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고1올라가는 우리반 애와 시간이 남아서 면담 겸 간식타임을 가졌는데

이 녀석이 지난 주에 일본을 다녀왔더랬다.
관광이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학교에서 일본방문을 하고 싶은 사람 몇명을 추려서 동경이나 오사카가 아닌 다른 지역을 문화체험하러 보낸 것이더라. 상당히 전문성이 있는 방문인것 같아서 물어봤는데

이 녀석 직독직해를 하고 의사소통은 문제없이 일어를 구사한다는 거다.
어디서 일어를 그렇게 익혔어? 하고 물어봤더니
한 6개월간 일본만화만 봤더니 어느날부터 알아듣게 되었어요~라고하는거다.
히라가나 가타카나도 읽는데 한자가 안 되서 아직 일어서적 읽는 건 힘들다고...

아니 나도 일본만화는 무지하게 보는데 왜 일어를 못하지
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쪽팔려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말이 더 충격인게
요즘은 반에 있으면 20명 중 한 명은 자기처럼 일어로 의사소통 다 가능하고
50명 중에 한명은 중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
난 중학교3학년때 뭐했지
하는 생각과 함께 애들이 참 빠르게 습득하고 학습하는구나 우리때와는 차원이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우리 아랫세대들은 경쟁이 훨씬 심하겠구나. 대부분의 현재 사람들이 갖지 못한 걸 기본으로 갖게 된다면 더 많은 것들을 채워야 경쟁이 되겠구나 라는 안타까움도 같이 들었다.

그나저나 나도 다시 6개월정도를 애니메이션만 줄창 봐 볼까 하루종일.
채널 J를 그렇게 봐도 난 왜 일어가 안 될까.

에이 참 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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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말리아에서 인질 앵벌이로 먹고살던 해적들이 결국 총알세례를 받고 죽고 잡혔다.
칼로써 일어난 자는 칼로써 망하는 것이다. 아무리 먹고 살기힘들어도 사람 목숨으로 장난치면 안 된다.
마음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다가도
생활이 버릇이 되면 양심에 둔감해진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만이 생계였다는 것. 나는 대한민국에서도 [생계형]이라는 말을 정말 듣기 싫어한다. 그런데 저 먼 이국의 소말리아인들에게 동정이 생기지 않음은
어쩔 수 없는 내 얄팍한 [정치적 중립성]의 한계이다. 난 코스모폴리탄은 못 되는 것이다.

그건 둘째치고,
모든 일은 자기 공으로 돌리는 짓거리는 하지 좀 맙시다.
당신은 끽해야 주차관리하던 장로고 건설회사 사장이고 반쪽난 나라 대통령이지 신이 아닙니다.

헤롯이 뭐하다 죽었나 생각 좀 해 보소.


2.
세상엔 자신만만한 사람이 많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가질만 하지. 열심히 하는데.

하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근거없는 우월감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은
영 찝찝하다. 난 너희들과 다르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 왔다. 

광고판에서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참 많이 봐왔다.
[크리에이터]- 창조자라는 별칭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다른 이들 앞에서 강의하며 가르치기를 좋아하던 사람들을 나는 하늘의 별만큼 많이 안다.
몰라서 말 안 하던 사람들도 물론 세상에 많지만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어봤자 입 아프니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훨씬 많더라.
세상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모두 똑똑하고 훌륭하다.


3.
늙으면 과거를 헤집는다는데
과연 과거는 행복했는지.


4.
머리가 점점 뒤숭숭하더니 숭숭 빠진다.
예전에 말한것 처럼 밀어버릴까.
어차피 60대가되면 빠질 머리, 그냥 가불해서 먼저 날린다고 뭐라고 할 사람 있겠나.
아, 그럼 연애를 못하나?

이상하지.
결혼할 때는 머리숱 없는 사람과는 결혼 못하겠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정작 결혼한 담에 남편 머리가 빠지면
내 남편이 대머리라 이혼하겠습니다라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봤으니.

이거 참.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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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은 같이 나눌 수 있어도 
복락은 같이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반대로 즐거울 땐 옆에 있고
고생이 시작되면 도망가는 인간들이 더 많지만.


