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

작은 방 한담 2016. 8. 12. 02:04

계절은 시냇물과 같다. 어디서부턴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되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넘어간다. 우리는 늘 같은 것을 겪고 느낀다고 하지만 한번도 같은 계절이 내 인생이 돌아온 적은 없다.


굉장히 무더운 날이 지속되고 있다. 94년 이후 최고의 더위라고 했다. 

  94년, 나는 그 때 웃통을 벗고 군대에서 진지보수공사 작업을 하던 청춘이었다. 뜨거운 햇살에 등이 시뻘겋게 익었고, 타이어에 흙을 채워 구조물을 만들고 다시 다음 해에 헐고 재공사를 하던 쓸모없는 반복작업 앞에서 나는 의미없이 지쳐갔다. 그 때 나는 절망적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같은 경험을 해 본 적 없는 막힌 사회의 폐쇄적인 집단생활이라는 것은 결코 26개월 후 나를 자유롭게 해 줄 것 같지 않았다. 하루의 무덥던 해가 떨어지고, 내무반으로 들어가 빨래를 하고 방전된 배터리처럼 구석에 처박혀 내일 아침엔 깨지 말기를 바라며 다음날 아침을 맞이했었다. 그 해 여름은 정말 덥고 절망적이었다.


2016년의 여름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나이를 먹었고, 아이가 있고 부인이 있으며 뭔가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이 천직이라고 생각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밥을 주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한다고 해서 밥이 나올 거라는 보장도 없다. 나는 열린 세상에서 가능성이 얼마인지 모를 세상일을 하기 위해 열기를 복사해 내뿜는 콘크리트 위를 오가며 지쳐간다. 뭔가 나를 자유케 해 줄 것만 같은 삶이 내 앞에 있는데 정작 나는 더위만을 꾸역꾸역 먹으며 오늘 올 지 내일 올 지 모르는 희망을 찾아 맴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일이 나를 자유케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는 다시 절망으로 빠져들까.


분명 더위는 똑같지만 같은 것이 아닌데.

왜 내 몸은 다르다 말하면서도 늘 이렇게 지치는 것인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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