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예를 가지고 흉하다 단정짓지 말라
사람의 생이라는 것이 대저 그러하다.
참 좋은 말이로구나.
오랫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생각나서 걸었다."
"그래 잘했다."
으레 시작되는 단어입니다.
고등학교1학년 때니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친구.
이젠 한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맨 처음 만났던 때는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고등학교 입학하던 첫 날 사귄 친구기 때문이죠.
제가 32번이었고 그 친구는 31번이었습니다.
제 앞자리에 앉아있었죠.
"31번"
"응?"
"나 32번이다."
"응, 그래."
그 친구 성격이 좋아보였습니다.
"야, 31번."
"왜?"
"우리 친구하자."
"그러자."
그걸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상당히 고풍스러운 방법입니다.
서서히 친해지기 시작해서 관계가 발전하는 게 보통인데
아예 처음부터 [우리 지금부터 벗으로 지내는게 어떻소?]라고 한 놈이 말을 던지면
[그거 좋소이다]라고 추임새를 넣는 것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친구가 된 지 20년입니다.
그것도 끈끈하게 이어져서
지금까지 지내오는 걸 보면
확실히 사람의 우정이나 사귐은 때와 시가 분명히 있는 모양입니다.
따져보건데
절친한 이들을 만나 시기를 살펴보면 모두가 30 전입니다.
그것도 대학에서 만난 친구는 하나도 없고
대부분은 교회 아니면 고등학교 시절입니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만난 벗이랄 녀석은 사회 초년병시절 같이 개고생한
직장동료 하나로군요.
확실히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마음을 보여주기가 서로서로 곤란해지는 걸까요?
개인적으로는
나 스스로가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이
신뢰를 막아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불안은 커져가고, 직장에서 말하는 습관대로 사람들을 대하고
이익관계에 쫒겨다니다 보면 계산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저 사람도 그러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과 의심, 초조함 같은게 은연중에 나오는 것일테죠.
결국은, 스스로가 만든 장벽에 의해 고독해지는게 인생사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20대 때는 그런 게 없었겠지요.
사회라는 걸 아직 모르고, 삶의 팍팍함이라는 것과 가증스러움을 모르는 때였으니
얼굴에 가면을 쓰고 다닐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각설하고,
그 친구랑 한 번 전화를 잡았다가
결국 15분이 넘어서야 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회사 기밀사항까지 말해버릴 판국인지라 얼른 화제를 돌려버렸죠.
나이를 먹어도
할 말은 산더미 같더군요.
생각해 보면 그냥 지나가는 한담이었습니다만
사람하고 말하는게 참 그리웠나 봅니다.
"너 아직도 회사 좀 어렵지?
우리 마케팅 이사나 한 번 소개시켜 줄까? 그 양반이 좀 곤란한 처지긴 한데 우리 동문이라..."
"....그건 나중에 하자. 그냥 밥이나 먹자."
다음 주에 밥이나 먹으러 오라는 약속까지 해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녀석 마지막 말에
저는 좀 목이 메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잘못 살지는 않은 듯하고
그래도 뭐 하나 좋은 건 내가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한
금요일 저녁입니다.
天意於人(천의어인)에 無厚薄(무후박)이니라
권하노니, 범사에 하늘을 원망치 말라.
하늘의 뜻은 사람에게 본시 후하고 박함이 없느니라.
3.
나 스스로에게 일러 교훈으로 삼을 말
人至擦則無徒(인지찰즉무도)라.
사람이 너무나도 살피게 되면 따르는 이가 없는 법이라.
거리가 멀어야 말(馬)의 힘을 알고
시간이 지나야 사람됨을 알게 되는 법이다.
스스로에게 혹독한 만큼 사람에게 박하게 대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째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후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하게 잣대를 들이대고 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세상이 우주의 순환과 더불어 계절이 나누어지고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생명은 생노병사를 갖는다
때에 맞추어 씨를 부리고 자라도록 비료를 주고
비와 태양을 맞으며 홀로 커졌을 때 때를 맞춰 수확하고
수확이 끝나면 아무것도 없는 벌판을 기다리며 다른 시기를 기다린다.
때를 맞추고 씨를 뿌리는 것이 첫째요 관심을 갖는 것이 둘째지만
그 앞에 먼저 선행되는 것은 기다림이다.
농사는 기다림이다.
파종의 때를 기다리며, 식물이 자랄 떄를 기다리며, 잡초를 솎을 때를 기다리며
태양과 비를 기다리고, 그것이 결실을 맺을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부지런함이니 손을 하루 놀리며 수확이 그만큼 늦어지고
비올 때 물고를 트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것이니
농부는 해가 떠도 잠을 자지 못하고 비가와도 잠을 쉬이 자지 못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 뿐이랴
하늘의 뜻을 알고 하늘에 맡겨야 모든 것이 일궈지는 것.
그래서 농부는 신성한 직업이고
인생은 농사에 다름 아닌 것을.
기다리지 못해 씨를 먼저 뿌린다 되는 것도 아니고
부지런하다 해서 해를 못 보면 그나마 무용한 짓인 것을.
그래서
사람은 늙어서야 천시를 알게 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