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수 나가는 날'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08.12.03 뭔가 빼 먹은 것이 있었다 3
  2. 2008.11.25 정동 4
  3. 2008.11.14 France(1) 4
  4. 2008.11.12 Britain - 2 2
  5. 2008.11.12 Britain -1 2
  6. 2008.11.02 Prague-3 4
  7. 2008.10.26 Prague-2 2
  8. 2008.10.20 Prague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영국으로 바로 날아간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억을 뒤집어서 생각해 보니

서울에서 북빙항로를 따라 러시아 전역을 거꾸로 날아가서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공한에 내렸던 것이다.

내 첫번째 기착지는 독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독일을 좋아하나?)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기억나는 거라고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화장실에 갔는데

소변기가 내 가슴팍까지 올라가는 초고층 사이즈여서
까치발을 하면서 볼 일을 봤다는거.

그때부터 게르만족의 신체구조에 대해서 경외감이 들기 시작한 모양이다. 나중에 94년 월드컵 때 독일을 막판까지 추격하면서 선전을 보여준 우리나라 국가대표들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갖게 된 계기...

하지만 네덜란드 가보니까 독일 사람은 상대도 안되더라.(-.-)

세상은 넓고 키큰 넘은 무지하게 많더라는 사실.

끝.


Posted by 荊軻
,

정동

역수 나가는 날 2008. 11. 25. 10:47
예전 사무실이 정동근처였습니다.
정동은 참 이상한 동네예요. 서울의 4대문 안에 있으면서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침묵이 안에 있습니다.
성당과 미술관과 교회와 덕수궁, 대사관이 교묘하게 진을 치고 있어서 마치 그 안은 어떤 금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예전 친한 후배의 누나가 유서깊은 정동교회에서 결혼을 했었고, 죽 오다보면 브라질 바베큐 집이 하나 있고 그 맞은 편으로는 수녀회가 있으며 그 앞에는 예전 MBC, 지금의 경향신문터가 있죠. 그리고 그 주변골목에는 수많은 맛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죠. 아, 가장 중요한 정동극장을 까먹었군요.

갑자기 오늘 그 생각이 나네요.

그 안에서 덕수궁길을 따라 산책하면서 이것저것 상념에 빠져 개폼잡던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정동이라.
정동정동정동정동

정동영 동영상을 봐서 그런건가.

Posted by 荊軻
,

France(1)

역수 나가는 날 2008. 11. 14. 16:17
예술과 평등과 자유의 나라라는 프랑스가 다음 기착지였는데 여기부터는 정말 럭셔리한 버스여행이었다.
원래 꼬질꼬질 거지여행을 각오했던 나로써는 더할나위없는 호사였고,(그래서 정말 가기 싫어햇었다.)
아마도 다시는 그런 일을 못할 거라는 생각도 있다.

칼레에서 파리까지 버스를 타다니...놀라운 일 아닌가. 우리나라처럼 산세가 천변만화하는 지형도 아닌
그냥 둥그런 능선만 이어진 푸른 목초지가 그 먼 거리를 계속 잇고 있는 광경은 경이롭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솔직히 가장 놀라운 장면이었고, 이 경험을 날려버린 건 독일의 슈발츠발트였지만 둘은 상이하니 어쨌거나)

그래서 파리로 넘어갔는데...

파리는 실망이었당.
내가 갔던 때가 여름철이어서
진짜 파리지앵들은 다 어디론가 휴가를 가 버리고 빈 도시를 관광객들만 유랑하고 다녔기 때문....

게다가 그곳에서 찍었던 사진이 하나도 안 남아버렸다.
필름을 감다가 다 감긴줄 알고 열었는데 필름이 찢어져버리며 후루룩 다 풀려버리는 초유의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면서 (어흑...디카가 없던 시절이란)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에펠탑 아래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친구가 찍어준 사진 뿐이었당.

설상가상, 아무도 안 들리는 인문사 박물관에 혼자 들어갔다가 일행과 버스가 사라져버리는 초유의 사태 발생.

