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荊軻宿'에 해당되는 글 1419건

  1. 2011.06.25 끄적끄적 주전부리 일기 10
  2. 2011.06.20 동생이 아프다 8
  3. 2011.06.20 2011.06.20 소사 2
  4. 2011.06.17 버거움 2
  5. 2011.06.14 운명인가 4
  6. 2011.06.14 살이 찌려는가! 6
  7. 2011.06.11 시나본, sweet cinnamon 13
  8. 2011.06.11 노력에 대한 결과
  9. 2011.06.09 과민반응 2
  10. 2011.06.09 모발에 대한 준엄한 순간이 다가온다. 4
1.
 며칠 전에 올렸던 스위트 시나몬에 대한 글을 정정해야겠다.
다시 먹으러 갔더니 백화점에서 빠졌다. 현대백화점도 들어가봤지만 다 빠졌다.
현재 백화점이나 상품관에 남아 있지 않은 걸로 확인되었다.

시나몬롤은 그냥 그렇게 사라지는 것인가보다.
홈페이지 하나 없고...그렇다고 족적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아아...시나본 진짜 이렇게 허접스럽게 사라지는건가. 아니면 어디서 권토중래라도 다짐하는게냐.


2.
가끔 들렸던 아웃백 고속터미널 점은 이제 안 가게 될 것 같다.
일단 1인이 갈 때 자주 애용했던 바(Bar)를 없애버렸고 모두 객실로 만들었는데
문제는 무어냐 하면....어떤 패밀리 레스토랑도 회전율을 100%로 돌릴 수 없다는 거다. 그러기엔
주방의 능력이 안된다. 식당과 달리 패밀리 레스토랑엔 메뉴가 엄청나게 많은지라.
그러다보니 예전하고 별반 달라질 바 없는 회전율 + 1인손님의 뻘쭘함만 더해진다.

생각해봐라. 혼자 와서 사람들하고 섞이는 게 싫어서 Bar에 앉는건데
여기저기 시끌벅적한 사람들 사이에 테이블 혼자 차지하고 고기 썰어먹는 게 폼이 나겠냐고.

그리고 이번엔 오더가 잘못 들어갔는지 일부러 그랬는지
많이 온 사람들 먼저 들여보내는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이라니..

게다가 매운 호박스프는 난생 처음 먹어봤다.

어디 어필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그러자면 뭔가 가입해야 할 것 같아서 그냥...안녕 터미널 아웃백.
그냥 베니건스나 가야겠어.

최소한 거긴 음식 갖다주면서 건성으로라도
"손님 맛있으세요? 음식은 어떠세요? 하고 묻기라도 하는데..."

사실 이번에 누가 물어봤으면 니가 먹어봐임마 라고 할 뻔 했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생각하면서도 요즘은 못하겠는게
서빙이나 카운터같은 정신노동자들에게는 할 짓이 아니다. 
'손님은 왕'은 무슨 얼어죽을 왕, 내가 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짓거리 하면 안된다. 


3.
그나저나 갈수록 비도 오고 장마도 심해지는데
먹거리를 고를 수 있는게 점점 줄어드네. 아..심난한 여름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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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체육대회를 하고난 뒤 식중독에 걸려서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다.
원래 장도 안 좋고, 늘 야근을 하는 회사라서 몸이 더 축나면 축나지 좋아질 리 없는 처지인지라
솔직히 좀 걱정스럽다.

우리나라 굴지의 회사, 이 회사가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노인네들이 믿는 그 회사에 들어갔고
봉급도 잘 받고 그 덕에 결혼도 무사히 해서 자식도 두었건만, 이 녀석의 삶은 시간이 늘 모자라다.

