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디선가들은 설교말씀에 대한 이야기였다.
젊은 학생들에 대한 기도였는데
여러분, 여러분은 언젠가 주님에 의해 물질적인 축복과 명예를 얻을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을 잊지 않겠다고 기도하십시오.
라는 기도제목이 나왔다. 얼핏 들으면 참 고결한 기도제목이고
사실, 저런 기도제목이라는 것은 굉장히 고풍스러운 것이다.
스스로 자고함을 떠나서 신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기도가 아닐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요즘 세상에, 특히나 자본주의 사회에
주님을 믿는다고 물질적인 축복을 얻을 자가 거기 모인 수 많은 학생들 중 몇이나 될까.
여러분, 여러분은 언젠가 돈과 세상의 일 앞에 쪼들려 빈곤과 걱정이 삶을 짓누르겠지만
그 때에 주님을 잊지 않겠다고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맞는 기도제목 아닐까.
하지만 이런 기도제목을 목사님이 자라나는 청소년들 앞에 이야기하기도 그럴 것이다.
꿈은 꾸라고 있는 것이고, 꿈을 꾸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가능한게 또한 아이들이니까.
그리고 나도 모든 아이들이 세상에서 만족하고 평안을 얻으며 살기를 간구한다.
하지만 물질적인 축복이라는거, 그 무시못할 유물론적 혜택에 대해서
우리는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내가 40년 가까이 싸워온 것은
그 혜택을 누리고저 함이 아니었던가?
우리 반 학생 중 하나가 그런 말을 했다.
"참 저희 교회에는 대단한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요. 기업사장이나 판사, 변호사 같은 분들만 있고
성공하지못한 분들은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네 앞에 서 있는 이가 안 보이느냐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단다. 단지 그렇지 못하기에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거야. 신께서 보시기에는 삼팔광땡이나 망통이나 다 그놈이 그놈이란다. 하지만 그런 말을 교회 선생이라는 자가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어쩌면 했어야 할까. 신앙은 핑크빛 로맨스, 백마탄 왕자의 기다림이 아니야. 겉은 그럴지언정 발은 미친듯이 물속에서 장구질을 헤대는 백조의 헤엄과 같은거야.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기는 좀 두렵다.
요즘 애들은 피상적으로는 세상 모든 일을 어른들 못지않게 알고
심층적으로는 우리 초등학생 때보다도 못한 정서적 공감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늘 우리가 하던 기도는 어디에 갔을까
하나님 제가 풍요로와 주님을 잊지않게 하시고
제가 빈곤하여 주님을 원망치 말게 하소서.
어려운 일이다. 신앙이던 삶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