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2.04.21 오키나와 여행 (2012.3월) -6 3
  2. 2012.03.27 오키나와 여행 (2012.3월) -4 2
  3. 2012.03.19 오키나와 여행 (2012.3월) -2 4
  4. 2012.03.18 오키나와 여행 (2012.3월) -1 4
  5. 2009.12.15 강릉 가는 길 - 3 8
  6. 2009.12.14 강릉 가는 길 - 2 13
  7. 2009.12.12 강릉 가는 길 - 1 4
  8. 2008.12.11 번외편 - America 6
  9. 2008.11.14 France(1) 4
  10. 2008.11.12 Britain -1 2

[쇼생크 탈출]이나 [원초적 본능]을 보면 주인공이 옆에 해변을 끼고 선글라스를 낀 채로 온갖 똥폼을 다 잡으면서 캘리포니아 1번고속도로를 우아하게 달리는 광경이 보인다. 참 멋져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옆으로 작렬하는 태양과 푸른 바다! 그리고 아무도 안 다니는 멋진 도로! 우왕! 나도 미국은 안 갔어도 오키나와에서 해 보고 싶었어!


라는 망상에 빠진 결과. 나는 오키나와 북단까지 가 보기로 한 것이다.


이게 미친짓인 것이, 내가 호텔을 잡은 나하시는 오키나와 남단 하부에 위치한 도시다. 오키나와 섬은 밀가루 반죽을 하다가 손에 힘 줘서 꽉 짜 놓은 것처럼 위 아래로 길쭉한데, 그 거리가 거의 100km.


(히밤...저 빨간 도시가 나하시다.)

말이 100km지 이게 서울시에서 강원도 홍천군까지의 거리다. 이걸 한국 지도에 맞춰서 생각을 한번만 해 봤다면 그런 뻘짓거리는 안 했을 것이다. 홍천군까지 가서 사진 한방 찍고 다시 서울로 오는 짓을 당일치기로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거 미친짓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그짓을 했다.



(이야 남태평양의...아니 동지나해의 호연지기가 느껴지는구나)

다시 올라가야지.



('눈물이 주룩주룩'이라는 영화를 찍은 등대라는데...영화를 안 봐서 몰라...)

다시 올라가야지~



(만명이 앉을 수 있다는 만자모...그 중 유명한 코끼리바위...그런데 날씨가 점점 왜 이래)


하여간 이렇게 북상하며 랜드마크들을 찍으면서 가고 있었다.

오키나와 북반구로 향하는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거의 없다. 그리고 옆에는 바다가 펼쳐진다. 처음 드라이브1시간 할 때까지는 정말 좋더라~ 신나게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이게1시간이 넘어가고 2시간이 넘어가니까 사람의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그 때 문득 머릿속에 들어온 생각


이국땅에 관광와서 이게 무슨 노가다야!


정신이 그제서야 번쩍 들면서, 아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예요 라고 몸이 외치고 있었지만 어느 새 나는 북반구로 가는 마지막 휴게소에 멈춰서 있었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고 시간은 사람이 가장 미치기 좋은 오후 4시.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끝을 찍고 가자. 이젠 다른 방도가 없어."


그래서 다시 마지막 40km스퍼트를 내어 저녁놀이 지기 직전, 

나는 오키나와 북단, 해도곶(해도미사키)를 찍을 수 있었다.


(일본 최북단을 상징하는 동상....이 닭새끼 하나 보려고 100km를 달려왔다고! 우헝헝헝)


해도미사키에는 이것밖에 없다. 사실, 이 닭동상 뒤에 휴게소로 쓰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건 여름철에만 연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배틀로얄'에서 주인공 죽이려고 덤벼드는 녀석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폐가로 변해있었다.


이상이 내가 오키나와 방문 이틀째 겪은 여행기다. 나하시로 귀환하는 일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다. 정말 생전 처음 우핸들을 잡은 주제에 [심야 유료 하이웨이]를 타고 호텔로 들어왔다. 살아서 돌아온게 기적일 뿐이다. 카메라를 꺼낼 엄두도 못 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도중에 방광이 터져서 죽을 뻔한 기억을 제외하고.


내가 이걸 쓰는 이유는 딱 두개다.

1. 이딴 여행동선 잡지 마라.

2. 여자건 남자건, 동행 없이 드라이빙 해 봤자 1시간 지나면 그냥 처량해진다.


마지막 오키나와 여행을 앞두고 호텔로 들어온 나는 그냥 뻗어버렸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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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 여행을 끝나고 난 뒤에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 이제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약도를 보고 간 곳이 슈리성 건너편에 있는 타마우돈이라는 곳이었다. 우동가게가 아니다. 슈리성 왕들이 대대로 묻혔다는 일종의 납골당이다.


