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해당되는 글 131건

  1. 2010.08.13 구상유취
  2. 2010.07.11 가벼움 2
  3. 2010.07.02 네가 뭘 알겠니 6
  4. 2010.06.28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그렇지만 10
  5. 2010.05.12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6
  6. 2010.04.21 해바라기 6
  7. 2010.03.12 계영배(戒盈杯) 4
  8. 2010.03.10 생각이 많으면 번뇌만 많다 2
  9. 2010.03.09 아 그랬더라면. 6
  10. 2010.03.07 [추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 2

구상유취

수련장 2010. 8. 13. 00:58
사람이건 짐승이건 어린 것에게서는 속세의 냄새가 나지 않고 배내젖의 냄새가 풍겨난다.
하는 짓도 자신만을 위해 살며 보는 눈도 자신만을 위해 움직인다.
어리고 육신이 짧을 때는 또한 그 행함도 작기에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로 인해 자신의 지식을 채워간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도 자신만을 위해 살며 보는 눈도 자신만을 위해 움직이면
주위의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고 타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복중 태아를 벗어나 사회에 발을 담그고 산 지 거의 사십여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무엇을 이루었는가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천품과 시류와 운수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일이니 굳이 이루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속상해 할 일은 없다.

난 해를 끼치며 살지 않았는가
내 행동으로 타인에게 죄를 짓지 않았는가
부지불식간에 짓는 죄를 사람이 갚지 못하기에 기독교에서는 사람을 죄인이라 칭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나 책임지지 않는 잘못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한 터럭이라도 죄책감이 있으면 다행이다.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사람사는 인생이고 내가 살아가는 방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것부터 나는 다시 젖먹이가 된다.

나이를 공으로 먹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지고지순하게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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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

투덜투덜 2010. 7. 11. 09:22
세상살이를 하면

가끔 전혀 다른 사람에게 일말의 머무름도 없이 쉽게 나비처럼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잠시의 웃음으로 환심을 샀다가 아무런 아쉬움없이 또한 타인에게로 넘어가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젊은 날의 치기나 호구지책이 아닌
영원히 그의 생이 끝나갈때까지의 처세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아,
세상에는 같은 인간의 탈을 쓰지만
해바라기같은 인간도 있고 빨판상어같은 인간도 있구나 하는
삶에 대한 적절한 반성이 고양된다.

이건 누구를 욕할 것이 아니라 그냥 본성일 뿐이다.
전갈에게 쏘여 죽는 개구리가
아 씨바 왜 날 쐈어여 님아 할때 전갈이
아 씨바 미안해여 난 어쩔수 없는 놈이에여

하는 거랑 다를 바 없는 이야기.

결론: 그냥 알아서 피하며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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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기고양이 (이젠 아동 고양이라고 해야겠다)를 분양해 준 분이 글을 올렸는데

키우던 고양이가 수술을 받다가 오늘 죽었다고 하더라.

가만히 보니까 우리집 고양이 엄마 고양이다.

괜시리 요즘 마음도 그런데 울적해져서

고양이 끌어안고 토닥토닥 거리고 있는데

이 녀석은 아는지 모르는지 우다다닥 여기저기 세간이나 엎어놓는 중.


불러다놓고 말을 했다.

"네 엄마가 오늘 돌아가셨단다."

내 얼굴을 뻔히 쳐다본다.
알아 듣는건가.

그러더니 갑자기 내 손가락을 물더니 뒷발로 마구 차면서 신나서 논다.
얼굴에 장난기만 가득.

그냥 잡아서 코침을 한 방 놔 줬다.

왜 잘 노는데 때리냐는 듯한 억울한 표정.

그래

널 맴매할 이유도 없고 네가 뭘 알겠냐마는
지금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고양이는 툴툴거리더니
다시 내 무플을 베고 잠이 들었다.

인생이나 묘생이나.
그래, 우리가 뭘 알겠느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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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달이 다 되도록 지구촌을 달군 월드컵이 끝났지만
난 축구경기를 거의 시청하지 않았다. 
별반 축구에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그일보다 더 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편찮으셨다. 
편찮으시다고 하면 어폐가 있다. 편찮지는 않으시다. 대신 무언가를 알아낸 것이지.
언젠가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병의 발견. 그리고 치료가 상당히 희박한 증상.

막장드라마에서 가끔 주인공 죽을 때 써 먹는 그 병. 뇌암. 뇌종양.

