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荊軻宿'에 해당되는 글 1419건

  1. 2011.01.10 구제역 4
  2. 2011.01.08 Epistle -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中 2
  3. 2011.01.07 새삼스럽지만
  4. 2011.01.06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
  5. 2011.01.02 사람이 초심을 잃었을 때 12
  6. 2011.01.01 2010 마지막 Special thanks to 12
  7. 2010.12.30 야누스(JANUS) 2
  8. 2010.12.27 나흘 8
  9. 2010.12.24 크리스마스 이브 소사 4
  10. 2010.12.20 항복강도 5
사실 서울에 살아서 체감을 못하고 있는데
2011년 현재 대한민국에 돌고 있는 구제역은 거의 흑사병수준인 것 같다.
산 가축을 그대로 땅에 파묻어버리는게 100만두에 육박하고 있다.

말이 그렇지. 언 땅이고 겨울이니 아무것도 모르는거지 나중에 여름되어 봐라. 분명히 사단난다. 지하수? 절단나는 곳이 태반일 거다. 그렇다고 안 죽일 수 있냐고? 어차피 이 정도 번졌으면 정부에서는 도살 포기하고 백신 공급하고 구제역 나라라는 거 인정해야 한다. 사실 사람 먹어도 상관없단 말이야. 번지기 전에 도살할 바엔 차라리 멀쩡한 놈 도축해서 시장에 공급하는 게 낫다고! 

더 큰 문제는 물가와 생활 아닌가.
돼지값 소값 폭등하는 건 둘째다. 이거 올라가면 분명 수입육으로 해결하자고 할텐데 (-.-+) 수입육으로 다 대체할 수 없을거다. 그보다, 축산,양돈농가들은 어떻게 되는건데? 농촌경제 절단나는 소리가 도시 사는 내 귀에도 선연하게 들리는데 말이다. 

예전에 노무현 때 구제역 번질 때 뭐라고 궁시렁 대던 놈들은 지금 왜 한마디도 안 하나 몰라. 그 때는 정말 가뿐하게 잡았는데 지금 보니까 가축과 공무원을 동시에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냥 무조건 몸으로 때우는 건지. 아니면 구제역이 5년 전보다 강력한 슈퍼 박테리아가 되어서 아무도 손을쓰지 못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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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천재뮤지션, 영혼의 작곡가라 불리다가
어느 순간 [표절의 여왕]으로 가치가 급락해버린 비운의 여성작곡가. 칸노 요코의 스코어는 참으로 하늘의 별처럼 많다. 작곡이건 표절이건 정말 엄청나게 쏟아넣었다는 것을 보면 그 정력만큼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지만...하여간 [카우보이 비밥]은 남아있지 않을가. 표절의혹의 곡들과 함께.

(이 양반이 우리영화 [우아한 세계]의 영화음악을 맡았다는 건 이제 다 기억하지 않는다. 우아한 세계는 송강호만이 남아있을 뿐, 영화음악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만큼 송강호가 강렬했기 때문이었을까.)

수많은 음악이 있고 이 양반이 음악을 맡은 애니메이션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중 하나는 [천공의 에스카플로네]에 삽입되었던 이 음악이다.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개인적으로도 좀 병맛스토리였다고 생각하는데 나름대로 괜찮은 메카닉 디자인과 배경설정에도 불구하고 죽쑨데는 두 가지이유. 주인공들이 웃기게 생겼다는 것. 또 하나는 그 때 이 만화랑 같이 붙었던 게 [신세기 에반겔리온]이었다는 것. 에반겔리온은 그 뒤 사골겔리온이 될 때까지 주구장창 뽑아져 나왔지만 에스카플로네는 극장판 한번 나오고 뭐...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니매이션의 스코어는 강력하다못해 치가 떨릴지경이다. 칸노 요코도 꽤나 심혈을 기울인 듯 관현악에서 뽑아 낼 수 있는 화성과 코러스, 그리고 찬트까지 온갖 몽환적인 요소를 다 뽑아넣어 만들어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이 [Epistle]

얼핏 들으면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의 한 소절처럼 들리는 소프라노의 하이피치와 남성부의 저음이 번갈아 교차되면서 빠르고 묵직하게 흘러간다. 찬트를 가지고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몇 안되는 음악. 사실, 애니메이션 스코어라는게 길어봤자 3-4분이니 그 정도의 긴장도만 잡아주면 되고 중요부분의 테마로 쓰이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을 볼 때, 상당히 완성도 높은 음악 아닌가 싶다. 그리고 빠른도입 - 변주 - 빠른후주로 이어지는 부분은 천재 코른골드가 클래식에서 헐리우드 스코어로 끌고 온 공식 [축약된 18세기 심포니]의 영향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난 클래식 매니아 수준은 아니니 그냥 이 사람 그렇게 생각하나보다 그러고 넘어가 주시길...)

