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쯤 전 일요일의 일이다. 나름대로 가을남자, 추남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서 와이셔츠를 하나 사러 아울렛에 들렀다. 와이셔츠와 추남의 정취 간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아리송하긴 한데, 하여간 그 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각설하고, 와이셔츠를 사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오전 교회에서 나눠 준 떡이 발동이 걸렸다. 갑자기 배가 와르르 소리를 내면서 아프더라 이거다. 다행스럽게도 아울렛의 일요일 오전 화장실은 조용하고 사람들도 없었으니 고요한 리비도의 쾌감이나 얻고 가려고 들어갔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조금 있으니 옆 사로에도 사람 하나 들어온 것 같더라. 하여간 낯 모르는 사람 둘이 앉아서 일요일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데 조금 뒤에 어디선가 칭얼칭얼대는 소리가 하나 들리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조금 칭얼대는 딸내미와 많이 자상한 아빠의 목소리였다.
"우리 oo이 쉬마려? 조금만 기다려~"
그러더니 남자 화장실 문을 노크하는거다. 아니 엄마는 어디다고 아빠가 딸내미 화장실을 끌고다녀! 라는 생각은 그렇다 치고 열시히 노크 답을 해 줬다. 나도 살아야지. 아빠는 화장실들을 다 노크하더니 다시 터덜터덜 화장실 밖으로 나가더라. 거기까지야 다 그런 거지.
그런데 말이야.
"OO아, 지금 사람들이 모두 들어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알았지? 못 참겠어? 사람들 곧 나올거야. 응응 그래그래 조금만 기다리자. 힘들면 아빠한테 말해~"
참 무지하게 자상한 아버지더라. 화장실 입구에서 다 들리게 말을 하면 뭐 어쩌라고. 나도 인간적인 양심이 있는데 급한 거 해결되고 나면 아버지와 딸의 애처로운 대화가 귓구멍을 간지럽히지 않겠는가. 어린애가 급하다는데 내가 유유자적할 상황이 아니지. 얼른 나가주자 그러고는 대충대충 뒷수습하고 물 내리고 밖으로 나섰는데
옆 사로가 비어있더라고.
그런데 그냥 비어있는게 아니고, 누군가가 옴팡지게 싸 놓고 물을 안 내리고 간 것이었다. 물 안 내린 놈은 손이 없었나보다. (똥쌀 때 지퍼는 어떻게 내렸지? 바지를 안 입고 다니나?) 하여간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면서 밖으로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딸내미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훤칠한 아저씨랑 마주쳤다. 그런데 훈훈하다는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고 성질부터 확 올라왔다.
"저놈의 인간은 지가 남의 똥 물내리는게 싫어서 옆에서 잘 싸고 있는 사람 밖으로 내몬거야?"
딸내미가 쉬마렵다고 끙끙대면 손바닥으로 똥을 퍼내서라도 화장실을 쓰게 하던가. 남이 물 내린 화장실에 꼭 들어가겠다는 것은 뭔가. 똥포비아라도 있는 놈인가. 거 참 희한하게 가탈스러운 인간일세. 설사가 터져도 물 안 내린 화장실 앞에 가면 바지에 쌀 놈이로다. 혼자 궁시렁궁시렁 거리면서 나는 집으로 들어왔다. 아무쪼록 이름도 모르는 딸내미의 방광이 아버지의 결벽성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