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荊軻宿'에 해당되는 글 1419건

  1. 2011.08.23 어쩌면 지워버려야 할 이야기 4
  2. 2011.08.21 2011.08.21
  3. 2011.08.21 인내
  4. 2011.08.18 물리치료 2
  5. 2011.08.13 과산화수소수
  6. 2011.08.12 요즘 일어나는 아주 소소한 즐거움 6
  7. 2011.08.06 근육소염 스프레이.... 2
  8. 2011.08.05 후회란 언제해도 재수없는 것 2
  9. 2011.08.02 7전8전
  10. 2011.07.31 연애감정 4
1.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예전의 일이다. 배낭여행을 다녀오던 길에 프랑스와 이태리 사이의 작은 해변마을을 들른 적이 있었다. 뭔지도 모르는 식사를 대충대충 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나는 것은 오직 하나 바다의 색깔뿐이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바닷물의 빛이 파랗디 파란 사파이어 빛이었다. 그후에도 여기저기, 국내외 여러곳의 바다를 다 둘러보았지만 난 그렇게 파란 색의 바다는 구경해 본 적이 없다. 어느 누가 푸른 바다라고 한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 새파란 바다]에 비하면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 잔잔하던 파란 바다의 색깔과 풍경은 아마 다른 절경을 보더라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바다가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으니까.


2. 
10년 전에, 한 명의 여자를 본 적이 있다. 결혼 하기 전의 이야기다.
사람은 태어나서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성을 만나면서 자신의 이상형을 구축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결혼생활 롤모델을 만들어간다. 이상형이란 원래 구름위의 성채같은 것. 절대로 이승에서 만나지 못해서 이상형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가장 비슷한 사람을 찾아서, 혹은 그와 비견될만한 매력을 지닌 사람을 만나서 짝을 짓고 결혼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아뿔사, 살아있는 이상형을 봐 버린 것이다. 난 그것이 축복이라 생각하였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천형(天刑)에 다름 아니었다.

타인의 눈과는 관계 없이 그 여자는 가지런히 내 모든 조건에 다 들어맞는 사람이었고, 더 큰 문제는 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 계재가 없었는데 그냥 멍청하니 바라만 보는 처지였던게지. 말 그대로 대가의 그림을 박물관에서 보면서 '아....행복하구나. 내 거실에 걸어두고 싶은 생각 굴뚝같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미술학도 같은 느낌이었다.

대충 포기하면서 살면 그것이 잊혀지리라 생각했건만, 그리고 혼자가 아닌 삶 가운데서는 그것을 일부러라도 잊고 열심히 살았건만. 어떻게 인연이 참 잔망스럽기 그지 없어서 실타래라는게 얽히고 얽혀서 재수없게 혼자 살 때 또 봐 버리고 만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알았다. 아, 내가 잊고 산 것이 아니라 참고 살았구나. 담배랑 똑같은 거였구나. 정말 재수없는 인생이구나, 눈알을 애초에 뽑아버릴 걸 그랬구나. 


3.
인순이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은 적이 있다. 
바로 내 앞에서 댄스곡을 부르는데 온 몸의 신경이 쭈볏 서는 느낌을 받았다. 백건우와 아쉬케나지의 피아노로 라흐마니노프를 듣는다. 머릿속을 일필휘지로 휘감고 달려드는 멜로디의 이어짐이 전해진다. 대가의 음악은 사람의 귀가 아니라 몸을 통해서 나간다. 이런 소리를 듣다가 옆집에서 피아노 연습하는 소리를 들으면 짜증이 솟구친다 (연습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미안한 비유지만). 왜 거기서 그렇게 음색이 넘어가냔 말이다. 하지만 이건 누구에게도 불평할수 없는 내 개인의 호불호다. 좋은 것을 보고 들었으면 사람의 감평은 그 아랫쪽에 결코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한다. 이것이 비단 음악이나 미술에만 국한되랴? 아니다. 사람의 이런 감정은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4.
혼자 된 다음에 이 사람 저 사람 맘 붙여보려고 무던히 노력해 봤지만 그게 안되더라.
그게 내 엑스와이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예전에 봤고 최근에도 봤고, 아마 잊혀지지 않는 그 여자를 기준점으로 놓고 있더라.
조금이라도 만나는 여자가 내 각도에서 삐긋하는 것 같으면
'아니 대체 뭘 믿고 이 모양이야?'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게 저주가 아니고 천형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아예 혼자 독경하며 일생을 마감한 팔자가 아니라면 당연히 눈 질끈 감고 머릿속의 상념을 쫓아내야 하거늘 그것이
안 되는 것이 지금까지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길 아니런가. 이 길에서 과연 나는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다른 산적한 일도 태산같아 짐을 지는 일도 버겁기 그지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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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1

