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해당되는 글 218건

  1. 2010.12.27 나흘 8
  2. 2010.08.13 구상유취
  3. 2010.07.15 생과 사 4
  4. 2010.06.28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그렇지만 10
  5. 2010.05.08 1세기의 삶
  6. 2010.05.06 어느 날, 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그 날
  7. 2010.04.19 2010/04/19 2
  8. 2010.04.11 2010/04/10 2
  9. 2010.03.19 뭔가 잘못생각하고 있었나 2
  10. 2010.03.16 가끔 생각나는 영화 라스트 씬

나흘

투덜투덜 2010. 12. 27. 23:03
앞으로 나흘 남은 2010년.
투자대비 산출로 봤을 때, 끝내주는 적자로 마감하는 한해였다.


오늘 고양이 2주차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재수술했다.

기브스를 한 발을 어떻게 움직인건지 수술부위 핀을 다 뽑아내버리고 다시 뼈가 어긋난 상태였다.
부러진 뼛조각을 제거했다.
다리가 짧아졌다.
피부도 욕창이 날 수 있다고 했다. 세번이나 같은 부위를 쨌다.
이젠 관절을 살릴 수 없다고 했다. 그냥 붙기를 희망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도 안되면 절단.

악연이었던 건가. 첫째랑 나라는 사람과는.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잘 살고 있지 않았을까.
2주동안은 좁은 케이지 안에서 생활하게 만들어야한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지금도 계속 울어대면서 창살을 박박 긁어댄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식을 갖지 않아 그런 쪽의 고뇌는 절대 알지 못한 채로 일생을 접으려니 생각했건만
키우는 고양이가 아파도 어디에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짜증과 분노와 슬픔이 있다. 하물며 자기를 닮은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오죽하랴. 아마 내 부모들도 내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지만 [낳고나서 후회]라는 것을 정말 많이 했을 법 싶다. 인생의 고뇌가 비단 혼자만 짊어지고 가는 것이 절대로 아니니, 불가의 말처럼 누구 하나 인드라망에 걸리지 않는 이가 없는 법이다.


2.
누군가가 
올해는 아무 생각없이 휙휙 지나간 해라고 내게 말을 해 주었다.

축복이라고 말해주었다. 그건 최소한 플러스마이너스가 일치해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감정일테니
충실하게 채운 한 해였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행한 일들을 복기한다. 보통 나쁜 일이나 아쉬운 일들이 기억을 점유하는 법이니 그것들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면 행복하게 한 해를 마무리 한 것 아닐까.


3.
어수룩한 척, 세상살이 약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저렇게 쏙쏙 알차게 빼먹으면서 살았으면 참 좋겠다.
정(情)도 없고, 한(恨)도 없고, 원(怨)도 없고
오직 욕(慾)만 있는 인생.

그것이 세상사의 도(道)일지도.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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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유취

수련장 2010. 8. 13. 00:58
사람이건 짐승이건 어린 것에게서는 속세의 냄새가 나지 않고 배내젖의 냄새가 풍겨난다.
하는 짓도 자신만을 위해 살며 보는 눈도 자신만을 위해 움직인다.
어리고 육신이 짧을 때는 또한 그 행함도 작기에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로 인해 자신의 지식을 채워간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도 자신만을 위해 살며 보는 눈도 자신만을 위해 움직이면
주위의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고 타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복중 태아를 벗어나 사회에 발을 담그고 산 지 거의 사십여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무엇을 이루었는가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천품과 시류와 운수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일이니 굳이 이루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속상해 할 일은 없다.

난 해를 끼치며 살지 않았는가
내 행동으로 타인에게 죄를 짓지 않았는가
부지불식간에 짓는 죄를 사람이 갚지 못하기에 기독교에서는 사람을 죄인이라 칭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나 책임지지 않는 잘못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한 터럭이라도 죄책감이 있으면 다행이다.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사람사는 인생이고 내가 살아가는 방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것부터 나는 다시 젖먹이가 된다.

