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수 나가는 날'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09.12.12 강릉 가는 길 - 1 4
  2. 2009.06.10 번외편 - America(2) 7
  3. 2009.06.09 Garmisch-Partenkirchen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 6
  4. 2009.05.13 스코틀랜드에서 날아온 엽서 6
  5. 2009.03.26 에스토니아 - 탈린 (Tallinn) 4
  6. 2009.03.17 camino de santiago 6
  7. 2009.03.04 Herstmonceux 7
  8. 2009.01.10 소소한 이야기 2
  9. 2009.01.05 통영 4
  10. 2008.12.11 번외편 - America 6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 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다시 못 올 곳에 대하여

-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中 - 


1. 
모든 일은 눈이 내리는 날 시작되었다.
하늘이야 당연히 눈을 내리거나 비를 내리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햇빛이라도 쨍쨍하게 만들어주는 게 
일이니 멀쩡한 하늘에게 화풀이할 수는 없지만 사실 그랬다. 
 
  난  1년에 몇 번, 누가 밟고 가 납작해진 개똥을 보면서도 처연함을 느낄 정도로 감상적이 되는 때가 있다. 
이 상황에 지나간 추억의 끄트머리가 미늘처럼 입술 끝에 걸려 빠지질 않고 설상가상 하늘에선 눈이 내려 [먹고 사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하는 이성을 날려버린 날이었다. 인화(人和)와 천시(天時)가 맞춰진 때가 아닌가. 그럼 지리(地利)를 얻어야지.

- 가자 동해로. 바다를 보러 가자

감정이 지배하던 날, 난 일사천리로 여행을 결정해 버렸다. (뭐...일도 없고.)

버스로 2시간만에 갈 수 있는 길을 6시간 반짜리 영동선 기차를 예약하고 꾸물꾸물 기어서 동쪽 바다를 보고, 이 고질같은 감상을 날려버리던가. 이도저도 안 되면 그냥 감상에 푹 빠져서 백사장에 머리라도 박고 대성통곡을 하던가 둘 중의 하나를 하고 나면 뭔가 시원해질 것 같았다. 아, 잡설은 집어치워야겠다. 그냥 바다가 보고 싶었다. 좋지 않은가. 겨울바다. 

2.
 
비내리는 호남선 영동선에 몸을 실으러 청량리 역을 찾은 게 10년 만이었다. 동해를 못 간 지는 20년이 넘었지만 야간열차는 10년 전에 태백 옆 통리까지 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이란 늘 다르지 않은가. 하물며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지났는데.

근데 10년동안 사람만 변한 게 아니었다. 역의 시스템 자체가 변해있었다.
인터넷으로 발권예약을 했기에 극장처럼 가서 누르면 뽑힐 줄 알았는데 이게 웬 걸. 자판기는 요지부동이다.
아무리 서서 쳐다 봐도 작동법을 모르겠다. 결국 철도체계를 알 법한 아가씨한테 전화를 했다.

"ooo양, 이거 작동을 어떻게 하는거야?"
"그냥 하면 되죠"
"??? 안되는데?"
"아니 그냥 하면 되지."
"그냥 하니까 안 돼"
"왜 안되요?"
"안되니까 안 되지."
"안되긴 왜 안되요?"
   
무슨 스무고개 하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 두 사람의 [왜 되냐 안되냐]를 가지고 투덜거리다가 결국 편법으로 어떻게 표를 끊는데 성공했다. "제 친구들은 잘만 하던데 아저씨는 왜 못해용" 이라는 말에 "아저씨니까" 라고 대답하려다 그만 뒀다. 환경에 익숙해지지 못하면서부터 아저씨라는 호칭에 익숙해지는 법이니.


대합실은 한산하기 그지없고, 심지어 내 또래나 젊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그나마 생명력이 있어보이는 이는 나와 스님 한 분 뿐이었다. 평일의 영동선이라는 것이 이용하기 쉬운 곳인가.
그렇게 얼빠진 듯 앉아 있는데 갑자기 마스크를 쓴 아저씨가 내게 슬쩍 다가오더니
"공장! 공장! 120, 120"
이렇게 말을 하고 옆으로 슬쩍 사라진다.

인생 막장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청량리 대합실에서 구직을 원하는 사내의 눈망울이라도 내게서 보았던 걸까.


차 시간이 다가오고 사람들은 조금씩 불어나고, 역은 조금씩 사람들로 북적대기 시작한다. 얼른 차 시간에 맞춰 기차로 내려갔다. 

예전 부타양이 추천해 준 책 한 권을 [노르웨이의 숲]대신 끼고 조용히 앉아 출발과 동시에 책을 읽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혹시 아는가. 나와 같이 뜬금없는 감상에 휩싸여 드넓은 동해를 보고 싶어 기차에 탑승하는 긴 생머리의 묘령의 아가씨라도 옆자리에서 만날 행운이 있을 지. 그러면 같이 여행할 권리에 대해서 토론을 해 볼 수 있지 않겠나. 호젓한 열차 안에서.