부부젤라인지 자블라니인지 붕가붕가인지를 TV에서 볼 맘이 생길 수가 없었다.
검사결과를 알게 된 다음부터 든 느낌은 시간이 딱 정지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뭔가 생경하면서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느낌. 
내 일이 아닌 것을 내가 역할극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
그런 것들이었다.


-1-
사람은 유한한 존재다. 언젠가는 내 주변의 모두가 죽고, 나도 죽는다. 
필멸의 존재에게 죽음이란 필연의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누구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깊이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고민거리라기 보다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막상 [죽음].[이별]같은 생경한 말이
어느날 문자나 개념에서 벗어나 생생한 사실이 되어 우리 코 앞에 들이닥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꾸듯 현실을 몽롱하게 보게 된다. 
근심, 걱정, 가족, 사랑
그리고 그가 떠나간 뒤에 처할 나의 처지.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정형화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2-
언젠가는 닥치리라
늘 최악의 상황은 다가오게 되어 있는 법이다
누누이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말이지만
실제로 닥치게 되면 역시 마음속의 다짐이라는 것은
단순 예방차원의 것을 벗어나지 못함을 알게 된다.

주식시장에서 늘 하는 말 있지 않은가?
바닥이라 생각하는가. 지하실을 보게 된다.
인생의 굴곡은 사람의 생각을 훨씬 넘어서는
끝없는 밑바닥이 존재한다.

사람은 약하다.
아무리 험한 꼴을 당해 본 사람이라고 해도
재앙이 닥쳤을때 면역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보게 된다.

일가친척, 가족의 죽음을 한 두번 본 것이 아니지만
늘 그 과정은 새롭고, 새로와서 서럽고 슬프다.


-3-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돌아가신 것은 아니니까.
수술을 받아보자고 하신다. 위험성도 상당히 있다.
악성인지 양성인지는 수술을 해 봐야 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의 불확실성만큼 사람에게 절망과 희망을 강요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천천히 돌이켜보면

언젠가는 어떤 경로로든 나는 부모님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은 그 과정을 밟게 되어 있고 목도하고 집례하게 되어 있다.
아마도
슬픔이 지나가고 애통함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간 뒤에는
돌아올 수 없는 추억에 대한 회한이 남으리라.
그것이 인생일테니까.
아직은 아니라지만 언젠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끄적거려봤자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지금 드는 생각은 하나.
슬프다는 거다.

자식 아닌가
몸에서 태어난 자식인데 말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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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안 하는 일이 없이
열의는 무척이나 앞서 있었는데 일은 제대로 안 풀리는 지인이 하나 있었다.
간난산고 끝에 어느날 어느 기업에 정직원으로 들어갔다.

잘 되었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놈 보니까 좀 이상해져 있더라.
원래 무한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일어나는 것에는 
그놈의 끝간데 없는 자기애와 자부심이 강력한 동기로 자리한다는 걸 알았지만
사람 대하는 것이 영 달라져 있더라.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을(乙)을 무슨 대감집 노비다루듯 하더라.

자기도 알바 뛴 적 있고 중간에 잘린 적 있고
윗사람에게 모진 소리 들어가며 인격적으로 무시당해가며 펑펑 운 적 많은 놈이
왜 저 지랄인가 싶더라.

고생 아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말이다...

아, 관두자. 
원래 요즘 트렌드가 그런 가보다.
어느나라 대통령도 젊은 시절 X구멍이 찢어지게 고생했었다며?


처지가 바뀌면 인간도 바뀐다지만
사람이 과거를 망각하는 동물이 아니건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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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투덜투덜 2010. 4. 21. 16:15

-1.-

어쩌다 일이 있어서 근처 사무실에 들렀다.
아는 직원 하나 있었다. 처자다.

"잘 지내오."

"예"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깔대기로 빠져서 결국 연애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 보아하니 최근에 노상에서 같이 다니던 총각 하나 있는듯 하오이다."

"아, 그냥 착한 친구예요."

"별 관계 없이 착한 친구요?"

"그렇지요. 세월이 수상하다보니 밤까지 근무하면 바래다 주곤 하옵니다."

그냥 거기까지 말의 단락을 짓고 넘겼는데

곰곰 돌아와 혼자 사무실에 앉아 생각하니 참 누군지 불쌍하였다.
그 위인이 사해동포주의와 측은지심을 앞세운 인의지도를 가는 군자라면야 내 무슨 흠을 잡으리오만
과연 그 친구는 그런 단심으로 푸르른 대나무처럼 인생을 사는 사람일지.