나이를 공으로 먹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지고지순하게 어려운 일인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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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

작은 방 한담 2010. 7. 15. 22:02
1.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항암치료를 받으러 간 서울대병원.
복도가 장례식장과 연결되어 있다.
수술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검은 비닐에 쌓여 운반되는 침대를 본다.

섬찟.

2.
어머니는 간단히 방사선 수술만 받고 나오셨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냉장고가 고장나서 내일 바꿔야하는데
공간이 좁아서 놓을 곳이 마땅치 않음을 걱정하신다.

나도 냉장고를 걱정한다.
냉장고를 걱정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3.
어머니가 일전에 쓰러지신 것은
머리의 암과 하등의 연관성이 없는 것이었다고 의사선생은 말했다.
말 그대로 우연히 일이 그렇게 되어서
이것저것 검사하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발견을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살았을 것이다.
1년에 0.2mm정도씩 자란다고 한다.
위험해지는 정도까지 자라는 데 200년.
좀더 심각하게 잘라서 50년이라고 치자.
천수를 넘기신 나이다.

불필요한 수술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게 약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알게 되면
사람이란 그렇지 않다.
몸이 약간만 좋지 않아도
내가 이 병때문에 그런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알게 된 이상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다.

4.
뭐가 옳은 일일까?
뭐가 더 현명한 선택일까?


어머니는 머리에 드릴을 뚫고
방사선을 쬐고
스테로이드 재제를 드시고
그렇게 지내다 6개월 뒤에 다시 검사를 받으러 가셔야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일 들어올 냉장고를 걱정하신다.

어쩌면 어머니의 걱정이
가장 현명한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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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달이 다 되도록 지구촌을 달군 월드컵이 끝났지만
난 축구경기를 거의 시청하지 않았다. 
별반 축구에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그일보다 더 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편찮으셨다. 
편찮으시다고 하면 어폐가 있다. 편찮지는 않으시다. 대신 무언가를 알아낸 것이지.
언젠가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병의 발견. 그리고 치료가 상당히 희박한 증상.

막장드라마에서 가끔 주인공 죽을 때 써 먹는 그 병. 뇌암. 뇌종양.

부부젤라인지 자블라니인지 붕가붕가인지를 TV에서 볼 맘이 생길 수가 없었다.
검사결과를 알게 된 다음부터 든 느낌은 시간이 딱 정지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뭔가 생경하면서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느낌. 
내 일이 아닌 것을 내가 역할극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
그런 것들이었다.


-1-
사람은 유한한 존재다. 언젠가는 내 주변의 모두가 죽고, 나도 죽는다. 
필멸의 존재에게 죽음이란 필연의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누구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깊이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고민거리라기 보다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막상 [죽음].[이별]같은 생경한 말이
어느날 문자나 개념에서 벗어나 생생한 사실이 되어 우리 코 앞에 들이닥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꾸듯 현실을 몽롱하게 보게 된다. 
근심, 걱정, 가족, 사랑
그리고 그가 떠나간 뒤에 처할 나의 처지.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정형화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2-
언젠가는 닥치리라
늘 최악의 상황은 다가오게 되어 있는 법이다
누누이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말이지만
실제로 닥치게 되면 역시 마음속의 다짐이라는 것은
단순 예방차원의 것을 벗어나지 못함을 알게 된다.

주식시장에서 늘 하는 말 있지 않은가?
바닥이라 생각하는가. 지하실을 보게 된다.
인생의 굴곡은 사람의 생각을 훨씬 넘어서는
끝없는 밑바닥이 존재한다.

사람은 약하다.
아무리 험한 꼴을 당해 본 사람이라고 해도
재앙이 닥쳤을때 면역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보게 된다.

일가친척, 가족의 죽음을 한 두번 본 것이 아니지만
늘 그 과정은 새롭고, 새로와서 서럽고 슬프다.