"여기가 내 자리래요?"
걸쭉하니 들려오는 강원도 말씨.
돌아보니 맘 좋게 생긴 할머니 한 분이 내 옆자리를 보면서 히죽 웃고 계신다.
아, 여기 맞는 모양이네요.

역시 여행은 출발부터 사람의 환상과 달라지기에 여행인 것이다.

기차는그렇게 서울을 떠나기 시작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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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Ken, 다운타운에는 가지 마."

"왜?"

"위험하다고."

뭔가 쓸만한 이름이 없어 Kenneth의 Ken을 썼다가
일본친구들의 동족 연대감이 섞인(?)애칭을 받으며
남부 캘리포니아 모 대학 기숙사에 6개월간 틀어박혔을 때의 일이다.

어차피 기숙사에는 돈없는 인간들이 모여서 눌러붙기 마련인데
한국인 나
독일에서 나타난 프란츠
일본친구 유이치
멕시코 친구 호세

뭐 이런 다국적군이 편성된 기숙사를 쓸 때의 일이다.
(본토 미국인은 인디언도 안 들어있는 이 기막힌 배치라니.)

매일 하는 일이라곤 밤에 일본 닭고기 라멘이나 데워먹으면서 Sci-fi 채널이나 보던
다국적 오덕들이었는데
어느 날 멕시칸친구가 술이나 사 오자더니 차를 빌려왔다.

"어디 가게?"

"다운타운!"

나랑 일본인 친구는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죽고싶냐! 거긴 위험하다고!"

하루 아침을 여는 break news를 보면 당시 다운타운에서는 갱들의 전쟁이 한참이었고
그 작은 소도시에서 일주일에 한명씩은 꼬박꼬박 죽어나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 멕시칸 친구는
"위험하다니? 전혀! 안 위험하다고!"

이 멕시칸 친구는 알바로 학교 Security를 서고 있었고, 게다가 아마레슬링 선수였다.
게다가 그 자신감있는 말투와 기숙사 작은 방에 쳐박힌게 물릴대로 물린 우리 동양인들은
(가만..프란츠는 어디간 거지? 다른데 갔나보군.)
마치 금단의 비술에 홀리기라도 한 듯 어기적 어기적 다운타운으로 한밤중에 출발했다.

그리고 도착한 어둡기 그지없던 다운타운...
위험하지 않았다.
멕시칸들이 엄청나게 많았거든.
호세에게는 [위험하지 않았던] 거다.
호세 덕인가, 아무런 문제도 없이 맥주를 잔뜩 사 싣고 다시 기숙사로 들어온 유이치와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끼리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글쎄..."

같은 일은 유이치와 LA에 같이 갔을 때도 있었다.

"리틀도쿄는 위험해!"
"LA에서 가장 안전해!"
"코리아타운이 더 안전하다고!"
"코리아타운이 제일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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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스스로의 굴레가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모양이다.
아마 그럴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와 다른 경우에 공포심을 느낄지도 모르고.

그 때는 우린 다 젊었다.
적어도 그 때는 같이 가자면 차를 타고 같이 가 줄 담력은 있었다.

아마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공포심을 많이 느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과 전혀 다른 사람들이 내 주변에 등장한다면
아마 나는 그들을 두려워할 것이고, 그들 역시 나를 두려워할 것이다.
이미 나이를 먹었고
내 주변에 훨씬 익숙하고
내 주변밖에 모르니까.

사람이라는 것은
어쩌면
Territory를 가진
곰의 삶하고 다를 바가 없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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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지역에 위치한 관광도시,
독일 최고봉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고도로...스키관광객이 많이 몰려온다고 한다.

좋아하는 작가인 미하엘 엔데의 고향이기도 하며
리하르트 스트라우스가 말년을 보낸 곳이기도 한 곳.

나도 늙어서 저런
고봉이 보이는 동네에서 죽고 싶은데.

이 발음도 후지게 어려운 이 동네에 대해 알게 된 건
예전 관광잡지에 광고를 게제할 때 봤던 여행지 중 하나였다.
가기도 힘들지만,
가 보면 잊지 못할 것 같은 동네였다.
하기사 사진만 보고 다가섰다가 낭패를 본 곳이 많으니
조심해야 할 사안이겠지만

참 아름다울 것 같아~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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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그에서 날아온 엽서 한 토막

"오라비의 지경이 넓어지길 바라겠습니다"

겉표지는 [윌리엄 월레스]


지구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관광을 갔다가 내 생각이 나서
엽서를 부쳤다.

그저 고마울손.

그 녀석의 말에 따르면

스코틀랜드는 아름답지만 슬프단다.


한 번 가보고 싶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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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수교한 에스토니아의 항구도시이자 수도.

한번 여력이 되면 가고 싶다.
이번에 구입한 책에 나온 도시인데
도시 자체가 요새도시라는...

