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6건
- 2010.12.08 대화 4
- 2010.03.20 솔로몬 케인 (Solomon kane)
- 2009.06.11 나비야 청산가자 2
- 2009.04.30 텍스트의 비주얼화 10
- 2009.03.24 벤자민버튼에 대한 작은 잡설 2
- 2008.11.11 스티븐 킹 - 총알차 타기 4
- 무명씨 -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언제 쓰여졌는지 모르는 이 시조는 참 애닳기 그지없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의 원조쯤 되는 것 아닌가?
상당히 오래 전에 씌여진 시조 같지만 누가 썼는지는 모르고
예전부터 시조 창가로도 널리 퍼졌던 듯 싶다.
정조 때 홍국영이 젊은 시절 건달패로 있을 적에
"나비야 청산가자"시조를 잘 불렀다는 야사도 있는 바, 그 전에 만들어진 시조일 것이다.
후일 우리 말인 시조를 한시로 바꾸는 7언악부로 바꾸는 풍조가 유행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신위라는 사람이 만든 [소악부 40수]에 이 노래가 한역되어 올라오기도 했다.
호접청산거(蝴蝶靑山去)
백호접여청산거(白蝴蝶汝靑山去)
흑접단비공입출(黑蝶團飛共入出)
행행일모화감숙(行行日暮花堪宿)
화박정시엽숙환(花薄情時葉宿還)
애절한 만큼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기를 줄지 않던 이 노래는
시대가 바뀐 뒤 김용임 씨에 의해 트로트로도 불러진 적이 있다.
(나븨이야~~~하는 노래 들어본 적 있으실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소설가 김진명씨의 정치 소설 제목으로도 쓰여진 이 시조는
참으로 유장하게 시대에 맞게 다양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으니...
[나비야 청산가자]라는 이 일곱글자가 갖는 문자 속의 회한이라는 것이
우리네 삶을 정확하게 찔러대는 그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묘사가 탁월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잘 쓰는거다.
스티븐 킹도 그중의 하나고
다카노 카즈아키같은 경우는 등장인물의 얼굴표정까지 그려질 만큼
이쪽에 탁월한데 (이 분은 영화판인가 만화쪽인가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데...확실히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마구 써 내려간 것 같은 느낌이 가끔 드는
J.R.R톨킨의 반지의 제왕3부작.
그림이라고는 하나 없고
깨알같은 텍스트로만 되어 있는 예전 [반지전쟁]을 가지고
처음부터 봤던 나는
그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피터잭슨의 영화가 내 상상과 동떨어지지 않은 걸 봐도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일한 비주얼을 가질 수 있도록 썼다는 이야긴데
참 대단하지 않은가.
가끔 블로그 글을 보다보면
화면에 잡힐듯이 글을 쓰는 분들이 있다.
아,
뭐랄까
참으로 부럽다 할 밖에.
이와는 반대로
허먼멜빌의 [백경]은
그레고리 펙 덕분에
비주얼이 원래 영화에 짜 맞춰져버린 불행한 케이스일 것이다.
(영화가 너무 강렬했다...어쩔 수가 없었음)
그래서 사람들이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그 담에 보라고 하는 것이겠지.
[용의자 X의 헌신]을 아직도 안 사 봤는데
한번 사 볼까 하는 생각 중.
맨 처음 이 영화나 원작소설에서 읽은 것이 아니라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에서 맨 처음 본 기억이 난다.
[ 메신저] 녹인종 아트레이유가 메신저로 간택될 때
작은 왕녀의 궁전에 모여있던 환상계의 모든 인종 대표가 회의를 하는 도중에
사사프란족의 대표가 나타난다.
늙어서 태어나고 젋어서 죽는 민족
백발의 노인이었으니 곧 청년이었다.
짧은 문장 하나였다.
원래 벤자민버튼을 쓴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0년대였으니 아마도 미하엘 엔데는 이 소설을 보고
이 인물을 고안해 낸 게 아니었을까
어느 분이 그러셨더라?
다른 소설에서 한 소재가 나타나면
그 소재는 다른 소설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그 말이 과연 맞는 이야기인 듯.
꽤나 오래된, 하지만 언제나 읽어도 좋은 소설이 몇 개 있다. 그 소설이 짧기까지 하다면 그건 금상첨화다.
사실 필요한 말을 짧고 확실히 감동을 주면 말은 길 필요가 없다.
소중한 사람이 죽는다. 그리고 나도 죽을지 모르는데 체인지가 가능하면 어떻게 될까
스티븐킹은 사람들이 즐겨 말하는 [대중작가]이지만 그의 소설을 보다보면 가끔 모랫벌에서 곱게 누워있는
희귀한 조개껍질을 줍는 기분이 드는 소설들이 몇개 있는데 가끔은 그게 너무 아름다와서 왜 이게 여기있나 싶은 상상머져 드는 것들이 몇 개 있다. 개인적으로 스티븐킹의 소설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단편들이다.
그 중에서 꼽으라면 [사다리의 마지막 단]과 이 [총알차 타기]정도 될 것이다.
작가의 과거사가 많이 투영된 작품이다. 그의 과거사가 드러나는 작품이 몇개 있긴 하지만
늘 그때마다 드는 감상은 남부의 후덥지근한 더위와 땀냄새가 자연광으로 들어오는 허물어진 목조주택의 후즐근한 공기에 공감각적으로 이어진다. 그런 삶속에서 타이프라이터 하나만을 가지고 입지전적인 생을 지어낸 이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너무나도 인간적이면서도 소설적이다.
(스티븐 킹이 처음으로 자기가 쓴 소설이 제 값을 받고 출판사에 팔렸을 때를 회상하는 장면이 [스티븐킹의 창작론]에 잠깐 나온다. 그 장면은 정말 개인적으로 눈물이 나온다. 그래서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벅찬 거다.)
각설하고, 총알차 타기에 등장하는 시간의 대부분은 밤의 몇 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움직이는 주인공의 심리묘사는 탁월하기 그지없고, 불가항력인 [죽음]앞에서 택하는 개개인의 선택은 그 자체로 진솔하기 그지없다. 별다른 기술상의 트릭없이 나레이션에 가까운 기술법으로도 이 정도의 임팩트를 줄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진짜 글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겠지.
나도 이런 글을 한 번 써 보고 싶다. 언제쯤이 될까?
내가 만약 글장이로 나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내가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세사람 정도가 될텐데...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스티븐 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