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별로 멀지 않은 거리라 뒷문 쪽으로 냉큼 옮겨가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머리를 베컴형 닭벼슬로 세운 젊은 인간이 나를 보더니 눈을 홉뜬다.

아니 뭐야
해보자는 거냐

해보긴 뭘 해봐, 그냥 젊은 놈이 시비거리를 찾는거냐 하면서 똥꼬에 남몰래 힘을 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와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아이고, 집에 가시나 봐요?"

"아..그렇지요."

"저는 반포쪽에서 내려요."

"아아 그렇구나"

"운동하고 가시는 건가요?"

"그렇죠 뭐. 요즘 어때요?"

"하하 저도 그래요."

차는 밀려서 갈 생각을 하지 않는데
이 친구는 천사같은 밝은 미소와 백옥같은 치아를 보이며 나에게 급호감을 보인다
대화를 복기해 보니 우리는 이미 옛날부터 잘 알고 있었던 사이인 것 같다.

그런데 너 누구니

등 뒤로 식은 땀이 줄줄 흐른다
내가 이 친구를 어디서 봤지? 우리 권투도장? 거래처? 교회? 지역사회? 내가 좋아한 여자의 남동생이나 애인인가?
아니면 혹시 뭔가 사고를 쳤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가? 단발성 치매? 아니면 그냥 훼이크? 몰카?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땅바닥을 기어가는 버스의 속도에 반비례하여 내 긴장감은 증폭되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그 친구는 내게 계속 뭔가 말을 시키고 가끔은 예예 거리면서 고개를 숙이는데
내가 무슨 연장자 행세라도 이 친구에게 단단히 한 것 같다. 이거 정말 미칠 노릇이다.

이래서 여자만 보고 다니지 말고 사내 얼굴도 좀 익히고 다니고 그랬어야 하는건데. 
 
천신만고끝에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느릿느릿 다가갔고
드디어 버스 뒷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지옥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느꼈으니
그때서야 나느 가슴을 펴고, 뭔가 굉장히 기분좋은 안부라도 나눈 양

"허허 나중에 다시 봅시다. 잘 들어가세요"

"예예 조심해 들어가세요"

라는 마지막 허세를 작렬시키고 집에 돌아왔다.
아오 난 정말 모자라는 놈 같아. 사람 얼굴을 왜 이렇게 기억 못하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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