(오키나와에서 내내 사 먹은 블루실 아이스크림. 베니이모(고구마) 아이스크림은 이렇게 보라색이다. 참고로 오키나와 고구마는 껍질까지 다 가는지 고구마 관련 상품은 모두 벽자색이나 자색계열이다. 맛나다. 많이 먹음 방귀가 나온다.)

 


하여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무덤이라고 해서 가 봤는데

나 말고 아무도 없다.

그냥 장려한 돌로 된 납골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참고로, 아래 박물관 기념실에는 돈을 내고 보는 유료코스가 있지만 한글로 써 있는 건 없으니 안 들어가도 무관하다. 발굴된 토기같은 유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아마 타마우돈이 유구국이 아닌 일본의 왕릉이었으면 대우가 달랐을 것이다만...정말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작다.


 

 이걸 다 본뒤에 고민에 빠졌다. 이제 뭐하나? 
내친 김에 국제거리까지 보고 그 유명하다는 오키나와 스테이크나 먹고 들어가 자자...라는 결론에 이르러 오키나와국제거리에 들렀다가 들어가기로 했다. 

(가다가 맘에 들어서 찍은 거리...난 이런 작고 깨끗한 골목이 좋더라.)
 
2.
국제거리라는 게 뭐 국제적이라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간, 오키나와가 미국에게 태평양전쟁때 쌀밥이 미음이 될 정도로 뭉개지게 포탄을 두들겨맞고 쫄딱 망했을 때, 1년만에 다시 활기찬 시장통을 만들어낸 전설의 거리라는 풍문을 들었다. 미군들의 물자가 들어오니 그럴수도 있었겠지만 가슴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오키나와는 스팸이 시장 내에 많이 굴러다닌다. 그것도 미국스팸.
 
모노레일 마키시역부터 현청 사이의 직선 1km구간이다. (기적의 1km라고 불린단다) 하여간 거기 가면 우리나라 인사동과 이태원 고깃집이 짬뽕된 기이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여기저기 스테이크집도 많고 인파들도 북적거린다. 그런데 하나 말하자면...스테이크가 절대 싸지 않다. 일본여행갈 때 모스버거나 규동으로 한 끼 1000엔 이하 식사를 고집하던 내게 3000엔에 육박하는 스테이크는 말 그대로 처절한 낭비. 게다가 7-8시의 황금시간대에는 관광객들이 알짜한 스테이크집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혼자 여행다니는 외토리 여행가에게는 별반 즐겁지 않은 광경이다. 그나마 한적한 곳에서 대충 하나 얻어먹고 왔지만...고기 먹으러 오키나와 까지 가는 식도락가는 없기를 바란다. 차라리 국제거리 곳곳에 붙어있는 예전 재래시장통을 돌아다니는게 더 재미있다. 막상 국제거리까지 도달해서 저녁을 사 먹은 때에는 아무런 힘도 없어서 사진도 찍지 못했다.  아아 고달픈 도보여행...

하지만 그 때는 몰랐었다.
오키나와에 도착한 첫 날이 내가 보낸 오키나와 여행 중 가장 알찬 여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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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우여곡절 끝에 오키나와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냥 남쪽으로 죽죽 내려가다보니 오키나와다. 꾸벅꾸벅 아침에 설친 잠을 보충하고 있는데 스튜어디스가 밥을 준다. 정말 기내식으로 나오는 밥은 사양이지만 이상하게도, 기내식은 다 먹게 된다. 이것도 항공료에 포함이야! 라는 강박관념의 소치이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더부룩하니 소화가 안 되는 배를 움켜쥐고 오키나와에 내렸다. 오키나와의 현 수도, 나하시다.


(동무들, 인민의 낙원에 오신 걸 환영합네다. 젠장)

저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내 뒤로 보이는 국제선 청사는 정말 국내선 청사에 부속으로 딸려있는 화장실만 하다. 오키나와는 국내선 터미널이 어마어마하게 큰 대신, 국제선은 여객기 트랩도어도 연결 안 되는 하꼬방이다. 비행기에서 계단차가 와서 붙으면 터덜터덜 내려와서 셔틀버스 타고 국제선 터미널에 떨어지는 과정을 겪는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국제선이 직항으로 오키나와에 들어오는 것은 4개노선인가 밖에 안 된다. (아시아나 용썼다....) 대신 국내선 터미널에는 일본의 방귀좀 뀐다는 대도시에서 다 비행기가 집합한다. 특히 3월말 4월초가 되면 일본 고등학생들의 과반수 이상이 오키나와로 수학여행을 온다. 국내선이 커질수 밖에 없다. 국제선 고객이 떨거지 신세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어쨌거나, 오키나와 시내로 들어가는 모노레일도 국내선 청사에 연결되어 있다. 국제선에서 오른쪽으로 걸으면 국내선 청사가 보인다.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다. 엄청 크거든...)


