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장'에 해당되는 글 121건

  1. 2011.11.13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
  2. 2011.07.04 평가 5
  3. 2011.06.30 스파링
  4. 2011.06.11 노력에 대한 결과
  5. 2011.04.25 2011.4.24 2
  6. 2011.04.06 야바위
  7. 2011.03.31 난 얼마나 실수를 많이 하였는가 6
  8. 2011.03.09 즐거움을 잊지 마라 2
  9. 2011.02.03 설날 교통사고 6
  10. 2011.01.31 내가 삐딱한 놈 같지만서도 6
사마천은 자신이 거세를 당하면서까지 집필을 계속하던 [사기]의 첫머리에 이런 글을 집어넣었다.

공자의 제자 안희는 공부가 뛰어나고 고결했으나 가난하게 살다가 병에 걸려 요절하고
백이숙제는 고결하게 살았으나 수양산에서 고사리나 뜯다 굶어 죽었다.
그에 비해 도척은 도적질에 사람까찌 죽여 사람을 회쳐먹기까지 했으나 장수와 부를 누리고 죽었다.

하늘은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

성경에 보면 선지자 하박국은 이렇게 외친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하늘은 사람에게 후박함이 없다고 동양의 고전은 말하며
하박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것도 없는 적신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리라는 [현실의 초극]을 노래한다만
참으로 아쉽고 그지없는 내용이다. 현실을 타파하여 이생에 있어서 더 나은 것을 보장하는 삶의 기회라는 것은
사실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아니하며, 재능과 자질에 있지 아니하며, 정신과 수련에 달리지 아니한다.

삶의 표독함을 현실에서 마주칠 때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순응하느냐. 아니면 스스로의 자부심을 가지고 아무런 소득없이 그 앞에 마주서느냐. 무엇을 하던 인생은 순탄하지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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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수련장 2011. 7. 4. 01:33
원래 사람을 잘 믿는 성격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특별히 여성에 대해서 혹독한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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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수련장 2011. 6. 30. 01:13
오늘 예정에 없이 체육관에 갔다가 스파링이 생겼다.

체급도 거의 다섯체급정도 차이가 났는데... 미들 아니면 라이트 헤비하고 경기가 붙었다.
정말 운동 시작한 이래로 신명나게 맞고 나왔는데
머리가 뎅뎅 울리더라. 

아픈건 아픈거지만
사람이 확실히 뭔가 전기가 필요하다고
맞으니까 정신이 확 들더라.

아, 내가 안일하고 나태하게 살고 있었구나.

운동도 그렇고...그냥 어줍잖게 커버 올리고 대충대충 사거리 안에서 깔작거리니까 맞는거지
좀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돌아다녔어야 하는데...잽이 스트레이트에 맞먹는 중량급하고 일대일 맞장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건가. 생각은 점점 확장되어서 결국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까지 정신이 미치더라.

좀 더 부지런히 뛰어보던가 아니면 일찍 궤도수정을 하던가
개그맨 말마따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건데
더 늦기 전에 뭔가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같이 붙어주면서.

확실히
성격이 모난 놈은 맞아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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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에 대한 결과

수련장 2011. 6. 11. 00:55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두가지 일을 끝임없이 하고 있다.

하나는 글쓰기다. 정말 투입분의 산출량이라는 것에 있어서 이렇게 채산성이 안 맞는 일이라는 것이 있나 싶을 정도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타인의 눈에 좋게 보일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도 없을 뿐더러 나이를 먹을수록 언어의 조탁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생활속에서 쓰는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 차에 문자로 남겨야 할 말글의 핍절함 앞에서는 뭐라고 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사회에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 조차 희박하기 그지없다. 과연 이것이 내가 필생을 들여서 할만한 일인가 싶은 생각이 하루에 한 두번 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또 하나는
믿지 않겠지만 연애시도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지사. 성직자라도 그럴진대 사지 멀쩡한 사내가 여자를 찾지 않는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하지만 이 일은 전술한 글쓰기에 비하면 정말 허공에 발길질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허망한 짓거리가 있나 싶을 정도다. 내가 불타는 마음을 가지면 뭘 하나. 상대가 차가운 마음을 가지면 그만인 걸. 내가 정열에 가득하면 뭐하나, 상대가 경멸에 가득하면 그만인걸. 사람 상대하는 장사가 가장 어려운 일일진대. 그 중에 마음장사가 가장 힘든 법이다. 열심히 해 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만한 대가가 꼭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증명한다.

노력하면 성공하고 노력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혹자들은 말한다만 그것은 성공한 자들이 써 내려간 역사서에 불과한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얻은 것을 중시하고 기억한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얻지 못한 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그럴리 없다. 우리가 갖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피와 눈물과 땀을 뿌려가면서 일에 매진했건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수많은 경험을 해 오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미련때문이다.
어쩌면 오기고, 갈고 닦으면 도가 트일것이라 믿는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허망한 전승 때문이고
나는 할 수 있으리라 믿는 근거없는 자신감 때문이다.

