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荊軻宿'에 해당되는 글 1419건

  1. 2011.09.14 이민이나 갈까 4
  2. 2011.09.11 2011.9.11 소사 2
  3. 2011.09.11 북촌방향(2011) - 홍상수 2
  4. 2011.09.10 바람 앞의 갈대에게 정의를 운운하랴
  5. 2011.09.08 제품수명 8
  6. 2011.09.01 The Vikings (1958) 3
  7. 2011.08.31 떼거리들은 부패하리라
  8. 2011.08.30 모두에게 맞는 요리란 없다
  9. 2011.08.28 또 다른 장례식
  10. 2011.08.24 문학동네 심사평 2
뜬금없이 만난 후배와 수다를 떨다가 나온 이야기

"형, 형  아파트 팔고 북아프리카 제국으로 가면 나이트클럽 몇 개는 살 수 있을거야. 거기서 그걸로 밤의 제왕이 되란 말이야! 물론 물가가 싸서 아무리 돈 벌어도 다시는 강남에 집같은 건 못사겠지만. 아랍 미인들을 볼 수 있잖아!"

"오오! 그렇지! 알라는 위대하시구나!"

이러면서 둘이 쏼라쏼라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럼 뭐하나.
팔리긴 개뿔.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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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9.11 소사

작은 방 한담 2011. 9. 11. 23:21
1.
추석이다.
그래서 뭐

2.
누군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주관적 미의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대상을 만나야 무언가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같다. 만약 이걸 포기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참 지고지순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별다른 삶의 매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정말 자기가 봤을 때 이쁜 사람하고 살아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사단나도 별로 회복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경험이다.

3.
조카년이 갈수록 엄마(제수씨)를 들들 볶는데...원래 투정이 저 나이쯤 되면 심한건지. 아예 엄마를 붙잡고 아무데도 못가게 하면서 앙탈에 울음을 터뜨린다. 토요일날 봤는데 제수씨가 밥을 아예 못 먹더라.

난 아무래도 애 키우긴 힘들 듯. 내 새끼가 저러고 있으면 귓방망이 날아갔다.
말을 못하면 눈치라도 있어야 할 것 아냐. 눈치가 없으면 동물적 본능이라도 있던가.

......그래도 멍하니 있는 내 동생 보면 자기 자식이라는 건 좀 다른건지. 


4.
고양이 사료가 떨어져서 고양이 사료사러 온 동네 사방을 돌아다녔다.
동물병원도 문 닫고 주문한 사료는 택배가 안 오고...결국 싸구려 사료 하나 슈퍼에서 샀다.
사료 처먹고 있는데 성질나서 엉덩이를 한대씩 갈겼더니
아 왜 때려요?
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이 새퀴들아. 말못하는 짐승이니까 먹이고 거두는거지. 


그래도 첫째는 요즘 침대 발가락 밑에서 웅크리고 잔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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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는 현실에서 꿈을 꾼다고 평론가들이 나불나불대긴 한다만
내가 봤을 때 홍상수의 영화는 극사실적 하드보일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리저리 구차한 학문적 촛점을 갖다 맞추거나 전문가의 심미안을 대 놓고 볼 하등의 이유가 없는것이다. 그 사건과 사건의 동선에 어떤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전무하다. 왜냐하면 영화를 감상하는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일테니까.

[책임에 구애받지 않는 남성 솔로가 여자랑 섹스하기 위해 벌이는 분투기] 가 홍상수 영화를 관통하는 요소다. 중간에 찌질하건, 민망하건 그것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여자와 관계를 맺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혹은 중구난방으로 헤집고 돌아다니는 수컷의 망동과 그것을 알면서 대충 이용하거나 아니면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암컷의 응큼함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영화에 따라 암수의 헤게모니가 바뀔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이어져 온 홍상수 영화의 주된 화자가 남성이었음을 봤을 때. 결국 [남성의 생식행위 달성을 방해하는 문명사회의 고단함]정도로 압축되지 않을까.

