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리성 역 근처에 가면 수리성까지 자전거로 갈 수 있도록 자전거 렌탈점이 있다. 이걸 봤을 때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를 예감했어야 했는데...넉넉잡고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그냥 한적한 시골 마을길 걸으면 되니까 별다른 문제는 없었는데 만약 5월이 넘어 태양이 작렬하는 오키나와에서 슈리성 관광을 하겠다면 걸어가는 거 말리고 싶다. 역 근처에 슈리성까지 가는 버스가 있으니 잡아타고 가도록. 나는 되도록 돈을 아끼겠다는 심보로 걸어갔다. 날씨가 흐려서 걸어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슈리성 밑둥치에 세워진 오키나와현립 예술대학. 슈리성은 종전 후에 대학교로 사용된 적이 있다는데


다니던 학생들의 고생이 한양대 못지 않았을 것이다.)


슈리성은 유구국의 도성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경복궁이나 창경궁같은 스케일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아기자기 잘 짜여진 산성과 같은 모습이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천수각 하나에 집중된 군사시설의 성은 아니고 중국식의 성과 일본식의 성이 묘하게 짬뽕된 느낌의 성이다. 성벽과 대문은 굳건하니 높고, 수많은 문으로 연결된 성벽이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넓은 정전이 마련되어 있다. 나름대로 특색이 있는 문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소노한우타키시몬. 예전에 국왕이 행차하면 이 문쪽에서 남은 사람들이 국왕의 안녕을 빌었다는데...이 문은 그냥 쪽문이다. 

보통 성벽의 높이가 이 정도...이걸보면 우리나라 임금님들은 백성들이 별반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계단이 있고 더 육중한 두께의 성벽이 그 안에 있고...아열대의 석성. 앙코르와트에서도 느낀 거지만 남방아시아계의 석조건축물들은 묘한 장려함이 느껴진다. 하긴 유구국은 남방아시아라고 하긴 뭐하다. 그냥 유구스타일...묘한 요새도시의 느낌이 난다.


슈리성의 최상층부 도착, 저 붉은 문을 지나면 작은 광장이 있고, 그 안에 있는 도 다른 붉은 대문을 지나야 왕이 업무를 보는 대전과 정전이 나온다. 그런데 거긴 유료관람....여기까지 왔으니 그냥가긴 뭐하고 유료관람 실시하기로 했다. 한국사람은 아무도 안 보이고 모두 일본 열도에서 몰려온 할머니들...

들어온 정전의 모습. 상당히 아기자기하니 예쁘게 생겼다. 우리나라 정전 뜰을 생각하면 오산. 카메라가 광각으로 잡아서 그렇지 생각보다 작다. 건물 내부는 2층으로 되어 있고 왕은 1층에서 업무를 보고 2층에 진짜 용상이 있다. 독특한 모습의 궁전이다.

어떤 망할 놈이 북쪽 전각에 불을 내서 지금 보수공사중이었다. ㅠㅠ

2층에 올라가면 용상이 있다. 중산세토라...중국에서 수여한 현판중 하나. 중산씨족이 영원히 나라를 다스리기를 원하노라 이런 뜻이라고 한다. 각설하고, 2층은 사진촬영이 허가된다. 

...2차대전때 다 폭격으로 박살나고 지금 만들어 놓은 것은 사료를 토대로 만든 레플리카거든.
안내하시는 분께 카메라 부탁하면 잘 찍어주신다. 옥좌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있지만 눈 버릴 것 같아서 내 얼굴은 차마 못 올려놓겠다. 

