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해당되는 글 131건

  1. 2009.06.01 한국소설묘사사전 2
  2. 2009.06.01 영원한 편복(蝙蝠)의 삶 4
  3. 2009.05.31 칼로 물베기라 5
  4. 2009.05.29 방금 전 돌아왔습니다. 12
  5. 2009.05.25 우리도 좀 뻔뻔해져야할까 2
  6. 2009.05.24 5/23 - 조계사 4
  7. 2009.05.21 추야(秋夜)-경위(耿湋) 2
  8. 2009.05.20 어쩌면 그저 도피처일지도 5
  9. 2009.05.19 대쪽과 갈대 7
  10. 2009.05.19 결국 누가 승리자인가? 2


사실 별 생각없이 만났지만 구입을 결정하면서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전시회 같이 가 준 사람들 고마붜용)

사랑과 성. 여성. 만남. 이별이라...

알긴 알아도 묘사는 쉽지 않고
많은 기라성같은 작가들이 써 놓은 글들이 아무리 주옥같더라도
결국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능력에 의해 나오는 것들이니
아주 도움이 된다거나 도움이 안된다거나 지금 뭐라 말할 수는 없다.

-.- 그런데
[사랑과 성]의 묘사 부분이 제일 길구낭...

[경마장 가는 길]의 하일지부터 [광마일기]의 마광수까지...
어째 문학작품들인데 그런 묘사가 되어 있는 부분만 발췌되어 있다보니
이 나이에 야설읽는 기분이 드네그려. 작가들에 대한 모독성 발언은 아니고
야밤에 혼자 앉아 남녀상열지사가 묘사된 페이지만 줄창 열페이지 이상 보다보니

....-.-
아, 술이나 한 잔 마실까봐.
Posted by 荊軻
,

얼마 전에 올라온 후배의 글에서도 그랬지만
발달해가는 인간의 삶 속에서
기독교인의 가치체계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영원한 중간자의 삶을 꾸려갈 수 밖에 없음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한쪽 발은 인문학과 인간가치중심의 영향권에 넣어두고
한쪽 발은 신의 현현에 대한 기대와 절대자에 대한 복종의 서원에 넣어둔다.

같은 종교를 믿는 자의 패악에 통감하지만
같은 종교를 비방하는 말에 대해서 역시 다르게 가슴아파한다.

절대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나
급변하는 사회의 상대성에 대해 공감한다.

비신자의 비판에 대해서
몰이해와 광신과 합리적 선택과 절대복종의 사이에서
작은 지푸라기 하나에도 갈등한다.

내가 살아온 환경과 이성에 의한 판단에 의해서만
생각하고 움직이면 좋으련만
인간의 범주 밖에 있는 절대적인 선(善)의 기준이라는 것을
믿고 따르게 된다면 또한 그것이 무의미하게 된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믿고 선이라고 따르는 것에 대해서
절대자의 입장에서 선이 아닐 경우는
어떤 것을 따라야 하는가?

어찌보면 나 개인의 신학을 규정짓는 문제에서
가장 커다란 문제점이자 화두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날 내가 깨달아
즉심즉불이요 비심비불이라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곧 신의 섭리라고
느껴질 때 나는 이 모든 것을 초탈할 수 있으련만
사람이 그렇지 못하고 세상이 그렇게 얇지 않은 관계로
늘 고민하고 고민하는데
뭐가 실상인지를 알 수 없는 오성의 한계에 늘 절망한다.

어쩌면 나는 죽는 순간까지
어느 쪽에도 온전하게 의탁하지 못한 채로
모든 곳에서 영원한 회색분자로 살아가야 할 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어렵다.

Posted by 荊軻
,

칼로 물베기라

수련장 2009. 5. 31. 01:18

부부간의 싸움 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의 싸움도 비슷한 것이다.

의절할 만큼 심각하게 내가 죄 지은 것도 아니고
어디서 굴러먹다 온 지도 모르겠는
원산지 불분명의 현직 대통령때문에 싸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칠순 나이의 연배에게
사상을 바꾸라고 강요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옳다 하고 맞다하는 것을
부모 말씀에 순종한다고 바꿀 것인가?

둘 다 난망하다.

논어에 보면 효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께 자하가 물었다.
무엇이 효(孝)입니까?
공자가 답하길 색난이라하였다.

자왈색난(子曰色難).

[항상 얼굴빛을 온화히 하기가 어렵다.]
[대충 안색을 보고 뜻을 살핀다]는 말이다.
효란 항상 얼굴빛을 밝게 부모님을 대하는 일이라는 말 같은데

나이들면 자식하고 부모하고 싸우는 건 당연지사라고 공자님도 여긴 모양이다.

거 참.
그래서 효도라는 걸 옛 선인들은 군자의 덕목에 넣어 둔 모양이다.
사실 가족간의 갈등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 있을까?
그것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부터 인격도야가 시작되는 듯 하다.