삶의 원동력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전술한 저런 것이 삶의 원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자기최면일 지언정 저것이없다면 아무것도 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채워나가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암시를 거는 것이다. 그러다가 수백수천가지 시도 중 하나가 걸려서 내가 만족할수 있는 현재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그것이 요행이랴?
아니다. 그게 노력인 것이다. 요행의 인생이란 어느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뤄지지 않은 수많은 목표들에 노력을 기울여 왔으니까.
함부로 삶에 요행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게 인생이니까. 어차피 인생은 확률의 변동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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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24

수련장 2011. 4. 25. 01:01
1.
사람이 무언가를 계획할 때는
내 마음이 십리를 나갈 때 애써서 한 발자국 굳건히 디디는 심정으로 나가야 한다.

LG응원하고 있다. 엘레발치지 말자. 우리의 모토다.

사람 사귀던 다른 일을 계획하던
절대 설레발은 금물이다.

달걀 사오면서 부자 꿈꾸던 아가씨가 달걀 깨뜨리는 동화를
어렸을 적부터 봤으면서도 정작 커서는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2.
봄이 오긴 오는 것인가.



3.
글을 쓴다. 쓴다. 하지만 귀찮아서 안 쓰는 날도 있다.
하루하루 습관이 되지 않으면 그것을 업으로 삼을 수 없다.
지겨워도 써야 한다. 그것이 우선인데 난 아직도 습관이 그렇데 들지 않았나보다

머릿속에 장황한 스토리라인이 있으면 뭐 하나
이러다 술먹고 까먹으면 그만인데

얼른얼른 부지런히.
하지만 천천히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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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바위

수련장 2011. 4. 6. 13:34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 호랑이 나왔다고 말하면 믿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인데. 사람이 실로 그러하다. 헛소문이건 마타도어이건, 수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떠들어대면 내가 날카로운 회색 뇌세포의 소유자가 아닌 담에야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뻥]이라는 거, 그리고 [소문]이라는 거. 생각보다 훨씬 유용한 정치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루머의 가장 좋은 점은 치명적일 뿐 아니라 법리적으로 잡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도 들었는데?' 라고 하면 끝인 거다. 누군지 모를 정체불명의 인간에 의해 양산된 괴소문으로 끝나버린다.

꼭 없는 사실만을 가지고 소문을 양산하는 것은 아니다.
90%의 사실과 10%의 자기의견만 잘 버무려도 좋은 해꼬지감을 만들 수 있다. 사람이란, 늘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피력하게 되어있는지라 100%의 사실을 제2, 제3의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달해줄 수 없는 동물이다. 그러니 돌고돌고 돌다보면 전혀 다른이야기가 되어 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낫는 감기 바이러스가 지구한 바퀴 돌고 오면 치명적인 살인독감으로 변하는 것처럼.

문제는 사람이다.
늘 문제는 사람이다.
악의적인 내용을 퍼뜨려서 사람을 말려죽이겠다는 심보를 가진 인간들이 존재한다. 분명코 악당이지만 그런 정신나간 인간들은 인생사를 살면서 거진 만날 일이 없다. 만약 만났다면 내 인생이 재수없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종의 [정의감]에서 자신이 들은 안타까움을 다른 이들에게 표현하면서 후술한 소문을 퍼뜨리게 된다.

딱 잘라 말해서, 야바위짓이다.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고민을 해 본다면 남의 일을 풍설로 옮기는 일 같은 건 하지 못한다.
저 이가 당한 일을 내가 당할 수 있고, 내가 피해자도 될 수 있고 가해자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당연히 할 짓이 못된다. 사람을 병들게 만드는 것은 내가 모르는 흉악인에 의한 위해가 아니라 우리들이 익히 아는 나와 내주변인들이 사람 중에 쏟아놓는 독설이다.
한 마디로 지금 내가 보기에 기분나쁘고 가당찮으니 뭐라도 응징해주겠다는 것인데...우리가 얼마나 살았는가. 대라신선정도 산 입장이 아니라면 타인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 할 자격은 거의 없다. DNA라도 섞였던가.

이것은 시스템적인 문제에 대해 따져드는 내부고발자와는 다른 문제다. 성문화되어 규정된 조직규범을 상급자의 위세로 불법화 시키는 것에 대한 항명과 고발은 개인적인 인간성에 대한 험담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것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보는 듯 하다.

내부고발자를 배신자로 보는 심성이나 자신의 야바위짓을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여기는 것이나.