어쨌건 모든 것의 발로는 욕심.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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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구온난화때문에 제트기류가 약해져서 북극에 가둬두었던 동장군의 결계가 풀려서 한반도에 올라왔다나 어쨌다나 하여간 그래서 우리나라는 지구온난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지구온난화를 줄여야지. 미국과 중국을 당장 공격해라. 그놈들이 제일 연료 개념없이 직직 갈겨쓰고 있어. 

음, 아무도 그런 말은 못하지.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그냥 이렇게 꽁꽁 얼어있어야 한다.


2.
아무리 기온이 더 떨어졌어도 군대 시절보다는 안 춥다.

당연하지.
멀쩡한 인간을 겨울 새벽에 한 시간 4계절범용 유니폼을 입혀서 세워놓아 보라.  보초랍시고. 

안 추울 놈이 누가 있겠느냐. 유격은 눈물이요 여름 대대전술은 짜증의 연속이라면 겨울 혹한기 훈련은 무엇일까?
욕이다 욕, 육두문자. 입에서 성군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으로 지상의 온갖 생물과 그 생물의 어린 새끼를 불러대다가 훈련이 끝난다. 다른 건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손가락과 발가락과 귓바퀴가 내 것이 아니고 어디서 임차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파란 하늘에 구름이 쏜살같이 흘러가는 데 찬 바람에 눈이 시려서 뜨지도 못하고 오리걸음으로 기어가면 옆구리를 소총과 방독면이 쿡쿡 찌르고 등어리는 야삽이 눌러대면 나오는 건 욕밖에 없다. 총구에 잘못 젖은 손가락이나 혓바닥이라도 붙으면 그대로 얼어붙고, 허벅지 아래로는 감각이 아예 없고 얼굴도 감각은 없는데 콧물은 흐르지 그렇다고 밥은 제대로 나오나. 밥먹고 훈련하면 어디 막사라도 들어가 있나. 수풀이나 공사장 자재창고 같은데 짱박히면 하늘의 은총인 거고, 얼어서 포크레인으로도 안 파지는 땅에 야삽질하면서 텔레토비 흉내내며 덜덜덜 떨고 있다가 야밤에 텐트에 들어가면 차라리 밖에서 얼어죽는게 낫다고 생각할 만큼 한기가 몰아치는 것이 혹한기 훈련이다. 아, 이래서 전쟁은 여름에 해야한다. 일사병에 걸려 죽는게 얼어죽는 것보다 나을거야. 병사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여름에 전쟁 터지면 그건 뭐 천국인가? 6.25 대구공방전때는 일사병으로 죽은 병력이 총맞아 죽은 사람보다 더 많았다던데. 이래서 전쟁이 터지면 안 되는거야 망할!  얼어붙은 텐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입김을 보면서, 저절로 군인들은 반전주의자가 되어간다. 

그러다가 병장을 달고 마지막 혹한기훈련에 들어갈 때
나는 정보과인 관계로 박스카 안에서 밤을 지새게 되었다.

야,
이거 할만 하더란 말이다. 일단 한기가 안 통하니까 바깥이라도 살만 하더라고.
이런데서 지도 펼쳐놓고 따스하게 몰래 커피나 끓여먹으면서 음~ 우리 부대는 지금 어디에 있군 이렇게 나가야지 하면서 딩가딩가하고 가끔 걸려오는 지휘계통 전화나 받아서 토스해 주면 되더란 말이지. 솔직히 훈련 가면 계원들이야 간부들 있을때나 후달리지 야간근무설 때는 천국 아닌가. 어차피 장교들은 다 자는데.

그 때 알았다.

몸이 고생하는 걸 까먹으면
전쟁이 참 쉬워보이는구나.


3.
언제쯤 눈이 녹고 바람이 그치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이 올까.
그 날이 언제쯤 오려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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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씨가 정말 더럽게 춥다.
겨울이 없는 나라는 사람들에게, 그 나라를 구성하는 국민들에게 어떤 정서적인 영향을 미칠까.

덜 부지런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는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조삼모사식의 정치나
돈 하나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것을 피할 수는 있지 않을까

겨울은 정말 춥다. 가진 게 없는 이들에겐 더 추울 것이다.
더워서 불쾌지수가 올라간다면
추위는 절망지수를 올려준다.