어떤 경서를 보던 [효]가 안 빠지는 것이 없으니...


"부모들아 자식을 노엽게 하지 말라"라는 성경구절이 오히려 참신하다는.

p.s 1) 토요일자, 5/30일자 경향신문은
         내가 30년 넘게 본 신문중 거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1면이었다.
         이건 스크랩 해 놓았다가
         나중에 자식에게 주던가, 자식 없으면 조카에게라도 줘야겠다.

Posted by 荊軻
,
첼로팬님과 함께 있다
회사 사정상 먼저 들어왔습니다.

한없이 벌려 서 있는 만장
끝없이 이어지는 시민들의 행렬,
수많은 인파의 애도와 빌딩에서 뿌려지는 애도의 종이조각과
수많은 이들의 울음을 뒤로 하고
이제는 영면으로 가시는군요.

이게 국상이고
이게 국민장이죠.
이만한 문상을 받을 자격 있는 이
또 있겠습니까.

덕불고 필유린이라
덕있는 자는 외롭지 않고 반드시 사람이 모인다 했으니
그 말이 사실입니다 그려.

다시는 볼수 없는 장관이었습니다만
내 태어나서 왜 이런 걸 봐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안녕히,
진짜 대통령.
Posted by 荊軻
,
조계사에서 만난 지인과의 대화에서 가장 맘에 남는 말 한 토막

"사람이 뻔뻔해 져야해"

반어법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각오일 수도 있고.

뻔뻔해져야 이 마군이 득실대는 곳을 살아갈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

하지만 말한 분이나 듣고 있는 나나
그렇게 못 살 거라는 건 더 뻔한 일.

무협지나 만화를 보면 그런 장면이 종종 나오긴 한다.
짐승같은 놈을 잡으려고 인성을 날려먹고 수라의 길을 걸어가는 주인공.
혹은
살아남기 위해 인간으로 살기를 포기한 주인공이라던가.



...

아서라 말아라

유방백세 유취만년 이로다.
Posted by 荊軻
,
태어나서 한 번도 조계사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종교때문에도 그랬고, 갈 이유도 없었다.
작년에 촛불집회를 하고 도망나오듯 집에 가면서 조계사 뒷길로 돌아간 것이 전부랄까.

오늘은 내 발로 대웅전까지 찾아갔다.

원래 명동성당 앞에서 사람들끼리 모여 노제를 지내려고 했다만
무슨 이유에선지 명동성당에서 조계사로 분향소가 바뀌었더라.
자살자는 모시지 못하는 교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김추기경 선종 이후 큰 짐을 맡기 힘들었던
천주교의 부탁때문이었을지는 몰라도

하여간 조계사에 작은 분향소를 하나 차렸다.
(이미 조계사에서는 준비를 다 해 놨더라. 내일은 야단에서 분향소를 받을 것 같다.)

세상만사가 고해의 바다이고 참으로 무상한데
이제는 좀 쉬시리라 생각한다.
그저 좀 슬펐다.

고인에겐 죄송하나 예불까진 드리지 못했다.
그저 무늬만 기독교라도 본심은 남아 있으니 모두 알아주실게다.

덕수궁 대한문에 차려놓은 분향소는 고종때 집관서던 일제놈들의 잔당같던
경찰들이 막아 놔서 사람들이 들어가지도 못했으나
사람들은 분향소를 여기저기 차려놨더라.

예순 평생 사람이 살면서
삼천리에서 자발적으로 추도하는 삶이 그 또한 몇이나 되겠는가.

잘 가시오.
바보양반.

남은 이들에게 갚아야 할 부채를 주고 가시는구랴.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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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秋夜分後(고추야분후) : 한 가을 밤은 이미 자정이 지났고

遠客雁來時(원객안래시) : 멀리서 나그네기러기 올 시간이네.

寂寂重門捲(적적중문권) : 사방은 고요하고 문은 닫혀있는데

無人問所思(무인문소사) : 내 생각 묻는 이 하나 없구나.




*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삶은 다를게 없구나.
  계절만 다르고 사람만 다르지
  육욕칠정이 다 거기서 거기라.
 
  정말 모든게 세사의 번뇌로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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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일하는 곳이 사람이 몇 안되는 직장이고
말로 하는 것보다 그냥 산출물을 보여주는 것이 상례이다보니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심할 때는 하루에 두 서너마디 정도만 할 뿐이고
그외의 토픽은 사업이야기, 돈 이야기, 지출이야기가 전부다.
그리고 집에오면 역시 말할 사람은 소라게밖에 없는 상황.

내가 수다를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사회생활에서 수컷끼리 떠드는 스포츠나, 밤문화같은 토픽에
그리 관심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하는 일은 주로
회사 이야기와 돈이야기뿐인데.

솔직히 지친다.
끄적끄적 블로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써 놓는 것도 그런 종류의
나름대로 해방구를 만드는 것이고
이도저도 안 되면
그냥 머리를 텅 비게 만들기 위해 샌드백을 치러 도장에 간다.