국내선 청사에 붙어있는 나하 모노레일은 바보라도 찾을 수 있다. 길다란 레일이 뻗어있는데 안 보일 수가 없다. 하여간 국내선 청사2층으로 들어가서 나하 모노레일을 타면 된다. 보통 1일무료 패스가 2012년 현재 600엔이다. 나하공항이 종점역할을 하기 때문에 모노레일을 나중에 타더라도 길을 찾는 것은 쉽다. 공항도 이걸로 오는게 제일 낫다. 나름대로 나하 시도 출퇴근에는 러시아워가 있다.


그리고 나하공항의 반대쪽에는 [슈리죠], 즉, 유구국의 옛 궁궐 수리성이 종점역할을 한다. 슈리역과 공항역이 양 끝에 위치하니 길 찾기는 정말 쉬운 편이다. 그리고 모노레일 중간에 있는 아사히바시 역부터 마키시 역 사이의 1km가까운 직선 대로가 오키나와 제일의 번화가 [국제거리]이다. 그냥 이것만 알아도 하루나 이틀은 모노레일만 타고 놀 수 있다. 난 신도심 오모로마치에 있는 다이와-로이넷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오모로마치에만 있는 DFS(duty free shop)1층에 토요타 렌트카를 빌리기 쉽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왜 렌트카를 빌렸는지 모르겠다. 그냥 버스타고 돌아다닐걸. ㅠㅠ

(이곳이 DFS...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것이 호텔건물)

사진만 보고, 우와 우리으리한 거대호텔이구나...생각하면 오산이다. 다이와로이넷 호텔은 굉장히 공격적인 확장을 하는 일본 호텔 체인점이다. 하지만 비즈니스텔이 기본이라는 것. 저 빌딩은 8층까지는 일반빌딩이고 9층부터 호텔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사진에 보이는 높이부터 호텔이라고 보면 됨. 게다가 호텔 입구는 빌딩의 오른편에 쪽문으로 나 있었다. 털레털레 트렁크를 끌고 빌딩 정문으로 들어가니까 멍때리며 놀던 회사 직원이 "호텔입구는 나가서 옆입니다"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나같은 놈이 한 둘이 아니었던 듯. 하여간 그렇게 해서 호텔에 체크인을 했는데.

호텔체크인은 2시부터란다. 그래서 트렁크만 프런트에 맡겨두고 덜렁 짐만 꺼내서 슈리성을 구경하러 나갔다. 간단했다. 모노레일을 다시 잡아타고 반대편 종점까지 가면 되니까.

(젠장, 그런데 역에서부터 도보로15분이여...ㅠㅠ)

(슈리성 편은 다음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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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월에 갑자기 오키나와 여행을 가게 된 것은 반 충동, 반 계획, 나머지는 방사능에 찌든 일본열도와 춘삼월에 엄동설한이 몰려온 대한민국의 짜증나는 날씨 덕분이었다. 

사실 원래 일본여행 계획은 나카사키와 후쿠오카를 잇는 규수지방을 방문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반이고 오키나와를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한 쪽은 아무래도 일본 근대화의 시발점이었던 부분이니 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나머지 한 쪽은 원래 일본이 아니었던 국가의 잔재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유구국의 문장)
원래 오키나와는 조선에 공물을 진상하던 사신이 왕래하던 유구국이라는 섬나라였다. 섬치고는 작은 편이 아닌데다 평야와 분지도 꽤 발달하였고, 대만과 일본 열도 사이에 딱 틀어박혀 동중국해의 가운데 앉아서 중계무역으로 쏠쏠하게 벌어먹던 나라였다. 그런데 이 나라가 사쓰마의 시마즈 가문(우리 이순신장군님께 흉탄을 쏜 그 시마즈 가문 일것이다.)에게 잡아먹힌 뒤 유구국은 몰락하고 오키나와라는 일본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참 서글프다. 망국의 한이여...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슈리성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있음 뭐하나. 죽은 자식 뭐 만지기인데. 하여간 그런 사연이 있는 나라인지라 뭔가 원폭맞은 나카사키보다 감성적인 자극을 더 주었던 것이 확실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카마 유키에가 오키나와 출신이라길래, 그 고장 사람들은 다 저렇게 생겼나 확인하러 간 거였다.
차포 다 떼고 결론부터 말하면, 이 여잔 변종이었다. 씨팔, 물어내! 
(혹시 한국에서 내 블로그 보는 일본인이 계시다면 그냥 농담으로 이해해달라.)


2.
2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비행거리지만, 우리나라에서 오키나와로 가는 비행기 직행노선은 딱 하나다. 아침 9:40분에 출발하는 아시아나 노선이다. (2012년 3월 현재)
그리고 그 비행기가 연료 채우고 다시 오키나와에서 돌아온다. 그게 12:40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아침에 한 대 출발한 뱅기가 점심에 오키나와에서 귀환하는 것이다. 참 애매하기 그지없는 시간대다.