만약에 그것이 아니라면 말 그대로 그 친구는 공주를 지키는 테라스 아래 파수꾼일진대
주야장천 사시사철 호위해 봤자 나중에 공주를 채가는 건 낯짝도 모르는 왕자일터.
그냥 [착한 친구]라는 말이 그것을 반증하지 아니하는가.

속내로는 나와 대화한 처자가 타인에게 맘을 들킬까 저어해 그 친구를 그냥 아무 관련없는 이라
낮춰 말한 것이리 하고 믿고 있는 중이다. 처자의 처지나 눈높이야 내가 어찌 알 바 아니지만
그냥 그러고 사는 남정네는 불쌍하지 않은가. 만약 그 사내에게 일푼이라도 연모의 정이 있다면.

사내건 짐승이건 한번 눈을 마주친 이가 인연이라 생각하는 머저리임은 분명하지만
스스로의 선택을 빙자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슬픈 일이 어디있으랴.

하기사 슬퍼보이는 건 제3자들의 눈이지 본인들은 정작 그렇게 생각 안하리라. 희망은 아편과 같으니.

-2.-
"아들, 혹시 바깥에 나가 볼 요량이 있는가?"
"바깥이라면 어딜 말하시는 것입니까?"
"산 너머 바다건너 이국을 말하는 것이네"
"거기에 가면 무엇이 있습니까?"
"그곳에서 같이 누군가가 일할 사람을 찾는데 어떠한가?"
"뜬금없는 말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좋지 않겠나."

사흘에 한 번 자식을 못 보면 금새 병이라도 들 것 같던 부모 입에서
멀리 타국이라도 나가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순간.

한 때는 아들 스스로가 나가겠다 해도 장남이 타국엘 어찌 나가느냐 한사코 말리던 분들이
이제는 그런 말도 스스럼없이 할 정도가 되었다.

한 번 나가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래봤자 두 세달.
과연 그런 것을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견디실려나. 

희망은 아편과 같은 것이다.
무언가 그럴듯한 게 자식에게 맞겠거니 생각하면
부모는 나이나 처지에 관계없이 그것을 자식에게 대 보기 시작한다.

제 3자의 눈으로 보면 그 또한 서글픈 일 아니겠는가.


-3.-
가끔은 이루지 못하는 소망임을 스스로가 인지하거나
어렵기 그지없음을 객관적으로 알고 있더라도
"나는 그렇지 않으려니, 우리는 그렇지 않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뭉뚱그린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누군가는 이뤄지지 못할 사랑으로 청춘을 갉아먹고
누군가는 이뤄지지 못할 꿈으로 시간을 허송세월하며
대부분은 잡지 못할 돈에 대한 꿈으로 평생을 소비한다.

내가 제3자가 되면 그 어두움과 허탄함을 보겠으나
내가 스스로 올무에 목을 걸고 있을 때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게 인생이려니.

해바라기라.
이 참 서글픈 단어 아닌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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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영배(戒盈杯)

수련장 2010. 3. 12. 23:20
조상들의 술잔 중에 계영배(戒盈杯)라 하는 술잔이 있다. 익히 최인호의 소설 [상도]로 유명해진 술잔이다.
잔의 7할 이상 술을 부으면 압력에 의해 아래 뚫린 구멍으로 술이 다 새어나가버린다. 끝까지 채우면 모든 것을 잃지만 요족함을 알면 그대로 머무는 술잔이다.

전설에 따르면 우명옥이라는 조선의 전설적인 도공이 자신의 교만함을 깨우치고 만들어낸 술잔이라 한다. 세사의 명성과 부를 잃은 뒤에 만들었던 술잔. 모든 것을 잃은 다음에야 절제의 미덕을 깨달았다한다. 사람은 대저 그러한가,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무언가 부족함을 깨닫는 것인가.

하지만 인간의 성정이라는 것은 항구하지 못하다. 처음에 교만하여 나중에 도를 깨우친다 할지라도 세월이 흐르면서 욕망은 저절로 생겨나 커지는 법이며, 처음에는 소소하고 겸손하게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나중에는 자신의 애초 부족함에 갈등하여 더 큰 욕심을 채우도록 발전하는 것일수도 있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후자에 속하는 듯 하다. 처음 시작의 마음가짐은 소소하고 질박하더라도 계속되면 그 안에서 복락을 누릴 줄 알았으나 그것이 부서지고 좌절하는 상황에 도달하자 '차라리 이럴 바엔 사람이 욕심을 내고 예전보다 더 나은 것을 찾아야함이 아니겠는가'하는 악받침 혹은 분노로 인한 욕망에 눈이 먼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애초에 10할을 채우지 못하고도 잔이 비었으면 한 번 10할을 채워보려 도전함이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돌려 생각해보면 비루한 이야기다.
[전도서]를 쓴 유대의 왕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부귀와 향락을 누려보고서야 모든 것이 덧없음을 깨달았지만
애초에 모든 것을 갖지 않고서도 그것이 쓸모없음을 알았던 법정스님같은 분 또한 존재한다. 둘 다 시작은 달랐지만
결국 도달한 곳은 같았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 한 성경의 말씀도 그것이며 집을 멸하여야 도를 얻는다는 불가의 말씀또한 그러하다. 사람은 늘 자신을 하루하루 죽여야만 스스로 살아남는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가 받을만한 말이 아님 또한 어찌 가슴아픈 것이 아니랴.