가끔은
내가 하는 일과 전혀 동떨어져 직종의 연관관계 없는 친구랑 가끔 만나서
진짜 세상이야기 쏙 빼버리고 이야기하는 걸 즐기긴 하는데
그 친구를 못 만날 상황이 되면 그냥 오늘처럼 자판에 올인하는 형국이 되어버린다.

까놓고 말해서
이건 현실에 대한 도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살려면 돈이 든다. 먹으려면 돈을 벌어야한다.
하지만 거기에 24시간을 억눌려 있는 걸 참아내지 못하는 것이고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냉혹하게 보자면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는 거나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생산성 제로의 가치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초록색 세종대왕 얼굴 배알하려고 세상에 태어난 건 아니지 않는가?
하루24시간 내내 회사발전과 수익성에 대한 이야기만 해야한다는 법이 있는가?
나도 LG를 응원하지만 두산과 삼성과 한화와 해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실시간으로 알아야 할 필요성까지 있는가 말이다.

솔직히 나는
 [난 엊그저께 도서전시회에 가서 외국어대학교에서 학부생용으로 찍어낸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를 샀어. 그런데 읽어보니까 불핀치가 썼던
아더왕 이야기에 나오는 거웨인과 부인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거야. 제프리 초서가
먼저 이야기를 썼을텐데 거기는 거웨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단 말이지. 결국
초서 역시 구전되는 아더왕 이야기에서 거웨인이라는 이름만 빼 버린 것이리라 이거야]


따위의 인생에 도움 안되는 잘난 척 하는 먹물스런 이야기를 하거나

[부타양이 준 불교서적 안에 보면 무상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이 무상이라는 개념이
전도서에서 솔로몬이 주장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를 개인적으로 느끼지 못하겠어.
여기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나?]

같은 역시 돈벌이에 도움 안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으면 [개독이 X랄하고 자빠졌네]스러운
스노비즘에 절절 쩔어서 냄새가 풍풍 풍기는 이야기같은 걸 해 보고 싶다.

그런데
이딴 이야기를 대체 주위에서 누가 가만히 앉아 웃는 낯으로 듣겠냐고.

*----------
하지만 오늘 저녁에 집에 오면서 든 생각은 저런 것과는 전혀 다른 논외의 해답이었다.

저런 [재벌이 시간이나 죽이려고 만든 인문학]스러운 이야기를 하려면
(미국에서 인문학을 보는 시각이라는데...)
[재벌]이 되거나 돈을 일단 지천으로 벌어야 한다고.

어쩌면
내가 저런 일에 목매달고 있거나
대화의 부족함에 대해 편집광적으로 짜증을 내는 이유는
기저에 그러한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알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내 주위를 살펴보면
사무실에서 동료가 이야기하는
[형님, 뜬 구름 그만 잡고 우리 일에 신경 좀 더 씁시다]가 정답이라는 거다.

그래서 난
그 반작용으로 더 멀리 튕겨나가서 오늘도다른데서 정신적인 도피처를 찾는지도 모르지.

이건 외로움하고는 또 다른 무언가라는 생각이 든다.



요약: 결론은 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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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11시나 되어서야 저녁을 먹은 어젯밤의 화두는
[사람은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최근 여반장처럼 쉽게 얼굴을 바꾼 한 늙은 소설가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근처 친척들의 이야기로 넘어갔고, 말하는 이들이 아직 어렸던 시절의
격동의 현대사를 이야기 속에서 가까운 친족의 명멸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야기의 종합은

[끝까지 절개를 지킨 친척들은 똥구멍이 찢어지게 살고 있고
 그 때 항거했지만 개구리 삶아지듯 조금씩 변한 이들은 그나마 잘 살더라]는 결론이었다.

사시청청하여 사람들이 우러르는 청죽은
보기에 좋으나 이내 잘라져 사람들의 노리개가 되어버리고
진흙탕에 뿌리박고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야
아이들이 심심풀이로 꺾기 전에는 천수를 다하지 않더냐

배워서 뭣하는가
식자우환이라 하였는데

그리고 배워봤자
똥밭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이 훨씬 잘사는데.

수양산의 백이숙제 뜯어먹던 고사리도 욕하던
성삼문은 비명에 가고
쉽게 상하는 나물에 이름 붙은 신숙주는
영달이 하늘에 닿았으니

세상에 배울 것 하나도 없다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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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웃는 놈이 승자다]라는 말이 진리인지
아니면 자신 인생 최고의 날을 맞이하고 퇴장하는 자가 승리자인지

확실히 인생은
같은 순간에 대해 여러가지의 결론을 갖게 해 준다.

비연속성과 불확실성이라는게
삶이 인간에게 주는 보상일까?


* 켄터베리 이야기 1장을 읽고 나서 든..*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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