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수 나가는 날'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12.04.21 오키나와 여행 (2012.3월) -6 3
  2. 2012.03.31 오키나와 여행 (2012.3월) -5
  3. 2012.03.27 오키나와 여행 (2012.3월) -4 2
  4. 2012.03.22 오키나와 여행 (2012.3월) -3 2
  5. 2012.03.19 오키나와 여행 (2012.3월) -2 4
  6. 2012.03.18 오키나와 여행 (2012.3월) -1 4
  7. 2010.11.04 Tossa de mar 4
  8. 2010.02.04 가고 싶다 8
  9. 2009.12.15 강릉 가는 길 - 3 8
  10. 2009.12.14 강릉 가는 길 - 2 13

[쇼생크 탈출]이나 [원초적 본능]을 보면 주인공이 옆에 해변을 끼고 선글라스를 낀 채로 온갖 똥폼을 다 잡으면서 캘리포니아 1번고속도로를 우아하게 달리는 광경이 보인다. 참 멋져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옆으로 작렬하는 태양과 푸른 바다! 그리고 아무도 안 다니는 멋진 도로! 우왕! 나도 미국은 안 갔어도 오키나와에서 해 보고 싶었어!


라는 망상에 빠진 결과. 나는 오키나와 북단까지 가 보기로 한 것이다.


이게 미친짓인 것이, 내가 호텔을 잡은 나하시는 오키나와 남단 하부에 위치한 도시다. 오키나와 섬은 밀가루 반죽을 하다가 손에 힘 줘서 꽉 짜 놓은 것처럼 위 아래로 길쭉한데, 그 거리가 거의 100km.


(히밤...저 빨간 도시가 나하시다.)

말이 100km지 이게 서울시에서 강원도 홍천군까지의 거리다. 이걸 한국 지도에 맞춰서 생각을 한번만 해 봤다면 그런 뻘짓거리는 안 했을 것이다. 홍천군까지 가서 사진 한방 찍고 다시 서울로 오는 짓을 당일치기로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거 미친짓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그짓을 했다.



(이야 남태평양의...아니 동지나해의 호연지기가 느껴지는구나)

다시 올라가야지.



('눈물이 주룩주룩'이라는 영화를 찍은 등대라는데...영화를 안 봐서 몰라...)

다시 올라가야지~



(만명이 앉을 수 있다는 만자모...그 중 유명한 코끼리바위...그런데 날씨가 점점 왜 이래)


하여간 이렇게 북상하며 랜드마크들을 찍으면서 가고 있었다.

오키나와 북반구로 향하는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거의 없다. 그리고 옆에는 바다가 펼쳐진다. 처음 드라이브1시간 할 때까지는 정말 좋더라~ 신나게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이게1시간이 넘어가고 2시간이 넘어가니까 사람의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그 때 문득 머릿속에 들어온 생각


이국땅에 관광와서 이게 무슨 노가다야!


정신이 그제서야 번쩍 들면서, 아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예요 라고 몸이 외치고 있었지만 어느 새 나는 북반구로 가는 마지막 휴게소에 멈춰서 있었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고 시간은 사람이 가장 미치기 좋은 오후 4시.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끝을 찍고 가자. 이젠 다른 방도가 없어."


그래서 다시 마지막 40km스퍼트를 내어 저녁놀이 지기 직전, 

나는 오키나와 북단, 해도곶(해도미사키)를 찍을 수 있었다.


(일본 최북단을 상징하는 동상....이 닭새끼 하나 보려고 100km를 달려왔다고! 우헝헝헝)


해도미사키에는 이것밖에 없다. 사실, 이 닭동상 뒤에 휴게소로 쓰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건 여름철에만 연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배틀로얄'에서 주인공 죽이려고 덤벼드는 녀석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폐가로 변해있었다.


이상이 내가 오키나와 방문 이틀째 겪은 여행기다. 나하시로 귀환하는 일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다. 정말 생전 처음 우핸들을 잡은 주제에 [심야 유료 하이웨이]를 타고 호텔로 들어왔다. 살아서 돌아온게 기적일 뿐이다. 카메라를 꺼낼 엄두도 못 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도중에 방광이 터져서 죽을 뻔한 기억을 제외하고.


내가 이걸 쓰는 이유는 딱 두개다.

1. 이딴 여행동선 잡지 마라.

2. 여자건 남자건, 동행 없이 드라이빙 해 봤자 1시간 지나면 그냥 처량해진다.


마지막 오키나와 여행을 앞두고 호텔로 들어온 나는 그냥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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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해 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이국 땅에서 차 몰고 돌아다니기'였다. 한 때 미국의 동서횡단 고속도로를 혼자 자동차로 여행하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여겼던 적도 있다.(그런데 사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하더라.) 

여행의 드라이빙이라는게, 어찌보면 일상에서 발현되는 환상이다. 꽉 막힌 도심에서 벗어나서 이국의 한적한 도로를 멋진 풍경과 작열하는 태양 아래로 달린다니 그 얼마나 좋을소냐!