-3-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돌아가신 것은 아니니까.
수술을 받아보자고 하신다. 위험성도 상당히 있다.
악성인지 양성인지는 수술을 해 봐야 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의 불확실성만큼 사람에게 절망과 희망을 강요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천천히 돌이켜보면

언젠가는 어떤 경로로든 나는 부모님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은 그 과정을 밟게 되어 있고 목도하고 집례하게 되어 있다.
아마도
슬픔이 지나가고 애통함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간 뒤에는
돌아올 수 없는 추억에 대한 회한이 남으리라.
그것이 인생일테니까.
아직은 아니라지만 언젠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끄적거려봤자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지금 드는 생각은 하나.
슬프다는 거다.

자식 아닌가
몸에서 태어난 자식인데 말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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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의 삶

작은 방 한담 2010. 5. 8. 01:19
후배의 조모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마치고 돌아왔다.
천수 백세, 1910년 생이시라니 이제 시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호상이라 하지만 그것은 조문에서의 결례, 죽음은 어디서나 슬프다.

돌아오면서 곰곰히 이런저런 것을 생각해 봤다. 지금의 내 나이로 따져보면 100세라는 것은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이다. 살 날이 산 날보다 많다는 것은 분명 뭔가 앞으로 있을 희망에 대한 이야기일수도 있고
혹은 이 무시무시한 삶의 억겁을 끝간데 없이 더 이어갈 절망의 기다림일수도 있겠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셨을까?
처음의 시간과 마지막의 시간은 희미해져 사람의 기억에서 좋지 않다 하더라도
과연 그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변해가는 사람들과 사람들의 모습에서 고인은 무엇을 느꼈을까?


(이 양반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군)

영화 [하이랜더]가 생각난다.
불사의 종족. 하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외로움.

아마 고인은 동년배의 사람들을 모두 보내고
다른 세대의 사람들 속에서 사셨으리라.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지식을 쌓고 혹은 부를 축적하고
그리고 홀로 남겨진다. 글쎄다. 사람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이성적이라 믿는 감성의 생물이니
그 삶의 객관적인 성취를 스스로가 즐길 수 있는 지는 모를 일이다.

모르겠다.
누군가가 내게 1세기의 삶을 보장해 준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지낼것인가?
수많은 책들을 읽고 쓰고 보고 느끼고 난 뒤에 그 다음엔 뭘 할까?

내가 생각해 낸 것은
결국 이 모든 것을 후대에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을 것 같다.

1세기라.
그러고 보니 난 반세기도 아직 살려면 한참 남았네그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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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소유물들이 다 내것이라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 내 곁에 있는 것들은 언젠가 모두 나를 떠나간다. 벌거숭이인 육신조차 언젠가는 날 떠나간다.
늑탈당하고 침식당하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괴로와하고 내가 가진 소유를 움켜쥐지 못함을 괴로와한다.
별별 미사여구를 다 동원해서 인생의 의의를 찾는다고 하지만 결국엔,
[내가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 인생의 간명한 요약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 놓을 수 밖에 없다.
내 스스로의 의지로.
그리고 외부의 힘과 영향에 의해서.

동서양의 수많은 예화들이 있다. 그리스 신화의 니오베나 성경의 욥이나 동양의 한단지몽이 다 그 이야기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자만하고 자고하지만 그것이 사라질 때 한없이 무력해지고 비참해진다.
스스로가 가진 주체성과 관계없이 비참해지는 것이다. 
유물론적 사고에 종속되어서?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전술한 바, [인생의 의의]를 잃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수많은 고승대덕들은 불탄 자기 시체에서 살아나는 불사조처럼 분연히 일어나서
스스로의 주체성을 깨닫는 오도송을 지었지만 범인에게 그것이 가당한가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느 날, 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그 날에 나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고 있을 것인가?
지금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있는 상태다. 그만큼 무력감도 많이 느낄 터이다. 
하지만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전부라고 할 만큼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질 때가 되면
과연 나는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잿더미에서 부활하는 피닉스처럼 살아날 수 있는 개인적인 수양이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암울하게 남은 잔생을 물어뜯으면서 살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절망속에서 천천히 죽어갈 것인가?

