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해당되는 글 218건

  1. 2009.11.14 부모,대화,바램 2
  2. 2009.11.05 연(聯)
  3. 2009.11.04 동네 카페 4
  4. 2009.10.28 연락 2
  5. 2009.10.25 2009/10/25 4
  6. 2009.10.24 책을 잔뜩 펼처놓았는데 2
  7. 2009.10.22 세상사는 에로에로한 이야기 10
  8. 2009.10.14 밥벌이의 지겨움 5
  9. 2009.10.12 고민하지 말고
  10. 2009.10.06 한 울타리에 산다는 거 8
늘상 저녁을 부모와 같이 먹고 벌이는 대화라는 것은 이제 어느정도 토픽이 정해져 있다.

[돈벌이]와 [여자]문제.

까 놓고 말해서, 저 문제로 아무리 밤을 새워 끝장토론을 벌인다 한들 우리는 문제의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하는 대로 산다고 행복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며 자식을 원하는 대로 살게 한다 해서 자식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정해진 수순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꼭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우리는 서로서로가 무엇을 말하는 지 알고 무엇이 부족한 지 알고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는 걸 안다.
단지 대화에서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위안이다.
문자 그대로 Quantum of Solace가 필요할 뿐.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충분히 안다.
[알겠습니다. 잘 해 보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걱정마세요]

하지만 성정이 드세니 그런 말로 끝나는 경우가 드물고 늘 받아치는 것이 문제다.

부모는 자식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그것은 숙명이다. 그래서 원치 않는 말을 하게 된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알지만 그것 때문에 부모가 걱정하는 것 자체가 싫다. 그래서 되받는지도 모른다.

이미 이렇게 산 지가 40년에 가까워진다. 
의미없고 소득없는 싸움이었던 것일까.

하나 배운 것은 있다.
부모의 마음을 자식은 절대로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 말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내가 부모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내 스스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하나 생겨난 소망도 있다.
다음에 내 짝을 만날 때
난 [가족]과 싸움을 할지언정 [가족]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과 만날 것이다.

나를 낳아 주고 길러준 가족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년이 넘는데
생면부지의 이성과 만나 가정을 꾸리고 하나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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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聯)

투덜투덜 2009. 11. 5. 19:21
사람은 모두 머리 위에 하나씩 가느다란 끈을 매달고 살아
나이를 먹고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어느 순간 그 끈이 얽혀서 떨어지지 못하는 이를 만나게 된다.  

내가 잘나서도 아니고 그가 잘나서도 아니며
순전히 어쩌다 만나는 우연의 총합으로 얽히게 된 실의 운명에 대해서 우리가 뭐라 가타부타 말할 수 있으랴.

얽힌 것이 종내 마뜩지 않아 서로 힘 줘 끊어버리고 다시 다른 이와 맞닿을 것을 희망한다 해도
그것이 또한 얽힐지 지나칠 지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랴

또한 천지가 뒤집힐 만큼 거센 태풍이 불어온다 하더라도 끊기지 않을만큼 강한지, 혹은 어린 아이의 숨결에도 끊어질 만큼 약한지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랴

세상의 시종은 예정되고 순리대로 향한다 치더라도
사람의 제 갈 길 운명은 서로 맘먹은 대로 뿐 아니라 그가 아무런 생각없이 내 딛는 발걸음 하나와
아무런 의식없이 내 뻗은 손길 하나와 우연히 고개돌린 방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것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인간의 두루뭉침은 성질도 없고 모양도 없고 색깔도, 빛도, 맛도 없이 시시각각 변하며 화내고 사랑하고 애태우며 끌어안고 밀쳐내며 미워하며 슬퍼함이 한없고 다함없고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고통스럽고 행복함이 명운이 다할 때까지 계속 되나니 이것은 원래 태어남의 한계요, 머리를 쓰는 동물의 미몽이요, 자고함을 지닌 자의 철없음아닌가.

나는 아침에 일어나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을 기뻐하며 슬퍼하고 증오하며 사랑하며 궁금해하며 살고 있는가. 이 모든 것들이 내 생이 다 할 때까지 시종일관 계속 될 것이며 인연이 다른 이와 맞닿는다면 그로인해 또 기뻐하고 슬퍼할 것을 아나니 과연 이것은 어떻게 내가 다루어야 할 문제인가.

언젠가는 누군가와 또 다시 부딪혀 연이 얽힌다 해도 그가 누군지도 모르거니와 그것이 언제가 될 지도 모르거니와 그와 어떻게 될 지도 모르거니와 한가지 아는 것은 그 모든 와중에도 인간의 오욕칠정은 불같이 일어나며 연기처럼 사라질 것을 아나니 이 또한 어찌 다루어야 할 문제인가.