이걸 듣다보면 참 아깝긴 하다.
어쩌다가 표절대마녀라는 길을 가게 되셨나. 그냥 천천히 여유롭게 쓰고 싶은 노래를 생각해 보지.

이 노래도 표절이면 뭐 할말 없음이다만.

p.s) 에스카플로네에서 이 노래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shilly, 뭔가 야릇하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냄새가 나긴 하는데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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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걱정이 가장 큰 법이고
남의 고민은 내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데
왜 이것을 가지고 늘 다툼이 일어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알만한 나이도 되었건만 늘 이런 문제로 부딪히는 걸로 봐서
아직 철이 덜 든 것이 아닐까 싶다.


2.
내게 누군가가 호의를 갖는 것은 좋으나 호의가 버거우면 참 곤란하다.
바꿔 말하건대, 나 또한 남에게 분명 그랬을 것이다.

'내 여자 아니면 잘해주지 말라'라는 말 또한 이것의 대우명제일 터.

늙을수록 진중해져야 하는게 그것이 안된다.
최소한 중도는 지키는게 천덕꾸러기는 면하지 않을까.


3.
배우는게 제일 쉽고
돈버는게 제일 어렵다

이유는 한가지
기회와 진입장벽이 더 좁으니까.

사실 머리쓰면서 공부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
그런데 돈 버는 건 현실적으로 몸을 써도 힘들다는게 문제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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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 입사한 지 3년째 되던 해였던가 아니면 그 전이었던가
나름대로 뜻한 바 있어 대학원에 가려고 했다. 그래서 서강대 언론정보대학원에 원서를 냈다.
서류심사까지는 통과했다. 그리고 교수와 면담이 있었다.

그 날도 스산하니 추운 날이었다. 작은 정원만한 동산을 가로질러 외우기도 힘든 사람이름 붙은 건물 안에서 기다리던 시간이 생각난다. 그리고 교수와 만났다. 희한한 일이었다. 일대일의 독대였으니. 면접이 아니었던건가. 

하긴 그 당시엔 대학원을 가겠다는 사람들 자체가 드물었다.IMF가 터지고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을 뿐 아니라 언론정보대학원이라는 곳이 미디어쪽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뽑는 곳이었는데, 희한하게도 그 때는 지원자 자체가 없었던 모양이다. 각설하고, 난 그 교수와 함께 면담을 시작했다.

"이번에 저희 대학원에 서류를 넣으셨죠"

"예"

교수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말을 했다.

"아무래도 곤란합니다."

"뭐가요"

"입학 말입니다."

"무슨 결격사유가 있습니까."

"나이가...많지 않습니까."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교수는 날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을 했다.

"어차피 대학원에서 졸업하고 나면 서른이 넘습니다. 그 뒤에는 취직을 해야지요. 하지만 이쪽업계에서 취직을 서른 넘어서 하기는 힘듭니다. 더군다나 저희 학부에서 가르친 사람이 취직을 못한다는 건 저희로써도 난감한 상황이고요. 그래서 아무래도 입학에 결격사유가 있다고 생각이 되는 겁니다."

10년 전의 일이다. 서른 살도 되기 전의 청춘에게 교수가 한 말이라는 것이.
그때는 참으로 순박하고 세상 허투루 살았던 듯 싶다. 교수의 그 한마디에 나는 그냥 고개만 숙이고 묵묵히 돌아서 그 학교를 나와버렸다. 지금 같았으면 일단 앞에 앉은 인간 옥수수 너댓 개는 출장보내고 다시 면담을 시작하거나 합의를 했거나 둘 중의 하나였겠지. 그런데 난 그냥 '다 어렵구나...' 이러면서 세상살이 힘들다는 표정으로 길을 나섰다.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그 때는 어려웠다. 취업이 학교를 좌우하는 시절이었을테니까. 각박함이 사회를 갉아먹던 초창기 시절 아니었던가. 좋게 봐줘서 교수의 속내는 그런 것이었을게다. 여기서 학업을 포기하게 되면 저 인간 그냥 다시 은행으로 돌아가서 돈 잘 벌지 않을까. 늦게 꾼 꿈의 끝이 마냥 달콤한 법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겠지.

