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난 지금 현 이명박 대통령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시책이고 정치적 스탠스고 뭐고를 떠나서
이 양반이 가진 종교관과 하는 행동거지가 180도 다른 행보를 가지고 있는게 넌더리가 나서 선거 전부터 싫어했다.

딱 70-80년대 건설족 스타일로
한국사회는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경제논리와 있는 사람이 잘 살아야 나머지 떨거지들이 잘 산다는 개발논리에 종속되어 있는 양반인데, 그것이 내가 믿는 기독교적인 입장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상반되는 것 같아서 이율배반적인 듯 싶어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80년대 후반 한기총이 탄생하게 된 배경인 부흥주의, 성장주의 목회에 어울리는 기독교인사인 것이다. '돈은 일만 악의 근원'이라는 성경의 말씀과 정 반대로 '힘이 있어야 교회가 부흥하고 구원역사를 이룰 수 있다'는 심히 나치즘에 비견될만한 한국 목회철학의 산물이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본다.

일주일 내내 사회에서 사고치고 일요일날 회개하고 성스럽게 살고
그렇게 사회에서 얻어 낸 지위와 재력으로 교회에서도 그 세력을 넒혀가는 방식.
남들 앞에서야 경건하게 누가 못 살 것인가. 재력이 있고 권력이 있다면 어찌 그게 더 어렵겠는가.
[이븐 바투타 여행기]에서도 독실하지 않은 이슬란 술탄이 없더라.

 하박국 선지자가 뭐라고 지껄였던가. 있는 놈은 흥왕하고 없는 놈은 궁하고  불의가 판을 치는데 주님은 뭘하시냐
그러자 하나님이 심판으로 응보하시리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걸 보고 있자니
참 이 양반 운때가 좋더라.
운때가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정말 적재적소에 뭔가 하나씩 터져서 정치적으로 힘든 상황들이 타개되더라.
사람의 힘으로만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더란 말이다. 

난 참으로 의문인 것이
이 양반의 일에 정말 신의 개입이 있다면
이걸 기뻐해야하는가 슬퍼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2-
예전에 부시가 이라크 쳐들어 갈 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이걸 내가 응원해야 하는 거냐 말아야 하는거냐. 부시 저 자식도 굉장히 신실하다던데
이 전쟁 아무래도 저 놈의 종교적인 정의관이 개입된 것 같은데
이 전쟁이 신학적으로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를 먼저 대입해야 하는 거냐 아니면
인간으로써 벌어지는 국제사회의 잔악상과 이기주의에 대한 비난을 먼저 해야하는 것이냐.

 이명박대통령에 대한 생각도 똑같다.
만약 신께서 이 대통령을 도와주는 거라면 지극히 개인적인 도움이고 간섭이겠지만
그것은 바꿔 말하면 나머지 일반 서민들에게는 불공평한 경제체제와 대한민국의 발전저해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무신론자가 팽배한 한국사회에 대한 신의 경고로 봐야 하느냐
아니면 그냥 다 팽개치고 이명박의 건너편에서 교회에 대한 반대선에 서야 하느냐

하여간
이런 생각들로 요즘 머리가 아프다.

예전에 루터도 30년 전쟁 때 독일 농부들이 난을 일으켰을 때 '반란군노무새퀴들은 죽어라' 따위 말을 했다고 하지만서도...정말 신앙이라는 게 사회 안에서 어떤 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 건지 두려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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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내서 커피수업을 듣고 있다.
나름대로 유명한 분 밑에서 수업을 듣는 중이다. 상당히 자유분방하게 가르치는 분인데 어디 얽매이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특화된 커리큘럼보다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훨씬 좋긴 하다.
아직까지는 잘 모르지만, 그리고 내 삶의 방향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교수법에 있어서는 인간적인 면모와 유대가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괜찮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양반은 너무 인간적이다.

"사람들은 이상한 게 있어요."

가끔 하는 말이다.

"커피  잘내리거나 유명한 사람들 있잖아요. 사람들은 뭔가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말이죠. 그 사람이 완성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다고 생각해요. 숭배를 하죠. 어떤 분야에서 완성이 되면 그 사람의 인격이 완성된다고들 생각하나봐요. 아니예요. 커피바닥에도 유명한 사기꾼들 많아요. 장인의 경지에 올라도 성질 더러운 사람 많아요. 저도 성격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해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죠."

