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荊軻宿'에 해당되는 글 1419건

  1. 2012.01.23 감사
  2. 2012.01.20 공간과 간극 2
  3. 2012.01.14 2011.1.14 잡설 5
  4. 2012.01.14 순환관계 2
  5. 2012.01.09 전진
  6. 2012.01.02 2012년 2
  7. 2011.12.30 김근태 선생 별세. 2
  8. 2011.12.27 2011년의 결산. 그리고 다짐 4
  9. 2011.12.27 만나고 떠나고 남겨지고 2
  10. 2011.12.22 논어, 애공이 공자께 물었다. 3

감사

작은 방 한담 2012. 1. 23. 23:34
언젠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만났던 모든 인연에 감사하며
이 순간 몸을 움직여 걸어가며 스쳐가는수많은 생명과 경치들과 그 안에 살아 숨쉬는 것들과, 그 생명들을 꾸며주는 수많은 무생물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공간에 대해서 온전하게 감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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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간극

투덜투덜 2012. 1. 20. 01:09
[이해한다]라는 말처럼 위선적인 말도 없을 것이다.

개인과 개인의 삶에 있어서 한 개체는 다른 개체와의 공간을 극복하기 힘들다. 유기체는 그 하나로써 정당하게 독립되어 있으니, 그 하나의 유기체를 내가 온전히 통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해한다는 것이 단지 거죽의 움직임이나 그가 한 행동의 인과관계를 따져서 그 시작과 끝을 판별하는 것이라면 맞는 말이겠거니와, 그 [이해]라는 것이 그 사람의 심리적 상태의 총합까지 알아야 사용가능한 단어라면 어느 누구도 상호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 나를 이해해줄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 사람이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내 마음을 읽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흔치 않고, 찾는다 해도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공간을 메꾸기 위해 우리는 오감을 사용하고, 그 오감을 사용해서 친목을 만들고 애정을 갈구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싸우고 질투한다. 하지만 온전하지 않다. 온전하지 않기에 충돌이 있다. 늘 공간에는 아무리 서로가 접해져도 메꿔지지 않는 호말의 간격이 존재한다.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간극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해받고 싶어하고 공간을 줄여보려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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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4 잡설

작은 방 한담 2012. 1. 14. 23:47
1.
고양이들이 이제는 1년이 넘어가니 지들 세상이라고 잘났다고 뒤어다니는데 내가 더 이상 통제를 할 도리가 없다.
어차피 통제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치기어린 인간의 얄팍한 상상력이었다.
이 놈들은 내가 시야에 없을 때만 소리 지르고 물건을 엎지르고 지들끼리 양양대면서 싸우고 정작 내가 나타나면 조용해진다. 더 웃긴건, 내가 집에 있을 때만 그런다는 거다. 집을 비우면 거의 아무것도 손대지 않고 잠만 잔다.

이것은 말 그대로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라는 시위.
참 가상하게 웃기고
가끔은 마음이 짠해지곤 한다.


2.
 펜싱을 시작한 지 몇 개월 되었고, 솔직히 일주일에 한번 가는지라 그리 많이 늘었다고 볼 수도 없지만
이제는 가끔 상대방의 투슈를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예전 서양 흑백영화처럼 챙챙챙챙 하면서 막고 찌르고를 반복하는 경지까지는 못가지만 (그렇게 오래 끌 수 있는 경기도 아니다. 해 보니까 레이피어 검술과 펜싱은 전혀 다르다. 검술과 검도처럼) 몇 번 공방을 할 정도는 되는 듯 싶다.

솔직히 이거 왜 배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꽤 재미가 들렸다.
일단 검도보다는 더 빠르고 덜 아프다. -.-;;;
내 도가니가 배겨냈으면 좋겠는데.

3.
가슴에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한이나 상처가 있는 사람은
자기자신을 가지고 소설을 한 번 써 보는 것이 상당한 치유효과가 있다.

가장 최근에 쓴 글은 내가 이루지 못한 소망에 대한 은유였다.
내 목표는 그 소망의 성취였다. 대리만족이랄까. 그런 걸 바라고 쓰던 글이었는데 한참을 쓰다보니까 글의 방향이 바뀌어 있었다.  결말로 다가갈수록 소망에 대한 성취가 아니라 나 자신이 왜 그것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더라.

저술이라는 것은 묘한 것이다. 쓰다보면 타자화된 내가 나를 살펴보며 나에게 말을 건다. 그러다보면 내가 놓치고 있던 나를 그 안에서 발견한다. 치유를 위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이번 글은 하루에 천 자를 쓰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정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더라.