왜 그러냐 하면, 서울 시내에서 6시나 6시 반쯤 출발해서 공항버스를 탄다 치면 7시-7시반에 인천공항에 떨어지는데, 이 시간 가지고는 정말 빠듯하다. 출발시간에 딱 맞출 수 있다. 아침여행 하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탑승수속이 엄청나게 붐빈다. 아침에 오키나와 비행기 한대 뜰 때 중국행 비행기는 너댓대가 뜬다. 아시아나 창구 장난 아니게 복잡하다. 전자여권으로 발급을 받으면 전산 키오스크 시스템에서 혼자 처리해서 그나마 시간이 절약되고 사전에 표를 끊어놓았으면 그나마 빠른창구를 쓸 수 있다. 그게 안 되면 나처럼 짐 싸들고 한 40분 창구에 붙잡혀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출국 수속하고 화장실 한번 들르면 바로 탑승콜뜬다. ㅠㅠ 이건 오키나와에서 한국 올 때도 마찬가지다. 그건 나중에 설명하자.



(아 졸려...나중에 이어써야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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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신 없던 와중에도 모텔 할아버지에게 "바닷가가 보이는 방으로 주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혼자서 바닷가가 보이는 방을 잡아서 뭐하나 싶었지만, 의외로 비수기인지라 그런지 바닷가가 보이는 방은 많이 남은 듯 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보니 저 멀리 솔밭 너머 아련하게 바다가 보이고 아직 철수하지 않은 오징어배의 불빛이 보이는 광경, 동해바닷가의 숙박업소 아니면 못 볼 풍경이리라. 할아버지가 좀 더 높은 층의 방으로 줬으면 좋았을 것을.

일찌감치 행장을 꾸려 나가면서 다시 할아버지를 귀찮게 했다.
"할아버지 이 근처에 밥 먹을 데 있나요"
"걸어왔수?"
"예"
"그럼 다리 건너기 전에 XX식당으로 가슈. 해장 미역국이 맛있어."

다행스럽게도  비가 그쳐 하늘은 잔뜩 찌푸렸지만 시야는 확 트인 날이었다.
저 멀리 서쪽으로는 강원도의 등뼈가 구름에 파 묻혀 산봉우리를 내지 않고 오른쪽 동쪽으로는 파도가 포말을 뿜으며 등천하고 있었으니...가히 사람이 유람하기에 이만한 곳 또 있으랴.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식당에 가서 미역해장국을 시키고 추위에 지친 속을 풀었다. 그냥 미역국인 듯 한데 굶어서 그런지 원래 맛이 좋아서 그런지 그냥 술술 막 넘어간다. 미역국 그렇게 맛나게 먹은 건 처음이었다. 나름대로 동네에서 유명한 집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손님은 나하고 아저씨 아줌마 한 팀 뿐. 확실히 어촌의 겨울은 한산하기 그지없고, 미역국을 갖다 준 주인 아주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모여서 한담 중이다. 객이나 주인이나 별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동네 하꼬방만한 교회는 오히려 집들보다 작아보이고

어쩌다가 밖에 묶인 강아지는 춥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데
정작 주인어른은 그러려니 하고 계신다.

바람은 거세고 해변에는 나그네 하나 없고, 파도는 해변으로 몰아쳐서 하얀 거품을 만들며 물보라를 부옇게 일으키는데. 자뭇 무서울정도로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정작 혼자 보고 있자니 겨울바다는 참으로 외로운 것이더라.

천천히 강문해수욕장부터 경포대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아침에 그 긴 백사장에
사람이라고는 오직 나 하나밖에 없었다. 오직 파도 소리만을 벗삼아서 한시간 여를 걸었는데
아마 다시는 하기 힘든 여정이 아닐까 싶다.
mp3를 꺼내서 듣기 시작했다.나오는 노래라는게 전혀 어울리지 않게 장국영의 목소리더라. 영웅본색I 편의 [당연정]

그런데 이 노래가 그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마치 내가 주윤발(은 아니고 외모는 적룡에 가까우니)이라도 된 듯 아무도 없는 해변가에 고독한 사나이의 온갖 포즈를 다 잡으면서 하늘을 봤다 바다를 봤다 하며 산보를 계속했다.

(저놈들이 보고 뭐라고 숙덕댔을 것이다.)


바다를 보러 가겠다고 서울에서 혼자 다짐했을 때는 혼자 별 생각을 다 했었다.
바다를 보면서 세사의 시름을 날려야지. 지나간 첫 사랑의 추억을 눈물로 잊어야지. 지금 나름대로 어려운 처지를 다 떨쳐낼 정도의 호연지기를 받아봐야지.  새로운 깨달음이라도 얻어볼 수 있으면 얻어봐야지.