작은 방 한담 2011. 8. 21. 23:18
1.
오랫만에 동네 놀러온 교회 후배 밥 사주고 차 태우고 드라이빙 시켜준 담에 목적지에 데려다주고 집에 왔다. 10년 전이나 할 법한 짓을 지금 하자니 우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걸리적 거리지 않는 신분상의 무제약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대학생들 때나 하던 짓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니 참 웃기지 않는가.

연령만 바뀌고, 지워주는 책임만 달라질 뿐. 인간의 행동과 삶이라는 것은 과거를 답습해도 상관없는 것 같다. 자기 자신만 겸연쩍어지지 않는 한.

그 놈도 참 오랫만에 붙어서 얻어먹었을거야. 그 나이에. 이히히


2.
펜싱을 배울까 생각중이었는데
아마 다음 주에 가 볼 것 같다.
월회비도 싼 것 같고, 학교 교실 하나 빌려서 배우는 것도 예전의 진검배우던 기억 비슷해서 재미질 것 같다.

이것만 배우면
난 검도와 권투와 펜싱을 다 배우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가 20대에 세웠던 인생의 목표 하나가 성취되는거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의 목표.

근데 예쁜 여자는 어디서 찾는다


3.
그건 그렇고 호구지책은 참으로 난감하다
어떻게 이렇게 부동산 비용이 올라갈까?
주식도 벼락맞은 쥐새끼처럼 땅바닥에 태질을 당하는 판인데
왜 이렇게 현금이 돌지를 않을까?

지금 이 동네는 빈 상가가 여러채 있는데
상가 주인이 임대료를 내리지 않아서 쉽게 입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같은 물가에 말도 안되는 임대료. 하지만 내릴 생각이 없나보다.

실물경제와 부동산은 어디서부터인가 괴리되어 있다. 그런데 이게 정작 맞닿기 시작하면
이 나라 파국으로 치달을 것 같아서 그것도 걱정.

어이구
내 먹고 살 일이 빠듯한데 뭔 나라걱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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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

작은 방 한담 2011. 8. 21. 00:31
인내란 뻔히 보이는 먼 길에서 다리를 두드리며 정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었을 때 보이지 않는 길을 찾기 위해 좌충우돌 헤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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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

작은 방 한담 2011. 8. 18. 00:27
목디스크가 아무래도 그냥 놔 두면 문제 생길것 같아서 물리치료를 받기로 했다. 사실, 고질이다. 상당히 발병한 지는 오래 된 병인데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니까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서 그냥 두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자동차나 사람이나 진배없다. 늙으면 아무 이상 없어 보이는 외관이더라도 멀쩡히 가다가 퍼지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기구가 하나 있더라.
목에다가 가죽끈 같은 걸 걸고 위로 잡아땡기는 기구가 있는 것이다!
기계가 일정시간동안 목을 위로 잡아 올렸다가 풀어줬다가 하는 기구다. 견인치료인가 그렇게 부르던 것 같은데
침대에 암젼히 누운 상태에서 수평으로 옆으로 당기는 것이었다.
아마 수직으로 선 상태에서 당겼다면 그건 고문이겠지.

굉장히 희한할 정도로 원시적이면서도 효율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스크라는 게 뼈하고 뼈가 눌려서 연골이 튀어나는 병이니까 벌려주는 게 당연한 것일게다.
참고로, 교수형을 당하면 신장이 커진단다. 이건 당연하다 경추가 탈골되어 버리니까.
죽은 뒤에 키가 커지면 뭔 소용이겠냐마는.
비슷한 이유로 우주공간에 나가면 키가 커진단다. 중력이 잡아 당기지 않으니까. 이 경우는 4-6cm가 커진단다.