참으로 애석하게도
난 교수의 말과는 상관없이 퇴사하고 다른 길로 가버렸고, 그 길에서 직업을 구하는데 1년 반이 걸렸다. 그리고 연봉1100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길을 가는데 혼자 바닥바닥 바닥을 기어서 직업을 따내는 데 1년 반이 걸린거다. 그 시간이면 그 학교에서 웬만한 건 배우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서 못한다고 하는 법이란 없다. 더군다나 배움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제일 쉬운게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 길이 가장 진입하기 어려웠다. 

왜 바꿔서 생각을 못했을까.
저 나이 되어서 이 문을 두드릴 정도라면 이미 이판사판 각오를 하고 들어오는 사람이라는 것을.

작년에도 똑같은 일을 당하고 나니
딱 10년 전의 그 날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더라.

늦었다. 늦었다. 배우고 나면 이미 늦으리.

천만의 말씀.

계단으로 올려주는 수고를 덜지 몰라도. 산을 올라가려는 사람의 의지가 있다면 절벽을 파서라도 길을 내면서 가는 것이 사람일진대. 단지 올라가는 시간이 한없이 더뎌질 뿐. 결국은 올라가고야 말 것인데.

-
사람마다 팔자라는 것이 있고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택시나 엘리베이터는 못 타고 도보나 계단으로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인생도 있는 것인 모양이다.
늦어진다고 어찌하겠는가. 그게 내 것이 아닌 것을.
중간에 힘들다고 울면서 다시 되돌아가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도달할 것인데.

도달하고야 말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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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양배추를 끓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2년 전인가 문득 머리를 스친 아이디어였다.
배추도 국을 끓이는데 더 야들야들한 양배추는 국을 왜 못 끓이겠는가라는 생각이 그 첫번째였고

속을 국물로 덥히되, 가급적이면 비싼 먹거리를 쓰지 말고 질박하게 먹을 수 있는 걸 찾아보자는게 그 두번째 목표였다. 사실 먹는 일에 그렇게 관심도 흥미도 없었지만 그나마 인생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공급은 받아야 할 터, 나름대로는 고심해서 고른 메뉴였다. 아무런 미련도 없고, 만들다 망해도 그냥 던져버릴만한 최소한의 음식.
그것이 양배추국의 시작이었다.

그런데로 소금도 안 넣고 맨 처음에는 양배추만 끓여먹었다.
그냥 그렇게 먹었다.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끓어서 풀어진 양배추만 먹은 것이다. 밥하고.

근데 솔직히 못 먹겠더라. 그래서 소금을 넣어서 간을 했다.
그런저럭 먹을 만 했다. 묘한 단맛과 짠맛의 조화가 어우러졌다. 
이 정도면 밥에 아무런 집착없이 한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먹는]분야에 있어서는 최적의 음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찬장에 치킨큐브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가 넣어주고 가신 듯 했다. 
치킨큐브가 무엇인가?
맹물에 하나만 던져넣어도 닭국물이 된다는 기적의 향신료 아닌가!
무념무상으로 양배추를 끓이던 어느 날 저녁, 초록색 통이 눈에 들어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고
나는 소금 대신 그 놈을 넣어서 간을 해 보기로 했다. 나름대로 풍미가 나기 시작했다. 
고기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양배추국이라니! 오호 은혜로다. 난 참 머리가 좋아. 혼자 이러면서.  

그때는 몰랐더랬다.
그 맛과 향이 지금까지 먹었던 고고한 채식의 아취를 와장창 깨버리고 슬며시 육식의 유혹을 불어넣고 있었다는 걸.

다음날부터 소시지를 잘라서 양배추국에 넣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먹는다는 [사우어 크라프트] 생각이 났달까. 그러다가 집 찬장에서 혼자 외롭게 놀고 있던 스팸을 보고
'거기 혼자놀다간 평생 독신으로 살다 맥주안주 따위밖에 안 될 것이다'라는 생각에  그 놈을 배추국에 넣어봤다.
맛이 달랐다. 고기냄새만 풍기는 국물이 아니라 뭔가 씹히기 시작하니 세상이 달랐다.