그런데 정작 바로 파도가 밀려오는 코앞까지 가서
내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이어진 무한한 수평선에서 한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보고 있자니
뭘 잊고 자시고 깨닫고 하는 머릿속에서 설계한 사람의 계획따위는 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그냥 파도를 보고 바다를 보는 것으로 족한 것이고, 저 멀리 만경창파를 보는 것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끝나는 것이더라. 결국 내가 동해바다에서 얻은 것은 [바다를 봤다]는 사실 하나였는데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속에 가득 차고 남는 것이었다. 한 세 시간을 서서 파도가 밀려오는 대양을 보고 있으니 그냥 바다 앞에 내가 있다는 것으로 모든 게 설명이 되더라. 


12시를 넘어서 1시가 되어갈 즈음. 여기저기서 쌍쌍으로 남녀가 몰려나와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나 혼자 누렸던 호사는 그것으로 끝. 그리고 4시간정도 혼자 바닷가에 서 있었더니 콧물이 줄줄 흐르고 바닷물보라에 눈이 따가워서 서 있지를 못하겠다. 4시간동안 얼어죽을 정도로 봤으니 이젠 커플에게 양보하고 난 내 자리로 돌아가야지.

돌아 온 과정이야 따로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라는 건
별로 설명하고 싶지 않은 과정이니까.

그리고 난 바다를 이미 보고 돌아왔으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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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有離合 豈擇衰盛端 인생유리합 개택쇠성단
憶昔少壯日 遲廻竟長歎 억석소장일 지회경장탄

인생의 만나고 헤어짐이 있으나 노년과 장년의 구별이 있으랴
옛 젊은 시절을 생각하고 주저하며 탄식하는구나

- 두보 [수로별] 中 - 


경춘선인가 경인선을 제외하고 이제 모든 열차에 설치되어 있다는 카페열차에 혼자 앉아서
원두커피를 한 잔 시킨 채 나름대로 똥폼을 잡아가며 경치를 보는 중이었다.
청량리에서 덕소를 지나면서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모두 러브호텔뿐. 맨 처음 이 길을 기차로 오갈 때만 
하더라도 젊은 학생들의  MT행선지였던 곳들은 여전히 젊지만 전혀 다른 목적으로 방문하는 이들로 채워지는 듯 했다. 사실 감회라는 것이 나이든 이들의 감상일 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것이다. 사람들만 바뀌었을 뿐.

태백 - 영동선 6시간 30분이라는 것은 인내를 요하는 시간.
요추천자를 하는 주사바늘이 통과하듯 한반도의 척추를 서서히 뚫고 들어가 반대편까지 이르는 기찻길은
어찌보면 길고 지루하고, 바꿔 말하면 무엇을 하건 시간이 남을 수 밖에 없는 공간이다. 

슬슬 술을 먹는 이들이 많아지자 난 슬며시 책을 접고 다시 자리로 들어왔다.
자리로 들어서자 옆 자리에 앉아있던 강원도 할머니가 과자를 집어준다. 짐 올리는 걸 잠시 도와드렸는데
봉두난발에 수염까지 텁수룩한 얼굴이라도 나쁜놈은 아니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저녁도 안 먹었는데 덥썩 삼켰다.
잘 먹는다고 기특하게 보셨는지 이젠 봉지에서 아예 빵을 꺼내 주신다.
'밀가루 많이 먹으면 속에서 요동을 칩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그게 초면에 예의인가. 그냥 후일이 걱정되도 성의를 먼저 고맙게 받아야지. 주는 대로 꾸역꾸역 받아먹다 보니 어느새 할머니와 나는 생면부지의 조모와 손주가 되어버린 형국이다.

나는 책을 읽고, 할머니는 신문을 보면서 길을 가다보니 이미 제천을 넘어, 단종이 죽은 영월을 지나, 열차는 꾸역꾸역 힘겹게 산중으로 들어서고, 점점 차창의 지면은 높아져 나무와 돌이 밤하늘을 가리는데 어느 순간 뻥하니 뚫린 하늘이 보이길래 창문 밖을 보았더니 대도시의 화광이 번득이고 천지에 러브호텔과 안마와 네온사인의 불야성이 순간 시야를 휘감는다. 어리둥절해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이곳이 어디냐고. 

"사북이래요"
사북이라니. 내가 10년전에 봤던 사북은 이러지 않았는데
"강원랜드가 들어섰잖아. 그 담에 사북이 이렇게 대처가 되았사. 원래 태백에 들어오기로 한 거였는데 지방 원로들이 반대한다고 뭐라뭐라 기부림을 해대더니 사북으로 넘어왔사. 그러더니 이렇게 도시가 커졌어. 관청도 다 넘어간다하고... 태백은 뭔 화약공장이 들어온다나 뭐라나"

못새 아쉽다는 듯 투덜대는 할머니의 말마따나 사북의 휘황찬란함은 카지노의 돈에 기댄 바 되었던 모양이다. 돈에 웃고 돈에 우는 곳이 노름판 아니던가. 저 빛나는 네온사인 아래는 과연 어떤 인간군상들이 명멸하고 있을 지.
"사실은 저기 대도시 처자들도 많고, 갈데 없이 있는 아저씨들도 많다네. 내가 아는 사람도 참 성실했는데 어느 날 자기 사업 다 날리고 야반도주 했사. 이게 참...다 좋은 건 아니야."
태백이 홀대받는 것에 대해 잠시 푸념을 내시던 할머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창밖을 보시더니 다시 말을 하신다. 자기가 했던 말에 대해서 좀 겸연쩍으신 모양이다.