배우라는 커피에 관한 이야기는 귀에 잘 안 들어오고 저런 이야기만 귀에 들어온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화가던, 가수던, 소설가던, 건축가던.
어떤 분야에서 일반의 격을 넘어선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그들의 가진 기예의 극(極)에 도달한 결과물에 의해 감동을 받는 것이지
그 사람에 의한 감동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럼데 우리는 가끔 그 결과물을 그 사람의 전인격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갖곤 한다. 동양적인 사상일까?
내가 가끔 쓰는 말중에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고 글과 사람이 같은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글 잘 쓰는 놈중에도 인간성 개차반인 놈들 많지않은가.
노래 잘 불러도 엉망인 인간들 많고, 연주자 중에 미친 놈  많고, 요리 잘하는 놈들도 개잡종인 놈들 많다.
 
도덕적으로 고양되는 과정은 지루하고 소득없는 수련의 결과물이라고 생각된다. 특별하게 시간을 들이고
자신이 생각해야만 사람이 야수에서 인간으로 정화되는 것이지. 하루종일 음표보고 도마 위에서 칼썬다고
어느 순간 완성된 인격체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혹은 어느 날 자고자만하며 살다가 크게 한 대 맞은 뒤에
스스로에 대하여  준열한 반성을 갖게 되는 인생이 되던가. 

바꿔 말하면
사람들에게 보일 실력만 충분하면 내가 인격적으로 모자란 놈이라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소리가 된다.

이게 무서운 일인가아니면 흥겨운 일인가? 
우리는 모두 모자란 위인들이니 위안이 될 법한 소리겠지만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라는 자문을 했을 때는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갈팡질팡 하게 된다.

에전같았으면 사람답게 살자 했겠지만 살면 살수록 인생의 꽃밭은 줄어들고 돌밭만 늘어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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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크 영웅전에 보면 [코리올라누스]라는 로마장군이 나온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이기도 하다.

위광이 탁월하고 무용이 뛰어난 사내였다.
단신에 소부대를 이끌고 외적의 침입을 혼자 방어하여 코리올리지방을 사수한 공로로 
코리올라누스라는 칭호를 만백성앞에서 부여받은 용사중의 용사요, 귀족중의 귀족이었다.
명성만을 얻었을 뿐, 재물에는 초연하였다.

그는 귀족이었음으로 평민과 다르다 생각하였고, 귀족중에서도 특출난 자라 스스로를 평가하였다.
그는 집정관이 되고 싶어하였다. 
귀족들의 동의를 원하였으나 떨어졌고, 오히려 평민들을 핍박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가
평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의 능력을 자랑했을 뿐 아니라
타인도 자신과 같이 엄격하기를 원했으니, 능력없는 자는 그 자리에 있을 것과
비루한 자는 위로 올라서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호민관과 백성에 의해 [민중을 핍박하는 자]로 찍혀 로마에서 추방되었다.

그 다음에 이 인간이 취한 일은
플루타크 영웅전 중에서도 가장 어이없고 기똥찬 일이었으니

자신이 한때 박살냈던 볼스키아의 왕에게 들어가
로마를 깨죽으로 만들겠으니 병사를 달라고 한 것이다.
얼씨구나 하고 왕은 병사를 내 주었고
이 인간은 병력을 이끌고 로마를 박살내려고 출정했다.

로마가 보이는 동구밖에서 군사를 정비하고 있을 때
코리올라누스의 어머니가 단신으로 찾아온다.
제발 가문의 고향의 짓밟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어머니를 보자
이 인간은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철군하여
볼스키아 왕에게 죽음을 맞는다.
--

사람의 인성은 달라지지 않으니.
몇천년이 지나도 구절구절 하나하나에 써 있는 인간의 습속은
그대로 바뀌지 않으니, 아마 결말도 그리 다르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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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탐구

수련장 2010. 9. 12. 00:13
예전부터 즐겨 찾던 블로그 중에 마피아의 역사와 형성, 충돌과정에 대해
놀랄만큼 집요하고 자세하게 파헤치던 블로그가 있었다.
거의 논문심사가 아니라 마피아 연대기를 쓰고도 남을만큼의 분량을 연재하던 분이었고
신문에도 자신의 글을 올리던 분이었는데 어느순간 절필을 하셨다.

그의 블로그 마지막 글에 이렇게 글이 남겨져 있었다.