돈이 많은 것을 해결한다.
춥지 않다면, 배고프지 않다면.
따듯함을 돈으로 살 수 있는 동네. 하지만 유럽을 보면 꼭 그런 것 만은 아닌 듯.


2.
몇 년 전에 [환상의 짝궁]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초등학생 아이들을 선발하고 심사해서 내보내 퀴즈쇼를 푸는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이었다.
김제동이 사회를 보았다.
당시 초등학생들에게는 대기업이사시험 수준의 경쟁률과 열광이 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는 유야무야 삭제되었다. 메인 MC김제동의 하마와 더불어 시청률 하락이라는 오명을 쓰고

요즘 타 방송국에서는 [스타쇼 붕어빵]이라는 것을 한다.
TV 스타들과 그들의 자제를 내 놓고 비슷한 컨셉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주말저녁 프라임타임에 걸쳐서.

뭐가 옳고 그른지는 모르겠다.
그게 요즘 세상의 반영이려니 생각한다.

사람들은 나와 같은 불특정다수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한다. 
슈퍼스타K같은 프로 말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건 예전부터 있었던 [무명인에서 유명인으로 넘어서는 성공담]을 엮는 프로그램이다.
도전과 열정이니 이런 회반죽을 떡칠해서 만드는.

[환상의 짝궁]은 성공담의 프로가 아니다. 
출연 어린이들은 그냥 1회성 출연자였다. MC랑 같이 놀다 가는 프로였다.
[붕어빵]은 다르다. 이미 나름대로 성공한 부모의 자식들이 나와서 고정출연하는 프로다.

잘 모르겠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려니 생각한다.


3.
길은 멀고 해는 지는데.
내 나이 벌써 너무나도 많이 흘러가 버렸다.
후회스럽다는 말 하나로 갈음하기에는
단어 하나하나 사이에 놓인 간격 속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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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젯 밤에 갑자기열이 펄펄 끓어올라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하던 일이래봤자 설거지였으니까 별 상관 없긴 했지만 만약 설거지가 아니라 야근이었다던가, 뭔가 시간을 더요하는 작업이 내 앞에 놓여있었다면 아마 난 오늘 아침 쯤 몸살에 직격당하고 사경을 헤메고 있었으리라.

바꿔 말하자면 잠을 잔 덕에 몸이 그나마 좋아졌다는 것이다.

실상, 많은 샐러리맨들의 몸살이나 감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들중 많은 수가
집에서 신나게 자고나면 낫는다고 한다. 한 사흘 정도?
그런데 어떤 회사가 사흘간이나 평일에 잠을 잘 시간을 줄 것이며
애들이 잠자는 아빠를 놔 두겠냐고. 쯧쯧....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픈 건 회사 관두면 낫는다"
어떤 부분에선 진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관두면 그 다음부터는 또 다른 스트레스가 생기겠지.
생존이라는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신체리듬을 학대하는 동물이라는 게
과연 만물의 영장인지 잘 모르겠다.


2.
하지만 이건 전혀 다른 예인데.

수면시간 30분이 모자라서 머리가 아파본 적이 있는가.
혹은,
9시간 10시간 잤는데도 머리가 띵했는데
5분정도 머리를 책상에 박고 잤더니 개운해진 적이 있는가.

가만히 보면
잠이라는 것은 시간의 절대치로 산정해서 풍족함을 누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단 말이다.
꿀잠이니 단잠이니 쪽잠이니 등등등 시간을 쪼개가며 짧은 시간을 자도 몸을 활성화시키는 잠이 있는가 하면
하루종일 주야장천 사시사철 연연세세 잠을 자도 머리만 아프고 멍하기만 한 잠도 있으니

뭘 어떻게 자야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쉽게 짧게 깊게 활기차게 자는 방법을 아는 것도 좋을텐데.


3.
잠을 잘 때 이 생각 저 생각한다고 잠이 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눈을 닫은 채로 눈꺼풀을 보고 있는게 잠이 더 잘 오더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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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이후로 글을 쓴다는 게 버거워졌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식욕이 왕성해서 맨날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워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물린 기분이랄까
그래서 수저를 떠서 입에 넣어도 이걸 씹는 둥 마는 둥
대충대충 씹어 삼키고 상을 물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마 실망 반 나태 반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짜증 조금 (두려움이 만성화되면 짜증이 되는건가)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다.