차라리 홀로 독처하며 홀로 거하는 것이 모든 일의 시종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최소한 옷에 달라붙는 먼지처럼 수북한 감정들을 훌훌 털어내 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람은 그러지 못하나니 
인생은 사람이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연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골방에 틀어박혀 소식을 전폐한다 해도 사람의 끈은 질기고 유장하며 절대 홀로 유지할 수 없음을 또한 아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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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카페

수련장 2009. 11. 4. 22:50
호젓한 저녁에 불현듯 충동이 일어 집 근처의 커피집에 들어갔다. 아마 이 곳은 이 동네에 유일한 커피집일 것이다. 지하철역도 조막만하고 모든 곳이 아파트로만 구성되어 있는 이 동네는 20년도 더 된 옛 건물들과 상가로 인해 커피집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역 근처의 작은 이 커피하우스만이 커피를 앉아 먹을만한 곳이다.

예전에 이곳은 다른 사람의 아지트였고, 나는 그곳을 알아도 지나치기만 했을 뿐이었으나
이제는 그가 들르지 않음을 알기에 내가 그곳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전혀 예상과 다르게 커피집을 꾸려나가는 이는 앳되보이는 아가씨 둘이였으며, 생각보다도 훨씬 건물은 작았고
작기에 추운 날 쉽게 훈훈해졌으며 커피는 그런데로 먹을만 하였다. 
아마도, 시간이 흐를 수록 들르는 횟수가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이 곳은 전에 내가 움직이는 동선이나 여정에 자리매김을 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젠 내가 움직이는 방향과 동선에 넣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고, 새로운 것들로 인해 전에 있던 것이 물러나고 새롭게 채워진다.

삶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문제일 뿐이다.
사회구성원으로 있는 나는 언제든 빠져나가더라도, 누군가 내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나라는 것은
다수에 비하면 늘 미미하며 내가 아무리 큰 존재로 매김지어진다 하더라도 내가 비면 그 자리는 절대로
내게 영속되지 아니한다. 개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텅 빈 공허함으로 삶을 비워둘 수가 없다.
무언가 빠져나가면 새로운 것이 들어와 마음을 채우고, 빈 공간을 점유한다. 색즉시공이라 하더라도
빈 마음은 깨달음이 채울 것이다. 우리같은 범인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늘 새로운 것들이 빠져나간 것을 
대신 채운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직업이건 간에.

스스로가 무력하고 텅 빈 것 같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교만일수도 있다. 이 순간도 우리는 뭔가를 채우고 있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며 좋지 않은 것을 기억에서 내몰려고 애쓴다. 누구에게라도 인생은 충만하다. 단지 그것을 느끼느냐 느끼고 있지 못하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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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

작은 방 한담 2009. 10. 28. 11:46
이번 주에 결혼한다는 녀석이 어째 청첩장도 못 돌리고 있길래
'결혼은 하는 건지 안 하는건지' 이러는 찰나에 전화가 왔다.
사무실 쪽으로 오늘 점심이나 먹으러 오겠다고.

집도 서울이 아닌 녀석이 뭣하러 오냐고 하려다가
그래도 정성인데 말이지. 그러라고 하였다. 나만 보러 나온게 아니길 바랄 뿐.

사람의 소식이 막막하건 자주오건 간에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건 대충 태도를 보면 아는 법이다.
무늬만 친구인지 진짜 친구인지

그나마 연락없이 소원한 이들은 대충 걸러 정리하면 다신 연락이 오지 않더라.
사람과 사람이라는 것이 인연을 맺을 때도 그렇지만 끊을 때도 대충 서로가 감이
오는 법인데. 그래서 인생에 오랫동안 같이 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은 법일 것이다.

한 사람이 친하자고 쫒아다닌다고 친분이 생기는 것도 아니더라.
그 사람을 받아줄 만한 여유가 없거나 눈이 없거나 기타 여하 다른 이유가 있으면 그걸로 끝이더라.

우정을 비굴하게 구걸 할 이유도 없거니와
어떤 사람이던 자신을 있는대로 받아줄 천금의 벗은 있더라.

* 추수할 계절이 오면 떨어지는 낟가리들이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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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5

작은 방 한담 2009. 10. 25. 23:53
1.
부모님이 고뿔을 잡고 누워계시는데
예전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 신종풀루인지 뭔지 갑자기 극성인지라
밖에 생활하는 장남 기분에 맘이 영 편치 않아서

거의 8시간에 한 번 꼴로 전화를 했더니

"전화하지마! 안 죽어!" 라는 대답이 왔다. -.-;;;;

내가 나이 먹는 게 틀림없어.


