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해 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이국 땅에서 차 몰고 돌아다니기'였다. 한 때 미국의 동서횡단 고속도로를 혼자 자동차로 여행하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여겼던 적도 있다.(그런데 사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하더라.) 

여행의 드라이빙이라는게, 어찌보면 일상에서 발현되는 환상이다. 꽉 막힌 도심에서 벗어나서 이국의 한적한 도로를 멋진 풍경과 작열하는 태양 아래로 달린다니 그 얼마나 좋을소냐!


그래서 나도 일본에서 한 번 해보려고 시도해봤다. 오키나와가 원래 그리 넓은 섬은 아니지만 대중교통이 여기저기 잘 뚫린 곳이 아니라서 차로 움직이는게 편하다는 것이다. 그런 가이드북의 말도 있고, 한번 내 소망도 이뤄볼 겸 해서...



렌트카를 빌렸다!

만약 렌트카를 빌리고 싶다면 현지선택보다는 일단 여행 전에 여행사를 통해서 렌트카를 예약하는 것이 현명할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뭐 원하는 차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다 네비게이션 문제다. 일본어를 자국어처럼 완벽하게 히어링할 수 잇는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 없겠지만 야메떼밖에 모르는 나같은 인간에게 일어네비게이션은 아무런 거의 도움이 못 되지 않는가...물론 그림만 봐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오키나와 도로는 단순했지만. 여행사 통해서 먼저 예약하면 한국어로 더빙되어 나오는 네비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100% 받는다고 장담은 못한다. 없으면 못 받지 뭐...)

저 차 이름이 뭐였더라? 하여간 토요타에서 하는 렌트카니까 토요타 경차였겠지. 실내 생각보다 넓고 에어콘하고 라디오만 있지만 자동차로써의 기능은 완벽했다. 어차피 작은 차가 운전하기는 더 편하겠지하고 서류에 싸인하고 길거리에 끌고나왔는데...



오 마이 갓. 왜 모든 섬나라 놈들의 핸들은 거꾸로 붙은 건지. 

난 생각보다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더라. 좌우가 바뀐다는 것은 시야각이 바뀌는 것이고 좌회전 대신 우회전에 주의를 해야 하는 것인데 이거 생각보다 머리가 아픈 일이었다. 저절로 등에 식은땀이 줄줄줄....그나마 자동차간의 옆공간이나 차선변경, 뒤차와의 거리같은 건 감각으로 하면 상관없는데 문제는 우회전. 오키나와의 우회전(우리나라 자회전)은 대부분 비보호라는 걸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정말 처음 운전하는 15분간 아주 죽는 줄 알았다. 그나마 도로가 직선이었으니 망정이지....

근데 직선도로로 오면 김여사도 F1 탑클래스 드라이버가 되는게 이 [운전]이라는 영역 아닌가!

어느 순간 되니까 신나게 운전하고 있더라~ 


(미친놈 죽을려고 용쓴다고...드라이빙도 정리 안 된 시점에 운전중 사진을 찍었다.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

그냥 죽 몰고 나하시내를 떠나 위의 미하마 아메리칸 빌리지로 향했다. 나름대로 거대한 쇼핑몰들이 있는 곳이고 위락시설을 꾸며놓은 동네이다. 미군기지 옆이 어떻게 되나 한번 보고 싶기도 했고...그런데 내가 간 곳은 말 그대로 쇼핑위락시설들이 있는 곳인지라 현재 미군 기지촌이 어떤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냥 놀러 간 거임.



(이게 오키나와의 한 단면이랄까...오른쪽이 군용지일거다.)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 도착하면 맨 처음 보는게 [항공자위대] 격납고다. 이 섬은 엄연히 군사시설이 그득한 전략도시다. 마천루 사이로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동네라는 것을 미하마에 도착해서 알게 된다. 마치 오사카나 동경의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스튜디오를 보는 듯한 쇼핑몰들...하지만 평일이라 한산하고 조용하기만 한 동네. 휴일이 되면 여기저기서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겠지만.


(어제의 유구국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

별다른 감흥이 없어져 버렸다. 그냥 규슈를 갈 걸 그랬나. 패망한 왕국, 패전한 일본의 영토. 현재는 미국의 기지. 그리고 묘하게 세 가지가 섞여 있는 동네. 이렇게 된 거 한 번 섬이나 돌아볼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출발 전 먹은  A&W 햄버거와 루트비어. 오키나와에 미군들이 정착하면서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햄버거 브랜드가 되었단다. 햄버거는 깔끔. 하지만 진짜는 루트비어. 루트비어는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는데


몰랐지.

그게 지옥의 드라이빙의 시작이 될 거라는 걸.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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