"마피아는 에고의 긍국이었고, 더 이상 에고를 파헤치고 싶지 않다"

그분이 조사했던 글들을 읽어보면, 마피아는 탐욕의 역사였다. 혈연관계던 이익관계던 간에
그것을 지탱해온것은 DNA와 탐욕의 이중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실리부터 미국의 대도시들까지
이어지는 장엄하면서고 읍습한 자기애의 무한한 확장. 어쩌면 그 분은 환멸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서양철학자들은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소크라테스 이후부터 지금까지 게속되는 탐구를 하고 있다.
사람이란 욕망의 총아, 하지만 그 사유 깊숙히 인간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계속 알게 되면 그 안에 있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구원할수 있는 이성의 고갱이일까.

나는 개인적인 신앙적인 배경과 협소한 경험에 의거해
부정적인 답변을 도출할 수 밖에 없긴 하다. 하지만 그 안에 순수함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이 인간을 올바르게 정의하게 될까
두눈을 뜨고도 어지러운 이 세상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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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이들과 같이 엮이게 된다.
스스로의 신념과 생각을 가지고 헤쳐나가려고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타인의 시선, 타인에 대한 관점, 타인의 이견들이 하나로 뭉쳐져서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선입견과 호불호를 만들어준다. 그러다보면 나는 나 스스로의 생각을 갖지 못하게 된 채 어떤 일에 매진하고 있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더욱 두려워 해야 할 일은,
어떤 조직이나 단체나 친목집단이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나 이익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똘똘 뭉쳐질 때
그것은 개인이 개인에게 갖는 감정 이상으로 무서운 증오심이 되어서 자기와 다른 무리에 대한 보복감을 갖게 된다.

소위 클랜전이 되는 것이랄까.

나름대로 정치적으로 깨어있다고 말하던 작자들도 뭉치면 개가 되고
자기들끼리의 리그에서 사람들을 왕왕 깨물며 지내다가 종당엔 다른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울부짖음을 선사해서 민폐와 해악을 끼치는 경우도 봐 왔고 (그네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선이라고 믿으니 그게 문제겠지만)

나 자신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떤 일에 대한 편견과 알지못하는 사람에대한 조롱과 멸시가 스물스물 자생하는 것을 느끼게 될 때도 있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사회적으로 뭉치지만
또한 자기가 살아가기 위해 다른 사회를 부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동족살해의 본능을 지닌 동물이다.

그래서 사람은 시간이 남으면
스스로 칩거하고 혼자 스스로를 가두어야 한다.
다른 놈 씹을 생각으로 혼자 으르렁 대는게 아니라
그런 것에서 자유로와 진 다음에
사람들의 유무 이합집산과 상관없이 스스로의 의견을 가지고 거침없이 피력할 수 있어야 
한 개체로써 완성되는 게 아닐까 한다.


2)
개인적으로 난 기독교인이지만
차후에 누가 될지 모르는 배우자에게 종교를 강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 자식에게도 하물며 그렇다.
종교적 토양을 가진 가정을 만들기야 하겠지.
하지만 신을 만나고 안 만나고는 전적으로 자유의지를 가진 개인의 단독체험이 있어야 한다.

아빠가 귀잡고 끌고 다니다가 어느날 박수치며 울고 났더니 교회집사가 되었어요 같은 신앙간증도
뭐,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최소한 스스로에게 뭔가 할 기회를 줘 보고 싶기도 하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불특정다수의 하나님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하나하나 상관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번에 어머니 일이 마무리 되는대로
다시 교회일을 맡아볼까 생각중이기도 한데.

글쎄.
조금 더 생각을 해 볼 요량이다.
어디까지가 내 결정인지를 알아 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들어서 생각은 많이 하는데
시간은 그에 비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다.

어쩌면 이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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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의 삶

작은 방 한담 2010. 5. 8. 01:19
후배의 조모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마치고 돌아왔다.
천수 백세, 1910년 생이시라니 이제 시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호상이라 하지만 그것은 조문에서의 결례, 죽음은 어디서나 슬프다.

돌아오면서 곰곰히 이런저런 것을 생각해 봤다. 지금의 내 나이로 따져보면 100세라는 것은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이다. 살 날이 산 날보다 많다는 것은 분명 뭔가 앞으로 있을 희망에 대한 이야기일수도 있고
혹은 이 무시무시한 삶의 억겁을 끝간데 없이 더 이어갈 절망의 기다림일수도 있겠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셨을까?
처음의 시간과 마지막의 시간은 희미해져 사람의 기억에서 좋지 않다 하더라도
과연 그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변해가는 사람들과 사람들의 모습에서 고인은 무엇을 느꼈을까?


(이 양반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군)

영화 [하이랜더]가 생각난다.
불사의 종족. 하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외로움.