그래서 나도 일본에서 한 번 해보려고 시도해봤다. 오키나와가 원래 그리 넓은 섬은 아니지만 대중교통이 여기저기 잘 뚫린 곳이 아니라서 차로 움직이는게 편하다는 것이다. 그런 가이드북의 말도 있고, 한번 내 소망도 이뤄볼 겸 해서...



렌트카를 빌렸다!

만약 렌트카를 빌리고 싶다면 현지선택보다는 일단 여행 전에 여행사를 통해서 렌트카를 예약하는 것이 현명할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뭐 원하는 차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다 네비게이션 문제다. 일본어를 자국어처럼 완벽하게 히어링할 수 잇는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 없겠지만 야메떼밖에 모르는 나같은 인간에게 일어네비게이션은 아무런 거의 도움이 못 되지 않는가...물론 그림만 봐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오키나와 도로는 단순했지만. 여행사 통해서 먼저 예약하면 한국어로 더빙되어 나오는 네비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100% 받는다고 장담은 못한다. 없으면 못 받지 뭐...)

저 차 이름이 뭐였더라? 하여간 토요타에서 하는 렌트카니까 토요타 경차였겠지. 실내 생각보다 넓고 에어콘하고 라디오만 있지만 자동차로써의 기능은 완벽했다. 어차피 작은 차가 운전하기는 더 편하겠지하고 서류에 싸인하고 길거리에 끌고나왔는데...



오 마이 갓. 왜 모든 섬나라 놈들의 핸들은 거꾸로 붙은 건지. 

난 생각보다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더라. 좌우가 바뀐다는 것은 시야각이 바뀌는 것이고 좌회전 대신 우회전에 주의를 해야 하는 것인데 이거 생각보다 머리가 아픈 일이었다. 저절로 등에 식은땀이 줄줄줄....그나마 자동차간의 옆공간이나 차선변경, 뒤차와의 거리같은 건 감각으로 하면 상관없는데 문제는 우회전. 오키나와의 우회전(우리나라 자회전)은 대부분 비보호라는 걸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정말 처음 운전하는 15분간 아주 죽는 줄 알았다. 그나마 도로가 직선이었으니 망정이지....

근데 직선도로로 오면 김여사도 F1 탑클래스 드라이버가 되는게 이 [운전]이라는 영역 아닌가!

어느 순간 되니까 신나게 운전하고 있더라~ 


(미친놈 죽을려고 용쓴다고...드라이빙도 정리 안 된 시점에 운전중 사진을 찍었다.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

그냥 죽 몰고 나하시내를 떠나 위의 미하마 아메리칸 빌리지로 향했다. 나름대로 거대한 쇼핑몰들이 있는 곳이고 위락시설을 꾸며놓은 동네이다. 미군기지 옆이 어떻게 되나 한번 보고 싶기도 했고...그런데 내가 간 곳은 말 그대로 쇼핑위락시설들이 있는 곳인지라 현재 미군 기지촌이 어떤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냥 놀러 간 거임.



(이게 오키나와의 한 단면이랄까...오른쪽이 군용지일거다.)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 도착하면 맨 처음 보는게 [항공자위대] 격납고다. 이 섬은 엄연히 군사시설이 그득한 전략도시다. 마천루 사이로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동네라는 것을 미하마에 도착해서 알게 된다. 마치 오사카나 동경의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스튜디오를 보는 듯한 쇼핑몰들...하지만 평일이라 한산하고 조용하기만 한 동네. 휴일이 되면 여기저기서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겠지만.


(어제의 유구국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

별다른 감흥이 없어져 버렸다. 그냥 규슈를 갈 걸 그랬나. 패망한 왕국, 패전한 일본의 영토. 현재는 미국의 기지. 그리고 묘하게 세 가지가 섞여 있는 동네. 이렇게 된 거 한 번 섬이나 돌아볼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출발 전 먹은  A&W 햄버거와 루트비어. 오키나와에 미군들이 정착하면서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햄버거 브랜드가 되었단다. 햄버거는 깔끔. 하지만 진짜는 루트비어. 루트비어는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는데


몰랐지.

그게 지옥의 드라이빙의 시작이 될 거라는 걸.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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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 여행을 끝나고 난 뒤에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 이제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약도를 보고 간 곳이 슈리성 건너편에 있는 타마우돈이라는 곳이었다. 우동가게가 아니다. 슈리성 왕들이 대대로 묻혔다는 일종의 납골당이다.


(오키나와에서 내내 사 먹은 블루실 아이스크림. 베니이모(고구마) 아이스크림은 이렇게 보라색이다. 참고로 오키나와 고구마는 껍질까지 다 가는지 고구마 관련 상품은 모두 벽자색이나 자색계열이다. 맛나다. 많이 먹음 방귀가 나온다.)

 


하여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무덤이라고 해서 가 봤는데

나 말고 아무도 없다.

그냥 장려한 돌로 된 납골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참고로, 아래 박물관 기념실에는 돈을 내고 보는 유료코스가 있지만 한글로 써 있는 건 없으니 안 들어가도 무관하다. 발굴된 토기같은 유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아마 타마우돈이 유구국이 아닌 일본의 왕릉이었으면 대우가 달랐을 것이다만...정말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작다.


