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건 짐승이건 어린 것에게서는 속세의 냄새가 나지 않고 배내젖의 냄새가 풍겨난다.
하는 짓도 자신만을 위해 살며 보는 눈도 자신만을 위해 움직인다.
어리고 육신이 짧을 때는 또한 그 행함도 작기에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로 인해 자신의 지식을 채워간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도 자신만을 위해 살며 보는 눈도 자신만을 위해 움직이면
주위의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고 타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복중 태아를 벗어나 사회에 발을 담그고 산 지 거의 사십여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무엇을 이루었는가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천품과 시류와 운수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일이니 굳이 이루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속상해 할 일은 없다.
난 해를 끼치며 살지 않았는가
내 행동으로 타인에게 죄를 짓지 않았는가
부지불식간에 짓는 죄를 사람이 갚지 못하기에 기독교에서는 사람을 죄인이라 칭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나 책임지지 않는 잘못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한 터럭이라도 죄책감이 있으면 다행이다.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사람사는 인생이고 내가 살아가는 방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것부터 나는 다시 젖먹이가 된다.
나이를 공으로 먹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지고지순하게 어려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