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의 삶

작은 방 한담 2010. 5. 8. 01:19
후배의 조모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마치고 돌아왔다.
천수 백세, 1910년 생이시라니 이제 시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호상이라 하지만 그것은 조문에서의 결례, 죽음은 어디서나 슬프다.

돌아오면서 곰곰히 이런저런 것을 생각해 봤다. 지금의 내 나이로 따져보면 100세라는 것은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이다. 살 날이 산 날보다 많다는 것은 분명 뭔가 앞으로 있을 희망에 대한 이야기일수도 있고
혹은 이 무시무시한 삶의 억겁을 끝간데 없이 더 이어갈 절망의 기다림일수도 있겠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셨을까?
처음의 시간과 마지막의 시간은 희미해져 사람의 기억에서 좋지 않다 하더라도
과연 그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변해가는 사람들과 사람들의 모습에서 고인은 무엇을 느꼈을까?


(이 양반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군)

영화 [하이랜더]가 생각난다.
불사의 종족. 하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외로움.

아마 고인은 동년배의 사람들을 모두 보내고
다른 세대의 사람들 속에서 사셨으리라.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지식을 쌓고 혹은 부를 축적하고
그리고 홀로 남겨진다. 글쎄다. 사람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이성적이라 믿는 감성의 생물이니
그 삶의 객관적인 성취를 스스로가 즐길 수 있는 지는 모를 일이다.

모르겠다.
누군가가 내게 1세기의 삶을 보장해 준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지낼것인가?
수많은 책들을 읽고 쓰고 보고 느끼고 난 뒤에 그 다음엔 뭘 할까?

내가 생각해 낸 것은
결국 이 모든 것을 후대에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을 것 같다.

1세기라.
그러고 보니 난 반세기도 아직 살려면 한참 남았네그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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