그나마 누군가가 그때그때 유캔두잇 힘내라 간바레 기모찌(앗 이건 아니다)해 주면
그걸 밑천삼아 글을 쓰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냥
'어디서 기술이나 배워보는 게 어떠냐'라는 말이 주야장천 5.1채널로 듣고 있으니
낙담을 안 할래야 안 할수가 없는듯 하다.

그 덕에 냉철해지긴 했다.
지렁이도 아닌데 이대로 흙파먹다 죽을 것이냐. 그럴 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부쩍부쩍 늘면서 현실적 고민쪽으로 몸과 마음이 쏠리고
그러다 보니 생각하고 계획하고 이것저것 보아뒀던 글감들은
하루 이틀 조금씩 뒤로 미뤄지고
미뤄지면 먼저 미뤄놨던 순서대로 조금씩 뇌리에서 사라지며
어느날 문득 잃어버린 생각들을 다시 복기하지 못함을 알았을 때
다시 현실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낙담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엔트로피의 쳇바퀴를 돌고 있다.

이럴 때 훌쩍 떠나라고 만들어져 있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일진대
그렇게도 못 하겠고.

흐음.

어쩔까나.
잠시 미뤄둘까.

근데 난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더라.
Posted by 荊軻
,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건 크게 두 가지다.
책의 주된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었는데

그 첫째는 스페인 내전에서 조지오웰이 당한 부상이라는 게 나는 무슨 팔이나 어깨에 파편이라도 맞은 줄 알았는데 내 예상수준을 넘어서는 엄청난 중상이었다는 것이고
그 둘째는 총알이 넘나드는 사지에 남편이 자원해서 입대하고 타국 전쟁에 자원해서 나갔는데 사지까지 쫒아가서 후방에서 지원을 해 주는 부인의 든든한 내조(?)에 또한 놀랐다. 부창부수라더니, 확실히 그런 것이구나...

각설하고,

책의 제목처럼 카탈로니아를 찬양하기위해서 조지 오웰이 쓴 글은 아니다. 스페인 내전의 짧은 4개월동안 겪은 그의 전쟁수기, 시가전, 부상, 내전, 그 안의 내흥까지 엮어서 펴 낸 이 수기는 어떤 실패한 아나키스트들의 회환같은 것이 잔뜩 들어있는 내용이다.

혁명은 오직 진행될 때만 건강하고 장미향을 뿜어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완성되는 혁명은 금방 시들고, 건강함은 소진되어버린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은 탐욕과 착취여서, 이성이 갈구하는 이상향은 절대로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평등한 세상]은 우아하게 휘발되어 날아가는 불꽃과 비슷하다. 존재하지만 영속하지 못한다. 조지 오웰은 그것을 목도하는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며 행복해 하고 절망한다. 조지오웰은 프랑코의 독재가 스페인을 완벽하게 점령하지 못하고, 아직 스페인이 내전을 계속하고 있는 당시에 이 책을 펴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 안에는 희망이 담겨져있다. 그리고 저항정신이 충만하다. 하지만 후대의 역사를 사는 우리는 안다. 
스페인 내전 후 스페인에는 무엇이 남겨졌는지를. 조지 오웰도 목격했으리라.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과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이 깊숙하게 뇌리를 간지럽혔다.


p.s) 소년 H 와 카탈로니아 찬가를 추천해주신login님게 감사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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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만에 2권짜리 책을 완독하면서
왜 이 책을 이 늙은 나이에 읽었을까 싶었다.



2차대전 말기,
고베시에 살던 소년(저자)이 전쟁이라는 광기에 중독되어 사리분별을 잃어가는 국가에 살면서
어떻게 가족간의 유대를 지키며, 친구들과 어떻게 살아가고, 지역사회에 어떻게 적응하며
궁극적으로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가에 대한 소설이다. 

