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일하게
고등학교가 아닌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인간이
저녁에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을 보냈다.

멀리 나가기 싫어서 근처 삼계탕집에서 보았다.
불원천리 마다 않고 달려와서 봉투 하나를 건넨다. 청첩장.
남은 한 번 갔다가 다시 끝내고 그 과정을 잊을 때 쯤 되어서 장가를 가는구나.

"좋으냐."

"아니."

"뭔 소리냐. 아가씨 보면 좋지 않으냐."

"좋기야 하지. 하지만 예전같지는 않다."

"그러냐."

"우린 나이를 먹었잖아."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이 있으니 회사를 다니고 돈을 벌고 가정의 평범한 일상의 바퀴를 굴리고 그렇게 조금씩 나이를 먹는다. 아니, 그렇게 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나이를 먹었다.

뭐하는지를 묻는다.
이래저래 갈 길을 잡는 중이라고 했다. 기실, 나는 수많은 장애물과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한 치 앞을 안 보여주는 미래라는 놈을 없애고 싶은 마음 간절하건만, 그 녀석은 나를 보는 눈이 또 다르다.

"난 말이야. 때가 되면 말이지. 아무도 없는 섬에 내려가서 펜션을 하고 싶다. 정말이야.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펜션을 하고 싶어. 가끔 들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싶어. 그냥 바다를 보고 싶다. 아는사람 없는 곳으로 가서."

한 잔 반주에 말문을 연다. 자를 사람이 없는 회사에 다니는 녀석이 얼마나 사람에게 치였으면 저런 말을 하는 가 싶다. 나도 한 때 몸 담았던 곳이다. 그 녀석이 받는 돈은 부럽지만 그 삶은 추억하고 싶지도 않은 곳이다. 힘들것이다. 힘들거야. 장가갈 생각을 하니 더 암담하겠지. 앞으로도 십몇년을 그 곳에 시간을 묻어야 할 테니까. 장래가 보장되지 않은 사람이 장래가 보장되어 있는 사람을 걱정하고, 장가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무덤덤하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받아들인다. 인생은 감동을 뺏아간다. 우리는 더이상 청춘이 아님을 실감한다.

"일단 장가가면 애부터 낳아라."

"필요하냐?"

"내 경험으로는 필요하더라."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그 녀석은 결혼식날 보자며 총총히 개찰구로 사라지고, 나는 다시 젖은 지하철 계단을 올라와 집까지 터덜거리며 돌아갔다. 내가 편한 것인가 그 녀석이 행복한 것인가. 둘 다 아니겠지.
그래도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유일하게 
직장에서 서로 우울하게 보냈던 청춘의 기억을 나눈 사내인데.

아무쪼록 순탄한 미래가 두 사람 앞에 열리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결혼 축하한다 친구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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