예전에 허리디스크가 있을 때는 팀버튼의 배트맨1편에 나온 것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으면 좀 나아질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다. 어차피 중력때문에 망가졌으니까 거꾸로 있으면 좋아지지 않을까. 효과가 있을 것 같긴 한데 그 전에 머리로 피가 쏠려서 기절할 지도 모른다.

하여간 물리치료라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상황 그대로 사람의 몸을 돌리려는 목적으로 자연력을 동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민간요법을 기계로 전환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망가진 것은 다시 원상복귀하는 일이란 참으로 힘든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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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부모묘를 정말 오래간만에 시간내어 찾아갔다.
외조부묘묘라고 길게 둘러 쓰는 이유는 두 분이 합장이 되어서 봉분 하나를 쓰기 때문이고 오랫만에 시간을 냈다는 이야기는 충북영동에 외가 선산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이후로 외가 시골에 찾아가 본 적이 없다. 일가 외가쪽이 몽땅 서울에 올라와 살기도 했거니와, 시골을 지키시던 둘재 외삼촌이 돌아가신뒤로는 영 그 곳과의 인연이 끊긴 때문이다.

각설하고, 나도 나이가 먹으니까 땅이나 핏줄에 대한 귀소본능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머릿속에 풍경을 넣어두어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충동적으로 부모님을 따라 나섰다. 그런데 이거. 정작 선산은 있는데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충북 야트막한 야산이 머나먼 정글의 메콩강 골짜기더라. 여름철 길 없는 야산에 올라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이거 사람이 함부로 돌아다닐 수가 없다. 설상가상 비까지 왔고 우리 외가는 100% 찰진 황토다. 넌더리가 날데로 나서 이젠 못가겠다 싶을 때 산소가 나오더라. (고라니 두마리를 봤다. 그 야트막한 산에서...0.0)

하여간 올라갔다 왔더니 양팔에 칼자국 투성이다. 물이 오를대로 오른 풀은 칼보다 예리해서 스치면 그대로 혈흔이 올라온다. 패잔병의 꼬락서니로 서울까지 올라온 뒤에 집에 돌아와서 약국에서 과산화수소수를 오랫만에 구입했다.

예전에 약 중에 가장 싫어했던 소독약이 이 과산화 수소수였다. 상처가 아픈건 둘째치고 이 소독약은 들이 부으면 통증보다 더 심한 아픔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혼자 집에서 솜에 묻혀서 두 팔뚝을 닦는데 여전히 아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 쓰라림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게 된 나는 어지간히 나이를 먹은 모양이다.

툰중한 통각을 주는 곪은 상처보다는 그 상처를 째는 예리한 통증이 내 몸에 훨씬 좋다는 것을 알고
찢어지게 아픈 것 보다는 상처부위가 붙어서 가려운 것이 몸이 나아지는 신호라는 것을 파악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픔은 어릴적이나 지금이나 같은데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이번에 본 시골도 여전히 풍광은 비슷했지만 들어오는 광경이 달랐다.

내 어릴 적 같이 뒤놀던 또래들은 이제 아무도 시골에 남아있지 아니하고
어머니보다 훨씬 나이 많은, 어머니의 오빠대 노인네들만이 변하지 않는 동네 느티나무 정자 아래 모여 있고
느티나무 아래 흐르던 개울은 보기 좋게 시멘트로 복개가 되어있고
옛 시골집 뒤에는 양옥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남은 것은 죽은 자와 하늘과 산뿐인데
정작 얻어 온 것은 팔뚝의 상처뿐. 그리고 그 상처를 쓰라리게 소독하고서도 별 감흥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외손자만 남아있는 세월이다.

세월은 앉은 자리에서 추억하면 그 얼마나 쏜 살같은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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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예전에 써 놓았던 무협소설이 하나 있었다.
제대로 끝까지 쓴 첫번째 단편이었고, 그것도 대충 쓰다가 흐지부지 될 뻔한 것을
곡예사님이 읽어보다가 [재미있으니 끝까지 마무리해보라]고 해서 끝까지 썼던 작품이었다.

나름대로 잘 뽑힌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출판사에 한번 보내봤다.
답장들이 도착했다. 한결같은 답장들이었다.