이곳을 구경하고 나면 슈리성의 메인 관람은 끝. 이곳을 지나서 돌판을 잇대어 만든 고대 유구왕족의 오솔길을 걸어서 카페를 들러 시원한 차 한 잔 마시는 것이 오키나와 관광의 기본 코스로 되어 있지만 난 그리 가지 않았다. 사실 카페에 들려서 사내 혼자 차 마시는 것도 뭐 같고 오키나와 관광의 기본 코스튬이 청바지에 브라운 레자 자켓+선글라스였기 때문에...조직에서 딸려나가 오키나와에 도망온 야쿠자처럼 보일 것 같아서 그냥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누가 뭐라 하건, 슈리성은 일세를 풍미하던 왕국의 도성이다. 도성의 성벽에서 바라보면 푸르른 바다까지 나하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청명한 햇살이 들어올 때 성에서 바라보는 유구국의 영토는 참으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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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우여곡절 끝에 오키나와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냥 남쪽으로 죽죽 내려가다보니 오키나와다. 꾸벅꾸벅 아침에 설친 잠을 보충하고 있는데 스튜어디스가 밥을 준다. 정말 기내식으로 나오는 밥은 사양이지만 이상하게도, 기내식은 다 먹게 된다. 이것도 항공료에 포함이야! 라는 강박관념의 소치이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더부룩하니 소화가 안 되는 배를 움켜쥐고 오키나와에 내렸다. 오키나와의 현 수도, 나하시다.


(동무들, 인민의 낙원에 오신 걸 환영합네다. 젠장)

저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내 뒤로 보이는 국제선 청사는 정말 국내선 청사에 부속으로 딸려있는 화장실만 하다. 오키나와는 국내선 터미널이 어마어마하게 큰 대신, 국제선은 여객기 트랩도어도 연결 안 되는 하꼬방이다. 비행기에서 계단차가 와서 붙으면 터덜터덜 내려와서 셔틀버스 타고 국제선 터미널에 떨어지는 과정을 겪는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국제선이 직항으로 오키나와에 들어오는 것은 4개노선인가 밖에 안 된다. (아시아나 용썼다....) 대신 국내선 터미널에는 일본의 방귀좀 뀐다는 대도시에서 다 비행기가 집합한다. 특히 3월말 4월초가 되면 일본 고등학생들의 과반수 이상이 오키나와로 수학여행을 온다. 국내선이 커질수 밖에 없다. 국제선 고객이 떨거지 신세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어쨌거나, 오키나와 시내로 들어가는 모노레일도 국내선 청사에 연결되어 있다. 국제선에서 오른쪽으로 걸으면 국내선 청사가 보인다.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다. 엄청 크거든...)


국내선 청사에 붙어있는 나하 모노레일은 바보라도 찾을 수 있다. 길다란 레일이 뻗어있는데 안 보일 수가 없다. 하여간 국내선 청사2층으로 들어가서 나하 모노레일을 타면 된다. 보통 1일무료 패스가 2012년 현재 600엔이다. 나하공항이 종점역할을 하기 때문에 모노레일을 나중에 타더라도 길을 찾는 것은 쉽다. 공항도 이걸로 오는게 제일 낫다. 나름대로 나하 시도 출퇴근에는 러시아워가 있다.


그리고 나하공항의 반대쪽에는 [슈리죠], 즉, 유구국의 옛 궁궐 수리성이 종점역할을 한다. 슈리역과 공항역이 양 끝에 위치하니 길 찾기는 정말 쉬운 편이다. 그리고 모노레일 중간에 있는 아사히바시 역부터 마키시 역 사이의 1km가까운 직선 대로가 오키나와 제일의 번화가 [국제거리]이다. 그냥 이것만 알아도 하루나 이틀은 모노레일만 타고 놀 수 있다. 난 신도심 오모로마치에 있는 다이와-로이넷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오모로마치에만 있는 DFS(duty free shop)1층에 토요타 렌트카를 빌리기 쉽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왜 렌트카를 빌렸는지 모르겠다. 그냥 버스타고 돌아다닐걸. ㅠㅠ

(이곳이 DFS...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것이 호텔건물)

