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천재뮤지션, 영혼의 작곡가라 불리다가
어느 순간 [표절의 여왕]으로 가치가 급락해버린 비운의 여성작곡가. 칸노 요코의 스코어는 참으로 하늘의 별처럼 많다. 작곡이건 표절이건 정말 엄청나게 쏟아넣었다는 것을 보면 그 정력만큼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지만...하여간 [카우보이 비밥]은 남아있지 않을가. 표절의혹의 곡들과 함께.
(이 양반이 우리영화 [우아한 세계]의 영화음악을 맡았다는 건 이제 다 기억하지 않는다. 우아한 세계는 송강호만이 남아있을 뿐, 영화음악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만큼 송강호가 강렬했기 때문이었을까.)
수많은 음악이 있고 이 양반이 음악을 맡은 애니메이션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중 하나는 [천공의 에스카플로네]에 삽입되었던 이 음악이다.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개인적으로도 좀 병맛스토리였다고 생각하는데 나름대로 괜찮은 메카닉 디자인과 배경설정에도 불구하고 죽쑨데는 두 가지이유. 주인공들이 웃기게 생겼다는 것. 또 하나는 그 때 이 만화랑 같이 붙었던 게 [신세기 에반겔리온]이었다는 것. 에반겔리온은 그 뒤 사골겔리온이 될 때까지 주구장창 뽑아져 나왔지만 에스카플로네는 극장판 한번 나오고 뭐...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니매이션의 스코어는 강력하다못해 치가 떨릴지경이다. 칸노 요코도 꽤나 심혈을 기울인 듯 관현악에서 뽑아 낼 수 있는 화성과 코러스, 그리고 찬트까지 온갖 몽환적인 요소를 다 뽑아넣어 만들어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이 [Epistle]
얼핏 들으면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의 한 소절처럼 들리는 소프라노의 하이피치와 남성부의 저음이 번갈아 교차되면서 빠르고 묵직하게 흘러간다. 찬트를 가지고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몇 안되는 음악. 사실, 애니메이션 스코어라는게 길어봤자 3-4분이니 그 정도의 긴장도만 잡아주면 되고 중요부분의 테마로 쓰이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을 볼 때, 상당히 완성도 높은 음악 아닌가 싶다. 그리고 빠른도입 - 변주 - 빠른후주로 이어지는 부분은 천재 코른골드가 클래식에서 헐리우드 스코어로 끌고 온 공식 [축약된 18세기 심포니]의 영향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난 클래식 매니아 수준은 아니니 그냥 이 사람 그렇게 생각하나보다 그러고 넘어가 주시길...)
이걸 듣다보면 참 아깝긴 하다.
어쩌다가 표절대마녀라는 길을 가게 되셨나. 그냥 천천히 여유롭게 쓰고 싶은 노래를 생각해 보지.
이 노래도 표절이면 뭐 할말 없음이다만.
p.s) 에스카플로네에서 이 노래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shilly, 뭔가 야릇하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냄새가 나긴 하는데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