내가 꿈나라를 헤멜 무렵 이 녀석은 아침 셔틀버스를 타고 경기도 남부의 회사본사까지 들어가고
내가 모든 일을 다 마치고 잘 준비를 할 때 쯤 되서야 회사 문을 나서서 버스를 탄다.
그 회사에 들어간 이상, 아마 적어도 지금부터 10년 이상은 더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식은 부모님에게 맡겨두고, 두 부부가 그렇게 살아간다. 돈은 그렇게 주니까.
그리고 토요일도 출근, 일이 있으면 일요일도 출근
회사에 일이 있으면 야근이야 예사.

그렇게 살다가 몸이 축나거나 어려워지면
회사는 한14박15일에서 한달짜리로 여행을 끊어준다고 한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 이제는.

난 내 삶이 빈한하다고 여기지만 그렇다고 내 동생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부모님은 내 동생의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내 삶을 '실패자'의 삶이라고 간주한다.
(아, 내가 오버하는 게 아니다. 우리 아버지는 쿨하시기 때문에 자식을 그냥 면전에서 실패자라고 부르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생이 너무나도 불쌍하다.

내가 이렇게 나름대로 자유롭게 돈 없이 대충대충 살아가는 대신
내가 져야 할 가정의 짐을 내 동생이 대신 떠 안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혼자 병원에 누워있겠지.
어린 조카년 때문에 아마 아무도 병원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 있을까.

나 어릴 적엔
난 내 나이 마흔에 가까워지면
동생하고 둘이서 주말에는 어디 낚시나 다니면서
두런두런 돌아다니는 삶을 꿈꾸곤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세상은 그게 아니더라고.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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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은 돈 있는 몇 퍼센트 소수만의 보금자리를 위해서 모든 이들이 피땀을 쏟으면서 봉사하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그 몇 퍼센트는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족속이라고 치부하고,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자 시절에 열심히 운동해서 난자랑 결합해서 부잣집애 태어난 것을 노력이라면 노력이라고 하겠다만
뭔가 참 서글픈 일이다.



2.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지.



3.
자꾸 먼저 해야 할 일이 미뤄진다.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영영 안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럴 때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4.
날은 점점 더워지고 몸은 점점 축나고. 
확실히 한해 한해 갈수록 몸이 피곤해진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건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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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움

작은 방 한담 2011. 6. 17. 22:32
글을 쓰기 위해서 블로그를 열었고
블로그에 글을 씀에 있어서 소재나 내 기분의 어떤 상황이건 거리끼지 않을 것임을 맨 처음에 천명하고 시작했건만 해가 가고 날이 가니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스스로의 발전하지 못하는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거나
필력이 떨어졌거나, 혹은 기타 그 외의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내가 무언가 계속 중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뭔가 호구지책을 위한 기술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호구지책이 될 것인지는 모른다.
오히려 그것때문에 내가 지금 전심전력을 다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게 냉철하게 판단했을 때 훨씬 현실적일 수 있고
장래에 내 목숨을 구차하게 연명해 나갈 묘책일수도 있다.

근본적인 원인이 그것이지만
그런 상황에 맞물려서 개인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라는 것은 내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인 듯 하다.

하루종일 차를 몰고 경기도 남부지역에 큼지막한 신도시는 다 돌아다녔다.
내가 이거 뭔 짓거린가 하는 생각이 80%
이러다가 장래에 대한 계획은 전면 수정되겠구나가 10%
역시 이번에도 이 모양인가가 10%였는데

결국 이러다 보니 슬슬 몸을 사리게 되고
정작 제대로 배우거나 조언을 구하거나 정보를 얻는 일도 의도적으로 피하게 되고
다시 딱딱한 껍질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게다가 연애전선같은건 아예 발생할 여럭도 환경도 조건도 우연도 기적도 없다. (--)  

조금만 더 버텨볼까
버텨볼까
아니면 그냥 물 흐르듯이 떠밀려가 버릴까.

삶이라는 게 갈수록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드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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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인가

믿거나 말거나 2011. 6. 14. 23:36
바로 길 건너자마자 있는 초등학교로

대한민국 펜싱사에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던 아남클럽의 전신이 이사를 온 것 같다.
0.0 집 앞에 펜싱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생겼다.