"사람이 그래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해. 위험한 곳엔 가는 게 아니지."
 
장사를 하신다는 할머니의 살아온 삶의 철학은 딱 그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짧고 간결하고 바른 말이다. 그리고 왠지 어울리는 모습이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추전역을 넘어 태백에 도착하자 할머니는 짐을 꾸리고 내게 손을 흔들고 하차하시고, 나는 이제 동행없이 고즈넉히 강릉까지 넘어간다.  기차 손님의 태반이 태백에서 내렸다. 이제 강릉까지 가는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고, 나는 은하철도999의 철이처럼 아무도 없는 객차에 혼자 앉아서 시간을 죽인다.
 
통리역, 10년 전 태백-영동선을 타고 왔던 가장 먼 역이었다. 
10년 전, 그 때도 앞이 먹먹해 보이는 것이 없었던 나는 통리역에서 내려 하사미리에 있는 예수원에 잠시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모든 것이 무덥기만 하던 여름. 난 무언가를 얻겠다는 일념으로 입산했지만 입산 첫날 발톱이 빠져서 다음날 끙끙대며 다시 서울로 돌아갔던 패잔병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여기서 조금 더 나가서 한번 끝까지 가보리라.

어느 순간, 차량의 오른쪽이 휑해지면서 아무것도 없는 하늘이 보였고, 그 아래로는 아무것도 없는 듯한 암흑만이 보였다. 바다였다. 묵호를 지나 정동진을 지나 강릉까지 가는 철도는 하늘과 땅과 바다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가로지으며 나가는 중이었다. 고즈넉해보이던 묵호항을 지나, 밤에 보니 밀려드는 파도가 좀 공포스럽던 정동진을 가로지르고 나니 어느 새 내가 목적했던 강릉역에 도달한 뒤였다.

그날 강릉엔 추척대며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나는 이제 선잠같던 기차여행을 끝내고 바다를 보기 위한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이제 어디 가서 잠을 청할 것인가? 시간은 자정에 다가서는 중이었는데.

무조건 역을 빠져나가 동쪽을 향해 걷기로 했다. 걷다 보면 바다가 나올 것이고
바다를 보고싶어하는 연인들을 위한 여인숙이나 모텔 하나정도는 바닷가에 있지 않겠는가.
하염없이 걷기 시작햇다.

걸었다.
걸었다.
걸었다.
걸었는데....

논바닥이 나왔다.

"?"
어디로 가는 중인가? 뒤를 돌아보니 이미 시내의 접경지가 끝난 상태.
비는 하염없이 내리는데 핸드폰의 인터넷은 먹통이고 아무리 봐도 모텔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쩐다....

아무것도 없으면 결정이야 쉬운 것 아닌가.
그냥 계속 걷는 것.

계속 걷다보니 뭔가 보였다.

오징어잡이 배가 빨갛고 초록색인 불을 달리는 없으니
필경 저게 모텔촌이리.

불빛이 보이는 데까지 걷기 시작했다.

이거...근데 거리가 얼마나 되는거야?

별수 있나. 고지가 저긴데.

결국 도착.

나중에 집에서 거리계산을 해 보니 4km. 약 10리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였다.
(잠원의 우리집에서 예술의 전당까지 가는 거리다)
밤이라 그렇게 길어 보였던 모양이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끝없이 가도가도 닿을 것 같지 않던 강릉의 숙소까지 도착한 시간이 밤 1시 넘은 시각. 어디선가 찰싹거리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난 모텔에 입성했고
마음좋게 생긴 모텔 할아버지와의  대화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혼자왔수?"

"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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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 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다시 못 올 곳에 대하여

-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中 - 


1. 
모든 일은 눈이 내리는 날 시작되었다.
하늘이야 당연히 눈을 내리거나 비를 내리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햇빛이라도 쨍쨍하게 만들어주는 게 
일이니 멀쩡한 하늘에게 화풀이할 수는 없지만 사실 그랬다. 
 
  난  1년에 몇 번, 누가 밟고 가 납작해진 개똥을 보면서도 처연함을 느낄 정도로 감상적이 되는 때가 있다. 
이 상황에 지나간 추억의 끄트머리가 미늘처럼 입술 끝에 걸려 빠지질 않고 설상가상 하늘에선 눈이 내려 [먹고 사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하는 이성을 날려버린 날이었다. 인화(人和)와 천시(天時)가 맞춰진 때가 아닌가. 그럼 지리(地利)를 얻어야지.