사진만 보고, 우와 우리으리한 거대호텔이구나...생각하면 오산이다. 다이와로이넷 호텔은 굉장히 공격적인 확장을 하는 일본 호텔 체인점이다. 하지만 비즈니스텔이 기본이라는 것. 저 빌딩은 8층까지는 일반빌딩이고 9층부터 호텔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사진에 보이는 높이부터 호텔이라고 보면 됨. 게다가 호텔 입구는 빌딩의 오른편에 쪽문으로 나 있었다. 털레털레 트렁크를 끌고 빌딩 정문으로 들어가니까 멍때리며 놀던 회사 직원이 "호텔입구는 나가서 옆입니다"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나같은 놈이 한 둘이 아니었던 듯. 하여간 그렇게 해서 호텔에 체크인을 했는데.

호텔체크인은 2시부터란다. 그래서 트렁크만 프런트에 맡겨두고 덜렁 짐만 꺼내서 슈리성을 구경하러 나갔다. 간단했다. 모노레일을 다시 잡아타고 반대편 종점까지 가면 되니까.

(젠장, 그런데 역에서부터 도보로15분이여...ㅠㅠ)

(슈리성 편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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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월에 갑자기 오키나와 여행을 가게 된 것은 반 충동, 반 계획, 나머지는 방사능에 찌든 일본열도와 춘삼월에 엄동설한이 몰려온 대한민국의 짜증나는 날씨 덕분이었다. 

사실 원래 일본여행 계획은 나카사키와 후쿠오카를 잇는 규수지방을 방문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반이고 오키나와를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한 쪽은 아무래도 일본 근대화의 시발점이었던 부분이니 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나머지 한 쪽은 원래 일본이 아니었던 국가의 잔재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유구국의 문장)
원래 오키나와는 조선에 공물을 진상하던 사신이 왕래하던 유구국이라는 섬나라였다. 섬치고는 작은 편이 아닌데다 평야와 분지도 꽤 발달하였고, 대만과 일본 열도 사이에 딱 틀어박혀 동중국해의 가운데 앉아서 중계무역으로 쏠쏠하게 벌어먹던 나라였다. 그런데 이 나라가 사쓰마의 시마즈 가문(우리 이순신장군님께 흉탄을 쏜 그 시마즈 가문 일것이다.)에게 잡아먹힌 뒤 유구국은 몰락하고 오키나와라는 일본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참 서글프다. 망국의 한이여...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슈리성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있음 뭐하나. 죽은 자식 뭐 만지기인데. 하여간 그런 사연이 있는 나라인지라 뭔가 원폭맞은 나카사키보다 감성적인 자극을 더 주었던 것이 확실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카마 유키에가 오키나와 출신이라길래, 그 고장 사람들은 다 저렇게 생겼나 확인하러 간 거였다.
차포 다 떼고 결론부터 말하면, 이 여잔 변종이었다. 씨팔, 물어내! 
(혹시 한국에서 내 블로그 보는 일본인이 계시다면 그냥 농담으로 이해해달라.)


2.
2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비행거리지만, 우리나라에서 오키나와로 가는 비행기 직행노선은 딱 하나다. 아침 9:40분에 출발하는 아시아나 노선이다. (2012년 3월 현재)
그리고 그 비행기가 연료 채우고 다시 오키나와에서 돌아온다. 그게 12:40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아침에 한 대 출발한 뱅기가 점심에 오키나와에서 귀환하는 것이다. 참 애매하기 그지없는 시간대다.