"우리 출판사 방향하고 맞지 않습니다."
무협전문 출판사부터 소위 주류문학(주류는 무슨 얼어뒤질) 출판사까지 십인일색 이구동성 똑같은 답변이 오더라.

아, 난 실력이 안 되는구나. 이러고 그냥 파일을 봉인해두었다. 그게 6개월쯤 전의 일일 것이다.

그러다가 올 8월초
문득 파일을 정리하다가 이 파일이 나타났다.

그래도 내가 쓰긴 했지만, 여러 사람들이 격려를 해서 쓴 글인데
최소한 이렇게 묻히게 하는 건 실례인 것 같다 싶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무림포탈....X피X에 슬쩍 올렸다.
사람들이 별로 안 보는 것 같았다.
역시나.
그냥 그러고 있었다.


2. 
그러다가 한 나흘쯤 지났을까.
한 분이 좋은 글이라고 추천을 하시더라.
그러다가 이틀쯤 지나니까 두 분이 좋은 글이라고 추천을 하시더라

그 다음부터 깜짝 놀랐다.
갑자기 조회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감상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하는데
내가 감당하기 힘든 찬사들이 줄줄줄 붙기 시작하고 있다.
"이 글에 더 이상을 바라는 것은 악한이다"
라는 댓글까지 달렸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어디 숨어버리고 싶었는데 하여간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있다.

올리는 분량이 하루에 정해져 있는 관계로 장별로 끊어서 올리고 있는데
며칠 더 올리면 아마 끝날 것 같다.

그냥 좋아해 주는 독자들이 많아서 참 다행이다.
최소한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줄 수 있구나 싶은 기쁨이 들어서
그나마 요즘의 삶에 행복을 느낀다.

이건 다 곡예사님 때문임..ㅎㅎㅎ 
다시한번 감사함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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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스파링을 뛰고 나면 머리가 울린다. 하루 정도 두통이 있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관계자들의 썰에 따르면 스파링의 회복력은 목의 두께와 강도에 비례한단다.
타이슨같은 친구는 스파링 뛰고 나도 몇 시간 내에 통증을 회복한다는 거다.

목 두꺼운 사람들아.
옷 태 안 난다고 슬퍼하지 마라. 그대들은 남들 맞는 거 배는 맞아도 훨씬 멀쩡하게 살수 있다는 것이다.  문명시대에 도움이 안 되는 건지는 모르지만...하여간 목둘레가 맷집하고 관련이 있는 건 맞는거다.

바꿔 말해서, 나같이 목이 가늘어 슬픈 짐승은 스파링 잘못하고 나면 사경을 해멘다는거지. 하여간 어제 죽을뻔 했다.
머리가 울리는 게 사라지면 그 다음엔 목근육이 경직되어 아픈데...맞아서 단련되는 근육이 목근육인 모양이다. 이런 근육강화를 그런데 이 대명천지에 어디에 써 먹나? 국가대표 상비군 같은거 나가기엔 나이가 넘어가도 한참 넘어갔는데.

각설하고, 문제는 그게 아니라
뭔가 파스 같은 걸 집에서 찾아보고 있었는데 찬장 깊숙한 곳에서 이상한 물건 하나를 찾았지 뭔가.


가만 보니 어머니가 미국에서 사 온 근육소염제. 
설명서 보니까 미국 운동선수들이 필드에서 근육을 다치면 1차적으로 팀닥터가 먼저 뿌려대는 스프레이라는거다.
오호, 이런 좋은게 내 방 찬장에 있다니!
 

목근육에 뿌려봤다.
근육 통증이 사라졌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살갗이 쪼그라들면서 타는 느낌이더라.
이거 염산이냐? 이런 생각이 뇌리는 스치는 것도 잠시, 조금 뒤엔 뇌세포가 정지하면서
아무 생각 안 났다. 저절로 양 어깨가 들리면서 신명나게 유로비트 브레이크 댄스가 나오는데  
찢어진 어깨에 알보칠을 붓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레벨을 돌려서 살펴보니

[Ultra Strength]

얼른 내일 어머니를 만나면 말해줘야겠다.
정말 조금만 뿌리세요. 근육이 아픈게 낫지 이건 뼈와 살이 다 아파요
겉이 아파서 속의 통증이 날아가는 거예요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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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이렇게 했으면 어떠했을까
저렇게 했으면 어떠했을까

결국 그런 생각의 실타래 끝에는 현재에 대한 낙심만 존재할 뿐이다.