2.
수염이 깎기 싫어서 놔 뒀다가
엉겹결에 기르게 되었다.
아무리 봐도 삼국지2편에 나오는 조조...

어제 깎으려고 했는데 곡예사님의 "길러봐도 되겠는걸?"하는말에 혹해서
기르고 교회에 갔다가 모친과 상봉

뭐하는 짓이냐는 꾸중을 -.-;;;

우짤까나.


3.
점심때는 졸려서 첼로팬이 밥먹자는 걸 깨고 낮잠에 빠져있다
저녁때 출출해서 누구 불러 밥먹을까 하다가
결국 그냥 혼자 밥 먹기로.

집에서 먹는 게 돈을 아끼는 일이긴 하지만
뭐랄까. 그냥 핸드폰에 충전시키는 기분이 들어서.


4.
일요일에 혼자 있다보면
적적하다는 것 말고
뭔가 삶의 톱니바퀴에서 튕겨져 나와서 혼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작은 톱니가된 기분.
여럿이 같이 맞물려사는 삶도 싫지만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도 좀 웃기고.

그러니 저러니 해도 시간은 흘러가고
작은 육신도 시간에 이리저리 깎여나가기 마련.

열심히 사는 것이나 멍하니 사는 것이나
요즘 같아선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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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펼쳐 놓은 책을 읽지 않아도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펼쳐 놓은 책을 읽으면 뭔가 즐거울 것 같기도 하고
읽으면 삶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읽지 않고 그냥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도 그만이다.

어찌되었던 나는 나고
시간은 흐르고
인생은 내가 아는 바 대로 흘러가지 못하며
내가 아는 것은 극히 미미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펼쳐놓는 것은
아쉬움이거나
미몽이거나.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의 정말 추리고 추린 몇 가지는
내 일생을 통해서 평생 같이 흘러가게 되는 중요한 것이지만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 것 중에
참으로 많은 것들이
오랫동안 나와 함께 머무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내 손에 소중하게 꼭 움켜쥐고 있는 보석인지
아니면 발에 채이는 조약돌인지
알 수가 없다.

나중에 죽은 뒤에 누군가 내 손을 펴 보면
그 속에 조약돌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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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내가 말유 그제께 모텔앞에 차를 대 뒀는디 50대 남자와 40대 여자가 나오더란 말이유.
그러더니 내 차를 타드니 여자를 먼저 내려주고 남자는 자기 집으로 가자더라고. 이게 뭐겄슈? 
부부는 아니라는 말이지. 그러더니 도둑놈이 지 발 저린다고. 남자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봐, 말도 안 시켰는데 말을 하더란거쥬. 아주 아줌씨때문에 죽겄다고.
어쩌다가 나이트에서 만나서 만리장성을 쌓았는디 한 눈에 통했는지 하루가 멀다고 불러낸다는겨.
사연을 들어보니 참 그 아줌마 남편이 안됐슈. 어디 뻑적지근한 기업 중역이라는데 매일 퇴근을 새벽에 하고 새벽에 출근을 하는 거유. 그러니까 아줌마가 비구니요? 그럴 순 없는 게지. 그렇다고 같이 다니는 이 아저씨는 팔랑이 백수냐. 그것도 아뉴. 이 아저씨도 나름대로 잘 나가는 회사 중역이더라고. 멀쩡하게 가정도 있고!

- 그런데요.

- 아 손님, 아 아줌마가 그렁께 눈이  아저씨랑 맞아가지구 남편에게 해 줄 내조를 다 아저씨에게 해 준다는규. 우리나이 되믄 원래 기가 허해지구 그러잖우. 남자가 그냥 돌아다니느 것도 피곤해유. 건디 방사까지 해 봐유. 그러니께 아줌마가 아저씨 붙잡아다 좋은건 다 먹인다는거유. 지 서방도 아닌디.

- 재미있네요

- 아 재미가 뭐예유, 맨 처음이야 불장난 좋아구 하쥬. 그게 나중에 되면 감당이 안 되는 법이유. 알다시피 우리 나이쯤 되믄 그런게 많이 들잖유. 지같은 경우도 그런 일 많이 봐유. 한디 그게 다 정신 나간 짓이유. 사람이 그 순간에 지조를 잃으면 안되는규. 그럼 나중에 정말 피곤해지는규. 

- 그렇겠죠

- 그럼유. 사람은 지조를 지켜야 해유


이젠 아주 식상해서 에로영화에서도 안 쓰는 클리셰가 엄연히 세상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풍문으로 들어올 정도로.

