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을 할 때 살아있는 생물과 같이 오랫동안 살다보면 둘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교감이 생기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 생물이 갑각류나 어패류같이 아예 극단적으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종이 아니라
같은 온혈동물이나 포유류같은 고등생물체(뭐가 고등이지..하여간)랑 살게 되면
대충이나마 감정의 교류도 이뤄진다.

뭐, 오래 산 것도 아니다.
고양이랑 산 지 한 3개월 되었나.
대체 사람하고 사는 거랑 뭐가 다른건지 이젠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배고프면 징징대. 성질나면 앙앙대. 내가 성질부리면 도망가
좀 있으면 다시 와. 그러다 시간 지나면 화해해. 화해하면 또 잘 지내
그러다가 또 삐지면 서로 삐져. 그러다가 다시 친해져

그냥 사람 사는 짓거리에 아무런 다른 것이 없더라.

이쯤되면 심각하게 고뇌하게 된다. 여자를 만나서 되지않은 작업에 돈 들여가면서
어떻게든 연분을 이어볼까 하는 내 노력이 과연 고양이랑 사는 것보다 얼마나 더 나은 생활을 제공하게 될 것인가?

2세의 탄생과 생리적인 욕구충족 말고 뭐 다른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같은 언어체계와 사유능력을 가지고 이것저것 공유하는 감정의 깊이야 고양이보다 낫겠지만
결국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은
배고파, 성질나, 삐졌어, 이리와, 토닥토닥, 잘해보자, 알라뷰
이것밖에 더 있는가 말이다.

물론 하나 있긴 하다.
내가 숨이 넘어갈 때 고양이는 119를 불러주지 않는다는 것.
결국 내 편협한 생각에 따르면
Emergency를 위해서 같은 사람과 동거해야 한다는 말인데.

생각이란 늘 발전하고 변화하고
바람이 방향을 바꾸듯 이리저리 바뀌니
어느 날, 내가 어떤 여자사람을 붙잡고 "당신 없으면 못 살것이오!" 따위 낯짝간지러운 이야기를 쏟아부을 지도 모르지만 (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지금 내 삶에 있어서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고양이 사료값만도 못하다.

거시적으로는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주위사람들은 말할테고, 나도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긴 하는데
뭐, 현재 감정이 이렇다는 걸 숨길수는 없지 않은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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