예전에 튜튼 기사단이 돈을 주고 구입한 땅인데
항구 전체를 요새화 한 도시란다.
음...WOW의 스톰윈드 비슷한 도시인가보다.



에스토니아도 우랄알타이어족이라는데
뭔가 비슷하지 않을까?



이럴수가, 항구는 현대식이잖아?
하긴...뭘 생각한건가.

사실 물가가 오르기 전에 가 봤어야 하는 동네인데
정말 세계는 넓고 가 볼 곳은 많구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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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만
가겠다 하는 곳은 언젠가 가는 종류의 사람이니
언젠가는 가리라 마음 먹은 곳이 두 군데 있다.

한 곳은 예전에 들려봤던 체코의 프라하와 체스키 크름로프인데..그렇게 절박하진 않고.
또 한 곳은 이 곳, 카미노 데 산티아고. 일명 순례자의 길.

사실 지명이 아니라 도보여행의 길이다.
예전 성 야곱이 유럽에 전도를 하기 위해 걸었다는 그 기나긴 800km의 도로를
도보로 걷는 여행을 이야기한다.

프랑스 생 장피에드포르를 출발해서 피레네를 종주해서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 걸어가는
(한니발이나 나폴레옹도 아니고 이런 전도여행을 하다니...)
장장 800km의 도보여행.
하루에 7시간의 도보. 약 90리의 길을 걸어가며
자연을 보고, 건물을 보고 포장 안 된 흙길을 걷는 순례자의 모습으로
한 번 걸어보고 싶다.
유럽에서는 꽤냐 유명한 도보 여행코스라고 하고
한국인들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란다. 

아마 나이가 좀 더 든 뒤에 혼자, 아니면 뜻과 영혼이 맞는 이와 함께 걸어가고 싶다.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 덕에 유명해진 길이긴 하지만
나는 이곳은 [시사인]을 동해 처음 기사를 접해 보고
꼭 한 번은 걸어보리라 생각하고 있다.

홀로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거나
같이 걸으면서 삶이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겠지.
이도저도 아니면 불평과 불만이 터져나오는
지옥의 천리행군이 될지도.

언제쯤 저기 갈 정도의
시간적 여유과 금전적 자유로움이 허용될까?

지금으로써는 난망한 일이다.

Posted by 荊軻
,

영국 이스트서섹스에 위치한 고성.

Herstmonceux....이걸 어떻게 발음할까?
영어권 애들도 허스먼수 or 허스트먼주 두가지를 놓고 헛갈리는 듯....
에르스몽소라고는 안 하는 듯.

웹에서 이리저리 뛰놀다가 눈에 확 들어온 사진.
아무래도 내가 머릿속에서 그린 그림하고 가장 잘 매치가 되는 사진같다.
저 길고 좁은 석교가 가장 인상적이랄까.

그나저나
커피를 한잔 마셨는데도
졸음은 끝없이 쏟아지니 이거야 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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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이야기

- 시간이 되면 일본이라도 가 보지 그러냐

내가 그 곳에 맞는다는 걸 이젠 대충 부모님도 아신다.
말은 한 터럭 못 알아먹지만 편하다는 거.

혼자라면
가장 편한 동네.

하지만 지금 사정으로는
너무 먼 곳.

- 그냥 통영이나 하루 이틀정도 다녀 올랍니다

- 통영에 뭐가 있냐

누구나 묻는 소리
아무도 없다.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어감이 좋아서.
미륵산에 올라가 보고 싶어서.

- 그냥 가 보려고요

- 그래라

 히사시 조의 [하나비]를 듣는다
Sea of Blue를 듣다가 든 생각이다



일본은
어울리는 사람하고
같이 갈 거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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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역수 나가는 날 2009. 1. 5. 11:25

나는 윤이상의 음악이 맞지 않고
청마의 시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날 풀리면 가 보련다

알지 못해도
끌리는 사람이 있듯이
땅도 그러하다
Posted by 荊軻
,
미국에 맨 처음 갔을 때

어학연수인지 뭔지 하겠다고 나섰던 때

집도 절도 모르고 어디에 붙어있는줄도 모르는 미국의 코딱지만한 도시를 향해 떠났을 때

연고라고는 하나도 없고, 가진 거라고는 학교 이름밖에 모르는 채 낯선 도시에 떨어졌을 때의 당혹감이라니.

그냥 쌍발 프로펠러기를 타고 작은 공항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무조건 시내로 달리자고 했다.

무진장 푸르렀던 도시,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건 끝없는 포도밭. 포도밭.


한참을 가던 택시기사.

"목 마르지 않아?"

갑자기 Gas station에 차를 대더니 매점으로 들어가서 콜라 두 개를 사왔고, 하나를 나한테 줬다.

"하늘이 좋지? 좋은 날이야."

두 사람은 잠시 차에서 내려서

푸르른 하늘을 보면서 콜라를 마셨다.


세상 물정 모르던 20대의 동양청년과 황혼에 다가가던 흑인 택시기사.






* 노친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심 외곽을 한 바퀴 돌았어...*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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