 

 이걸 다 본뒤에 고민에 빠졌다. 이제 뭐하나? 
내친 김에 국제거리까지 보고 그 유명하다는 오키나와 스테이크나 먹고 들어가 자자...라는 결론에 이르러 오키나와국제거리에 들렀다가 들어가기로 했다. 

(가다가 맘에 들어서 찍은 거리...난 이런 작고 깨끗한 골목이 좋더라.)
 
2.
국제거리라는 게 뭐 국제적이라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간, 오키나와가 미국에게 태평양전쟁때 쌀밥이 미음이 될 정도로 뭉개지게 포탄을 두들겨맞고 쫄딱 망했을 때, 1년만에 다시 활기찬 시장통을 만들어낸 전설의 거리라는 풍문을 들었다. 미군들의 물자가 들어오니 그럴수도 있었겠지만 가슴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오키나와는 스팸이 시장 내에 많이 굴러다닌다. 그것도 미국스팸.
 
모노레일 마키시역부터 현청 사이의 직선 1km구간이다. (기적의 1km라고 불린단다) 하여간 거기 가면 우리나라 인사동과 이태원 고깃집이 짬뽕된 기이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여기저기 스테이크집도 많고 인파들도 북적거린다. 그런데 하나 말하자면...스테이크가 절대 싸지 않다. 일본여행갈 때 모스버거나 규동으로 한 끼 1000엔 이하 식사를 고집하던 내게 3000엔에 육박하는 스테이크는 말 그대로 처절한 낭비. 게다가 7-8시의 황금시간대에는 관광객들이 알짜한 스테이크집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혼자 여행다니는 외토리 여행가에게는 별반 즐겁지 않은 광경이다. 그나마 한적한 곳에서 대충 하나 얻어먹고 왔지만...고기 먹으러 오키나와 까지 가는 식도락가는 없기를 바란다. 차라리 국제거리 곳곳에 붙어있는 예전 재래시장통을 돌아다니는게 더 재미있다. 막상 국제거리까지 도달해서 저녁을 사 먹은 때에는 아무런 힘도 없어서 사진도 찍지 못했다.  아아 고달픈 도보여행...

하지만 그 때는 몰랐었다.
오키나와에 도착한 첫 날이 내가 보낸 오키나와 여행 중 가장 알찬 여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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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 역 근처에 가면 수리성까지 자전거로 갈 수 있도록 자전거 렌탈점이 있다. 이걸 봤을 때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를 예감했어야 했는데...넉넉잡고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그냥 한적한 시골 마을길 걸으면 되니까 별다른 문제는 없었는데 만약 5월이 넘어 태양이 작렬하는 오키나와에서 슈리성 관광을 하겠다면 걸어가는 거 말리고 싶다. 역 근처에 슈리성까지 가는 버스가 있으니 잡아타고 가도록. 나는 되도록 돈을 아끼겠다는 심보로 걸어갔다. 날씨가 흐려서 걸어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슈리성 밑둥치에 세워진 오키나와현립 예술대학. 슈리성은 종전 후에 대학교로 사용된 적이 있다는데


다니던 학생들의 고생이 한양대 못지 않았을 것이다.)


슈리성은 유구국의 도성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경복궁이나 창경궁같은 스케일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아기자기 잘 짜여진 산성과 같은 모습이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천수각 하나에 집중된 군사시설의 성은 아니고 중국식의 성과 일본식의 성이 묘하게 짬뽕된 느낌의 성이다. 성벽과 대문은 굳건하니 높고, 수많은 문으로 연결된 성벽이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넓은 정전이 마련되어 있다. 나름대로 특색이 있는 문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소노한우타키시몬. 예전에 국왕이 행차하면 이 문쪽에서 남은 사람들이 국왕의 안녕을 빌었다는데...이 문은 그냥 쪽문이다. 

보통 성벽의 높이가 이 정도...이걸보면 우리나라 임금님들은 백성들이 별반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계단이 있고 더 육중한 두께의 성벽이 그 안에 있고...아열대의 석성. 앙코르와트에서도 느낀 거지만 남방아시아계의 석조건축물들은 묘한 장려함이 느껴진다. 하긴 유구국은 남방아시아라고 하긴 뭐하다. 그냥 유구스타일...묘한 요새도시의 느낌이 난다.


슈리성의 최상층부 도착, 저 붉은 문을 지나면 작은 광장이 있고, 그 안에 있는 도 다른 붉은 대문을 지나야 왕이 업무를 보는 대전과 정전이 나온다. 그런데 거긴 유료관람....여기까지 왔으니 그냥가긴 뭐하고 유료관람 실시하기로 했다. 한국사람은 아무도 안 보이고 모두 일본 열도에서 몰려온 할머니들...

들어온 정전의 모습. 상당히 아기자기하니 예쁘게 생겼다. 우리나라 정전 뜰을 생각하면 오산. 카메라가 광각으로 잡아서 그렇지 생각보다 작다. 건물 내부는 2층으로 되어 있고 왕은 1층에서 업무를 보고 2층에 진짜 용상이 있다. 독특한 모습의 궁전이다.