왜 그러냐 하면, 서울 시내에서 6시나 6시 반쯤 출발해서 공항버스를 탄다 치면 7시-7시반에 인천공항에 떨어지는데, 이 시간 가지고는 정말 빠듯하다. 출발시간에 딱 맞출 수 있다. 아침여행 하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탑승수속이 엄청나게 붐빈다. 아침에 오키나와 비행기 한대 뜰 때 중국행 비행기는 너댓대가 뜬다. 아시아나 창구 장난 아니게 복잡하다. 전자여권으로 발급을 받으면 전산 키오스크 시스템에서 혼자 처리해서 그나마 시간이 절약되고 사전에 표를 끊어놓았으면 그나마 빠른창구를 쓸 수 있다. 그게 안 되면 나처럼 짐 싸들고 한 40분 창구에 붙잡혀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출국 수속하고 화장실 한번 들르면 바로 탑승콜뜬다. ㅠㅠ 이건 오키나와에서 한국 올 때도 마찬가지다. 그건 나중에 설명하자.



(아 졸려...나중에 이어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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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그 위대한 언어.


음성을 통해 전달되는 언어활동은 인간이 활용하는 사회적 의사표현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들은 음성언어를 사용하기에, 반대급부로 음성이 없는 상황의 의사소통은 상상하기 힘들다. 역사상 대부분의 문명은 그렇게 이루어져왔고, 그 안에서 꽃핀 문화도 마찬가지였다. 오페라나 연극이나 가면극이나 산대극이나, 결국 음성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 아닌가?

이런 통사적 문화발전 속에서 '무성영화'라는 장르는 인간이 만들어낸 수 많은 예술장르 중 정말 묘한 위치에 있는 녀석이다. 무언극이나 종교적 함의를 지닌 특정계층의 문화활동이 아닌 대중예술이며 발명에 의해 태어난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술의 한계에 의해 음성을 같이 싣지 못해 음악과 배우들의 표정, 그리고 시각효과인 자막에 의지한 장르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은 일반 연극보다 훨씬 스피디한 편집과 전개. 연극배우들이 갖지못하는 무성영화배우들의 과장된 연극적 표현, 더불어 자막과 화면이라는 시각에만 의지하는 관객의 상상력 고양이었다. 그 덕에 무성영화 배우들은 눈과 입매에 짙은 화장을 할 수 밖에 없었고 (흑백의 명암 속에서 확실한 감정표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겠지.) 이목구비의 선이 굵은 명배우들이 당시 은막을 선도했다.


(무성영화 최고의 스타 루돌프 발렌티노. 아티스트의 주인공 [조지 발렌틴]의 이름은 여기서 온 것 같다.)

2.
나는 찰리채플린의 영화를 참 좋아했었다. 씨네하우스가 강남에 남아있을 당시, 동생을 꼬드껴서 매일 채플린을 보러 갔었다. 흑백임에도 불구하고 채플린의 코미디는 긴박감이 장난 아니었다. 대사가 없다는 것은 굉장한 단점이면서 엄청난 강점을 지닌다. 관객의 집중도가 엄청날 뿐 아니라, 자막으로 나오지 않는 시퀀스의 대사는 자기가 머릿속으로 다 혼자 상상하는 것이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장면마다 엄청난 풍성함을 관객에게 안긴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단점이었다. 놓치면 뭔지 모른다. 설레설레보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보게 되는 거다. 그래서 보다 '친절'하고 '혁신'적인
[유성영화]의 시대가 온 것일게다. 아티스트에 나오는 존 굿맨의 이야기처럼 "관객은 스타의 목소리를 듣고싶어!" 하는 가외적인 이유도 있을 테고 말이다.

3.
이 영화는 그 중간 시절, 잘 나가는 무성영화 배우와 새롭게 떠오르는 유성영화의 신예 사이에 꽃피는 러브스토리를 가지고 만든 영화다. 채플린 이후 처음 보는 진짜 무성영화였다.
그런데 풍성하더라. 어릴적과 같은 시퀀스의 짜임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더라. 내가 주연배우의 말을 상상하고 흑백 전경 너머에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꿈같은 체험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마지막에 나오는 음악소리가 현실로 돌아가라는 알람처럼 들려서 신경이 날카로와질 지경이었다.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호연은 보너스였다. 개인적으로는 다시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 침묵 사이에 울려퍼지는 스크립트의 풍성함. 말 없이 은막 밖의 관객에게 말하는 배우의 표정. 그리고 여백을 채우는 나 자신.