- 가자 동해로. 바다를 보러 가자

감정이 지배하던 날, 난 일사천리로 여행을 결정해 버렸다. (뭐...일도 없고.)

버스로 2시간만에 갈 수 있는 길을 6시간 반짜리 영동선 기차를 예약하고 꾸물꾸물 기어서 동쪽 바다를 보고, 이 고질같은 감상을 날려버리던가. 이도저도 안 되면 그냥 감상에 푹 빠져서 백사장에 머리라도 박고 대성통곡을 하던가 둘 중의 하나를 하고 나면 뭔가 시원해질 것 같았다. 아, 잡설은 집어치워야겠다. 그냥 바다가 보고 싶었다. 좋지 않은가. 겨울바다. 

2.
 
비내리는 호남선 영동선에 몸을 실으러 청량리 역을 찾은 게 10년 만이었다. 동해를 못 간 지는 20년이 넘었지만 야간열차는 10년 전에 태백 옆 통리까지 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이란 늘 다르지 않은가. 하물며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지났는데.

근데 10년동안 사람만 변한 게 아니었다. 역의 시스템 자체가 변해있었다.
인터넷으로 발권예약을 했기에 극장처럼 가서 누르면 뽑힐 줄 알았는데 이게 웬 걸. 자판기는 요지부동이다.
아무리 서서 쳐다 봐도 작동법을 모르겠다. 결국 철도체계를 알 법한 아가씨한테 전화를 했다.

"ooo양, 이거 작동을 어떻게 하는거야?"
"그냥 하면 되죠"
"??? 안되는데?"
"아니 그냥 하면 되지."
"그냥 하니까 안 돼"
"왜 안되요?"
"안되니까 안 되지."
"안되긴 왜 안되요?"
   
무슨 스무고개 하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 두 사람의 [왜 되냐 안되냐]를 가지고 투덜거리다가 결국 편법으로 어떻게 표를 끊는데 성공했다. "제 친구들은 잘만 하던데 아저씨는 왜 못해용" 이라는 말에 "아저씨니까" 라고 대답하려다 그만 뒀다. 환경에 익숙해지지 못하면서부터 아저씨라는 호칭에 익숙해지는 법이니.


대합실은 한산하기 그지없고, 심지어 내 또래나 젊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그나마 생명력이 있어보이는 이는 나와 스님 한 분 뿐이었다. 평일의 영동선이라는 것이 이용하기 쉬운 곳인가.
그렇게 얼빠진 듯 앉아 있는데 갑자기 마스크를 쓴 아저씨가 내게 슬쩍 다가오더니
"공장! 공장! 120, 120"
이렇게 말을 하고 옆으로 슬쩍 사라진다.

인생 막장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청량리 대합실에서 구직을 원하는 사내의 눈망울이라도 내게서 보았던 걸까.


차 시간이 다가오고 사람들은 조금씩 불어나고, 역은 조금씩 사람들로 북적대기 시작한다. 얼른 차 시간에 맞춰 기차로 내려갔다. 

예전 부타양이 추천해 준 책 한 권을 [노르웨이의 숲]대신 끼고 조용히 앉아 출발과 동시에 책을 읽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혹시 아는가. 나와 같이 뜬금없는 감상에 휩싸여 드넓은 동해를 보고 싶어 기차에 탑승하는 긴 생머리의 묘령의 아가씨라도 옆자리에서 만날 행운이 있을 지. 그러면 같이 여행할 권리에 대해서 토론을 해 볼 수 있지 않겠나. 호젓한 열차 안에서.



"여기가 내 자리래요?"
걸쭉하니 들려오는 강원도 말씨.
돌아보니 맘 좋게 생긴 할머니 한 분이 내 옆자리를 보면서 히죽 웃고 계신다.
아, 여기 맞는 모양이네요.

역시 여행은 출발부터 사람의 환상과 달라지기에 여행인 것이다.

기차는그렇게 서울을 떠나기 시작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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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맨 처음 갔을 때

어학연수인지 뭔지 하겠다고 나섰던 때

집도 절도 모르고 어디에 붙어있는줄도 모르는 미국의 코딱지만한 도시를 향해 떠났을 때

연고라고는 하나도 없고, 가진 거라고는 학교 이름밖에 모르는 채 낯선 도시에 떨어졌을 때의 당혹감이라니.

그냥 쌍발 프로펠러기를 타고 작은 공항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무조건 시내로 달리자고 했다.

무진장 푸르렀던 도시,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건 끝없는 포도밭. 포도밭.


한참을 가던 택시기사.

"목 마르지 않아?"

갑자기 Gas station에 차를 대더니 매점으로 들어가서 콜라 두 개를 사왔고, 하나를 나한테 줬다.

"하늘이 좋지? 좋은 날이야."

두 사람은 잠시 차에서 내려서

푸르른 하늘을 보면서 콜라를 마셨다.


세상 물정 모르던 20대의 동양청년과 황혼에 다가가던 흑인 택시기사.