어떤 망할 놈이 북쪽 전각에 불을 내서 지금 보수공사중이었다. ㅠㅠ

2층에 올라가면 용상이 있다. 중산세토라...중국에서 수여한 현판중 하나. 중산씨족이 영원히 나라를 다스리기를 원하노라 이런 뜻이라고 한다. 각설하고, 2층은 사진촬영이 허가된다. 

...2차대전때 다 폭격으로 박살나고 지금 만들어 놓은 것은 사료를 토대로 만든 레플리카거든.
안내하시는 분께 카메라 부탁하면 잘 찍어주신다. 옥좌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있지만 눈 버릴 것 같아서 내 얼굴은 차마 못 올려놓겠다. 

이곳을 구경하고 나면 슈리성의 메인 관람은 끝. 이곳을 지나서 돌판을 잇대어 만든 고대 유구왕족의 오솔길을 걸어서 카페를 들러 시원한 차 한 잔 마시는 것이 오키나와 관광의 기본 코스로 되어 있지만 난 그리 가지 않았다. 사실 카페에 들려서 사내 혼자 차 마시는 것도 뭐 같고 오키나와 관광의 기본 코스튬이 청바지에 브라운 레자 자켓+선글라스였기 때문에...조직에서 딸려나가 오키나와에 도망온 야쿠자처럼 보일 것 같아서 그냥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누가 뭐라 하건, 슈리성은 일세를 풍미하던 왕국의 도성이다. 도성의 성벽에서 바라보면 푸르른 바다까지 나하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청명한 햇살이 들어올 때 성에서 바라보는 유구국의 영토는 참으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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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우여곡절 끝에 오키나와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냥 남쪽으로 죽죽 내려가다보니 오키나와다. 꾸벅꾸벅 아침에 설친 잠을 보충하고 있는데 스튜어디스가 밥을 준다. 정말 기내식으로 나오는 밥은 사양이지만 이상하게도, 기내식은 다 먹게 된다. 이것도 항공료에 포함이야! 라는 강박관념의 소치이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더부룩하니 소화가 안 되는 배를 움켜쥐고 오키나와에 내렸다. 오키나와의 현 수도, 나하시다.


(동무들, 인민의 낙원에 오신 걸 환영합네다. 젠장)

저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내 뒤로 보이는 국제선 청사는 정말 국내선 청사에 부속으로 딸려있는 화장실만 하다. 오키나와는 국내선 터미널이 어마어마하게 큰 대신, 국제선은 여객기 트랩도어도 연결 안 되는 하꼬방이다. 비행기에서 계단차가 와서 붙으면 터덜터덜 내려와서 셔틀버스 타고 국제선 터미널에 떨어지는 과정을 겪는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국제선이 직항으로 오키나와에 들어오는 것은 4개노선인가 밖에 안 된다. (아시아나 용썼다....) 대신 국내선 터미널에는 일본의 방귀좀 뀐다는 대도시에서 다 비행기가 집합한다. 특히 3월말 4월초가 되면 일본 고등학생들의 과반수 이상이 오키나와로 수학여행을 온다. 국내선이 커질수 밖에 없다. 국제선 고객이 떨거지 신세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어쨌거나, 오키나와 시내로 들어가는 모노레일도 국내선 청사에 연결되어 있다. 국제선에서 오른쪽으로 걸으면 국내선 청사가 보인다.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다. 엄청 크거든...)


국내선 청사에 붙어있는 나하 모노레일은 바보라도 찾을 수 있다. 길다란 레일이 뻗어있는데 안 보일 수가 없다. 하여간 국내선 청사2층으로 들어가서 나하 모노레일을 타면 된다. 보통 1일무료 패스가 2012년 현재 600엔이다. 나하공항이 종점역할을 하기 때문에 모노레일을 나중에 타더라도 길을 찾는 것은 쉽다. 공항도 이걸로 오는게 제일 낫다. 나름대로 나하 시도 출퇴근에는 러시아워가 있다.


그리고 나하공항의 반대쪽에는 [슈리죠], 즉, 유구국의 옛 궁궐 수리성이 종점역할을 한다. 슈리역과 공항역이 양 끝에 위치하니 길 찾기는 정말 쉬운 편이다. 그리고 모노레일 중간에 있는 아사히바시 역부터 마키시 역 사이의 1km가까운 직선 대로가 오키나와 제일의 번화가 [국제거리]이다. 그냥 이것만 알아도 하루나 이틀은 모노레일만 타고 놀 수 있다. 난 신도심 오모로마치에 있는 다이와-로이넷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오모로마치에만 있는 DFS(duty free shop)1층에 토요타 렌트카를 빌리기 쉽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왜 렌트카를 빌렸는지 모르겠다. 그냥 버스타고 돌아다닐걸. ㅠㅠ

(이곳이 DFS...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것이 호텔건물)

사진만 보고, 우와 우리으리한 거대호텔이구나...생각하면 오산이다. 다이와로이넷 호텔은 굉장히 공격적인 확장을 하는 일본 호텔 체인점이다. 하지만 비즈니스텔이 기본이라는 것. 저 빌딩은 8층까지는 일반빌딩이고 9층부터 호텔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사진에 보이는 높이부터 호텔이라고 보면 됨. 게다가 호텔 입구는 빌딩의 오른편에 쪽문으로 나 있었다. 털레털레 트렁크를 끌고 빌딩 정문으로 들어가니까 멍때리며 놀던 회사 직원이 "호텔입구는 나가서 옆입니다"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나같은 놈이 한 둘이 아니었던 듯. 하여간 그렇게 해서 호텔에 체크인을 했는데.