내 소원 중 하나가 검도 권투 펜싱을 다 배워보는 것이었는데
살아생전에 꿈을 이룰지도 모르겠다.

하악하악
그런데 이사 가면 황인데...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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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찌려는가!

투덜투덜 2011. 6. 14. 00:42
지난 주부터 갑자기 청바지가 타이트하게 느껴지는 것을 발견!

그리고 오늘 체중을 재 보았더니 60kg를 넘어선 것을 발견!

그리고 복부에 살이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오!

드디어 스트레스와 과도한 운동으로 빠졌던 살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가는 것인가!
63kg 정도만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으나


곰곰히 지난 주의 식단을 복기해보니
일주일간 점심 닷새를 햄버거로 때웠다.
[수퍼사이즈 미]도 아니고...아랫배가 안 나오는게 이상한 노릇이지.

열심히 운동이나 다시 해서 저질지방이나 체내에서 추방해야겠다.

-.- 그런데 요즘은 운동 열심히 한들 뭐하나 싶기도 하다.
내 한 몸 가벼운 것은 좋은데 그냥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하는게 낫겠구나 싶다.
더 열심히 하면 두통만 생기고...(목이 그리고 좋지 않은 상태인데...위빙과 더킹을 계속 하다보면 목을 삐끗해서 두통이 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무엇보다 해 봤자 보여줄 사람도 없잖아.

췟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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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한참 예전에 2000년도 초엽에 Cinnabon이라고 불리는 빵집이 있었다.
빵집이 아니라 [시나몬롤 전문점]이었다.
이 빵집은 시사영어사. YBM에서 들여온 프랜차이즈였다. 광고도 했었다. 이 빵집의 인쇄광고가 [씨네21]에 실렸던 것을 처음 기억한다. 그리고 그 파란 로고와 맛있어보이는 모양때문에 내가 언젠간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씨네21을 보면서 부터였다.


(아는 사람만 아는 추억의 로고가 되어버린 시나본)

맨 처음 동네 후배들을 꼬셔서 차를 몰고 종로의 시사영어사 1층에 자리잡은 시나본에 한밤중에 들어가 시나몬롤을 사서 집 근처 교회 앞에서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들 지금은 결혼해서 애가 있지만 하여간 그 당시에는 그러면서 노는게 낙이었다. 각설하고, 그렇게 시나몬롤을 사서 한입 베 물어먹었는데 오마이갓. 지상에 이렇게 단 음식이 있다니.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았다. 세명 다 하나씩 먹었던가...하여간 그렇게 먹고 넌더리를 내던 생각이 난다.

하여간 YBM의 공격적 마케팅 덕인지 시나본은 종로, 강남역, 명동... 서울의 주요 상권마다 하나씩 들어가서 그 단맛을 사방팔방 퍼뜨리고 다녔고, 사람들은 이 기상천외한 극악한 단맛에 학을 떼면서도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시나본은 굉장히 강한 강배전 커피와 같이 빵을 팔았다. 쓰디 쓴 커피가 아니면 도대체 못 먹었을 음식이었으니까.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지면 익숙해 지는 법인지 하여간 나는 꾸준히 시나몬롤을 먹으러 다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 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사라진 웬디스,타코벨등등 기라성같은 프랜차이즈의 길을 씨나본도 따라가 버렸던 것이다. 어느 순간엔가 시나본은 후다닥 문을 닫고 철수해버렸다. 아무래도 시나몬롤 하나로 승부하기도 벅찼을테고, 사람들이 그 극악한 단 맛을 못 견딘 것도 있었으리라.