점점 내 양배추국은 양배추만 들어가는 국이 아니라 잡다한 요소들이 이것저것 첨가되기 시작했다.
몸을 생각해서 마늘을 잘라넣기 시작했고
영양소 균형을 생각해서 감자 한 알을 같이 썰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스팸을 과감히 탈피해 버리고, 어느 순간
소시지계의 끝판왕..미국 [존슨빌 소시지]를 구해다 숭덩숭덩 썰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무념무상으로 국을 끓이던 나는 화들짝 놀라며 내가 만들고 있는 양배추국을 쳐다보았다.
 
이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청정 초록빛만이 감돌아야 할 냄비 안이 너무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그 때 나는 불현듯 깨달았으니

오호라 이것이 인간의 탐욕이로다
처음에는 남는 재료가 아까워 넣기 시작하더니
어느순간 부터는 미각을 탐하여 이것저것 채우기 시작했구나
주인공 양배추는 어디 구석에 파묻히고
언제부터 양키쏘세지가 냄비를 나와바리로 접수하였던고.

며칠 뒤
호옹님이 친히 집을 방문하시어
끓고 있던 양배추국을 슬쩍 보시고 뚜겅을 열어 보시고 다시 덮으시면서
조용히 한 말씀을 던지셨다.

"이것은 스튜(stew)입니다."

그렇다. 
더 이상 맑은 물 아래 양배추가 비치는 국이 아닌 스튜가 되었던 것이다.

그저 한 끼니 거르지 않고 넘기며 감사하려고 만든 국이
어느날 밑바닥도 보이지 않는 걸쭉한 고기국물로 변하는 순간.
이제는 예전처럼 만들어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2010년은 정말 정신사납게 보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 중 팔할은 내 욕심과 내 분을 못 이기고 만든 일이었으니.
올 해는 좀 더 신중해 볼까.

한번 넘어서면 돌아갈 수 없는 것은 국이나 스튜나 인생이나 일반일텐데.

p.s) 다 쓰고 보니 뭔 소린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지금 양배추국을 다시 끓여먹고 오는 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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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ldies is goodies라는 말은 다른 데서 찾지 않겠음. 할 말이 많지만 말이 필요없으니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함. 나중에 부자되면 정말 차 사줄께. 부자되면...부자 되면...-.-;;;;으흐흑. 내년에는 건강하게 잘 놀자. 마님과 두 아이들에게도 안부를.

 a****t님: 세사에 찌들어 잊고 있던 저작의 길에 대해서 가장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 후일 보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올 해 제가 쓴 글에 대해서 감사할 기회를 노렸는데 좀 미뤄졌습니다. 첫번째 헌사는 a*****t님이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했어요.

m*6***g님: 직접적인 말이 없어도 참 감사했습니다. 우리 냥이들을 자식보다 예뻐해주시는...이렇게 아이디와 성품이 괴리되는 경우도 처음. 내년에도 두 분 알콩달콩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내년에는 더 많이 그쪽으로 방문했으면 좋겠네요. 올라오시는 길에 고생이 많으셨던 관계로.

b***o님: 형님도 올해 고생많으셨을 텐데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내년에는 걱정해주신 만큼 보답했으면 좋겠습니다. 형님 글을 잘 읽고 있는데 기타글은 너무 어려워요. -.-;;

호*님: 안 계셨으면 아침에 뭘 마시고 있었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방문도 많이 해 주시고 도움도 많이 주시고..세세한 곳 까지 꼼꼼하시니 계획하시는 일 잘 되실거예요. 내년에는 달인을 넘어서 무아의 경지에 이르시길

b*****y님: 글을 쓰다가 막힐 때마다 길을 제시해 주고, 생각지 못한 방향에 대해 다대한 도움을 주시니 가히 천군만마의 도움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꼭 내년에는 모두 성취하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올 해 참 많은 정신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빵이라도 사 드려야 하는데

N****y님: 볼 것 없는 제 블로그에 원글보다 좋은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오히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바라시는 거 기필코 성취하시고 내년에는 좀 더 자유로와 지고 행복해시는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말 안해서 그렇지 정말 고마왔습니다.

의*(tm을 어떻게 붙이는거지..)님: 가끔 들어가 뵈는 블로그에서 도인의 풍류를 봅니다. 흙을 만지셔서 그러신건가요. 짧지만 강렬한 댓글, 그리고 좋은 포스팅과 사진 잘 읽고,잘 보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ㅣ***n님 : 블로그의 냉철함, 트위터의 비분강개 + 소쿨하신 이웃님. 올 해 마지막 주문한 책이 '소년 H' 와 '카탈로니아 찬가'였습니다. 내년에 처음으로 읽는 책이 되겠군요. 잘 보고 잘 배우고 있습니다. 좋은 글 내년에도 많이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2011년이 되시길!

