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카페

수련장 2009. 11. 4. 22:50
호젓한 저녁에 불현듯 충동이 일어 집 근처의 커피집에 들어갔다. 아마 이 곳은 이 동네에 유일한 커피집일 것이다. 지하철역도 조막만하고 모든 곳이 아파트로만 구성되어 있는 이 동네는 20년도 더 된 옛 건물들과 상가로 인해 커피집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역 근처의 작은 이 커피하우스만이 커피를 앉아 먹을만한 곳이다.

예전에 이곳은 다른 사람의 아지트였고, 나는 그곳을 알아도 지나치기만 했을 뿐이었으나
이제는 그가 들르지 않음을 알기에 내가 그곳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전혀 예상과 다르게 커피집을 꾸려나가는 이는 앳되보이는 아가씨 둘이였으며, 생각보다도 훨씬 건물은 작았고
작기에 추운 날 쉽게 훈훈해졌으며 커피는 그런데로 먹을만 하였다. 
아마도, 시간이 흐를 수록 들르는 횟수가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이 곳은 전에 내가 움직이는 동선이나 여정에 자리매김을 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젠 내가 움직이는 방향과 동선에 넣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고, 새로운 것들로 인해 전에 있던 것이 물러나고 새롭게 채워진다.

삶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문제일 뿐이다.
사회구성원으로 있는 나는 언제든 빠져나가더라도, 누군가 내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나라는 것은
다수에 비하면 늘 미미하며 내가 아무리 큰 존재로 매김지어진다 하더라도 내가 비면 그 자리는 절대로
내게 영속되지 아니한다. 개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텅 빈 공허함으로 삶을 비워둘 수가 없다.
무언가 빠져나가면 새로운 것이 들어와 마음을 채우고, 빈 공간을 점유한다. 색즉시공이라 하더라도
빈 마음은 깨달음이 채울 것이다. 우리같은 범인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늘 새로운 것들이 빠져나간 것을 
대신 채운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직업이건 간에.

스스로가 무력하고 텅 빈 것 같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교만일수도 있다. 이 순간도 우리는 뭔가를 채우고 있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며 좋지 않은 것을 기억에서 내몰려고 애쓴다. 누구에게라도 인생은 충만하다. 단지 그것을 느끼느냐 느끼고 있지 못하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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