호텔체크인은 2시부터란다. 그래서 트렁크만 프런트에 맡겨두고 덜렁 짐만 꺼내서 슈리성을 구경하러 나갔다. 간단했다. 모노레일을 다시 잡아타고 반대편 종점까지 가면 되니까.

(젠장, 그런데 역에서부터 도보로15분이여...ㅠㅠ)

(슈리성 편은 다음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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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월에 갑자기 오키나와 여행을 가게 된 것은 반 충동, 반 계획, 나머지는 방사능에 찌든 일본열도와 춘삼월에 엄동설한이 몰려온 대한민국의 짜증나는 날씨 덕분이었다. 

사실 원래 일본여행 계획은 나카사키와 후쿠오카를 잇는 규수지방을 방문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반이고 오키나와를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한 쪽은 아무래도 일본 근대화의 시발점이었던 부분이니 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나머지 한 쪽은 원래 일본이 아니었던 국가의 잔재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유구국의 문장)
원래 오키나와는 조선에 공물을 진상하던 사신이 왕래하던 유구국이라는 섬나라였다. 섬치고는 작은 편이 아닌데다 평야와 분지도 꽤 발달하였고, 대만과 일본 열도 사이에 딱 틀어박혀 동중국해의 가운데 앉아서 중계무역으로 쏠쏠하게 벌어먹던 나라였다. 그런데 이 나라가 사쓰마의 시마즈 가문(우리 이순신장군님께 흉탄을 쏜 그 시마즈 가문 일것이다.)에게 잡아먹힌 뒤 유구국은 몰락하고 오키나와라는 일본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참 서글프다. 망국의 한이여...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슈리성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있음 뭐하나. 죽은 자식 뭐 만지기인데. 하여간 그런 사연이 있는 나라인지라 뭔가 원폭맞은 나카사키보다 감성적인 자극을 더 주었던 것이 확실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카마 유키에가 오키나와 출신이라길래, 그 고장 사람들은 다 저렇게 생겼나 확인하러 간 거였다.
차포 다 떼고 결론부터 말하면, 이 여잔 변종이었다. 씨팔, 물어내! 
(혹시 한국에서 내 블로그 보는 일본인이 계시다면 그냥 농담으로 이해해달라.)


2.
2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비행거리지만, 우리나라에서 오키나와로 가는 비행기 직행노선은 딱 하나다. 아침 9:40분에 출발하는 아시아나 노선이다. (2012년 3월 현재)
그리고 그 비행기가 연료 채우고 다시 오키나와에서 돌아온다. 그게 12:40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아침에 한 대 출발한 뱅기가 점심에 오키나와에서 귀환하는 것이다. 참 애매하기 그지없는 시간대다.

왜 그러냐 하면, 서울 시내에서 6시나 6시 반쯤 출발해서 공항버스를 탄다 치면 7시-7시반에 인천공항에 떨어지는데, 이 시간 가지고는 정말 빠듯하다. 출발시간에 딱 맞출 수 있다. 아침여행 하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탑승수속이 엄청나게 붐빈다. 아침에 오키나와 비행기 한대 뜰 때 중국행 비행기는 너댓대가 뜬다. 아시아나 창구 장난 아니게 복잡하다. 전자여권으로 발급을 받으면 전산 키오스크 시스템에서 혼자 처리해서 그나마 시간이 절약되고 사전에 표를 끊어놓았으면 그나마 빠른창구를 쓸 수 있다. 그게 안 되면 나처럼 짐 싸들고 한 40분 창구에 붙잡혀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출국 수속하고 화장실 한번 들르면 바로 탑승콜뜬다. ㅠㅠ 이건 오키나와에서 한국 올 때도 마찬가지다. 그건 나중에 설명하자.



(아 졸려...나중에 이어써야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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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ssa de mar

역수 나가는 날 2010. 11. 4. 23:32



내 인생에 아마 
태어나서 다시는 두 번 들르지 못할 곳이 있다면 이 곳도 그 중 하나일 성 싶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를 맞춰 갔던 유럽여행도중 들렀던 스페인의 작은 도시
토사 데 마르.

바르셀로나에서 100km쯤 떨어진 작은 해안관광지. 
그림같은 성이 바닷가를 향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유수한 호텔들이 서 있던
스페인사람들의 휴양도시.

정신없이 갔던지라, 다시 생각해보니 그 좋고 아름다운 풍경을 하나도 보지 못했던 것이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저녁놀이 지면 성곽에 불이 들어오고 이 바닷가를 혼자 개똥폼을 잡으며
걷던 천진무식하던 시절이 다시 돌아오려나.