즐거웠다는 말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에 올라갈 것이다. 어쩌면 상상보다 많은 부분을 수상할지도 모르겠다.
고향 집에 돌아간 이국에서 만들어진 조상의 사진첩이니까. (감독과 주연은 프랑스 사람들이다.) 원래 허리우드의 일대기 아닌가. 그리고 미국사람들...역사가 짦아서 그런지 전통이라면 또 꿈벅 죽으니까.

한 번 기대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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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벌써 불혹이다.
나이를 숫자로만 먹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주둥이가 좁아진다. 그동안 계속 섭취하고 듣고 보고 읽은 것들을 그동안에는 조금씩이나마 밖으로 새 나가게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계속 넣어두고 밖에 풀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느껴진다.

누군가가 그랬다. 똥을 싸려거든 입으로 뭔가를 넣어서 압력으로 밀어내야 한다고. 지식과 사상도 마찬가지다. 계속 넣어서 무언가를 끄집어 내어야 한다. 머리가 굳어져서 생각이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되었거니"하는 얄팍한 교만함과 "피곤하니 그만 읽자"라는 자기합리화가 나이 먹은 뒤에도 학습을 계속하는 것을 방해한다.

눈이 안 보일 때까지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한다. 하다못해 도색잡지라도 봐야한다. 사람은 책을 보지 않으면 사고가 굳어지고 사고가 굳어지면 흔들리고 휩쓸려가거나, 모두가 햇볕을 바라볼 때 응달에서 혼자 끙끙거리는 고집불통이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뭘 보지.
독서가 안 땡기는 이 귀찮음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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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학살에 대한 통사적인 보고서.

 1.
내가 [제노사이더]라는 단어를 맨 처음 접한 것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만화영화였다. 마징가-z에 나오는 헬박사가 만든 기계수의 이름이었다.  그 당시에 500원인가 1000원인가에 발간되었던 [마징가제트 대백과사전]에 보면 34화에 출연한 걸로 되어있다.  제노사이더 f-9. 이름 참 멋지더라. 제노사이더가 뭔가? 그 나이에 사전을 찾아봤다. 대충 비슷한 음차를 가지고 영어사전을 찾았다. (오덕은 이래서 위대한 것이다) 

(이 X같은 디자인의 기계수가 나름대로 유명한 이유는...마징가 제트의 비행용품, 제트스크란다가 만들어 졌을 때 처음으로 공중에서 박살난 헬박사의 로봇이기 때문이다. 컨셉 자체가 폭격기.)

Genocide: 민족말살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학살.

이런 망할....무슨 단어가 이렇게 끔찍해.

 
2.
[잔혹한 세계사]는 말 그대로 인류문명에서 일어난 끔찍한 집단학살 18개를 다루고 있다. 카르타고 말살전부터 보스니아 학살까지 인류사를 통괄하는 학살극을 다룬 책이다. 특이한 것은 이책에는 다른 학살극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사상자가 적어보이는 것들도 몇 개 담겨 있고, 규모가 큰 칭기스칸 정벌전 같은 것은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책에서 다뤄 놓은 학살극들은 그 사건으로인해 인류문명, 역사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갔느냐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서양인들의 시선으로 보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아무래도 정확한 배경을 알 수 없는 학살극들은 건너 뛰었다는 느낌도 강하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거되어 있는 모든 학살극들은 책 페이지를 넘기기 끔찍할 지경이다. 사진같은 건 거의 없다.
이 책이 무서운 이유는 인종학살은 [광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이성적이고 정치적인 판단과 당시 기득권과 군사적 역량이 있던 지배계층과 민족의 합리적 선택에서 출발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에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학살극의 광기와 비이성적 인간의 모습은 최일선의 집행자들의 모습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기획의 입안자들은 일종의 면죄부 비슷한 것을 받게 된다.
 "원래 그러려던 것이 아닌데 일선 책임자들의 광기에 의해..." 읽다보면 그거 다 개소리라는걸 알 수 있다. 철저하게 계획되어 고위층이 지시하면 아래의 수족들이 피를 묻히는 과정이다. 역사를 관통하는 민족학살의 뒤에는 차가운 이성이 존재한다.  오히려 처형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이라는 것에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이 끝나면...모든 것은 잊혀진다. 굉장히 정치적인 담론을 담은 채로.


