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저녁을 부모와 같이 먹고 벌이는 대화라는 것은 이제 어느정도 토픽이 정해져 있다.
[돈벌이]와 [여자]문제.
까 놓고 말해서, 저 문제로 아무리 밤을 새워 끝장토론을 벌인다 한들 우리는 문제의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하는 대로 산다고 행복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며 자식을 원하는 대로 살게 한다 해서 자식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정해진 수순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꼭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우리는 서로서로가 무엇을 말하는 지 알고 무엇이 부족한 지 알고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는 걸 안다.
단지 대화에서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위안이다.
문자 그대로 Quantum of Solace가 필요할 뿐.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충분히 안다.
[알겠습니다. 잘 해 보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걱정마세요]
하지만 성정이 드세니 그런 말로 끝나는 경우가 드물고 늘 받아치는 것이 문제다.
부모는 자식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그것은 숙명이다. 그래서 원치 않는 말을 하게 된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알지만 그것 때문에 부모가 걱정하는 것 자체가 싫다. 그래서 되받는지도 모른다.
이미 이렇게 산 지가 40년에 가까워진다.
의미없고 소득없는 싸움이었던 것일까.
하나 배운 것은 있다.
부모의 마음을 자식은 절대로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 말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내가 부모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내 스스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하나 생겨난 소망도 있다.
다음에 내 짝을 만날 때
난 [가족]과 싸움을 할지언정 [가족]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과 만날 것이다.
나를 낳아 주고 길러준 가족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년이 넘는데
생면부지의 이성과 만나 가정을 꾸리고 하나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