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이나 [원초적 본능]을 보면 주인공이 옆에 해변을 끼고 선글라스를 낀 채로 온갖 똥폼을 다 잡으면서 캘리포니아 1번고속도로를 우아하게 달리는 광경이 보인다. 참 멋져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옆으로 작렬하는 태양과 푸른 바다! 그리고 아무도 안 다니는 멋진 도로! 우왕! 나도 미국은 안 갔어도 오키나와에서 해 보고 싶었어!


라는 망상에 빠진 결과. 나는 오키나와 북단까지 가 보기로 한 것이다.


이게 미친짓인 것이, 내가 호텔을 잡은 나하시는 오키나와 남단 하부에 위치한 도시다. 오키나와 섬은 밀가루 반죽을 하다가 손에 힘 줘서 꽉 짜 놓은 것처럼 위 아래로 길쭉한데, 그 거리가 거의 100km.


(히밤...저 빨간 도시가 나하시다.)

말이 100km지 이게 서울시에서 강원도 홍천군까지의 거리다. 이걸 한국 지도에 맞춰서 생각을 한번만 해 봤다면 그런 뻘짓거리는 안 했을 것이다. 홍천군까지 가서 사진 한방 찍고 다시 서울로 오는 짓을 당일치기로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거 미친짓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그짓을 했다.



(이야 남태평양의...아니 동지나해의 호연지기가 느껴지는구나)

다시 올라가야지.



('눈물이 주룩주룩'이라는 영화를 찍은 등대라는데...영화를 안 봐서 몰라...)

다시 올라가야지~



(만명이 앉을 수 있다는 만자모...그 중 유명한 코끼리바위...그런데 날씨가 점점 왜 이래)


하여간 이렇게 북상하며 랜드마크들을 찍으면서 가고 있었다.

오키나와 북반구로 향하는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거의 없다. 그리고 옆에는 바다가 펼쳐진다. 처음 드라이브1시간 할 때까지는 정말 좋더라~ 신나게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이게1시간이 넘어가고 2시간이 넘어가니까 사람의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그 때 문득 머릿속에 들어온 생각


이국땅에 관광와서 이게 무슨 노가다야!


정신이 그제서야 번쩍 들면서, 아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예요 라고 몸이 외치고 있었지만 어느 새 나는 북반구로 가는 마지막 휴게소에 멈춰서 있었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고 시간은 사람이 가장 미치기 좋은 오후 4시.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끝을 찍고 가자. 이젠 다른 방도가 없어."


그래서 다시 마지막 40km스퍼트를 내어 저녁놀이 지기 직전, 

나는 오키나와 북단, 해도곶(해도미사키)를 찍을 수 있었다.


(일본 최북단을 상징하는 동상....이 닭새끼 하나 보려고 100km를 달려왔다고! 우헝헝헝)


해도미사키에는 이것밖에 없다. 사실, 이 닭동상 뒤에 휴게소로 쓰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건 여름철에만 연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배틀로얄'에서 주인공 죽이려고 덤벼드는 녀석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폐가로 변해있었다.


이상이 내가 오키나와 방문 이틀째 겪은 여행기다. 나하시로 귀환하는 일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다. 정말 생전 처음 우핸들을 잡은 주제에 [심야 유료 하이웨이]를 타고 호텔로 들어왔다. 살아서 돌아온게 기적일 뿐이다. 카메라를 꺼낼 엄두도 못 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도중에 방광이 터져서 죽을 뻔한 기억을 제외하고.


내가 이걸 쓰는 이유는 딱 두개다.

1. 이딴 여행동선 잡지 마라.

2. 여자건 남자건, 동행 없이 드라이빙 해 봤자 1시간 지나면 그냥 처량해진다.


마지막 오키나와 여행을 앞두고 호텔로 들어온 나는 그냥 뻗어버렸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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