4.
올 해는 여자를 만나볼까. 
한 살이라도 젊은 시절 본 여자들도 꽝이었는데 나이 마흔에 무슨 여자를 보랴.
더 꽝이지. 기대를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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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관계

투덜투덜 2012. 1. 14. 20:37
나는 나에게 관심 있는 여자를 별반 좋아하지 않는다 ---> 나는 내가 관심있어하는 여자에게만 끌린다 ---> 그 여자는 내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내가 좋아한다 ---> 내가 끌린다고 해도 여자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 내가 관심을 보인다 ---> 여자는 관심이 없다 ---> 관심이 없는 여자기 때문에 내가 관심을 가져봤자 별다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 내게 관심없는 여자가 내게서 멀어진다 ---> 애초에 내게 관심이 없던 여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여자가 사라진 것으로 인해 실제적인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  혼자 있게 된다 --->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다 ---> 나는 나에게 관심있는 여자를 별반 좋아하지 않는다 ---> 나는 내가 관심있어하는 여자에게만 끌린다



이거 뭐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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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

작은 방 한담 2012. 1. 9. 21:22
뭔가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 같고 그대로 있으면 매몰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것은 그냥 손을 놓고 잠시 쉬자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럴 때 그냥 하던 일을 계속 붙잡고 나가는 게 낫다. 
뭐든 쌓아둬야 한다. 사람은 개미와 똑같다. 하루에 1원을 벌거나, 100자밖에 쓰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 손을 놓아서는 안된다. 손을 놓으면 내일도 놀게 될 것이다. 그냥 오늘 마지못해 하는 하나의 과업이 내일 보다 나은 원동력을 제공하거나, 이도 저도 안 되면 내일 작업을 수정할 건덕지라도 주기 마련이다.

끝까지 길게 가는 놈이 살아남을 뿐.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비참한 것은 환경이 아닌 낙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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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작은 방 한담 2012. 1. 2. 01:48
일설에는 올 해가 지구 최후의 날이라고 말한다.
마야인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데. 자기들 망한 날도 모르는 마야인들의 세계멸망을 믿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아직 하고싶은 일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좋은 걸 보고 좋은 걸 듣고 좋은 걸 먹다가 수많은 유전자적 후예들 앞에서 죽는 꼴을 상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많은 것은 헛된 소망일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올 해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하고 싶다.

김근태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투쟁하라는 것이었다. 행복을 위해 투쟁하라. 모든 사람은 그럴 자격이 있다.
불법과 비리로 늑탈당한 행복과 권리를 찾아내어 올 해의 마지막날 울면서 축하할 수 있는 해가 되기를 바래 마지 않는다. 부정한 자들에게 멸망의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내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을 보다 많이 만나보기를
개인적으로 소망해본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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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 - 소강절((邵康節)


松栢入冬靑송백입동청(소나무와 잣나무는 겨울이 되면 더욱 푸르니)

方能見歲寒방능견세한(바야흐로 한겨울임을 알 수 있구나)

聲須風裏靑성수풍리청(소리는 바람 속에서 더 잘 들리고)

色更雪中看색경설중간(색깔은 눈속에서 더욱 더 잘 보이는 법이다.)


1.
김영삼 정권시절 일이다. 민주화 재야인사들이 막 복권되던 시기였다.
그 때, 우리 학교에 특강을 하러 오신 양반이 한 분 계셨다. 겨울이었던가. 허름한 코트에 약간 기우뚱한 몸짓으로 단상에 올라와 어눌한 어투로 강연을 하신 분이었다. 김근태 선생에 대한 내 첫 기억이다. 누구인지 나는 잘 몰랐다. 그저 재야인사 중 하나라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그 날이지난 뒤 몇몇 서적과 신문을 통해 김근태라는 사람와 인생과 그 인생에 맞물려 있는 현대사. 그리고 그가 당한 탄압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2, 
나는 김근태 선생을 두번째로 국회에서 만났다. 어쩌다가 인연이 닿아서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잠시 사무를 보던 때,
수수하기 그지없는 김근태 선생 비서하고 마주칠 일이 종종 생기곤 하였다. 사회 초년생이 된 내가 가금 농 삼아
물어보곤 했다. 선생님은 월급받으시면 뭐에 쓰시냐고. 비서관은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그동안 워낙 신세지신 분들이 많아서 그 쪽으로 다 들어간다"고.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도리가 없다. 하여간 당시에도 암암리에 유명했다. 국회의원 세비 받아서 20년간 운동하면서 뒷바라지 한 사람들 빚갚느라 정신 없으시다는 말을 들었으니. 
가끔 의원회관에서 보는 얼굴은 학창시절 뵙던 얼굴하고 다를 바가 없었다. 늘 사람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하고 다니는
그냥 순둥이같은 아저씨. 

저런 사람이 어떻게 대공분실에서 20일간 사람이 이겨내지 못할 고문을 당하고 한 마디도 불지 않고
평생을 이겨내지 못할 고문 후유증까지 가졌으면서도 저렇게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까.

선비로구나. 저게 선비로구나.

3.
오늘 아침, 결국 고문의 후유증으로인한 뇌질환으로
따님의 결혼식도 보지못하고 누워계시다 결국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살면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아가는 정치인은 많지만, 그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버리고
그 이후에 [복수]의 신념이 아니라 화합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정치인인가 종교인인가.