4.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저 로봇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감정없이 수백톤의 폭탄을 떨구고 다시 돌아가는 로봇이나 사람들이 실제로 저지른 짓이나 전혀 다른 점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점점 심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감정적인 사람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감정이 없는 이성론자들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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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에 트랙백이 걸려있길래 봤더니 생전 읽어보지도 않은 무라카미 류 책광고.

이 양반아, 남의 블로그에 다른 나라 책 링크시킬 역량이 있으면 국내 작가들이나 발굴해 봐.

내 책이나 내 주던가. 씨발. 



하여간 출판사 놈들이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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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라는 영화를 보고 왔다. 80년대부터 현대사를 관통하는 우리네 삶에 대한 이야기. 어차피 깡패가 아니라면 그 시절의 역사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불법이 권력을 승계한 시대. 불법이 번영이라는 허울을 입고 자랑하던 시절. 그리고 그 소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눈물 한 방울 뿌리던 전 국민이 범죄자가 되어 공모하던 시절의 이야기.

누군가는 자랑스러워 할 것이고, 누군가는 어쩔 수 없다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을 혐오하고 저항하다 일찌감치 죽고.


2.
난 이름만 [친구]라고 걸어놓고 평생 왕래 안 하다가 정말 일생에 도움이 안되는 순간이나 자기 혼자 기쁨을 가누지 못하는 순간에 전화하거나 연락하는 치들을 원래 굉장히 혐오했다. 그게 뭔 친구냐 이거다.

그런 사람들을 추리고 추려내는 게 인생의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긴 한다만 
사람이라는게 늘 똑같을 수 는 없는 것 아닌가. 한 때는 친했다가도 세월 지나면 소원해지고, 진짜 여자 뺏어간 놈이나 부모 원수 아닌 담에야 나중에 상가집 같은데서 만나도 인사정도는 하고 지내는 것 아니겠나. 그냥 감정이 소원해 지기에는 아직 좀 남아 있거나, 다시 친해지기에는 섭섭한 앙금이 묻어나거나 그런 것이겠지.

점점 두리뭉실 살아가는게 나이 먹고 세상을 알아가는 증거라고 생각하지만서도....



난 아직 그렇게는 못 살겠다.


3.
정말 추운 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4계절이 뚜렷한 이 나라가 너무 싫다. 나이를 팍팍 먹는걸 느끼게 해주는 자연환경!
그런데 어제 날씨뉴스 보니까
북아프리카 정도 빼고는 다 이 모양이더라. 세상에 살만한 기후를 가지고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곳은 별로 없는 거다. 
그냥 캘리포니아 가 있는 구글박사가 부럽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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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다시 사서 읽어 본 책이다.
세상사 아무리 복잡하게 뒹굴려보아도, 결국 사람의 인생은 하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가족.
1차집단 안에서의 의사소통과 그 안에서 내가 차지하는 위치가 세상을 만들고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삼성도 결국 이건희와 이재용이의 관계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그 전에는 이병철이와 이건희의 이야기였고.