북촌방향은 그나마 깔끔하다. 여기저기 공간적으로 방황하면서 다닐 필요가 없는 남성의 여성사냥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타임 온 타겟]이 된 뒤에 정확하게 밀고 들어가는 주인공의 모습. 예전 김상경이 헤메이면서 엎치락 뒤치락 마지막 목표까지 허둥지둥 달려가서 읍소하고 협박하고 어르고 달래서 여자랑 자는 돈키호테형의 인물이었다면 이번에 주인공을 맡은 유준상의 모습은 햄릿과 제이슨 본을 섞어놓은 듯한 모습으로 들어온다. 이걸 우리는 프로페셔널이라고 하겠지. 영화의 압축성은 거기서 빛난다. 이 영화는 섹스를 희구하는 전문가의 발자취가 첩보영화에서 악당을 제거하는 공작원의 모습과 얼마나 일맥상통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유준상은 꽤나 근사하고, 송선미는 어이없는 한 시퀀스(개새끼....)를 제외하고서는 정말 맛깔난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영화 [친구]와 [하얀거탑]의 김보경. 내가 유준상이라도 다른 타겟은 눈에 안 들어온다. 그러고보니 김상중씨 이야기는 없네...그냥 나 보는 것 같아서 속상해서 안 썼음.

초심자가 실제로 흉내냈다가는 콩밥먹기 딱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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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벌써 몇년 전 이야기다.
촛불시위가 한참일 때,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뛰쳐나가던 시절이야기다. 한 사내가 있었다. 어디 포목상을 한다던가 하여간 그쪽에서 일하는 양반이었는데 이 분이 참 열심이었다. 그 어려운 시절에 자신이 자비 부담해서 촛불 사고 행사 있으면 옷 구매하고 하여간 여러 사람이 단체로 행동할 수 있는 물품들을 만들어서 보내는 데 들어가는 일들에 앞장서서 나섰다. 돈도 솔찮게 깨졌으리라.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는 꽃까지 몇 박스 준비해서 조계사에 아예 놔 두기까지 한 양반이었다. 사람들이 좋아했다. 결국 이 양반은 그동안 들어온 성금들과 새로 돈을 모아서 회원들명의로 불우이웃돕기까지 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이 양반 사업체가 부도를 직격으로 맞았다. 같이 일하던 놈이 돈을 들고 중국으로 튀었다. 사람이 흔들린 모양이다. 사흘 굶은 사람에게 떡집 지키라고 하면 과연 몇 명이나 지킬 지 모르겠지만 이 양반은 굶어죽을지언정 지조를지키기에는 절박했던 모양이다. 급한 김에 모금통장에서 돈을 일부 인출했다가 다시 채워넣었다. 그런데 그걸 다른회원들이 알아내었다. 

법적으로 심판을 해야 한다고 아우성이었다. 그 사람은 다시 채워넣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건 엄연한 횡령이었다고 떠들더라. 고결하기 그지없는 회원님들께서 아주 사람 하나를 짓이기고 조각조각을 내버렸다. 형사에 가니 어쩌니 하면서 떠들던 와중에 결국, 회비는 다른 사람들이 맡아서 불우이웃에게 기부를 했고, 그 양반은 그 모임에서 찍혀나가다시피 하며 떨궈져 나갔다. 그 사람을 죽이겠다고 덤벼들던 도덕론자들에게는 그래도 명분이 있었다. 공공의 돈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에 대해 당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
세월이 지난 뒤 곽노현 교육감이 선의로 2억을 줬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사전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고 떠든다. 본인의 입으로 선의로 줬다고 시인하였다. 하지만 검찰은 선의와 법치와는 다르다고 말하고 그를 구속하려고 든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같은 모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서 검찰을 욕하더라. 이것은 대놓고 사람 죽이기 아니냐고. 그냥 멍하니 그 모습 보고 있다가 코웃음이 나더라.

독립언론이지만 언론이 교육감을 응원하고, 그가 교수 출신이고, 그릇된 정권이 대척점에 있는 아이콘이기에 핍박을 받으면 안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가 선의로 줬다고 말까지 한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의였기 때문에 법적으로 구속하면 안된다는 것인가. 몇년 전의 그 양반도 자신이 돈을 잠깐 빼 썻지만 기부 전에 다시 채워넣었다. 뭐가 다르길래 그 때는 이빨 내 놓고 찢어발긴 주제에 지금은 [선의로 더 큰 거금을 준]사람에게는 한량없는 자비를 베푸는 건가. 포목상 그 양반은 선의가 없었다는 건가?