저자의 집안배경은 좀 독특하다. 일본에도 몇 안되는 크리스챤 가정에서 태어났고,
항구도시 고베에 살면서 어릴 때부터 외국인들을 보면서 자라고
정치적으로 놀랄만큼 매서운 식견을 가진 아버지와 활달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가 보는 시선은 놀랄만큼 객관적이다. 동시에 이것은 황국신민을 표방하는 대다수 일본인들 사이에서
좋은 쪽으로만 작용하지 않았음도 소설을 보면서 느낄 수 있다. 
전쟁은 참혹하고, 가난은 사람을 무너지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안에서 문자향을 남발하는 [휴머니즘]을 넘어선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책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지성을 자극하는 책이 있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유희를 제공하는 책이 있다.

그런데 그 중 드물게 [착한 책]들이 있다.
이 책은 착한 책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좋은 말, 쉬운 말만 써 있어서 착한 책이 아니라
쓴 사람의 마음이 묻어나는 책이 가끔 나오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유형이 아닌가 싶다.

20년 전의 나에게 읽히고 싶은 책.
그리고 아이들이 있다면, 그 부모에게 읽히고 싶은 책.
Posted by 荊軻
,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죽는다. 
적금을 언젠가는 타듯이 사람은 죽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적금을 탈 떄는 기쁘지만 죽을 때는 별반 기쁘지 않을 것이다. 고생만 하다가 간다면 속 편할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 연예인 장례식을 가상으로 치룬적도 있지만
가끔은 내 장례식에 누가 어떻게 올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별로 없더란 말이다.

내가 사고로 급사하지 않는 한,
내 친구들도 고등학교 친구나 교회 선후배들인데 다 고만고만한 나이 아닌가.
자기가 북망산을 바라보는 나이일텐데 내 장례식에 몇 명이나 올까. 
우정이 빛바래지 않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조문은 올 것이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의 친구분들이 와서 서럽게 울던 10년전의 그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세월이 비껴가지 못하는 우정이란 참으로 고맙고 황금같은 것이지만 내 친구들이 밤을 새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 나이에 내 관짝을 지키고 서 있다간 도미노로 장례를 치루게 될 것이다.

그러면 누가 있을까. 어차피 고양이들은 나보다 수명이 짧으니 먼저 갈 것이고 고양이들에게 장례를 맡기는건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장면이니 배제하자. 
결혼을 안 하고 이대로 살다 죽으면 내 조카랑 사촌조카들이 내 장례의 상주가 되겠구나. 하긴 그 때쯤 되면 초코렛따위 찾으면서 형하고 쌈질같은 건 안 하겠지. 좋아. 상주는 있으니 됐고. 마누라도 없으니 유족도 없겠네. 내 동생하고 제수씨, 조카, 사촌조카들이 내 주위에 좀 있을 것 같다. 뭐, 이 정도면 그냥 흡족하진 못해도 그럭저럭은 되겠다. 교회의 [경조사위원회]에서도 몇 명 오겠지. 내가 고등부 교사를 계속하고 있으면 아마 대학졸업한 첫 제자들 정도는 문상하러 와서 일을 도와줄 지도 모르겠다. 음. 계속 봉사를 해야겠군.

묘지는 아마 우리 가족이 마련한 가족묘에 들어갈 것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현명함을 칭찬하는 일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이것인데, 집안 가족 누구 하나 돌아가시기도 전에 천안에 가족묘를 사신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혜안이 아니실 수 없다. 하여간 나는 그 자리에 꼽사리를 끼면 된다. 죽은 뒤 묘자리도 있으니 끝.

절차와 결과도 어느 정도 되었으니 남은 문제는 장례식중의 분위기일 것이다.

곰곰히 생각하고 예측해 봐도 

"고생만 오지게 하다 죽은 불쌍하기 그지없는 구질구질한 솔로 남정네였는데 성격이 더러웠어"
내지
"괴퍅하게 살더니 자식 하나 못 남기고 죽었네"
내지
"하는둥 마는둥 살더니 대충 가버렸네"

이런 종류의 발언을 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혼 없고 넋 나간 육신이 시체냉장고에 들어가 있겠지만 저런 말을 듣고 있자면 상당히 찝찝할 것 같긴 하다. 최소한 우리 할머니처럼 깨끗하게 살다 가셨네 혹은 그래도 복 많이 받으신 분이네 소리는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아니라 우리 상주녀석들이 말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든다.
결국은 내 뒷 세대들에게 나쁜 모습을 남기고 죽고 싶지 않은 바램이랄까.

모두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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