시대가 요구하지 않았다면  험한 여정을 골라 가지 않아도 될 법한 사람들이
끝까지 북풍한설을 맞아가며 푸른 빛을 뽐내는 것을 보면 
그의 주장하는 바를 떠나서 경외감과 존경을 느낀다.
하물며, 그 이후의 삶이 정도를 벗어나지 아니하고 평생 올곧았다면야 더 이상 말 해 무엇하리.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게 해 주신 수 많은 선배님들중의 한 분.
전 솔직히 선생님이 대통령이 되시는 그 날을 기다렸습니다만
제가 원하는 날은 이제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유일하게 사랑했고, 존경했던 대한민국의 정치인.

선비 김근태.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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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팠다.

다른 말이 필요없다. 365일중에 300일을 아팠다. 급격한 두통, 구토, 체함. 어지러움. 딱 뇌종양증상인데 CT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MRI를 찍어봐야겠는데 솔직히 걱정이 된다. 중풍인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저 스트레스일 확률이 가장 높긴 하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절망과 분노 뭐 그런 일이겠지. 하지만 그게 표면화 되어서 육체에 고통을 줄 정도라면 내가 의도적으로 피하고자 했던 스트레스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오늘 보건소에서 혈압을 쟀다. 98/154가 나왔다. 내일 혈관이 터져 죽어도 아무 이상이 없는 수치다.
술도 안 먹고 담배도 피지 않고 여자랑 자는 것도 아니다. 일주일에 세네번은 한시간씩 토나올 정도로 운동하고 정말 수도승처럼 먹는 것도 굶어 죽지 않는 한에서 최소한의 것만을 섭취한다. 체중도 정상체중을 밑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압은 점점 높아진다.

이걸 보면 인간의 노력이라는 것은 정말 아무런 효험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리 건강을 위해 관리하고 노력하고, 인생의 지표를 위해 뛰고 노력하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들 그것이 내게 주어진 복이 아니라면 내가 한 노력은 어떠한 효력도 발휘하지 않는다. 그게 인생이고 삶의 냉엄한 현실이다. 인생은 절대로 교과서적으로 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은 아프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계획한다. 혈압을 130대로 낮추겠다고 다짐하고, 식이요법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운동을 계속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냥 이렇게 비실비실 시든다는 것에 대한 혐오에 가까운 거부감이 있다. 내 인생에 대한 본전 생각이 난다. 


2. 썼다.
뭔가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좋아하는 사람은 소수, 하지만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인기란 바람앞의 촛불 같은 것. 하지만 글에 대해 투자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글은 아름다와진다. 연애보다 낫다. 시간을 들여서 다듬으면 절대로 사람의 손길이 탄 곳이 나빠지지 않는다. 

내년에도 쓸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3. 안 만났다.
천하의 반이 여자라는데, 점점 사람들의 모습이 이지러져 보인다.
씁슬하긴 한데. 어쩌랴.

내년엔? 모를 일이다. 과거의 지저분한 그림자도 있고
아직도 애틋한 추억이 너무 짙은 것도 있고
그 모든 것을 도외시하고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신뢰를 하고 싶지도 않고.
참으로 모를 일 투성이가 인생인 것이다.

하지마 올해보다 심하랴. 올 해는 아파서 모든 것이 너무너무 힘들었다. 내년에는 제발 아프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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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게 어차피 기나긴 인생의 항로를 항해하는 여행자의 신분이라는 것일진대

오고가며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자기를 보여주고 타인을 보면서 살게 될 것이다.
회자정리. 어차피 언제건 만난 사람들은 다시 헤어지기 마련인데
되도록이면 서로 흩어지면서 나쁜 그림자는 남겨두지 말아야겠다.

그게 내 뜻으로 되는가. 내 탓만 있겠느냐 하면서 살아가고
잊어버리고 한다마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안 좋은 발자국 지워버리면서 살아야하지 않을까.

오랫만에 같이 놀던 사람 하나 만나서 그간의 이야기를 듣는데
왜 그리 사람 사는 마당에 거추장 스러운 꽁무니들이 그렇게나 많은지.
사람의 삶이라는 게 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나 스스로가 찔려 반성한다.

차라리 쉽게 떠날 것이면 화사한 모습이나 보여주고 끝날 일이 찰나의 인연인 것인데.

소소한 연말의 회상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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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公問曰 (애공문왈) : 애공이 공자께 묻기를
何爲則民服(하위즉민복): 어찌하면 백성이 복종하겠습니까.


孔子對曰(공자대왈) : 공자 말씀하시길
擧直錯諸枉(거직조제왕):
 
정직한 사람을 기용하여 정직하지 못한 자를 처리하게 하면
則民服(칙민복)하고 : 백성들이 복종할 것이요,

擧枉錯諸直(거왕조제직)이면 : 정직하지못한 사람을 기용하여 정직한 사람을 처리하게 하면
則民不服(칙민불복)이니이다 :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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