* 노친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심 외곽을 한 바퀴 돌았어...*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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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1)

역수 나가는 날 2008. 11. 14. 16:17
예술과 평등과 자유의 나라라는 프랑스가 다음 기착지였는데 여기부터는 정말 럭셔리한 버스여행이었다.
원래 꼬질꼬질 거지여행을 각오했던 나로써는 더할나위없는 호사였고,(그래서 정말 가기 싫어햇었다.)
아마도 다시는 그런 일을 못할 거라는 생각도 있다.

칼레에서 파리까지 버스를 타다니...놀라운 일 아닌가. 우리나라처럼 산세가 천변만화하는 지형도 아닌
그냥 둥그런 능선만 이어진 푸른 목초지가 그 먼 거리를 계속 잇고 있는 광경은 경이롭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솔직히 가장 놀라운 장면이었고, 이 경험을 날려버린 건 독일의 슈발츠발트였지만 둘은 상이하니 어쨌거나)

그래서 파리로 넘어갔는데...

파리는 실망이었당.
내가 갔던 때가 여름철이어서
진짜 파리지앵들은 다 어디론가 휴가를 가 버리고 빈 도시를 관광객들만 유랑하고 다녔기 때문....

게다가 그곳에서 찍었던 사진이 하나도 안 남아버렸다.
필름을 감다가 다 감긴줄 알고 열었는데 필름이 찢어져버리며 후루룩 다 풀려버리는 초유의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면서 (어흑...디카가 없던 시절이란)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에펠탑 아래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친구가 찍어준 사진 뿐이었당.

설상가상, 아무도 안 들리는 인문사 박물관에 혼자 들어갔다가 일행과 버스가 사라져버리는 초유의 사태 발생.

지금같았으면 호텔 번호만 외워놓고 깡으로 버텼을 법 하지만 순수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20세 청년은
파리에서 미아가 되면 중동으로 납치되어 평생 노예가 된다는 당시의 [믿을만한 소문]에 귀가 쩌든 상태인지라
패닉에 빠져버렸다.

그래도 구명도생할 길은 찾아야겠기에
그 당시 에펠탑 광장 옆에서 과일을 팔던 집시처럼 보이는 아줌마에게
안되는 불어로 물어물어서 버스를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제2외국어가 불어였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이었고, 사람이 절박해지면 초인적인 능력이 생긴다는데 그때 나는 불어로 이야기하고 그 아줌마가 이야기하는 걸 다 알아들었다! 아니, 아줌마는 손짓으로 이야기했지...-.-)

아~ 그렇게 슬프게 다녀온 프랑스.
아마 다시는 못 가겠지....이런 환율에 돈 아까운줄 알게 된 나이라면.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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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ain -1

역수 나가는 날 2008. 11. 12. 11:52
태어나서 맨 처음 비행기를 타고 가 본 나라가 어디냐 라고 물어보면 사람마다 각양각색의 말들이 나온다.
나 같은 경우는 [영국]이었다.

솔직히 영국이고 뭐고 가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10몇년 전,
대학새내기 처음 맞이한 여름방학이어서 그냥 공부에 대한 걱정없이 집에서 퍼져 자며 뒹굴수 있을 거라는 신나는 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갑자기 옆동네 고등학교 동창놈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맞춰서 배낭여행을 가자는 이야기를 흘렸고, 내가 아닌 부모님이 [성인이 되었으니 외국으로 여행 한 번 가 보는 것도 좋은 일 아니냐!]라고 추임새를 넣어서 졸지에 나는 [차표한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가 되어버렸다.

그 때까지 부산도 못 가 본 나더러 비행기를 타라니.

일단 비행기 안에서의 과정은 생략하겠다. 한가지 생각나는 건 이륙할 때 죽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는 것과 터뷸런스라는 [항공생활의 일상사]를 처음 겪을 때 생기는 공포감. 앉으면 뭔가 먹을걸 갖다주는 내 적성에 딱 맞는 비행기 서비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14시간 동안 비행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사람이 바보가 된다는 정도였다. 처녀비행 14시간은 가냘픈 20살의 청년에게 참 가혹한 일이었지만 어쨌건.


(히드로 공항이 어디 있나 둘러보다가 찾은 지도...아 이걸 봐도 전혀 공감이 안돼)

영국에 떨어졌다.
히드로 공항이었겠지. 입출국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주제에 밤공항에 떨어져서 액센트도 못 알아먹겠는 출입국 직원의 말에 예스 예스 땡큐만 하다가 짐 빼들고 튀어나왔는데 공항이 뭐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냥 런던까지 바로 빠져나오는 셔틀을 타고 (응? 배낭여행이 아니라 팩키지여행이었던 모양이군. 그래, 지금에서야 생각난다) 호텔로 들어가서 여장을 풀었다. 비행기 냉방병으로 고생 좀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그 호텔 이름은 아직도 생각난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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