혼자 가끔 그 달디단 맛을 추억하고는 했다. 그렇게 진한 당분을 지닌 시나몬롤은 사실 구경하기 힘든 종류였으니 혈당이 떨어져 정신이 혼미해지는 날에는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시나본이 눈 앞에 아른거렸던 것이다. 그 풍만한 수밀도의 계피즙을 추억하며.


- 2

그리고 시간은 흘러흘러 약 10년 뒤.
 
며칠 전 나는 신세계백화점 지하 식품코너를 하릴없이 떠돌고 있었다. 

그런데 저 귀퉁이에서 어디서 많이 보던 물건을 팔고 있는 것 아닌가.

(스위트 시나몬이라 적혀 있는데)


(얼레? 어디서 많이 보던 형상일세?)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내가 10년 전에 보았던 시나본의 모습과 형태와 크기가 동일한 거 아닌가.

안경잽이 아가씨가 열심히 팔고 있길래 그 앞에 가서 하나를 주문했다. 그리고 냉큼 물었다.

"내 이 크기와 형태를 보아하니 10여년 전, 강호를 주유하던 시나본의 모습이 남아있네.
 대체 자네는 시나본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내 비록 입은 짧으나 이것저것 땅바닥에 떨어진 것까지
 다 줏어먹어 본 사람이네. 숨기지 마시게."

"10년 전 시나본의 모습을 기억하는 소비자가 아직도 강호에 남아있을 줄 몰랐소이다."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게 안경잽이 소녀는 나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맞소이다. 귀공이 사서 드시려 하는 것은 예전 시나본의 모습과 맛과 품질 그대로요."

"무어라?"

내가 잠시 당황한 사이 안경잽이는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하였다.

"시나본이  쇠락하여 철수를 하던 게 벌써 10년, 그 후로 점점 가세가 약화되어 동아시아에서는 이제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소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남게 되었지요. 마지막 지부가 철수하던 그 날, 동남아 총당주께서 남은 우리들에게"

"그대들에게?"

"레시피를 전수해 주고 갔소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 무림고수가 기연을 얻어 무공을 전해줬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요리사가 레시피를 함부로 넘겼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지 못할까?"

"초면인 소비자에게 내가 허언을 해서 무엇하리"

안경잽이 소녀의 특성상, 싸가지는 없어도 거짓말은 안 하는 법이니 나는 그것을 사실이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본사가 철수하면서 레시피를 떨궈주고 가다니. 이런 헌헌장부스러운 상도(商道)가 있을손가. 하여간 그러려니 하면서 나는 집에 돌아와 하나를 뜯었다. 맛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과연 레시피 그대로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예전에 느꼈던 그 단맛은 없으니 기이했다.
아마도 그 동안 생겨난 수 많은 음식점과 과자와 프랜차이즈들의 당도가 점점 올라간 것이 그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젠 시나본의 시나몬롤은 굉장히 평온한 단맛이 되었던 것이니.

아뿔싸, 10년만 늦게 강호에 출도했더라면 인생이 어찌 되었을지 모르는 법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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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에 대한 결과

수련장 2011. 6. 11. 00:55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두가지 일을 끝임없이 하고 있다.

하나는 글쓰기다. 정말 투입분의 산출량이라는 것에 있어서 이렇게 채산성이 안 맞는 일이라는 것이 있나 싶을 정도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타인의 눈에 좋게 보일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도 없을 뿐더러 나이를 먹을수록 언어의 조탁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생활속에서 쓰는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 차에 문자로 남겨야 할 말글의 핍절함 앞에서는 뭐라고 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사회에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 조차 희박하기 그지없다. 과연 이것이 내가 필생을 들여서 할만한 일인가 싶은 생각이 하루에 한 두번 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또 하나는
믿지 않겠지만 연애시도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지사. 성직자라도 그럴진대 사지 멀쩡한 사내가 여자를 찾지 않는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하지만 이 일은 전술한 글쓰기에 비하면 정말 허공에 발길질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허망한 짓거리가 있나 싶을 정도다. 내가 불타는 마음을 가지면 뭘 하나. 상대가 차가운 마음을 가지면 그만인 걸. 내가 정열에 가득하면 뭐하나, 상대가 경멸에 가득하면 그만인걸. 사람 상대하는 장사가 가장 어려운 일일진대. 그 중에 마음장사가 가장 힘든 법이다. 열심히 해 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만한 대가가 꼭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증명한다.