지금같았으면 호텔 번호만 외워놓고 깡으로 버텼을 법 하지만 순수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20세 청년은
파리에서 미아가 되면 중동으로 납치되어 평생 노예가 된다는 당시의 [믿을만한 소문]에 귀가 쩌든 상태인지라
패닉에 빠져버렸다.

그래도 구명도생할 길은 찾아야겠기에
그 당시 에펠탑 광장 옆에서 과일을 팔던 집시처럼 보이는 아줌마에게
안되는 불어로 물어물어서 버스를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제2외국어가 불어였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이었고, 사람이 절박해지면 초인적인 능력이 생긴다는데 그때 나는 불어로 이야기하고 그 아줌마가 이야기하는 걸 다 알아들었다! 아니, 아줌마는 손짓으로 이야기했지...-.-)

아~ 그렇게 슬프게 다녀온 프랑스.
아마 다시는 못 가겠지....이런 환율에 돈 아까운줄 알게 된 나이라면.
Posted by 荊軻
,

Britain - 2

역수 나가는 날 2008. 11. 12. 12:18

당시 상황이 90년대 초반, 3저호황의 황금기를 마지막으로 누리며 두화니와 태우가 밥솥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던 시절이다. 국민들도 이 정도면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던 시점이었고 해외여행도 슬슬 늘어나던 시절이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돈가지고 그 짓하느니 어디 적금이나 때려 넣었겠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 세상견문 넓히는 게 좋은 일 아니었겠나 싶기도 했나보다. (사실 요즘같은 시절에 그 때 갔던 나라 다시 가 보라면 죽어도 못 간다. 경비 따지다 보면 절대 못갈 나라들이 되어서...)

어쨌거나, 그 다음날부터는 일행들과 (어허, 일행이 있었어! 이거 팩키지 관광이었던게지. 난 왜 배낭여행이라고 생각했나? 기억의 치환일세. 허허 참.) 돌아다니다가 하루정도 따로 떨어져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는 친구의 친척이 런던 외곽에 사시는데 그 분을 잠깐 보러 같이 가자는 것이다. 겁도없지, 그래좋다 하고 따라 나섰는데 이 두놈이 어딘지도 모르고 기차를 탔던 것이다.


(설마 이런 기차였을까? 난 해리포터가 아니라고)

그 다음 일은 기억에서 긴가민가 한데 하여간 그 친척분이 우리를 픽업해서 갔던 건 기억난다. 동네가
이튼스쿨과 윈저성이 옆에있는 동네였다. 하여간 전원주택에 살고 계셨는데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우유를 가져가려고 하면 발이 까만 여우가 와서 좀 달라고 낑낑거린다는 괴상한 동네에 사시던 분이다.
(직업이 뭐였을까?)

그 분의 집에서 잠시 점심을 먹고 기분으로 이튼스쿨과 윈저성을 구경하러 떠났다만
주말이었는지 이튼스쿨은 문이 잠겨 있고 윈저성은 공사중이라 겉만 보고 나왔다.
근데 왜 이튼스쿨을 보여주려고 하셨는지 모르겠다. 지금 와서보니 그 분이 우리를 고3으로 착각하고
어영부영 놀지말고 열심히 공부나 파라는 뜻에서 일부러 데려가신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굉장히 오래된 역사를 지닌 특목고(?) 이튼스쿨. 실제로 가 보면  황량한 분위기도 연출되고 여기저기 짱박힐 곳도 많고 안 보이는 음습한 곳도 꽤 있어서 학원폭력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는데 여기 애들은 그런 거 없는지...하긴 웬만큼 돈 없으면 출입문 구경도 못한다는 곳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다른 기억은 전혀 없는 나라 영국, 마지막으로 기억나던 건 칼레로 가는 호버크래프트에서 본 도버의 해안가 정도랄까? 너무 짧았나? 피시 앤 칩스라도 먹어줬어야 했지만 그 때는 정말 너무 어렸던 시절이었다.