개인적으로 잊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라면
내가 묵었던 작은 호텔의 서빙메이드 아가씨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랄까.
black & White의 정통 메이드 제복에 싱긋 웃던 그 아찔한 스페인미인의 얼굴이 
어찌나 강렬하게 젊은 20대의 청춘을 관통했던지

그날 이후 난 메이드를 너무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써 놓고 보니까 기행문이 아닌 오타쿠의 고백이 되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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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다와 산세가 다 잡힌다는 통영 미륵산

2. 새벽 찬 바람 맞으면서 뜨는 해를 보고 싶은 낙산 의상대

3. 배고플 때 먹어서 절대 잊혀지지 않았던 일본 도쿄 시모기타자와의 빵집 [안젤리카]의 미소빵의 맛.

4. 나오던 콧물까지 얼어버리게 추웠지만 너무나도 아늑했던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5. 카메라로 잡을 수 없어서 한 블럭 떨어진 곳에 가서 찍었던 바르셀로나의 성 가족성당

6. 바닷물에 페인트 풀어놓은 듯 새파랗기 그지없던 이태리 세스뜨리 레반테

7. 호그와트는 저리가게 음산하고 무서웠던 해질녘의 영국 이튼스쿨

8. 아마 다시는 가기 힘들 광할한 캄보디아 씨엡랍 호수와 경이로움의 극치였던 앙코르와트

9. 초록색 포도밭이 성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미국 프레스노.

10.

하지만 더 모든 것들을 다 차치하고서라도

앞마당에 벽오동 하나 정갈하게 서 있던
강서구의 우리 2층집.

비가오면 산에서 흙탕물이 쏟아져 동네 앞길이 모두 벌겋게 되고
무덤들과 소나무가 울창했지만  해질녘까지 뛰어놀기에 너무나도 풍족했던 우리 동네 뒷산.

산 한가운데를 깎아서 산꼭대기에 서 있어서
늘 등교할 때 마다 숨이 턱에 걸렸던 [국민학교]

난생 처음으로 갈비탕이란 걸 먹어봤던
우리동네 시장바닥의 [정육점]

내가 가장 다시 가 보고 싶은 곳들은
이제는 가끔 꿈에서나 볼 수 밖에 없고
현실에서는 전혀 옛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곳.

이미 수십년이 흘러 옛 길은 자취도 없어지고 산도 사라지고 어디에도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과거를 불식시키는 현대의 잔재만이 남아있는 [행정구역]. 


나는 정녕 그 곳에 가고 싶어하건만
그곳은 이제 남아있지 않으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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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신 없던 와중에도 모텔 할아버지에게 "바닷가가 보이는 방으로 주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혼자서 바닷가가 보이는 방을 잡아서 뭐하나 싶었지만, 의외로 비수기인지라 그런지 바닷가가 보이는 방은 많이 남은 듯 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보니 저 멀리 솔밭 너머 아련하게 바다가 보이고 아직 철수하지 않은 오징어배의 불빛이 보이는 광경, 동해바닷가의 숙박업소 아니면 못 볼 풍경이리라. 할아버지가 좀 더 높은 층의 방으로 줬으면 좋았을 것을.

일찌감치 행장을 꾸려 나가면서 다시 할아버지를 귀찮게 했다.
"할아버지 이 근처에 밥 먹을 데 있나요"
"걸어왔수?"
"예"
"그럼 다리 건너기 전에 XX식당으로 가슈. 해장 미역국이 맛있어."

다행스럽게도  비가 그쳐 하늘은 잔뜩 찌푸렸지만 시야는 확 트인 날이었다.
저 멀리 서쪽으로는 강원도의 등뼈가 구름에 파 묻혀 산봉우리를 내지 않고 오른쪽 동쪽으로는 파도가 포말을 뿜으며 등천하고 있었으니...가히 사람이 유람하기에 이만한 곳 또 있으랴.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식당에 가서 미역해장국을 시키고 추위에 지친 속을 풀었다. 그냥 미역국인 듯 한데 굶어서 그런지 원래 맛이 좋아서 그런지 그냥 술술 막 넘어간다. 미역국 그렇게 맛나게 먹은 건 처음이었다. 나름대로 동네에서 유명한 집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손님은 나하고 아저씨 아줌마 한 팀 뿐. 확실히 어촌의 겨울은 한산하기 그지없고, 미역국을 갖다 준 주인 아주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모여서 한담 중이다. 객이나 주인이나 별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동네 하꼬방만한 교회는 오히려 집들보다 작아보이고

어쩌다가 밖에 묶인 강아지는 춥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데
정작 주인어른은 그러려니 하고 계신다.

바람은 거세고 해변에는 나그네 하나 없고, 파도는 해변으로 몰아쳐서 하얀 거품을 만들며 물보라를 부옇게 일으키는데. 자뭇 무서울정도로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정작 혼자 보고 있자니 겨울바다는 참으로 외로운 것이더라.