다가오지 않아서 모르지만 
상실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법이다.
대비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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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9

카테고리 없음 2010. 4. 19. 01:18
1.
4.19가 벌써 50주년이다.


2.
무언가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3.
내가 가장 잘하는 걸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되지 않으면 내가 오래 할 수 있는 것이라도 골라야 할 것이고
그도 아니라면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도 찾아야 한다.

머릿속에서 과도하게 펼쳐지는 상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없는 듯.

4.
나이를 먹나보다.
점점 자잘한 일에서 지치고 피곤해진다.


5.
우린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렸어.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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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0

작은 방 한담 2010. 4. 11. 00:23
1.
조카 100일이라 식구들끼리 모여서 조촐하게 점심을 먹었다.
대나무와 애들은 안 보면 부쩍부쩍 큰다더니, 예전하고는 전혀 다르게 얼굴이 변해간다.
맨 처음에는 영락없는 내 동생이더니 이젠 제수씨 얼굴이 많이 나온다.

어머니가 그러더라. 맨 처음 애가 나오면 부계의 얼굴을 가졌다가 커갈수록 엄마의 얼굴이 나온다고.

"이유는 뭘까요?"

"그래야 의심을 안 하지."

-0-
아아, 이거 참 명쾌한 자연의 섭리로구나.


2.
내 나이 조금 뒤면 불혹이다.
정상적이면 아이가 이제 중학교 들어갈 것 걱정하고
학습수준을 어떻게 맞춰야 할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런 걱정은 없으니 편하다.

이게 편한건지
타인의 기회를 갈취해서 편하게 사는건지
아니면 그냥 이게 내 삶인지.

대신 그만큼 같은 동류들의 고달픔을 모르고 산다.
모두가 하는 고생을 모르고 산다는 건
몸과 마음이 편할지 모르지만 정서적 괴리감이 생긴다는 거다.
물론 책임감도 없겠지.

철이 들 시기를 지나버리면 영영 피터팬으로 사는 것일까?


3.
죽는소리 해 봤자
죽지도 못할 뿐더러 사람들이 꺼리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정작 죽으면 더 심하게 욕먹는다.

그러니 그냥 혼자 모든 건 삭히면서 사는 게 제일이다.


4.
생각해보면,
그리 나쁜 일은 많이 남지도 않았다.

인생만사 세옹득실.
누가 어찌 될지 앞으로 뭐가 어찌 될지
어리석은 인간의 눈과 머리로 얼마나 볼수 있겠는가.

그저 일희일비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정성이 닿으면 소득은 없어도 후회는 없으리.


5.
폴란드 대통령 내외가 비행기 타고가다 추락사.
영 문제 많은 기종이었다고 하던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나라도 말이죠.
자기 타고 다닐 것도 아닌데 후임자를 위해서
전용기 사 놓으려고 하셨던 분이 하나 있었지요.
Posted by 荊軻
,
돈은 가도 사람은 남는다지만
돈이 가면 사람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래도 사람과 돈이 같이 움직이면
사람을 잡아야 한다.

좋아하는 일과 좋아하는 물건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중에 맨 처음 무엇을 잡아야 하겠는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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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서 [hanabi]가 계속 생각난다.
학생시절, 맨 처음 소개되었던 일본영화라는 것 말고도
그 영화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영상미가 정말 진했다.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
소름이 돋는다기보다 응당 저렇게 될 길을 사람이 덤덤하게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기보다는 희한한 울림을 가지면서 보게 된 영화였달까.

예전 철없고 젊었던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 나도 저런 처지가 되고 저런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저렇게 행동해야 하는 거 아닐까 "

쉬운 게 아니더라

사람이 사람하고 같이 어울려 살면서
가장 중요시 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나

뒷골목 어깨들이나 이야기할 법한 [의리]라는 단어가
지금에 와서는 참 무거운 것으로 어깨를 누르더라.
사람이 사람하고 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정이 아니라 의리인것을.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알고 있는데
왜 정작 사람은 한없이 가벼운 것일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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