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有離合 豈擇衰盛端 인생유리합 개택쇠성단
憶昔少壯日 遲廻竟長歎 억석소장일 지회경장탄

인생의 만나고 헤어짐이 있으나 노년과 장년의 구별이 있으랴
옛 젊은 시절을 생각하고 주저하며 탄식하는구나

- 두보 [수로별] 中 - 


경춘선인가 경인선을 제외하고 이제 모든 열차에 설치되어 있다는 카페열차에 혼자 앉아서
원두커피를 한 잔 시킨 채 나름대로 똥폼을 잡아가며 경치를 보는 중이었다.
청량리에서 덕소를 지나면서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모두 러브호텔뿐. 맨 처음 이 길을 기차로 오갈 때만 
하더라도 젊은 학생들의  MT행선지였던 곳들은 여전히 젊지만 전혀 다른 목적으로 방문하는 이들로 채워지는 듯 했다. 사실 감회라는 것이 나이든 이들의 감상일 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것이다. 사람들만 바뀌었을 뿐.

태백 - 영동선 6시간 30분이라는 것은 인내를 요하는 시간.
요추천자를 하는 주사바늘이 통과하듯 한반도의 척추를 서서히 뚫고 들어가 반대편까지 이르는 기찻길은
어찌보면 길고 지루하고, 바꿔 말하면 무엇을 하건 시간이 남을 수 밖에 없는 공간이다. 

슬슬 술을 먹는 이들이 많아지자 난 슬며시 책을 접고 다시 자리로 들어왔다.
자리로 들어서자 옆 자리에 앉아있던 강원도 할머니가 과자를 집어준다. 짐 올리는 걸 잠시 도와드렸는데
봉두난발에 수염까지 텁수룩한 얼굴이라도 나쁜놈은 아니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저녁도 안 먹었는데 덥썩 삼켰다.
잘 먹는다고 기특하게 보셨는지 이젠 봉지에서 아예 빵을 꺼내 주신다.
'밀가루 많이 먹으면 속에서 요동을 칩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그게 초면에 예의인가. 그냥 후일이 걱정되도 성의를 먼저 고맙게 받아야지. 주는 대로 꾸역꾸역 받아먹다 보니 어느새 할머니와 나는 생면부지의 조모와 손주가 되어버린 형국이다.

나는 책을 읽고, 할머니는 신문을 보면서 길을 가다보니 이미 제천을 넘어, 단종이 죽은 영월을 지나, 열차는 꾸역꾸역 힘겹게 산중으로 들어서고, 점점 차창의 지면은 높아져 나무와 돌이 밤하늘을 가리는데 어느 순간 뻥하니 뚫린 하늘이 보이길래 창문 밖을 보았더니 대도시의 화광이 번득이고 천지에 러브호텔과 안마와 네온사인의 불야성이 순간 시야를 휘감는다. 어리둥절해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이곳이 어디냐고. 

"사북이래요"
사북이라니. 내가 10년전에 봤던 사북은 이러지 않았는데
"강원랜드가 들어섰잖아. 그 담에 사북이 이렇게 대처가 되았사. 원래 태백에 들어오기로 한 거였는데 지방 원로들이 반대한다고 뭐라뭐라 기부림을 해대더니 사북으로 넘어왔사. 그러더니 이렇게 도시가 커졌어. 관청도 다 넘어간다하고... 태백은 뭔 화약공장이 들어온다나 뭐라나"

못새 아쉽다는 듯 투덜대는 할머니의 말마따나 사북의 휘황찬란함은 카지노의 돈에 기댄 바 되었던 모양이다. 돈에 웃고 돈에 우는 곳이 노름판 아니던가. 저 빛나는 네온사인 아래는 과연 어떤 인간군상들이 명멸하고 있을 지.
"사실은 저기 대도시 처자들도 많고, 갈데 없이 있는 아저씨들도 많다네. 내가 아는 사람도 참 성실했는데 어느 날 자기 사업 다 날리고 야반도주 했사. 이게 참...다 좋은 건 아니야."
태백이 홀대받는 것에 대해 잠시 푸념을 내시던 할머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창밖을 보시더니 다시 말을 하신다. 자기가 했던 말에 대해서 좀 겸연쩍으신 모양이다.