아마 고인은 동년배의 사람들을 모두 보내고
다른 세대의 사람들 속에서 사셨으리라.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지식을 쌓고 혹은 부를 축적하고
그리고 홀로 남겨진다. 글쎄다. 사람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이성적이라 믿는 감성의 생물이니
그 삶의 객관적인 성취를 스스로가 즐길 수 있는 지는 모를 일이다.

모르겠다.
누군가가 내게 1세기의 삶을 보장해 준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지낼것인가?
수많은 책들을 읽고 쓰고 보고 느끼고 난 뒤에 그 다음엔 뭘 할까?

내가 생각해 낸 것은
결국 이 모든 것을 후대에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을 것 같다.

1세기라.
그러고 보니 난 반세기도 아직 살려면 한참 남았네그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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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꿈을 꾸는 자는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 많은 위인들의 명언이 있었지만 서설한 저 말이야말로
몇 안되게 가슴을 불태우는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앙드레 말로, 소설가. 그리고 자기가 쓰는 글에 부끄럽지 않게 스스로를 실천의 땅으로 몰고 간 혁명가.

이 사람이 고고학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가 그의 불꽃같은 필봉을 휘둘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아시아로 맨 처음 여정을 떠났다가 그곳에서 중국의 환경을 보고 
그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남는 걸작 [인간의 조건]을 남겼고,
스페인 국공내란이 일어나자 펜 대신 총을 들고 프랑코정부에 대항해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2차대전때는
조국 프랑스를 위해서 정규군으로 참전을 했다.

가슴이 이상으로 불타는 사나이의 전형이다. 
스페인 국공내란은 어찌보면 역사적으로 가장 특이한 사건중 하나이고, 가장 로맨틱하고, 가장 처절하고 가장 인간다운 것과 비인간적인 것이 섞여있는 환경이라고 생각된다. 전세계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상관없이 공화파를 지지하며 스페인에 모여들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파블로 네루다, 조지오웰등 당대의 기라성같은 인간들이 펜 대신 총을 잡고 독재자와 싸웠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시리라. 피카소의 [게르니카] 한 폭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인간의 욕망과 타락의 집합체는 사람을 학살의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렸다.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을 보면 그 개괄을 짐작한다던데...꼭 구입해야겠다.) 

평생을 제국주의에 저항해서 싸웠고, 말년 드골정권시절에는 알제리 독립을 주장하다가 프랑스 과격파에게 집이 날아가고 손녀까지 비명횡사한 인물 앙드레 말로. 그의 투쟁기는 결국 도도한 역사가운데에서 사람이 어떠한 포지션으로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가를 보여주는 사례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의 저 격언 자체가 달리 보일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골방에 앉아서 글만 쓴 글쟁이가 저런 말을 했다면 좋은 말이네~ 했을 법하지만...그의 삶을 관통해서 살펴보면 저것은 일생을 투쟁속에 살아온 그의 신념과 희망이 들어있는 말이라고 해석할 도리밖에 없다.

p.s)
앙드레 말로를 가지고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조선일보의 예전 사설이 나온다. 
앙드레 말로의 일생을 지지하는 척 하다가 나중에 국공내란으로 공화파가 죄없는 양민을 학살했다는 둥, 앙드레 말로는 그래서 자신의 이상을 잃었다는 둥 하는 논조로 스리슬쩍 양비론을 몰고가는 사설. 아마 그 당시에는 그러려니 하고 읽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유취만년한 글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포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나도 똑같이 더럽다에서 출발하면서 숯검댕을 스스로 입에 처바르는 일일진대.

아무리  내가 빈한하고 꼬질꼬질하고 더럽고 야비하고 속물같은 놈일지라도 꿈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면 그 꿈에
한자락이라도 만져볼 수 있으리라 희망해본다. 그것만이 내가 지금의 나에게서 한 걸음 더 나가고 옷을 벗어던질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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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바둑삼국지]에서 본 말일 것이다.

조치훈 명인이 젊은시절 연거퍼 대국에서 지고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그의 일본애인이 좌절하는 그에게 해 준 말이란다.

'인간에게는 회복할 능력이 있어요'

조 명인은 그리고 다시 일어섰지만
내게는 봄이 언제쯤 다시 돌아올까.

정말 동방규의 말처럼
오랑캐 땅엔 꽃이 피지 않으니
봄이 와도 봄이 아니런가?

봄이 올 것이다.

인간에게는 회복할 능력이 있어요

나도 그 말을 믿는다.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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