Posted by 荊軻
,

Britain -1

역수 나가는 날 2008. 11. 12. 11:52
태어나서 맨 처음 비행기를 타고 가 본 나라가 어디냐 라고 물어보면 사람마다 각양각색의 말들이 나온다.
나 같은 경우는 [영국]이었다.

솔직히 영국이고 뭐고 가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10몇년 전,
대학새내기 처음 맞이한 여름방학이어서 그냥 공부에 대한 걱정없이 집에서 퍼져 자며 뒹굴수 있을 거라는 신나는 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갑자기 옆동네 고등학교 동창놈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맞춰서 배낭여행을 가자는 이야기를 흘렸고, 내가 아닌 부모님이 [성인이 되었으니 외국으로 여행 한 번 가 보는 것도 좋은 일 아니냐!]라고 추임새를 넣어서 졸지에 나는 [차표한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가 되어버렸다.

그 때까지 부산도 못 가 본 나더러 비행기를 타라니.

일단 비행기 안에서의 과정은 생략하겠다. 한가지 생각나는 건 이륙할 때 죽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는 것과 터뷸런스라는 [항공생활의 일상사]를 처음 겪을 때 생기는 공포감. 앉으면 뭔가 먹을걸 갖다주는 내 적성에 딱 맞는 비행기 서비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14시간 동안 비행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사람이 바보가 된다는 정도였다. 처녀비행 14시간은 가냘픈 20살의 청년에게 참 가혹한 일이었지만 어쨌건.


(히드로 공항이 어디 있나 둘러보다가 찾은 지도...아 이걸 봐도 전혀 공감이 안돼)

영국에 떨어졌다.
히드로 공항이었겠지. 입출국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주제에 밤공항에 떨어져서 액센트도 못 알아먹겠는 출입국 직원의 말에 예스 예스 땡큐만 하다가 짐 빼들고 튀어나왔는데 공항이 뭐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냥 런던까지 바로 빠져나오는 셔틀을 타고 (응? 배낭여행이 아니라 팩키지여행이었던 모양이군. 그래, 지금에서야 생각난다) 호텔로 들어가서 여장을 풀었다. 비행기 냉방병으로 고생 좀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그 호텔 이름은 아직도 생각난다. 



 
Posted by 荊軻
,

Prague-3

역수 나가는 날 2008. 11. 2. 23:27

프라하를 둘러보면서 가장 인상깊었고 가장 둘러보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곳은

[성 시릴&메토디우스 성당]이었다.



30대 넘은 올드 무비 팬들은 모두 아실 것이다. 2차대전비사를 영화한 것 중에 가장 충격적인 엔딩을 보여주는 영화 중 하나인 [새벽의 7인]을.

(아아 그 청춘, 새벽에 지다! 이 한마디로 모든게 나오는 카피. 당시 개봉 찌라시다)
당시 시대는 나치스 치하의 체코공화국.
SS친위대장 출신의 무자비하고 악명높기로 유명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체코 사령관으로 들어오고 체코 민중을 탄압하게 되자 영국에 피신해 있던 체코의용군을 중심으로 하이드리히 암살작전이 시도된다.

(피규어로 나온 하이드리히의 모습, 왜 어느 분 닮지 않았는가? 으허허 그건 오해입니다.)

하여지간 더 궁금한 건 영화를 보면 안다. 그리고 암살작전 성공한다.
문제는 암살을 성공한 담에 검거선풍이몰아쳐서 애꿏은 사람 꽤나 족쳤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한 사람이 동지를 배반하게 되고 체코의용군 7명은 하나 둘 좁혀지는 포위망 속에서 죽어나가고
맨 마지막 남은 2명의 젊은 용사는 [성 시릴&메토디우스 성당]에 은거한 채 최후의 항전을 맞는다.


슬쩍 찍은 성당이다. 이곳에서 나치독일군과 2명의 레지스탕스는 화력전을 펼치고, 파상공세에 시달리던 2명의 사내는 결국 성당 지하의 납골당으로 옮겨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한다.