J*님: 중간에 훌쩍 안 보이셔서 뭔 일이 있나 걱정했던(이역만리에 계신데 내가 걱정한들 별 방법이...-.-;;). 아무것도 아닌 졸필을 사랑해 주신 블로그 이웃님. 내년에도 좋은 활동 부탁드립니다. 요즘은 호주에 가고 싶어요. 어흥 그런데 한글로 밥 빌어먹고 싶으니 이것저것 다 안되는 상황. 하여간 관심과 애정에 감사를 드립니다.

-.-+ 님: 애들 키우느라 바쁘신 우리 아주머니. 남편께서는 섣달그뭄이라고 안부도 묻는데 왜 자네는 조용하신가요.  내년에는 우리 나눴던 신앙과 이성에 대한 고민에 대해 내가 답을 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애들하고 싸우지 말고 행복한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 외에도 조용히 들어와서 아무것도 아닌 넋두리를 읽고 가셨던 많은 분들. 이름도 없이 들리셧다가 괜시리 뜨악한 글에 상처받고 가신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내년에는 저도 좀 더 성숙하기를 바라고, 많은 분들에게 좋은 글들과 희망찬 글들로 빈 여백을 채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간 글을 봐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니 희망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여러분 모두 희망찬 새해를 시작하시길.


p.s) 젠장, 티스토리는 이글루스처럼 결산프로그램이 왜 없는거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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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JANUS)

작은 방 한담 2010. 12. 30. 02:34
길과 흉, 선과 악.

두가지 양면성에 대한 대명사가 되어버린 야누스는 원래 로마의 신이었다. 얼굴이 둘인 신.
혹자는 기원이 출입문이라고도 한다. 나갈때 들어갈 때 다른 건 그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을까.
혹자는 기원이 새해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라고도 이야기한다. 
그 해가 길하고 악하고를 모르는 사람들의 소망과 불안이 담겨있기 때문이랄까.

스스로가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해가 되기를 소망하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에게 닥치는 불행을 감당할 능력이 있기를 바라며
좋은 우연으로 예정된 재앙을 피해가기를 원하고
선한 의도로 악한 고의를 방지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사람의 바람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내가 행하는 모든 일과 행동과 선택이 
불행과 재앙과 악의로 작용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기쁨은 남의 불행이 될지도 모른다.

내년에는 이런 일들에서 조금씩이라도 자유로와졌으면 한다.
보다 심사숙고해서 현명하게 판단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같은 값이라면 스스로의 책임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타인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빈곤함으로 인한 인성의 파괴를 구축할 정도의 재력 또한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오만방자함으로 타인의 감정을 파괴할 교만함은 없었으면 좋겠다.

스스로의 꿈을 계속 가져나갈 근기가 있었으면 좋겠고
허황된 미몽에서 깨어날 수 있는 이성을 지녔으면 좋겠다.

허탄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의 공고함을 가졌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세상에 뒤얽힌 광신이나 위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사랑을 할만한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으되
자포자기와 집착이 둘 다 아닌 진솔함을 기대했으면 좋겠다.

바라고 바라는 것은 많으나
그것이 결국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이라는 걸 깨닫는 것.
결국은 나름대로 살아온 삶에 대한 시각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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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투덜투덜 2010. 12. 27. 23:03
앞으로 나흘 남은 2010년.
투자대비 산출로 봤을 때, 끝내주는 적자로 마감하는 한해였다.


오늘 고양이 2주차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재수술했다.

기브스를 한 발을 어떻게 움직인건지 수술부위 핀을 다 뽑아내버리고 다시 뼈가 어긋난 상태였다.
부러진 뼛조각을 제거했다.
다리가 짧아졌다.
피부도 욕창이 날 수 있다고 했다. 세번이나 같은 부위를 쨌다.
이젠 관절을 살릴 수 없다고 했다. 그냥 붙기를 희망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도 안되면 절단.

악연이었던 건가. 첫째랑 나라는 사람과는.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잘 살고 있지 않았을까.
2주동안은 좁은 케이지 안에서 생활하게 만들어야한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지금도 계속 울어대면서 창살을 박박 긁어댄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식을 갖지 않아 그런 쪽의 고뇌는 절대 알지 못한 채로 일생을 접으려니 생각했건만
키우는 고양이가 아파도 어디에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짜증과 분노와 슬픔이 있다. 하물며 자기를 닮은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오죽하랴. 아마 내 부모들도 내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지만 [낳고나서 후회]라는 것을 정말 많이 했을 법 싶다. 인생의 고뇌가 비단 혼자만 짊어지고 가는 것이 절대로 아니니, 불가의 말처럼 누구 하나 인드라망에 걸리지 않는 이가 없는 법이다.