어쨌거나 남 탓말고 내 수양이나 쌓아야겠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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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일은 안 하고 웹서핑을 하다 종종 들어가는 커뮤니티가 있다.
남초커뮤니티인지라 여자타령이 주를 이루는데
가끔 보면 결혼 못한 솔로들에 대해서 애인이 있거나 가정을 이룬 사람들이
인생의 선배인양 지엄하게 뭔가 한마디 하거나 지식을 전수하려는 모습을 보곤 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혼자 있다.
원래 혼자는 아니었다.

아무려나, 가만히 그 가운데 글을 읽자니 모든 것은 사람의 욕망의 헛됨에서 비롯되나니
삿된 길을 버리고 정진하라고 써 놓았다. 맞는 말이다.

개뿔은, 지들도 다 그랬으면서. 확률게임의 승자가 된 것일 뿐인데 그것을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욕망이 없는 애정이라는 것이 가능하냐. 다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라도 되는거냐?
어차피 세상의 법칙은 불공평의 잣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없는 자는 뺏기고 가진자가 다 가져갈 것이라고 성경에 조차 써 있는 바, 사람의 일에 대해서
확언을 하는 사람은 나는 경계한다. 어느 날 내가 길을 가다가 하늘에서 산봉우리가 떨어져 깔려죽는 일이나
결혼을 해서 애를 갖는 일이나 똑같은 우연의 상황일 뿐이다. 그 빈도수의 문제일 뿐이지.
하지만 그것을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해냈다고 좋아한다. 교만이다. 

나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나도 성취한 자의 자리에서 교만하게 오시하며 내가 간 길을 걷지 않는 자들을 깔보며, 빈정대고
저들의 무능함을 비웃으며 좋은 충고랍시고 개인의 한정된 경험을 금과옥조인 양 이야기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이 글을 이렇게 쓴다는 것 자체도 개인의 생각이고 감정일 뿐이지 결코 어떤 식의
객관적인 사항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절대 객관적이 될 수 없으며 이성은 감성을 예쁘게 포장하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는 것을 은연중에
설파하는 교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교만하다. 가진 것으로 교만하고 남들보다 시간이 많음으로 교만하고, 오래 생각하는 것으로 교만하고
글을 좀 쓴다는 것으로 교만하고, 남들의 화를 잘 돋구는 것으로 교만하고, 자신의 신앙이 좋다는 것으로 교만하고
부화뇌동 하지 않는 다는 것으로 교만하고, 교만하지 않다고 믿는 것으로 교만하다.

오래 살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 줄어들어야 함을 느낀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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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누구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즐겁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일이 구체화 된 서술의 형태가 되어서 시각적 묘사와 심리적 묘사가 들어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지 못하는 강박관념 속에서 짐이 되고 있었다. 아무런 글을 쓰지 못하고 있던 순간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마 글쟁이로 사는 건 힘들것이라는 단념이 맘 속 깊은 속에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세상에 글을 보여주기 시작하면 찬사와 비평이 같이 들어온다. 둘 다 마음에 짐이 된다. 어떻게 써야 한다. 이렇게 써야한다 라는 나름대로의 강박관념이 생기기 시작한다. 강박관념이 생기면 걱정이 생기고 걱정이 생기면 일을 멀리하게 되고 일이 멀어지면 관심이 사라진다. 그렇게 일은 시들해지는 것이다.

오늘 우연하게 J.D 샐린저가 한 말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서 글을 쓰는 것이 글을 쓰는 이유다." 
이것은 당연한 명제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은둔해서 뭔가를 썼다. 작품을 발표할 성 싶더니 2010년 정월에 죽어버렸다. 뭘 쓰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뭔가 쓰고 있었다. 그는 즐거웠을 것이다. 머릿속에 까맣게 잊어버리고있던 공간에 다시 불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내가 좋아서 쓰는 거 아니었던가.

어슐러 르 귄 여사는 [어둠의 왼손]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더라.
"자기 안에 있는 신이 자기의 혀와 손을 사용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들이 아는 것은 뭐란 말인가?"

그렇다.
모든 것은 그런 것이다.
한 때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것들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빼앗기지 마라.

짐을 지우는 일은 굳이 찾지 않아도 세상에는 흔하니 네가 좋아하는 일을 [일]로 만들지 말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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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교통사고

수련장 2011. 2. 3. 12:35
아버지 집에 들렸다가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고속터미널 사거리에서 직진을 받아 들어오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옆 차선의 고속버스가 쑥 밀고 들어오더니 쾅~하는 굉음과 함께 내 차를 들이받는거 아닌가.
방어운전이고 뭐고 소용없었다. 옆차가 밀고들어오는데 무슨 방어운전, 재수 옴 붙었구나 싶었다.순식간에 백머리 접히고 드드득 소리가 나는데 그 짧은 창졸간의 순간에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내 차~ 뽑은 지 얼마나 됐다고 ㅠㅠ

차를 옆으로 세워놓고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내릴때까지 기다렸다. 
"아니 운전을 어떻게 하시는 거요!"