나는 오늘도 무언가 얻기를 갈구하고, 그것이 어제보다 낫기를 희망하고, 타인의 동정과 긍휼로 얻는 것이 아닌 자력과 소망함으로 그 모든 것을 성취하기를 희망하지만 내 손아귀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오늘도 바라본다.
사람은 스스로 갖지 못함에 절망하고, 가질 수 없는 환경에 절망하며, 변하지 아니하는 시간에 절망한다.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을 절망하고 자책하고 더 많은 것을 잃고, 잃을 수 없는 환경, 잃을 것이 없다 믿는 상황에서 또 다른 것을 잃고 또 잃어 나 자신조차 잃을 것이 없는 상황에 가서야 나는 깨달음의 파편 하나를 줏을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아마도 술잔에 술이 덜 채워지고 더 채워짐에 미련을 두지않을 것이요
어쩌면 술잔에 술이 담긴 것 조차 알 지 못하는 경우가 오지 않으리오.
죽기 전에나 한 번 그런 명경지수의 마음을 가져봤으면 하는 것이 소망이나
그 또한 내 욕망의 소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슬한 밤 가슴이 시리다.
Posted by 荊軻
,
몸으로 움직여서 때우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리하건 저리하건

부지런히 움직여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뒤에서 머리로 재기만 해도 사람 잘 부려먹는 사람들도 있더라.

다 타고난 복일 뿐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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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하길 인생에는 세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던데
그중에서 사람이 기억하고 있을법한 것이 과연 몇개나 될까?

나는 하나가 있다. 맨 처음 직장을 튀어나갔을 때 6개월만에 복직하라고 전화가 왔던 기억.
뭐, 그럴수도 있겠지 싶기도 했고 지금이라도 가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때만해도 젊었고 혈기방장한지라 (지금도 혈기방장하니 그 때는 세상무서운줄 모르고 나댄게다)
내 꿈을 펼치겠다는데 지저분한 과거사가 왜 발목을 잡느냐는 식으로 응대하고 
굴러온 떡을 차 버린 기억이 있다. 그때야 기분 좋았지. 가끔 후회한다. 특히나 돈이 부족할 때는.

이런 식으로 어느 누구나 자신의 인생항로에 큰 방향전환을 가져올 법 하지만
그것을 놓치고 선명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나 내 삶이 서발턴의 삶으로 떨어진다고 느껴질 경우라면 더더욱 간절하게
그 과거의 기억이 주박처럼 내 발목을 잡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선인들은 이런 좋은 말을 생각해낸 것이다.
[인생엔 세 번 기회가 온다]
두번째인지 세번째인지 아니면 지나갔는지 그걸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그래도 한번정도는 더 있겠지 싶은 인생역전의 기회를 꿈꾸며
삶에 대한 희망을 고취시켜주는 마력의 격언이 아닌가 싶다.

아마 언젠가는 오겠지 하면서.


p.s) 그런데 사람에 대한 후회는 하나도 없더라. 
       나름대로 재지넘치는 사람도 만나보고, 절세미녀도 만나보고
       지식이 아닌 현명한 사람이나 이도저도 불분명한데 매력있는 사람까지 다 봤지만
       한 번도 뒷걸음에 다시 돌아보는 경우는 없더라.
       "난 저 여자 사람에게 할 만큼 했고, 저 여자가 사람이 기회를 놓친 것일 뿐"이라는
       오만방자한 생각은 여전히 고쳐지질 않는 걸로 봐서
       여전히 혈기방장하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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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꾼 천지호가 죽으면서 했던 말

"세상을 겪어봐야 아냐, 당해봐야 아는게지"

섬찟한 말이었다.
듣고 보는 것은 겪어본 만 못한데
겪은 것은 당한 것만 못하다는 말.

그래서 어려운 것인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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