노력하면 성공하고 노력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혹자들은 말한다만 그것은 성공한 자들이 써 내려간 역사서에 불과한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얻은 것을 중시하고 기억한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얻지 못한 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그럴리 없다. 우리가 갖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피와 눈물과 땀을 뿌려가면서 일에 매진했건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수많은 경험을 해 오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미련때문이다.
어쩌면 오기고, 갈고 닦으면 도가 트일것이라 믿는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허망한 전승 때문이고
나는 할 수 있으리라 믿는 근거없는 자신감 때문이다.

삶의 원동력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전술한 저런 것이 삶의 원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자기최면일 지언정 저것이없다면 아무것도 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채워나가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암시를 거는 것이다. 그러다가 수백수천가지 시도 중 하나가 걸려서 내가 만족할수 있는 현재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그것이 요행이랴?
아니다. 그게 노력인 것이다. 요행의 인생이란 어느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뤄지지 않은 수많은 목표들에 노력을 기울여 왔으니까.
함부로 삶에 요행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게 인생이니까. 어차피 인생은 확률의 변동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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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민반응

투덜투덜 2011. 6. 9. 23:17
가끔 몸이 안 좋거나 목이 삐끗하거나 어깨가 뭉치는 경우 나는 두통이 생긴다.

원래 사람이 살면서 두통없는 인간 있겠냐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거나 잠을 못자거나 할 경우
그리고 체해서 머리가 아픈 경우에는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이거 혼자 살다가 죽는 거 아녀?" 내지

"체해서 머리가 아프다는건 뭔가 몸이 잘못된게 틀림없어! 이건 중병의 전조야!" 라던가.

특히,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쓰러지신 뒤부터는 [가족력]이라는 단어가 마치 저주의 주문처럼
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두통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이건 전조가 틀림없어! 나 역시 마찬가지인거야! 하는
생각으로 혼자 식은땀을 흘리곤 한다.
(사실 뇌종양의 두통은 사람이 참을 성질이 아니라고는 하지만...우리 모친께서도 가벼운 두통밖에 
 없으셨기 때문에 난 섬찟섬찟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아마 대부분은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병의 경우는 하나의 증상이 아니라 다발적인 전조가 오는 것으로 알고 있긴 한데...


사람이라는 게 꼭 아는대로 생각하지는 않지 않는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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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내년이면 마흔인데
이미 모발들은 세월의 무상함에 삶의 흥미를 잃어버린 듯 하다.

슬쩍 오늘 카메라를 들어서 머리 위를 찍어봤는데
아, 참담하더라. 퉁그스카 폭발사건으로 날아간 나무들의 자취에 다름 아니었다.

이젠 정말 농담이 아니라 심각하게 고민을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몇백만원 투자해서
산에산에 산에다 옷을 입히자~ 하는 식목행사를 할 것인가
차가운 도시남자가 되어서 싸그리 삭발을 할 것인가.

머리를 심는게 좋은 방법이 될 것 같긴 하다.
아무래도 대머리보단 그나마 숱이 있는게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겠지.
그런데 비용도 비용이고, 수술도 수술이지만 
심은 부분만 빼 놓고 그 뒤부터 다시 빠지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건가? 정말 웃기는 형상이 만들어질텐데.
(그래서 보통 모발이식을 하면 결국 전방위적 식모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던데...잘 모르겠다.)

근데 돈이 없다. ㅠㅠ


그럼 머리를 밀어볼까....싶다가도

이런 게 아니라

이렇게 될텐데


이거 참 고민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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