"사람이 그래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해. 위험한 곳엔 가는 게 아니지."
 
장사를 하신다는 할머니의 살아온 삶의 철학은 딱 그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짧고 간결하고 바른 말이다. 그리고 왠지 어울리는 모습이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추전역을 넘어 태백에 도착하자 할머니는 짐을 꾸리고 내게 손을 흔들고 하차하시고, 나는 이제 동행없이 고즈넉히 강릉까지 넘어간다.  기차 손님의 태반이 태백에서 내렸다. 이제 강릉까지 가는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고, 나는 은하철도999의 철이처럼 아무도 없는 객차에 혼자 앉아서 시간을 죽인다.
 
통리역, 10년 전 태백-영동선을 타고 왔던 가장 먼 역이었다. 
10년 전, 그 때도 앞이 먹먹해 보이는 것이 없었던 나는 통리역에서 내려 하사미리에 있는 예수원에 잠시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모든 것이 무덥기만 하던 여름. 난 무언가를 얻겠다는 일념으로 입산했지만 입산 첫날 발톱이 빠져서 다음날 끙끙대며 다시 서울로 돌아갔던 패잔병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여기서 조금 더 나가서 한번 끝까지 가보리라.

어느 순간, 차량의 오른쪽이 휑해지면서 아무것도 없는 하늘이 보였고, 그 아래로는 아무것도 없는 듯한 암흑만이 보였다. 바다였다. 묵호를 지나 정동진을 지나 강릉까지 가는 철도는 하늘과 땅과 바다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가로지으며 나가는 중이었다. 고즈넉해보이던 묵호항을 지나, 밤에 보니 밀려드는 파도가 좀 공포스럽던 정동진을 가로지르고 나니 어느 새 내가 목적했던 강릉역에 도달한 뒤였다.

그날 강릉엔 추척대며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나는 이제 선잠같던 기차여행을 끝내고 바다를 보기 위한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이제 어디 가서 잠을 청할 것인가? 시간은 자정에 다가서는 중이었는데.

무조건 역을 빠져나가 동쪽을 향해 걷기로 했다. 걷다 보면 바다가 나올 것이고
바다를 보고싶어하는 연인들을 위한 여인숙이나 모텔 하나정도는 바닷가에 있지 않겠는가.
하염없이 걷기 시작햇다.

걸었다.
걸었다.
걸었다.
걸었는데....

논바닥이 나왔다.

"?"
어디로 가는 중인가? 뒤를 돌아보니 이미 시내의 접경지가 끝난 상태.
비는 하염없이 내리는데 핸드폰의 인터넷은 먹통이고 아무리 봐도 모텔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쩐다....

아무것도 없으면 결정이야 쉬운 것 아닌가.
그냥 계속 걷는 것.

계속 걷다보니 뭔가 보였다.

오징어잡이 배가 빨갛고 초록색인 불을 달리는 없으니
필경 저게 모텔촌이리.

불빛이 보이는 데까지 걷기 시작했다.

이거...근데 거리가 얼마나 되는거야?

별수 있나. 고지가 저긴데.

결국 도착.

나중에 집에서 거리계산을 해 보니 4km. 약 10리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였다.
(잠원의 우리집에서 예술의 전당까지 가는 거리다)
밤이라 그렇게 길어 보였던 모양이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끝없이 가도가도 닿을 것 같지 않던 강릉의 숙소까지 도착한 시간이 밤 1시 넘은 시각. 어디선가 찰싹거리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난 모텔에 입성했고
마음좋게 생긴 모텔 할아버지와의  대화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혼자왔수?"

"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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