* 하지만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그것이 아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택시기사 아저씨는 내가 같은 나이또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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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투덜투덜 2009. 10. 14. 16:48
추석은 지났지만 여전히 홀쪽한 회사와 개인의 지갑은 부풀어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랫만에 고지서를 돌리고 받아내야 할 돈을 수금하러 분주하게 다녀본다.
물론 계산서 받는 쪽에서 돈을 곱게 줄리는 만무하다. 그 쪽도 우리쪽하고 사정이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쩌랴. 어느 만화대사처럼 [마른 오징어에서 액기스를 짜내더라도] 돈은
받아내야 한다. 그게 올 한달의 끼니를 때우게 해 줄 것이니.

정작 갑에게서 받아내는 돈은 다른 데 쓸 데가 있다. 빚잔치를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갑은 을의 마진을 더 이상 고려하지 않으려 하고
제조업체는 원가가 올랐기 때문이며
우리는 애초부터 갑에게 최소한의 마진으로 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때가 맞지 않고 결재가 미뤄지면 빚은 쌓인다. 
방만한 경영때문에 생기는 것 만은 아니다.

제조업체는 우리에게 징징댄다. 죽겠다고.
죽지 말라고 돈 줄 것이다.
갑은 우리에게 깍은 돈을 줄 것이다. 어쩔 수 없다고
우린 어쩔 수 없다는 거 아는 척 하고 받을 것이다.
그거라도 받아야 먹고 살지 않겠는가.

죽는다고 징징대 봤자 돌아오는 건 다른 경쟁자들의 웃음 뿐이다.
갑 아래 대기한 하이에나 같은 을들 사이에서 살아나가는 건 오직
겉저고리 하나 입어도 쿨하게 보이는 것 뿐. 굶어 죽어도 버텨야 가오가 산다.

그렇게 10월의 중순을 보낸다. 박정한 나라는 세금을 내라고 독촉이고
복지를 위해서 쓴다는 연금은 어떤 미친 개놈의 늙다리가 환율 방어한다고 다 처발라놓고
더 내라고 X랄을 떤다. 내 밥상에 젓가락 하나 올려 놔 주지 않는 주제에.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참으로 지겹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사람은 애초에 돈이라는 물건을 만든 것이 실수가 아니었을까.

꼭 누군가는 이런 글을 쓰면 먹고 살 만한 놈이 징징댄다고 초를 치더라만...
지금 상황에서는 충분히 징징댈 만하다 느껴서 글을 쓴다.
솔직히 먹고살만하다는 게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몸뚱이가 골골거리니 만사가 짜증나 이러는 걸지도 모르겠다.
진실로 지겨움이 물밀듯이 몰아치는 순간, 10월 중순의 어느 저녁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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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지 말고

수련장 2009. 10. 12. 23:05
"할 수 있는 일은 고민하지 말라"고 친구가 말해줬다.

그러고 보면 고민이라는 것은
내가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고민이 아니라 결단의 우왕좌왕이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사실 그렇지 않은가 인간세상이라는게
이 일 해보고 안 되고
저 일 해보고 성사되고
그러다가 저러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나름대로 틀이 잡혀서 각자의 색깔을 띄는 거겠지.

맞는 말이다.

주변 사람들만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면야 이것이 정답.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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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카페 글읽기가 가능해졌다.
생각보다 마음에 들게 생긴 고양이들이 많아서 가입한 건 잘 했다고 (가입하라는 충고를 들은 걸) 생각하는 중이다.

글을 쓰게 되면 바로 입양을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다보니 적잖이 망설여진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내 터전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건 책임을 진다는 의미인데
책임을 질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데리고 온 뒤 몇 달 간은 좋을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 뒤에도 애정이 변하지 않으려나.
사람이건 짐승이건
익숙해지면 서로에게 바라는 게 많아지는 걸텐데.

젊은 시절엔
난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확신시키곤 했었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그 감정은 변하지 않았었는데.

스스로가 불안한게지.
사람이라는 동물이 갖는 애정의 불연속성이라는 것은 개만도 못할 수도 있다.
가정에 대한 미련은 고양이만도 못할 수 있고.
그래서 불안한 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서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소라게 5년간 키운 공력으로 한 번 도전해 볼까.
밥만 꾸역꾸역 먹고 배부르면 밥그릇에 똥사고
일절 잘먹었습니다 따위 인사도 안 하는 소라게 수발드는게 고양이보다 어려울 지도 모르지.

고양이를 길러서 사람이 안정이 되면
그 때 아가씨를 찾아나 볼까.

소원이 있다면 나도
길에서 나를 보고 찾아오는 길냥이를 키워보고 싶다.
그리고 길에서 나를 보고 알아주는 아가씨를 만나보고 싶고.

고양이는 마냥 꿈만은 아닌 것 같지만
써 놓고 나니 아가씨의 경우는 말도 안되는 소망이로세.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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