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는 광고 이야기 안 쓰려고 했는데 밥을 다시 그쪽에서 먹게 되어서 한 마디만 써 보련다.


가장 병신같은 기획서는 잘 쓴 기획서다. 내가 봤을 때 더 이상의 흠결이 없도록 쓴 기획서가 세상에서 가장 병신같은 기획서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대부분의 좋은 기획서는 광고사의 입장에서 병신같은 기획서다. 광고주의 입장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도출해 주고 광고사는 거기에 밥 숟갈 살짝얻는 표시 날 정도의 기획서가 만점짜리이다.


물론 내 식대로 pt하고 대신 광고매체를 종합선물세트로 때려박는, 광고주보다 더 큰 대형광고기획사들도 있지만 그건 극소수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볼 때 즐거워한다. 남이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을 볼 때 즐거워 하고 그사람의 말에 조금이라도 맞장구를 치고 싶어한다. 인간의 삶은 욕망의 굴레를 타고 궤적을 그린다. 화폐경제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역사는 욕망의 역사이다. 


3. 

이성의 파도를 타면 본능의 벽을 타고 넘어 벽 뒤에 있는 인간성을 촉촉히 적셔줄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어느정도는 사람들의 시선이 객관화될 것이고 보다 평등하게 세상 일이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미안하지만 꿈과 같다. 이성의 파도를 뒤집어쓴 인간들은 이성으로 욕망에 덧칠을 할 뿐이다. 세상에서 유체이탈하여 모든 것을 관조적으로 볼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지 않는 한, 이성으로 조정되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솔직히 그렇게 사느니 종교적 도그마에 의해 일정수준의 계율을 지키고 사는게 더 편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으로 인해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은 일정수준의 연령이 되면 절대로 타인에게 설복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욕망의 발현방향을 바꾸기 전까지는  그러하다. 이성이고 과학이고 효과가 없다. 만약 그렇게 설복이 가능하다면 6월 항쟁 이후 한나라당은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공고하게 두 다리를 붙이고 서 있지 않은가. 인간의 탐욕은 이성에 우선한다. 그리고 제어할 수도 없다.


3.

왜 사업할 때 술을 처먹는가. 비이성의 영역에서 비공식적인 친밀함을 획득하기 위한 조건이다. 서구권은 이성적으로 해결할 것 같은가. 로비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한다. 한반도의 술문화는 소소한 로비의 총합이다. 어찌보면 한국인들은 모두로비스트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왜 생긴다고 보는가? 이성적으로는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다른 이들에게 보이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 기저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4.

요즘 보면 말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어른들이 있다. 그냥 자기가 쓰고 싶은 기획서를 쓰는 어른들이 많다. 직장 초년병 때 그런거 가지고 사장한테 가면 부모욕부터 처먹는다. 하지만 요즘은 그게 대세인가보다.


그래서 병신같아 보이는 기획서가 훨씬 이성적인 것이다.

최소한 그게 나에게 돈을 벌어다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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