천천히 강문해수욕장부터 경포대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아침에 그 긴 백사장에
사람이라고는 오직 나 하나밖에 없었다. 오직 파도 소리만을 벗삼아서 한시간 여를 걸었는데
아마 다시는 하기 힘든 여정이 아닐까 싶다.
mp3를 꺼내서 듣기 시작했다.나오는 노래라는게 전혀 어울리지 않게 장국영의 목소리더라. 영웅본색I 편의 [당연정]

그런데 이 노래가 그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마치 내가 주윤발(은 아니고 외모는 적룡에 가까우니)이라도 된 듯 아무도 없는 해변가에 고독한 사나이의 온갖 포즈를 다 잡으면서 하늘을 봤다 바다를 봤다 하며 산보를 계속했다.

(저놈들이 보고 뭐라고 숙덕댔을 것이다.)


바다를 보러 가겠다고 서울에서 혼자 다짐했을 때는 혼자 별 생각을 다 했었다.
바다를 보면서 세사의 시름을 날려야지. 지나간 첫 사랑의 추억을 눈물로 잊어야지. 지금 나름대로 어려운 처지를 다 떨쳐낼 정도의 호연지기를 받아봐야지.  새로운 깨달음이라도 얻어볼 수 있으면 얻어봐야지.

그런데 정작 바로 파도가 밀려오는 코앞까지 가서
내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이어진 무한한 수평선에서 한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보고 있자니
뭘 잊고 자시고 깨닫고 하는 머릿속에서 설계한 사람의 계획따위는 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그냥 파도를 보고 바다를 보는 것으로 족한 것이고, 저 멀리 만경창파를 보는 것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끝나는 것이더라. 결국 내가 동해바다에서 얻은 것은 [바다를 봤다]는 사실 하나였는데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속에 가득 차고 남는 것이었다. 한 세 시간을 서서 파도가 밀려오는 대양을 보고 있으니 그냥 바다 앞에 내가 있다는 것으로 모든 게 설명이 되더라. 


12시를 넘어서 1시가 되어갈 즈음. 여기저기서 쌍쌍으로 남녀가 몰려나와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나 혼자 누렸던 호사는 그것으로 끝. 그리고 4시간정도 혼자 바닷가에 서 있었더니 콧물이 줄줄 흐르고 바닷물보라에 눈이 따가워서 서 있지를 못하겠다. 4시간동안 얼어죽을 정도로 봤으니 이젠 커플에게 양보하고 난 내 자리로 돌아가야지.

돌아 온 과정이야 따로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라는 건
별로 설명하고 싶지 않은 과정이니까.

그리고 난 바다를 이미 보고 돌아왔으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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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有離合 豈擇衰盛端 인생유리합 개택쇠성단
憶昔少壯日 遲廻竟長歎 억석소장일 지회경장탄

인생의 만나고 헤어짐이 있으나 노년과 장년의 구별이 있으랴
옛 젊은 시절을 생각하고 주저하며 탄식하는구나

- 두보 [수로별] 中 - 


경춘선인가 경인선을 제외하고 이제 모든 열차에 설치되어 있다는 카페열차에 혼자 앉아서
원두커피를 한 잔 시킨 채 나름대로 똥폼을 잡아가며 경치를 보는 중이었다.
청량리에서 덕소를 지나면서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모두 러브호텔뿐. 맨 처음 이 길을 기차로 오갈 때만 
하더라도 젊은 학생들의  MT행선지였던 곳들은 여전히 젊지만 전혀 다른 목적으로 방문하는 이들로 채워지는 듯 했다. 사실 감회라는 것이 나이든 이들의 감상일 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것이다. 사람들만 바뀌었을 뿐.

태백 - 영동선 6시간 30분이라는 것은 인내를 요하는 시간.
요추천자를 하는 주사바늘이 통과하듯 한반도의 척추를 서서히 뚫고 들어가 반대편까지 이르는 기찻길은
어찌보면 길고 지루하고, 바꿔 말하면 무엇을 하건 시간이 남을 수 밖에 없는 공간이다. 

슬슬 술을 먹는 이들이 많아지자 난 슬며시 책을 접고 다시 자리로 들어왔다.
자리로 들어서자 옆 자리에 앉아있던 강원도 할머니가 과자를 집어준다. 짐 올리는 걸 잠시 도와드렸는데
봉두난발에 수염까지 텁수룩한 얼굴이라도 나쁜놈은 아니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저녁도 안 먹었는데 덥썩 삼켰다.
잘 먹는다고 기특하게 보셨는지 이젠 봉지에서 아예 빵을 꺼내 주신다.
'밀가루 많이 먹으면 속에서 요동을 칩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그게 초면에 예의인가. 그냥 후일이 걱정되도 성의를 먼저 고맙게 받아야지. 주는 대로 꾸역꾸역 받아먹다 보니 어느새 할머니와 나는 생면부지의 조모와 손주가 되어버린 형국이다.

나는 책을 읽고, 할머니는 신문을 보면서 길을 가다보니 이미 제천을 넘어, 단종이 죽은 영월을 지나, 열차는 꾸역꾸역 힘겹게 산중으로 들어서고, 점점 차창의 지면은 높아져 나무와 돌이 밤하늘을 가리는데 어느 순간 뻥하니 뚫린 하늘이 보이길래 창문 밖을 보았더니 대도시의 화광이 번득이고 천지에 러브호텔과 안마와 네온사인의 불야성이 순간 시야를 휘감는다. 어리둥절해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이곳이 어디냐고. 

