없고
대부분은 교회 아니면 고등학교 시절입니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만난 벗이랄 녀석은 사회 초년병시절 같이 개고생한
직장동료 하나로군요.

확실히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마음을 보여주기가 서로서로 곤란해지는 걸까요?

개인적으로는
나 스스로가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이
신뢰를 막아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불안은 커져가고, 직장에서 말하는 습관대로 사람들을 대하고
이익관계에 쫒겨다니다 보면 계산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저 사람도 그러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과 의심, 초조함 같은게 은연중에 나오는 것일테죠.
결국은, 스스로가 만든 장벽에 의해 고독해지는게 인생사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20대 때는 그런 게 없었겠지요.
사회라는 걸 아직 모르고, 삶의 팍팍함이라는 것과 가증스러움을 모르는 때였으니
얼굴에 가면을 쓰고 다닐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각설하고,
그 친구랑 한 번 전화를 잡았다가
결국 15분이 넘어서야 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회사 기밀사항까지 말해버릴 판국인지라 얼른 화제를 돌려버렸죠.
나이를 먹어도
할 말은 산더미 같더군요.
생각해 보면 그냥 지나가는 한담이었습니다만
사람하고 말하는게 참 그리웠나 봅니다.



"너 아직도 회사 좀 어렵지?
 우리 마케팅 이사나 한 번 소개시켜 줄까? 그 양반이 좀 곤란한 처지긴 한데 우리 동문이라..."

"....그건 나중에 하자. 그냥 밥이나 먹자."

다음 주에 밥이나 먹으러 오라는 약속까지 해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녀석 마지막 말에
저는 좀 목이 메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잘못 살지는 않은 듯하고
그래도 뭐 하나 좋은 건 내가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한
금요일 저녁입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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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업무 중 이리저리 인터넷 서핑을 하다
낯이 익은 녀석 이름이 하나 띄길래 봤는데
역시나, 고등학교 시절 짝꿍이었다.

프로필을 살펴보니
아뿔사, 이 녀석 자기 원하던 직업을 가졌더라.

이녀석의 꿈은 [성우]였다.
공부도 곧잘 하고, 이것저것 재주도 많았는데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늘 [성우]였다.

참 재미있는 녀석이지.
남들 들어가기 힘들다는 유수의 대학교도 한번에 붙은 놈이
성우시험은 매번 떨어지더라.
그리고 이것저것 다른 직장생활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살펴보니 성우가 되어있었다.

이제는 나름대로 고정팬들도 꽤 있고
TV 프로그램에서도 나레이션 상당 수를 하는 모양이다.

뭐랄까.
좀 희한한 기분.

사람들이 그 사람을 평가할 때 가지고 있는 외형적인 평가기준하고
전혀 다르게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간다는 것은
비단 나만이 가지고 있는 꿈은 아닌 것이다.

같이 도시락 까먹으면서 책상에 머리박고 자던 녀석이
늘상 자기가 말하던 희망직업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게
어찌보면 신통하고 대견하고 재미있고 그렇다.

삶이라는 건 그래서
유장하게 원거리로 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

...근데
이 녀석 목소리를 왜 나는 들어 본 적이 없는거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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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몇 년만에 잡아보는 술 약속인가.

헤어진 친구와 만나는 것은 7년만인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오랫만에 만나서 바로 술먹자고 할 만한 녀석은 별로 없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를 비롯해서 술을 입에 대지 않는 편이다. 술을 먹는다고 뾰족하게 할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술이 없다고 할 이야기가 없는 것도 아니니.

하지만 이 친구하고는 술을 좀 마셔야겠다.

맨 처음 들어간 회사의 입사동기. 그것도 같은 지역에 사는 입사동기.
둘 다 그 회사를 엄청나게 싫어했었지.
하지만 난 떠났고 그놈은 남아있고.

아마 지금 남아있었다면
인생의 부족함 모르고 그저 희희낙락하면서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서민이 굶어죽던 말건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겠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같이 만나면 못다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겠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이름들이 계속 떠다닐 것이다.
지금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름들.
하긴, 지금 내게 중요한 이름들은 얼마 남아 있지도 않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금요일에는 먹지도 않는 소주를 좀 마셔줘야겠네그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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