혈연적 관계 사이에서의 비합리적인 유대와  사업적 관계에서의 합리적 포용성. 이것이 이 소설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맥이라고 할 진대, 고래로부터 바뀌지 않는 이 법칙을 유장하게 풀어낸 마리오 푸조의 역량이 이 글을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남기고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이 뒤를 이어 나온 말론 브란도의 호연이 지금까지 소설을 살아남게 만들었겠지만.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까 왜 이렇게 조니 폰테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또 다른 대부의 아들로써 살아가는 사내의 이야기를 넣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왜 이 이야기를 코폴라가 들어냈는지도 또한 알 수 있었다. 뭔가 지금 읽기에는 세련되지 않은 듯한 분위기와 사건들. 그렇지만 그 안을 관통하는 유장함.
시실리에서 퍼먹는 시골된장의 맛이랄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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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짧다

작은 방 한담 2012. 1. 24. 20:13
입이 짧다는 것은 사전적으로 찾다보면 편식한다 내지 소식한다는 뜻으로 나온다. 어떤 뜻으로 쓰건 간에 나는 다 해당한다. 식성이 가탈스러운 것 때문이 아니라 소화기관이 용납을 하지 못한다.

기름진 것을 남들만큼 먹거나, 알콜을 먹는다던가. 혹은 오늘 먹은 양 만큼을 내일 또 먹는다던가 하면 무조건 화장실에 가거나 체한다. 체하면 거의 죽어난다. 조모님께서도 체해서 돌아가신 바 있고 (하긴, 장수하시는 분들 중 나중에 돌아가시는 건 음식 소화 못 시켜서 돌아가시는 경우도 상당수 된다.) 어머니 닮아서 위장이 안 좋은 경우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굉장히 심한 경우다. 거기에 역류성 식도염+ 과민성 대장증상까지 있으니 살아서 세 끼를 먹고 지금까지 일생을 살아왔다는 것이 대견할 뿐이다.

문제는 이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엄청난 페널티를 준다는 것이다.
사람들하고 같이 뭘 먹으러 가면 일단 화장실부터 체크하는 게 기본이고, 화장실 없는 음식점은 아예 가질 않는다. 사람들하고 약속을 잡으려면 한 끼는 굶거나 대충 허기만 때운다. 그리고 나서 만나서 먹을 때에도 신경은 신경대로 쓰면서 산다. 그나마 운동을 해 대면 활동대사량이 늘어나니까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요즘처럼 운동을 할 수 없는 계절이나 특별한 기간이 있다면 먹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하거나 체해서 얼굴이 하얗게 된 채로 쓰러져 버리는 것이다.

그나마, 나하고 몇년, 혹은 십여년을 같이 부대껴온 사람들이라면 이런 일을 알고, 이해도 하거니와 애매한 음식 먹으러 가자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인데.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나 두주불사형이나 식도락가들 같은 경우라면 참 애매한 처신을 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여자를 처음 만나면 정말 괴롭다. 어디 하소연할 수나 있나. 맨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전 기름진 음식이나 술 먹으면 화장실 갑니다"라고 말할 셈인가? 그렇게 말 하고 몇분이나 같이 붙어있을 수 있을까.

하여간, 올해 구정을 쇠면서 정말 지독하게 한번 더 앓아누웠다. 이번에는 아예 발에 마비가 오고 오한이 올 정도로 심하게 체했더랬다. 나중에는 위 아래로 끊임없이 밀려나오는데... 이런 식으로 한번 더 체하면 아마 그냥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전날 별로 먹은 게 없었다는 거다. 아마 그 전전날이나 그 주의 첫번재 월요일인가 좀 많이 먹은 게 그대로 뱃속에 남아있다고 믿는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생리학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사람이 뱀도 아니고 먹은 걸 며칠간 뱃속에 넣어 둘 리도 없고.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점점 더 짧아질 수 밖에 없다. 지금보다 소식을 하고 지금보다 더 많이 음식을 가려먹는 수 밖에 없겠지. 하지만 과연? 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언젠가는 또 체하고 밤을 새는 날이 올텐데. 아무리 조심하고 조심해도 언젠가는 또 탈이 날텐데. 먹거리라는 것은 나에게 행복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고민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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