3.
난 사람을 애초부터 믿지 않는다.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인간들은 더  믿지 않는다. 누군가에 의해 조작될 수 있는 것이 여론이라는 것을 믿고 경험해 봤기에 더더욱 그렇다.  난 곽노현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의 잘잘못을 떠나서 그가 권력의 개에게 물어뜯기는 것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동류에게 쳐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번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면. 만약 그 사람이 처맞지 않아도 된다고 사람들이 믿는다면 예전에 그렇게 엄격하게 사람 하나를 골로 보냈던 인간들은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를 죽을 떄까지 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인간은 가지고 있는 신분이나 위치나 금액에 의해 다른 평가를 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갈대 아니랴?
난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절대로 인간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생물이라고 믿는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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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수명

투덜투덜 2011. 9. 8. 01:07
소변이 영 시원찮다

비뇨기과를 가 봤다. 갈 데가 여기밖에 없지 않은가.

의사선생과 면담을 했다.
D: 어떻게 오셨습니까
H: 소변이 잘 안 나오고요 거시기 궁시렁궁시렁
D: 최근에 성관계를 하셨나요
H: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아니요
D: 소변검사 해 봅시다.

(소변검사후)

D: 균같은 건 없네요
H: 균이 무슨 만나요. 하늘에서 떨어져? 아 그렇군요
D: 전립선 문제인 듯 싶어요
H: 그냥 있어도 문제가 생기나요
D: 슬슬 그럴  나이가 되었죠. 

써도 닳아 없어지고 안 써도 닳아 없어지는게 세상만사.
이모저모 참 한심하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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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kings (1958)

見.聽,感 2011. 9. 1. 11:26

* 막장 대하스펙타클역사드라마

일단 50년대 기준으로 끝내주는 배우들과 감독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블록버스터다.
당시에 잘나가던 꽃미남 토니커티스 (우리에게는 로저무어와의  공동주연 TV시리즈인 '전격대작전'으로 유명하지만...이 시리즈 알면 연식 나온다.), 만년조연 어니스트 보그나인. 그리고 영원한 카오스의 카리스마 커크 더글러스를 데리고 [도라도라도라]의 감독인 리처드 플레이서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도라!도라!도라!]는 리처드 플레이서 감독 최고의 역작이자 백조의 노래.....아 뭐 이건 한참 뒤인 1970년도에 나온 영화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상당한 위용이다.

그런데 줄거리는 완전 개막장

바이킹 두목 (어니스트 보그나인)이 문명화된 서양 어느 왕국에 들어가 약탈하고 왕비를 강간한 뒤 도망갔는데 나중에 왕비가 애를 낳고 그 애가 권력투쟁에서 쫓겨 북쪽으로 망명, 그래서 바이킹의 노예가 된다. 그런데 알고보니 도망간 집안이 어니스트 보그나인의 동네네? 그리고 어니스트 보그나인에게는 카리스마 짱인 배다른 형님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들의 출생비밀을 아무도 몰라. 그냥 넌 노예 우린 상전 이렇게 살던 중에 서양 어느왕국에서 공주를 형님(커크 더글러스)이 납치해 온단 말이지. 아, 그런데 노예동생놈하고 공주가 눈이 맞아. 형님은 보기보다 순정파라 말도 못하고.

뭐 대충 이런 이야기다. 이렇게 저렇게 이어지면서 토니 커티스와 커크더글러스의 갈등은 점점 허리우드식 문법에 따라 고조되어가고, 여인은 여기저기 초겨울 마른 풀처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내 마음 나도 몰라 누가 콱 자빠드려줬음 좋겠어요 이런 뉘앙스나 풍긴다. 하여간 형제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마지막에 풀리는 출생의 비밀...

