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면서 다른 사람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의기소침함이라는 것이 생긴다.
[사람들이 당연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결핍],
그 결핍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 걱정에서 해방되어 타인과 같은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노력은 대단한 욕망이 따른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 많은 결함과 단점들을 그 문제에 귀결시켜버리기도 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저것만 가지고 있었으면 이런 일은 오지 않았을 것이야"부터 시작해서
"내가 지금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은 저것 때문이야!"로 결론지어버리기도 한다. 일종의 우울증. 그리고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일수도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겠지만 나도 남들 못지 않게(?) 심각한 박탈감을 느끼는 요소들이 있다.
2.
나는 머리숱이 적다.
그리고 몇년 전부터 아예 대 놓고 적어지기 시작햇다. 급격하게 빠지기 시작한 건 가정사에 문제가 생기면서부터다. 당시에는 정말 주르륵 흘러내릴 정도로 빠졌다. 암에 걸리지 않았나 싶었을 정도였으니까. 문제는 빠진만큼 회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오히려 그날 이후 여세를 몰아 대머리 그날까지 가열차게 머리카락들이 가출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데 있다.
이거 정말 짜증스럽다. 아예 배코를 쳐 버리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두상이 이뻐야 좀 봐줄만한 것이다. 내 소싯적에 울지 않는다고 그냥 멀뚱멀뚱 놔두었단다. 움직이지 않고 허공만 보고 있으니 어찌 되었겠나. 뒤통수가 납작이지. 행여 지금이라도 애가 있는 집안이라면 애 잘때 열심히 머리를 둘려줘라. 그래야 대머리인자가 있어도 부모를 덜 원망한다. 각설하고, 하여간 점점 숱이 없어지는 꼬라지가 영 보기 싫어서 결국은 병원을 한 번 찾아보았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데 나름대로 방귀좀 뀐다는 대한민국의 모발시술 실력자 세명을 만나봤다.
첫번째 의사 : 일단 가격 불러주고, 맡기면 알아서 심어주겠단다. 나름대로 실력은 인정받는다.
두번째 의사 : 심지말란다. 모발 자체가 힘이 없으니 나중에 심은 부분 빼고는 다 없어질 것 같단다.
세번째 의사: 약으로 현재 있는 부분을 지속시키고 모자란 부분을 심잔다.
세 사람 다 같은 스승아래에서 배웠다는데 말하는게 삼인삼색이다. 미칠 노릇이다. 내 머리털이 화수분도 아니고 함부로 쓱싹할 자원도 아닌데다가, 한 사람은 묻지마 시술, 한 사람은 하지마, 한 사람은 조건부. 그러면서 가격들은 거의 경차수준. 이 정도라면 사람이 허탈해진다.
3.
사실 개인적인 의사결정을 할 때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두고 움직인다. 그래서 두번째 의사의 말을 나는 가장 신뢰한다. 긍정은 세상을 이겨가는 힘이라지만, 실제 인생에서 해피엔딩은 동화에서밖에 더 있겠나. 다른 건 필요없고 내가 살아온 인생을 보면 안다. 긍정의 힘은 생명연장외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차피 빠질테니 그냥 멍하니 있자"라는 것도 못할 노릇 아닌가. 이것저것 생각해 봐도 남는 방법은 정력감퇴에 그렇게 좋다는 탈모억제제를 먹으면서 심던가. 아니면 배코로 치던가 둘 중 하나로 귀결될 것 같다.
4.
살면서 새삼스러운 것들을 부러워 한다. 알콜달콩 부인과 사는 삶을 부러워한다. 안정된 직장이 있는 삶을 부러워 한다. 머리카락이 줄어들지 않는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비염이 걸리지 않는 친구들을 부러워 한다. 잠을 잘 자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두통으로 고생하지 않는 친구를 부러워 하며, 소화가 잘 되는 친구들을 부러워 하며, 뭔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시 웃을 수 있는 활력이 남아있는 친구들을 부러워 한다.
커다란 쓰나미가 아니라 잔 매에 서서히 무너지는 것 같은 때가 있다. 커다란 거 하나의 성공이 아니라 자잘한 거 여러개가 성공하는 삶을 꿈꾼 지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엎어치나 메치나 결과는 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과정이 대부분이다. 하긴 나만 그럴까? 모든 이들의 삶이라는 것이 타인에 대한 부러움과 자신에 대한 자학일텐데.
이제는 좀 벗어나고 싶다. 삶에 대해서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가항력에 밀려서 표류하는 삶에 대해서 더 이상 한탄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머리카락이 붙어있건 사라지건, 사람들이 주위에 있건 말건, 재물이 있거나 말거나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와지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삶에 대한 내 고민이 집착과욕망이라면 그 모든 것이 다 끊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삶이라는 것은 불타가 말한 것처럼 고집멸도의 방법 외에는 없는 듯 하다.
평안과 행복이라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