2.
누군가가 
올해는 아무 생각없이 휙휙 지나간 해라고 내게 말을 해 주었다.

축복이라고 말해주었다. 그건 최소한 플러스마이너스가 일치해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감정일테니
충실하게 채운 한 해였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행한 일들을 복기한다. 보통 나쁜 일이나 아쉬운 일들이 기억을 점유하는 법이니 그것들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면 행복하게 한 해를 마무리 한 것 아닐까.


3.
어수룩한 척, 세상살이 약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저렇게 쏙쏙 알차게 빼먹으면서 살았으면 참 좋겠다.
정(情)도 없고, 한(恨)도 없고, 원(怨)도 없고
오직 욕(慾)만 있는 인생.

그것이 세상사의 도(道)일지도.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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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생일을 맞았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남녀가
내 생일을 기념해서 모텔에서 섹스를 하겠다고 하면 그게 미친 짓 아닌가 싶다.

나 닮은 아들 딸이라도 낳고 싶은건가? 어차피 부부사이 아니면 콘돔 쓸 거면서.

오늘은 그리스마스 이브.
모텔을 찾아 추운 겨울밤을 성난(?) 청춘들이 방황하는 거룩한 밤.

벼락이나 맞을지어다. 아멘.


2.
인생의 중요한 갈래길은
생각보다 훨씬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절대로 큼지막한 일들은 인생의 방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가만 보면 인생사에 경홀히 할 것이 없다.

이쯤에서 대충 접어도 되거나 관둬도 되거나 혹은 내멋대로 해도 되겠지 싶은 것들이
나중에 혹독한 부메랑이 되어서 날아오곤 한다.


3.
어서빨리 일주일이 후딱 지나가고 새 해가 왔으면 좋겠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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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강도

투덜투덜 2010. 12. 20. 00:43
금속공학에서 물체가 변형되기 시작하는 응력의 계수를 항복강도라고 한다. 할 것이다.

피로가 누적되는 금속피로던 물질이 변형되는 항복강도의 정점이건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화가 화를부르고 재난이 재난을 부른다지만 정말 올해만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이 꼬이는 상황도 
그리 흔치 않았다. 남들은 아홉수라는데 아홉수도 아니면서 왜 이런 경우인지.

어머니 병환에, 회사는 접었고, 인간관계는 허탈하기 그지없는데 예상치 못한 지출은 늘어나고
고양이는 아파서 자빠지고, 하반기를 투자했던 시험에서는 물을 먹고 연애는 저 먼 하늘의 별인데다 장래는 한 치 앞을 알아볼수 없는 상황에 놓였으니 

이런 일이 한 해에 한 두개씩 온다거나, 쉬엄쉬엄 간격을 주고 오면 모르겠는데 거의 한달 반 간격으로 몰아쳐서 사람을 때리는데 아주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직 열흘정도 남았는데 이제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람 사람은 불평불만은 잘 해도 쉽게 생각을 고쳐먹는 사람도 아니고 죽기 전까지라도 고집을 꺾는 부류는 아니다. 안되면 오기로라도 버텨야 한다는게 지론이었는데 어저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 때려치자 그냥."

계속 개기고 개기면 뭔가 빛을 볼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게 과연 언제일까.

누군가가 내게 그랬다.

70년 여자를 쫓아다녀서 호호백발 할머니 할아버지때 사랑을 얻어 결혼하면 그게 실패한 삶인가 성공한 삶인가?
사랑의 강도가 70년을 살게 했다면 성공한 삶일까?
분명 돌아보게 되어 있는데.

지금 난 내가 살아온 삶하고 내가 살아갈 삶하고 딱 중간지대에 와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근원적인 의구심이 생기는 중이다.
내가 정말 잘 한 걸까?

정답은 그냥 계속 가는 것일게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방식인데
쩍쩍하고 마음속에서 뭔가 깨져 벌어지는 소리가 난단 말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12월 말까지는 혼자 좀 생각을 해 봐야겠다.
워낙 운수가 험해서 옆에 누가 있는 것도 이젠 불안하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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