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見.聽,感 2012. 12. 29. 14:24

빅토르 위고 원작의 레미제라블은 이미 국민학교 시절부터 읽었고, 그 때도 참 구구절절한 인간사로구나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조금 뒤 청소년기에 들어가서 교회생활에 심취해 있을 때에는 '아 주님의 은혜는 이렇게 죄인의 삶을 통째로 바궈주시는구나."하면서 감동하며 읽었다.


그리고 지금 중년의 삶이 왔을 때는 역사적인 배경이 보이더라. 혁명 이후 다시 반동의 세력이 정권을 잡고 그 기나긴 시간동안 일과가 되어버린 투쟁의 나날, 타파되었다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계급의 그늘, 살기좋은 세상을 찾아 일으킨 혁명으로 점점 빈곤해지는 일상사와 약유강식. 아마 빅토르 위고는 이것을 기반으로 신앙적 바탕 안에 극적 장치를 설정했을 것이다. 빅토르 위고는 공화주의자였다. 복고의 시절을 견디지 못해 망명까지 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의 눈으로 본 프랑스의 형국은 절대로 푸른 하늘 아래 드넓은 초장이 아니었으리라.


어저께 뮤지컬을 각색한 영화 [레 미제라블]을 봤다. 나름대로 발성좋은 배우들의 연기였으니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 오히려 뮤지컬에서 볼 수 없었던 구도와 클로즈업의 묘미가 극적 감동을 더 가져왔달까. 재미있었다. 남의 나라 혁명과 거지의 이야기니까 극장에서 봤지 이게 대한민국 극작가가 쓴 글이었다면 아마 그 작가는 구속되거나 지금쯤 코렁탕을 먹고 있을 법 하다.


각설하고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책으로 읽으면서 놓쳤던 부분 하나는

남주인공 [마리우스]가 관여했던 학생운동은 처절하게 실패로 끝난다는 것이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책을 동화판으로 봐서 그랬나 아니면 로맨스에 몰입해서 숲이 안 보였던가? 아무런 고통과 회환도 없이 그저 슬쩍 지나가 버리는 혁명과 운동의 실패. 빅토르 위고도 별 다른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 뮤지컬이 축약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덤덤하게 지나가 버리는 혁명의 실패는 뒤 이어 나오는 코제크와 마리우스의 혼약에 묻혀버린다.


아마도 한국이었다면 불굴의 의지로 혁명이 성공하며 피에 물든 태극기를 날리는 민중들의 아우성으로 영화의 대망이 끝났겠지만 레미제라블은 그렇지 않았다. 난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참을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빅토르 위고는 왜 그랬을까.


아.

결론은 우리나라의 축약된 역사였다. 

프랑스는 혁명만 80년 가까이 끌어오면서 민주주의를 가져온 나라다. 사사오입해서 백년간 자국의 투쟁이 있었다. 빅토르 위고는 19년을 망명으로 보냈다. 한 두해 한다고 성공하고, 한 두명 대통령 민선으로 뽑힌다고 짜잔 나타나는게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흐름에 대한 인내, 희망에 대한 장구한 믿음이다. 피가 흐르고 흘러서 겨우겨우 맺히는 게 민주주의의 씨앗이거늘. 우리는 기껏해야 20년 아닌가. 아직도 60년이 남았고, 두 세대가 더 가야 하는 것인데.


언젠가 그 날이 오리라. 희망으로 노래하던 레미제라블의 엔딩이 오늘 아침에서야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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