"사북이래요"
사북이라니. 내가 10년전에 봤던 사북은 이러지 않았는데
"강원랜드가 들어섰잖아. 그 담에 사북이 이렇게 대처가 되았사. 원래 태백에 들어오기로 한 거였는데 지방 원로들이 반대한다고 뭐라뭐라 기부림을 해대더니 사북으로 넘어왔사. 그러더니 이렇게 도시가 커졌어. 관청도 다 넘어간다하고... 태백은 뭔 화약공장이 들어온다나 뭐라나"

못새 아쉽다는 듯 투덜대는 할머니의 말마따나 사북의 휘황찬란함은 카지노의 돈에 기댄 바 되었던 모양이다. 돈에 웃고 돈에 우는 곳이 노름판 아니던가. 저 빛나는 네온사인 아래는 과연 어떤 인간군상들이 명멸하고 있을 지.
"사실은 저기 대도시 처자들도 많고, 갈데 없이 있는 아저씨들도 많다네. 내가 아는 사람도 참 성실했는데 어느 날 자기 사업 다 날리고 야반도주 했사. 이게 참...다 좋은 건 아니야."
태백이 홀대받는 것에 대해 잠시 푸념을 내시던 할머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창밖을 보시더니 다시 말을 하신다. 자기가 했던 말에 대해서 좀 겸연쩍으신 모양이다.

"사람이 그래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해. 위험한 곳엔 가는 게 아니지."
 
장사를 하신다는 할머니의 살아온 삶의 철학은 딱 그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짧고 간결하고 바른 말이다. 그리고 왠지 어울리는 모습이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추전역을 넘어 태백에 도착하자 할머니는 짐을 꾸리고 내게 손을 흔들고 하차하시고, 나는 이제 동행없이 고즈넉히 강릉까지 넘어간다.  기차 손님의 태반이 태백에서 내렸다. 이제 강릉까지 가는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고, 나는 은하철도999의 철이처럼 아무도 없는 객차에 혼자 앉아서 시간을 죽인다.
 
통리역, 10년 전 태백-영동선을 타고 왔던 가장 먼 역이었다. 
10년 전, 그 때도 앞이 먹먹해 보이는 것이 없었던 나는 통리역에서 내려 하사미리에 있는 예수원에 잠시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모든 것이 무덥기만 하던 여름. 난 무언가를 얻겠다는 일념으로 입산했지만 입산 첫날 발톱이 빠져서 다음날 끙끙대며 다시 서울로 돌아갔던 패잔병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여기서 조금 더 나가서 한번 끝까지 가보리라.

어느 순간, 차량의 오른쪽이 휑해지면서 아무것도 없는 하늘이 보였고, 그 아래로는 아무것도 없는 듯한 암흑만이 보였다. 바다였다. 묵호를 지나 정동진을 지나 강릉까지 가는 철도는 하늘과 땅과 바다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가로지으며 나가는 중이었다. 고즈넉해보이던 묵호항을 지나, 밤에 보니 밀려드는 파도가 좀 공포스럽던 정동진을 가로지르고 나니 어느 새 내가 목적했던 강릉역에 도달한 뒤였다.

그날 강릉엔 추척대며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나는 이제 선잠같던 기차여행을 끝내고 바다를 보기 위한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이제 어디 가서 잠을 청할 것인가? 시간은 자정에 다가서는 중이었는데.

무조건 역을 빠져나가 동쪽을 향해 걷기로 했다. 걷다 보면 바다가 나올 것이고
바다를 보고싶어하는 연인들을 위한 여인숙이나 모텔 하나정도는 바닷가에 있지 않겠는가.
하염없이 걷기 시작햇다.

걸었다.
걸었다.
걸었다.
걸었는데....

논바닥이 나왔다.

"?"
어디로 가는 중인가? 뒤를 돌아보니 이미 시내의 접경지가 끝난 상태.
비는 하염없이 내리는데 핸드폰의 인터넷은 먹통이고 아무리 봐도 모텔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쩐다....

아무것도 없으면 결정이야 쉬운 것 아닌가.
그냥 계속 걷는 것.

계속 걷다보니 뭔가 보였다.

오징어잡이 배가 빨갛고 초록색인 불을 달리는 없으니
필경 저게 모텔촌이리.

불빛이 보이는 데까지 걷기 시작했다.

이거...근데 거리가 얼마나 되는거야?

별수 있나. 고지가 저긴데.

결국 도착.

나중에 집에서 거리계산을 해 보니 4km. 약 10리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였다.
(잠원의 우리집에서 예술의 전당까지 가는 거리다)
밤이라 그렇게 길어 보였던 모양이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끝없이 가도가도 닿을 것 같지 않던 강릉의 숙소까지 도착한 시간이 밤 1시 넘은 시각. 어디선가 찰싹거리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난 모텔에 입성했고
마음좋게 생긴 모텔 할아버지와의  대화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혼자왔수?"

"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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