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사내가 글을 쓰다가 막히는 것이 있어 모르는 이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자신은 자신의 글을 쓰고 싶은데 읽어주는 독자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요즘 시류를 따라 보다 가볍고 자극적인 글을 써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 계속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는 전업작가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어했다. 그런 그에게 조언을 주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현실적인 대답을 주었고, 그는 그 길에서 답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풀어놓은 하소연 속에서 그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찾을 수 있었다. 필요한 것은 정당성이었지 자신의 글을 밀고 나가고 싶어하는 고집이 아니었다. 


그것을 탓할 수 없다. 내가 존경하는 김훈 선생도 자신이 풀어놓는 글이 돈이 되지 않는다면 바로 그 길을 때려치고 막노동이라고 할 것이다. (그 분이 누누이 시간될 때 마다 말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간단한 노릇이다.) 그런 마당에 전업작가가 되어 돈을 벌고 싶다는 사람에게 네 글을 온전히 지키고 그 안에서 도리를 찾으라고 감히 설교할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해서, 그 사내의 글 뒤에 엉망인 글으 ㄹ써서 늙어 죽을 때 후회하고 싶냐는 글을 달았다가 겸연쩍어 금세 지워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가진 재주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선 사내에게는 타인이 뭐라고 할 수 없는 결심이 있는 것이다. 그저 그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일 터, 나는 내 쓸모없는 오지랍에 입맛이 썼다.


2. 가만히 사내를 통해 나를 들여다본다. 난 지금 무협소설을 쓰고 있다. 지독하게 팔리지 않는다. 원하던 바와 다르게 작가주의 작가로 전직한 지 오래되었다. 난 내 글이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독자들을 어려워한다. 난 나이를 먹었고 인터넷으로 텍스트를 바라보는 이들은 한참 연령이 내려갔으며, 그들은 활자의 가독성을 그 안에 있는 함의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게 시대가 요구하는 것일진대, 나는 시나브로 작가주의 무협작가가 되어버렸다. 


나는 욕망을 거세한 유학자가 아니다. 나 역시 돈에 대한 미련이 누구보다 큰 사람이기에, 전술한 작가지망사내의 고민을 떨쳐버리지 못하였다. 문제는 내 글에 대한 두려움이다. 글은 사람의 생과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얄팍한 재주를 통해 밖으로 밀려나오는 것인데, 시류를 따른다고 하여 그것을 억지로 밀어넣으면 그것은 온전한 내가 아닌 것이다. 나는 글을 이런 식으로 밖에 쓸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미 글을 쓰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글로 표현되는 내가 진정한 내 내면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면, 나는 엄숙하고 진지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양쪽으로 갈라놓고 한 쪽에 저울을 대기 원하는 인간이다. 이런 사람에게 이렇게 혼잡하고 바쁜 세상에 맞는 글을 원한다는 것이 이미 글러버린 소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작가지망생 사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낙백한 사내의 허튼 소리일지도 모를 일이다.



3. 이런 연유로, 나도 반대급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상소리와 성교와 폭력이 서로 엇갈리며 쉽고 빠른 복수와 인간관계의 해결을 모토로 하는 간식같은 소설을 써 볼까 하는 생각이 가끔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아마도 몇 만자 정도 쓰다가 내 자신에게 화를 낼 것을 알기에 나는 더 이상의 상념을 이어가지 않는다.


4. 내가 진짜 재미로 쓰고 싶은 소설은 하나 있다. 내가 존경하고 닮고싶은 글을 가지고 있는 '자건'작가가 쓰다 만 [풍운비양]을 보면서 늘 느끼던 것이었다. 난 나중에 초한지를 한 번 써 보고 싶다. 그 안에 한 번 들어가서 이야기를 그대로 쓰고싶다는 생각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다음의 이야기다. 지금은, 그냥 혼자 앉아서 왜 사람들이 내 글을 읽지 않느냐며 화를 내는 중년으로 남고 싶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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