뭐 이런 것이다. 말 그대로 그냥 멍하니 눈 뜨고 보면 되는 불록버스터. 생각보다 액션신이 많지는 않고 드라마 위주긴 하지만 커크 더글러스의 카리스마 하나만큼은 형형하게 빛이 난다. 마지막 클라이막스 공성전에서 벌이는 도끼질 클라이밍이 이 영화의 백미. 요즘 구해보기 힘든 영화라서 한 번 올려봤다.

p.s 1) 이 영화의 히로인으로 나오는 자넷리는 유명한 영화 [사이코]의 샤워씬으로 유명한 그 배우다. 아마 코르셋보정이 있었으리라 생각은 되지만...이 배우의 가슴사이즈와 허리사이즈는 사람의 고정관념을 깨버린다. (36-21-36) 만화에서나 가능한 인물구현이 현실에도 존재한다는 것. 사실, 이 영화 촬영 중 토니 커티스와 자넷 리는 부부관계였다. 이 두 선남선녀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는데....그 딸이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나온 [트루라이즈]의 사고뭉치 마누라. 바로 제이미 리 커티스.

p.s 2) 이 영화에 나온 모든 사람은 늙어서 돌아가셨다. 리처드 플라이서 감독마저 죽었다.
         하지만 오직 한 분이 살아계시니. 이 영화에서 가장 연장자로 나오는 어니스트 보그나인.
         무려 1917년생. 2011년 현재 여전히 살아계시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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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말이 필요없다.
우상의 시대다.

썩어 문드러진 정치가들과 돈을 지닌 권력가들은 상고시절부터 변하지 않는 타락상을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 대항하는 사람들 역시 상고시대 이후부터 절대로 변하지 않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민중들은 자신들을 이끌어줄 지도자를 숭배한다. 종교가 없는 자는 종교격멸론자를 숭배하고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자들은 민주투사들을 숭배하고 거짓언론인을 경멸하는 자는 인디언론인들을 찬양한다.

상찬과 존경 속에서 사람들은 타락할수 밖에 없다. 우리가 알던 이들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변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한가지다. 사람들은 떼거지로 모이면 부패하기 때문이다. 연꽃이 아무리 진흙밭을 양분삼아 떠오른다 하지만 평생 진흙위에 고고히 떠 있는 품성의 철인은 그렇게 발견하기 쉽지 않다.

사람은 스스로의 욕심으로 타락하거나 타인의 격려로 인해 타락한다. 둘 중 하나라도 행하지 않으면 이미 성인의 반열이다. 이도저도 하고 싶지 않고 타락시키고 싶지도 않고 타락하고 싶지도 않지만 명경지수 깨어있는 정신을유지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사람들을 떠나 살아야지. 그것 외엔 답이 없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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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입맛이 십인십색인 것처럼 어떤 이의 삶도 모두의 눈에 흡족하게 보일리 없다.
현재 하수도의 찌꺼기처럼 끈적하게 달라붙어 별다른 성취도 없이 사는 내 삶을 부러워할 이도 있을테고
내가 무언가 이루고 산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나도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현란한 말빨로 이 여자 저 여자 옮겨다니며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쏘는 인간들을 부러워할 때도 있고, 존중받는 가족간의 관계를 가진 가족을 부러워할 때도 있고, 힘들 때 서로 위로하는 부부를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한다. 요즘은 몸이 안 좋으니 대충대충 아무거나 줏어먹고 살아도 종내 튼튼한 인간들이 가장 부럽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 내가 그때그때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달라지는 질투의 소산이 대부분일 뿐. 사람은 결코 모두에게 만족하는 인생을 살 수 없듯이 자신의 인생도 결코 만족하면서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행복해졌으면 한다.
모두에게 맞는 요리가 아니라 할 지라도 나에게 흡족한 요리가 내 상에 차려져 있으면 한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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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내 나이도 결혼식이 그치고 장례식이 잦아질 기간에 확실히 들어선 것 같다.
친척 한분이 또 돌아가셨다. 암이셨는데,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빨리 돌아가셨다.
Fast & light하고 돌아가시라는게, 노인들에게 좋은 덕담은 결코 아니지만 암환자들에게는 이것도 복인 모양이다.
아침나절에 가족들하고 멀쩡하니 인사 하시고 그동안 별반 아프신 곳도 없다가 (암인지 알아채신게 4개월 전인가 그렇다) 호흡곤란 와서 바로 의식 잃고 돌아가셧으니. 암환자들에게는 세상을 쉽게 뜨는 것도 복인가보다.