"갑자기 오른쪽에서 차가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죄송합니다."

가만 보니 머리가 이미 하얗게 센 기사분이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일단 고개 숙이고 들어오는데, 그것도 한참 연배많은 분이 그러시니 소리질러놓은게 후회가 된다.
차는 서울 - 연무대. 연무대라. 
설에 연무대를 가는 사람들은 무얼까. 어차피 거기 사는 사람들도 있겠고
...그리고 아들 보러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

"설날인데 조심해서 가십쇼."

"예"

대충 차를 보니 내 차에 난 흠집은 별로 없고, 버스에서 붙은 도료만 좀 붙어있었다. 생각보다 내 차가 통뼈인듯 별 이상은 없는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설날 아침부터 도로에서 드잡이질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버스 보내고 집에 차를 몰고 들어왔다.

내 옆에 누군가 타고 있었으면 더했을까. 아마 체면을 봐서라도 좀 더 뭐라고 실갱이를 벌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화 내고 싶지가 않더라. 3년만 더 젊었더라도 불같은 성정을 주체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늘 일상은, 재난은, 복과 화는 내가 대비한다 하더라도 나를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는 것도 아니다. 일희일비하며 삶을 살아가기에는 세월이 너무나도 길고 짧다는 걸 느끼는 중이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화를 안 내고 그냥 보낸 것은 잘 한 일이었다. 내 스스로의 화를 참지 못하고 기분을 참지 못하면 모두에게 더러운 설날이 되었을 것이다. 손님들도 성질이 났을테고 기사는 정초부터 낙담을 했을테고 나는 왜 이렇게 인생에 더러운 일만 생기냐며 자학을 하고 있었겠지.

연산군이 이런 글을 남겼더랬다.

인생여초로 회합부다시라. (人生如草露 會合不多時)
인생은 풀잎의 이슬같아 만날날이 많지 않구나.
어차피 그렇게 조금씩 만나며 지나갈 일,  미련을 두어 무엇하랴.

세상의 일체가 꿈이요 바람이요 거품이요 번쩍이는 번개와 같은 것일텐데



나도 나름대로 나이를 먹어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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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디선가들은 설교말씀에 대한 이야기였다.
젊은 학생들에 대한 기도였는데

여러분, 여러분은 언젠가 주님에 의해 물질적인 축복과 명예를 얻을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을 잊지 않겠다고 기도하십시오.

라는 기도제목이 나왔다. 얼핏 들으면 참 고결한 기도제목이고
사실, 저런 기도제목이라는 것은 굉장히 고풍스러운 것이다.
스스로 자고함을 떠나서 신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기도가 아닐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요즘 세상에, 특히나 자본주의 사회에
주님을 믿는다고 물질적인 축복을 얻을 자가 거기 모인 수 많은 학생들 중 몇이나 될까.

여러분, 여러분은 언젠가 돈과 세상의 일 앞에 쪼들려 빈곤과 걱정이 삶을 짓누르겠지만
그 때에 주님을 잊지 않겠다고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맞는 기도제목 아닐까.
하지만 이런 기도제목을 목사님이 자라나는 청소년들 앞에 이야기하기도 그럴 것이다.
꿈은 꾸라고 있는 것이고, 꿈을 꾸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가능한게 또한 아이들이니까.
그리고 나도 모든 아이들이 세상에서 만족하고 평안을 얻으며 살기를 간구한다.


하지만 물질적인 축복이라는거, 그 무시못할 유물론적 혜택에 대해서
우리는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내가 40년 가까이 싸워온 것은
그 혜택을 누리고저 함이 아니었던가?

우리 반 학생 중 하나가 그런 말을 했다.
"참 저희 교회에는 대단한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요. 기업사장이나 판사, 변호사 같은 분들만 있고
성공하지못한 분들은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네 앞에 서 있는 이가 안 보이느냐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단다. 단지 그렇지 못하기에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거야. 신께서 보시기에는 삼팔광땡이나 망통이나 다 그놈이 그놈이란다. 하지만 그런 말을 교회 선생이라는 자가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어쩌면 했어야 할까. 신앙은 핑크빛 로맨스, 백마탄 왕자의 기다림이 아니야. 겉은 그럴지언정 발은 미친듯이 물속에서 장구질을 헤대는 백조의 헤엄과 같은거야.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기는 좀 두렵다.
요즘 애들은 피상적으로는 세상 모든 일을 어른들 못지않게 알고
심층적으로는 우리 초등학생 때보다도 못한 정서적 공감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늘 우리가 하던 기도는 어디에 갔을까
하나님 제가 풍요로와 주님을 잊지않게 하시고
제가 빈곤하여 주님을 원망치 말게 하소서. 

어려운 일이다. 신앙이던 삶이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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