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3.13 소사

작은 방 한담 2011. 3. 13. 23:19
1.
손톱깎이가 사라졌다.
애들이 물고갔나 싶어서 고양이들을 졸졸 따라다녀봤는데 전혀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갈수록 건망증이 심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것 아닌가.

하긴, 어릴때도 뭐 잘 잊어먹긴 했으니.


2.
요즘 고등학생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난 저 아이시절에 뭔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싶기도 하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하루하루 사는 건 나나 얘들이나 별반 다를 바 없구나 싶으면서도
가끔은 전혀 다른 것들, 내가 그 때는 등한시하거나 접하지 못한 것들을 접하면서 사는 걸 보면
확실히 세상이 달라졌구나 싶다.

모사립고에 다니는 녀석은 클럽활동은 5개나 한다고 하는데
그 중에 국궁(國弓)을 배우는 시간도 있다더라. -0- 무지 부러웠다.
어떤 녀석은 가장 좋아하는 그룹이 오아시스라고 하는 노땅(?)도 있고 (그런데 특활부는 Debate...토론부란다)

난 그 시절에 뭘 했더라.

내 고등학교 시절 CA는 뭐였나 생각해본다.
1학년때는 [희랍비극강독부]라는 괴상한 부서에 들어가서 일년 내내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만 읽었던 기억.
2학년부터는 [불어회화부]라는 명목 아래 샹송 틀어놓고 한시간 내내 자던 기억 외에는 없다.

우리 때보다 훨씬 컨텐츠도 풍부해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 같더라.
좋아지는 걸까?
애들에게 조금만 더 여유를 준다면 참 바람직한 것 같은데.

여유, 한국인들에게는 천성적으로 부족한 것일지도.

3.

그렇게 오랫동안 읽는 걸 미뤄왔던 어슐러 르 귄 여사의 [어둠의 왼손]을 
오늘 하루만에 다 읽었다.
SF라고 하지만, 뭐랄까 내가 제목에서 유추했던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었다.

인식과 실체, 공감과 비공감에 대한 연구를 가상공간을 통해 구현한 상황극이랄까.

어슐러 르 귄의 소설을 읽다보면 이 사람은 SF를 가장한 의미론의 설파자라는 생각이 든다.
호칭과 사물과 언어의 상관관계에 대한 주제가 빠지지 않는다. 이 사람의 소설을 읽다보면
나는 늘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난다. 확실히 공감하는 바가 있다. 
언어가 갖는 [사물에 대한 호칭]이라는 능력은 확실히 대단한 것이다. 고대로부터 이것은
주술적인 의미가 다분히 있어왔고, 의미론적인 측면에서도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넘어서는 심도가 
있다고 믿는다. 성경의 창세기 처음이 하나님이 말로 천지를 하셨다는 것은 비존재에 재한 존재성 부여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상징적이다. 하여간 요즘은 이런 고민들을 종종 하곤 한다.


4.
한 주간 체해서 죽을 뻔 했다. 
이제 맛난 것보다 소화가 잘 되는 걸 찾아다닐 때가 되었나보다
어이구 내팔자야


5.
일본인들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난 솔직히 역사적인 가해자, 침묵의 방조자, 진실의 은폐자로써의 일본정부와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를 굉장히 혐오하지만
개개인에 대해서는 전혀 그런 감정이 없다. 
[소년H]를 읽고 나서는 더 심해진 것 같다.

어느 나라 역사를 보던간에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일반국민들은 정보취득에 무능하고 통제당한다.
이번에도 잘먹고 잘 살고 나라의 방향을 만드는 놈들은 죽은 놈 하나 없을 것이다.
그저 농사짓고 고기잡고 장사하던 평범한 일본인들이 천재지변에 휩쓸려 희생당한 것이다.
우리나라라고 다를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 청산을 원하지만, 그릇된 유산을 방패삼아 호가호위하지 않는 한
나는 연좌제를 반대한다. 

분명 그릇된 역사에 대한 자존심을 세우는 이들도 있을테지만...
원자로 노심도 녹고, 마을 하나가 다 휩쓸려 나가 죽어버린 사람들에게
지금 과거사를 반성하라고 다그치는 건 축생지심일 것 같다. 

그냥 더 이상 죽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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