그래서 그런지 노인들은 보약주는 거 안 좋아하신다고 하더라. 보약을 많이 먹어놓으면 잔명이 길어져서
나중에 숨넘어가는게 힘들다고. 써 놓고 보니 참 끔찍한 이야기다.

하여간 그렇게 영안실에 친족들이 모여서 앉아 있는데
다들 모여있는 분들이 나보다 한 세대 위니 가신 분이나 남아있는 분이나 연배차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 죽음을 슬퍼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다음 열차 올 때까지 정거장에서 한담하는 분위기가 나는 것이다. 가장 연장자이신 큰외삼촌이 육개장을 다 드시고 하신다는 말씀이

"왜들 이렇게 위계질서가 없어. 갈 때도 열맞춰서 가야지"

그러시더라. 죽음을 기다리는 나이. 많은 것들을 봤으니 더 이상 볼 것도 없어지고 볼 힘도 없어지는 나이.
그리고 모든 것을 놓아도 된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나이.

아마 나도 나이를 먹으면
지금 내 속에 들어있는 수 많은 아집과 집념과 분화 한과 서러움같은게
다 날아갈 수 있겠지.
언젠가 갈거 라고 믿었던 때가
바로 내 코 앞까지 다가온 것을 느낀다면.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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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가을호 계간지를 사서 심사평을 죽 읽어보고 당선작을 읽어봤다.

뭐랄까. 순문학만이 갖는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이미지에 경도된, 언어의 조탁에 철저하게 천착하는 분위기의 글들에 예전부터 점수를 줘 왔는데
그 경향이 점점 심해진다는 느낌이다. 박민규의 글도 점점 그러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요즘 들어오는 글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점점 [소통의 단절]을 꾀한다는 느낌이다. 독자와의 소통이 아닌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간다.

어쩔수 없다고 치자. 신인상이라는 것은 다름 사람과 변별되는 문체의 독특함이나 구성법으로 승부를 하는 곳이라고 애써서 그들을 변호한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남는 것은 무언가. 스토리의 지향점이라는 것은 점점 간략하고 단순해진다. 지하철을 걸어와서 집까지 오는 여정을 왕가위식으로 단절해서 영상을 보여주는 식의 불편함을 나는 그 가운데서 목격하게 된다. 내가 순문학도,장르문학도 아닌 어정쩡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이런 기분나쁨에서 출발한다. 독자들에게 과도한 채색과 불필요한 심리묘사로 길을 잃지 않게 한다. 하지만 쓸데없는 장식을 털어낸다고 해서 길에 깔리는 것이 싸구려 모조지를 붙여놓은 지시방향은 아니다. 그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에게 심사의원은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이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에 해당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말로써 대화하고 싶지 않고, 내가 쓴 글을 가지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독자들이 내 글을 볼 때 명확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느꼈다면 그 글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모호한 관념의 대상으로 찾아오는 글이라는 것은 술을 마시고 대화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장르작가(난 이 구분을 굉장히 싫어하는데...대체 어떤 놈이 장르작가이고 순문학 작가인가. 알렉산드르 뒤마? 레베르테?) 스러움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길에 무엇이 있는 지를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주제의식의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문창과 같은 곳에서 하루 종일 이런 것만 공부했던 사람들하고 밑바닥에서 남의 글을 모사하면서 바닥바닥 기어 온 나하고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을지 모른다. 내 개인적인 감상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좋은 방식같은 것을 내가 몰라서,혹은 그 묘용(妙用)을 보고 질투하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고개를 휘저으며 생각해 보면 비단 그런 얄팍함만을 가지고 이렇게 중언부언 떠드는 것은 아니다. 

벽을 느끼기 때문이다.
얄팍한 창호지만한 권위가 그 심사평 사이에서 느껴져서 무척이나 기분이 나쁘다.

어차피 내가 갈 길이 그쪽과 관계 없다면 상관 없지만
난 아무래도 두 군데 다 내 글자국을 남겨야겠기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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