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죽는다. 
적금을 언젠가는 타듯이 사람은 죽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적금을 탈 떄는 기쁘지만 죽을 때는 별반 기쁘지 않을 것이다. 고생만 하다가 간다면 속 편할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 연예인 장례식을 가상으로 치룬적도 있지만
가끔은 내 장례식에 누가 어떻게 올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별로 없더란 말이다.

내가 사고로 급사하지 않는 한,
내 친구들도 고등학교 친구나 교회 선후배들인데 다 고만고만한 나이 아닌가.
자기가 북망산을 바라보는 나이일텐데 내 장례식에 몇 명이나 올까. 
우정이 빛바래지 않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조문은 올 것이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의 친구분들이 와서 서럽게 울던 10년전의 그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세월이 비껴가지 못하는 우정이란 참으로 고맙고 황금같은 것이지만 내 친구들이 밤을 새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 나이에 내 관짝을 지키고 서 있다간 도미노로 장례를 치루게 될 것이다.

그러면 누가 있을까. 어차피 고양이들은 나보다 수명이 짧으니 먼저 갈 것이고 고양이들에게 장례를 맡기는건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장면이니 배제하자. 
결혼을 안 하고 이대로 살다 죽으면 내 조카랑 사촌조카들이 내 장례의 상주가 되겠구나. 하긴 그 때쯤 되면 초코렛따위 찾으면서 형하고 쌈질같은 건 안 하겠지. 좋아. 상주는 있으니 됐고. 마누라도 없으니 유족도 없겠네. 내 동생하고 제수씨, 조카, 사촌조카들이 내 주위에 좀 있을 것 같다. 뭐, 이 정도면 그냥 흡족하진 못해도 그럭저럭은 되겠다. 교회의 [경조사위원회]에서도 몇 명 오겠지. 내가 고등부 교사를 계속하고 있으면 아마 대학졸업한 첫 제자들 정도는 문상하러 와서 일을 도와줄 지도 모르겠다. 음. 계속 봉사를 해야겠군.

묘지는 아마 우리 가족이 마련한 가족묘에 들어갈 것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현명함을 칭찬하는 일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이것인데, 집안 가족 누구 하나 돌아가시기도 전에 천안에 가족묘를 사신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혜안이 아니실 수 없다. 하여간 나는 그 자리에 꼽사리를 끼면 된다. 죽은 뒤 묘자리도 있으니 끝.

절차와 결과도 어느 정도 되었으니 남은 문제는 장례식중의 분위기일 것이다.

곰곰히 생각하고 예측해 봐도 

"고생만 오지게 하다 죽은 불쌍하기 그지없는 구질구질한 솔로 남정네였는데 성격이 더러웠어"
내지
"괴퍅하게 살더니 자식 하나 못 남기고 죽었네"
내지
"하는둥 마는둥 살더니 대충 가버렸네"

이런 종류의 발언을 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혼 없고 넋 나간 육신이 시체냉장고에 들어가 있겠지만 저런 말을 듣고 있자면 상당히 찝찝할 것 같긴 하다. 최소한 우리 할머니처럼 깨끗하게 살다 가셨네 혹은 그래도 복 많이 받으신 분이네 소리는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아니라 우리 상주녀석들이 말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든다.
결국은 내 뒷 세대들에게 나쁜 모습을 남기고 죽고 싶지 않은 바램이랄까.

모두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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