흘러간 시간을 담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불완전하기에 영속되어 보이는 것일 뿐. 그곳에 구태여 얽매여 살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해체되어야 할 요소들로 불안하게 조립되어 있는 물질에 불과하다. 시간이라는 것은 그것이 유지되는 기간에 불과할 뿐. 수직으로 밀집하여 쌓여있던 것들이 드넓은 공간으로 환원되어 날아간다고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시간의 불가역성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사유가 멈춘다고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그러니 후회는 그만.
그저 현재의 내 모습에 불쾌한 상상만을 더해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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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8전

작은 방 한담 2011. 8. 2. 00:35
사람의 삶에 [성공]이라는 두 글자나 [성취]라는 단어를 자신의 일대기에 새겨넣을수 있는 사람이 과연 태어나서 몇이나 될 것인가 상상해본다. 내가 하는 일은 참으로 작은 일들인데 이 일에서도 그런 단어를 찾아내는 것이 힘들다. 뒤돌아 생각해 볼 때 사람의 입에 회자되는 그 많은 위인들과 기인들은 그들의 삶 이면에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그들은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지 않았을 것 같다. 뒤돌아보기에는 참 힘들게 버텨낸 시간들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뭔가 힘써서 내달리던 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결승점에서 얻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한 낭패가 어디있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하고, 내가 마지막까지 생을 달려갈 때 내 손에 한 줌 쥐어지는 것이 없을까봐 두려워한다.

아니,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 삶의 종장에 가서야 그 가치를 입증받는 것이 더 두려울지도 모른다.
평생 일구고 열매를 맺어놓았는데 정작 열매는 따먹어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는 농사꾼이라니. 참 불쌍해보이잖아. 

그래도 달려가는 것 외엔 길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젠 어디로 가야하나 하고 두리번거리게 된다. 이 길을 계속 가야하나. 아니면 뭐 다른 곳 더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가. 어차피 어디로 가던 넘어지는 것을 같을텐데.

인생은 7전8기가 아니라 7전8전,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기어서 가는 과정.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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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감정

작은 방 한담 2011. 7. 31. 20:03
-1-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무리 격정적이고 때론 천상의 주단을 깔아놓은 듯 지고지순하더라도
상대방이 터럭 한올이라도 느낄 수 없다면
그냥 대답없는 메아리, 공허함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반복되고 반복되면
상대방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의 상승이라는 게 지나가는 여자 빤스보고 생기는 순간의 성욕만큼이나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게된다.
어차피 내가 뭔 감정을 가지고 느끼면 뭐 하나. 공염불인것을.


이렇게 살면서 몇 명을 하릴없이 보내고 나니
이미 남은 생의 반 정도를 써 버렸다.

참으로 쓰잘데기없는 의미불분명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실없는 인생에 과정이 아무리 감격적인들 나중에 그것으로 어떤 미래를 보장받으리. 남는 것은 회환뿐이다.

 
-2-
예전에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카운터에 있던 아가씨에게서 나온 말이다.

나: 여자를 사랑한다는 걸 말외에 뭘로 설명하지?"

여: 가방을 사줘요

나: 가방?

여: 가방이 사랑을 말하죠.

나:?

여: 가방도 안 사주는 사랑이 사랑인가요. 가방도 못 사주는 사랑이 능력있는 사랑인가요. 관심이 없는 여자라도 가방은 받아요. 가방을 받으면 남자에게 관심이 생기죠. 그 다음엔 가방을 하나 더 사줘요. 그럼 그 여자는 이 남자가 그냥 허언으로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게 되요. 한번이라도 더 보게 되죠. 미안해서라도. 그리고 가방을 하나 더 사주면 그 남자의 진심을 알게 되는 거예요. 이 남자는 가방을 세 개나 사줄만큼 나를 사랑하는구나.
사랑한다면 가방이예요.


인과관계에 상관없이 현실적인 충고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모르는 여자에게 가방을 사 줄만큼 빠져본 적은 없는 것 같군.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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