(지하 납골당의 계단. 현재는 전시실 입구가 따로 있다. )
2사람은 지하실에 숨어서 쏟아지는 수류탄과 총탄을 견더내며 다음날 새벽까지 버텨내는 집념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문제의 환기구를 통해 소방차들과 소화전에 연결된 호스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당시 지하에 있던 두 사람은 환기구 아래 쪽에 폭탄을 설치하여 하수도를 통해 빠져나가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예상과는 다른 지점이었고 암반이 두터워 탈출에 실패하게 된다. 저위에 빛나는 곳이 환기구, 그리고 그 아래쪽 구멍이 당시 두 사람이 탈출을 하기 위해 구멍을 냈던 자리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결국 물이 목까지 찰 때까지 버티다가 극적인 최후를 마치게 된다.
(영화 새벽의7인을 보신 분들은 알리라. 그 마지막의 비장함을)


 
(현재 환기구 바깥 쪽에는 저렇게 죽은 체코영웅들을 위한 추모비가 헌정되어 있다. 저건 총알자국.)
어쨌건 하이드리히의 죽음 이후 히틀러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프라하 인근의 마을 하나를 포격해서 날려버린다. 사람들은 다 죽어버렸고...

이 건물은 유명한 춤추는 건물이 있는 부근에 있다.

한국인들에겐 그리 유명한 곳이 아니다. 추억의 올드무비 팬들이나 가끔 찾을까.
하지만 한 번은 들러볼 만한 곳이다. 그 영화가 생각난다면.
어두침침하고 을씨년스러운 납골당에서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친 젊은이들의 뜨거움이 아직도 전해지는 곳이다.

                           

Posted by 荊軻
,

Prague-2

역수 나가는 날 2008. 10. 26. 17:00

체코 전체를 돌아보는 것도 아닌 프라하라는 작은(?)도시를 돌아본다는 것은 그냥 내부가 아닌 외부를 둘러본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도쿄여행처럼 어딘가 맛있는 것을 찾아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것과는 달리 그냥 형태적인 도시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 주 목적이 있었던 듯 하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아이템과 기능성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것이 도쿄여행이라면 프라하는 굳이 비교하자면 교토여행과 비슷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의사소통의 지난함과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모른다는 정보의 미비함도 작용했겠지만.ㅎ

 
추운 겨울철의 방문이었다는 것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
첫째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옛 고도의 풍취를 물씬 줄 만큼 관광객이 적었다는 것이고 (그나마 적었다.)
단점이라면 코가 떨어져 나가도 모를 정도로 추운 날씨가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12월의 프라하라는 것은 고독하고 애잔하고 매섭게 추운 장소였다.

 

  가끔 유럽을 가고 싶어진다. 석조문화와 목조문화의 차이는 그만큼의 동경을 가져온다. 일본에 가면 말이안 통해도 대충 넉넉한 것과 달리 유럽에 가면 호사스런 곳에 있어도 감정적으로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나무와 돌의 문화 그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경외롭지만, 또한 영원히 이방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타자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의 보헤미안들은 유럽에서 떠돌기를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정서적으로 100% 동화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느끼는 과정, 92년 유럽을 여행할 때도 그러했고, 10년이 넘은 뒤 프라하에 갔을 때도 그러했다.


언제 나는 다시 자유를 살 수 있을 만큼 여유를 찾게 될까.

Posted by 荊軻
,

Prague

역수 나가는 날 2008. 10. 20. 21:01




개인적으로 체코에 대해 갖는 생각은 프라하라는 작은도시에 대한 기억 하나에 편중된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프라하에 대한 감상은 [낡고, 아직도 움직이는]이라는 말로 축약할 수 있는 자리다. 분명 산업화가 존재하고, 중국인들의 패스트푸드가 밀려들어오고 첨단의 명품들이 한쪽 켠은 차지하지만 구 광장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광휘는 아직도 이 도시에 유령처럼 머문다.
하지만 그 유령은 과거의 영광을 그대로 간직하며 후손들을 위해 각골쇄신을 하고 있으니 어찌 고마운 노릇이 아니랴. 맨 처음 잡은 호텔을 향해 밤 늦게 올라가던 그 포석의 울퉁불퉁함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유장함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Posted by 荊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