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에 해당되는 글 155건

  1. 2010.09.02 옥한음목사 소천, 그리고
  2. 2010.09.01 2010.09.01 2
  3. 2010.08.31 잡설 2010.08.31 6
  4. 2010.08.31 노력이라는 것 3
  5. 2010.08.16 2010.08.15 소사 9
  6. 2010.08.12 서울영감들 처음가는 국도놀이에 2
  7. 2010.08.08 2010.8.8소사 2
  8. 2010.08.05 2010.8.4 소사 4
  9. 2010.07.27 팔자에도 없는 공부&소회 4
  10. 2010.07.25 2010.7.25 소사 7
사랑의 교회 옥한음 원로목사가 돌아가셨다.
예의 인터넷은 개독들은 죽으라!라는 말로 돌아가신 이의 마지막을 배웅하긴 한다만
나름대로 경건한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니지, 나같은 범부가 따라가기 힘들게 사신 분인건 확실하다.

물론 보수 옹호 뉴라이트적인 정치발언을 일삼는 오목사를 후계자로 세운 일과
서울고쪽으로 2000억을 들여서 새롭게 교회를 세우게 만든 
생애 마지막 두 가지의 일을 제외하고서는.
물론 이것도 내 개인적인 편견에 가득한 의견이지만.

개관논정(蓋棺論定)이라는 말이 있다.
관뚜껑을 덮고 나서야 죽은 이의 논공행상을 논한다는 말이다.
고인을 엄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할 것인데
1. 객관성을 담보로 할 것
2. 시대상을 알아야 할 것
이다.  동시대를 같이 사는 이들은 1번이 부족하고 후대인들은 2번이 부족하다. 그래서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은 
어느 세대가 단정짓건 늘 부족함을 느낀다. 아마 우리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가 죽어서 진토로 돌아가게 되는 그 날이
지난 뒤, 우리는 뭐라고 얼마 안 되는 지인들과 친척들에게 기억될 것인가.

아마 신께서는 공정한 판단을 내리실 것이다.
죽어서 올라가 뵈오면 뭐라고 말씀을 하겠지. 
절대적인 판단이 있다고 믿는다면 열심히 살아야겠지.
최소한 개독으로 죽고 싶지는 않다.

어쨌거나 목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설교를 접해 들은 게 바로 어저께 같은데
세월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갈 것이라고 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더랬습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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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1

작은 방 한담 2010. 9. 1. 21:21
1.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직까지 연락하는 사람은 딱 네명. 나까지 합쳐 다섯.

그 중의 마지막
영원히 젊음을 구가하며 찬란하지만 구질구질한 싱글을 누릴 줄 알았던 마지막 친구가
드디어 결혼을 한다는 발표를 했다.

진작 말하지 그랬냐는 말에 늘 그렇듯 어눌한 목소리로 바빴다고 이야기하는 친구.

드디어 모두가 간다. 
들어갔다 빠져나온 사람도 물론 존재한다만.

그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나니 하늘에서 빗줄기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뜨거웠던 여름이여 안녕인가.


2.
무언가 사람들은 착각하면서 그 착각을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걸로 위안을 받는 걸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은 날 좋아해 라던가
이번 일은 우리회사에 떨어지는 게 확실해 라던가
내 인생은 지금부터 꽃피게 될거야 라던가

기타등등

깨지 않아야 할 착각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누가 태양을 맨 눈으로 하염없이 응시할 수 있을까?


3.
뭔가 하나 둘 잊혀지고 잃어버리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4.
마피아의 격언이 생각난다.
"믿을 수 있는 것은 피붙이 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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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짧은 글을 쓰다보면 긴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2. 사람의 말속에 품은 뜻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다.

3. 바닥을 본 다음에는 지하실을 보게 되는데 그 다음은 이게 몇층까지 내려가는 건지 확인해 보는 일.

4. 천하태평하게 사는 것이 타인의 미움을 사게 될 수도 있다.

5. 집에서 하루종일 자는 것이 하루종일 발품을 파는 것보다 이득이라면 당연히 자야한다.

6. 몸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망가져간다. 30이 넘은 다음부터는.

7. 희망은 바보짓이지만 절망은 병신짓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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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항로가 잔잔한 일망무제의 만경창파를 헤치고 가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렇지 못한게 우리들 인생이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돛을 세우고 키질을 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의 배를 끌고 가려고 아둥바둥 하는 것 아니냐. 그것이 노력이라는 것 아니냐.

하지만 아무리 한들 뼈가 부서져라 노력한들,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키를 붙잡고 있다가 토할지경까지 이르러도 바람이 바뀌지 않고 거칠어지는 것 또한 인생 아니랴.

이쯤 되었을 때 우리는 고뇌한다.
여기서 손 놓고 그냥 바람부는 대로 떠내려 가야 하는 건가 아니면 서서 죽더라도 키를 잡고 있어야 하나.

누군가는 손을 놓고 누구는 손을 놓지 못하고.

그렇게들 산다.
떠내려 가는 것이 어쩌면 편할지도 모르고
꽉 붙자고 사는 것이 그의 사는 목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장담하겠느냐. 바람부는대로 표랑하다 도착한 곳이 그가 꿈꾸던 곳일지도 모르고
내가 피땀바쳐 잡아끌며 도달한 목적지가 내가 원하던 곳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봉래 양사언은 이렇게 시를 읊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렇다고 양사언이 불굴의 투쟁적인 유학자였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양반은 유학자기도 했지만 선도(仙道)를 배운 사람이었다.
죽어서 신선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노자와 장자의 무위론을 알았을 게다. 세상엔 득도 없고 실도 없도다.
그런 그가 왜 저런 시를 읊었을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는 말을 할 정도는 벗어나야 한다는 거 아니었을까.
일단 뭐든지 토할때까지는 해 본 다음에 손을 놓던 계속 잡던 그 다음에 오는 건 자유로움이라는 거겠지.

그런데 그걸 알기 힘든거지.
언제까지 이걸 잡아야 하는 건지. 언제 놓아야 하는건지.
아직까지 이런 생각이 들 지경이라면
손을 놓기에는 요원하게 먼 것일지도 모르지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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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복절이다.
과연 우리민족은 5000년의 역사를 이어갈 만한 저력이 아직까지 남아있을까?    
이상하리만치 비관론으로 점철되는 듯한 시절이라 가슴이 먹먹하다.


2.
고양이와 고양이
그리고 사람 한 마리


3.
뭔가 하나를 끝냈는데 끝낸 기분이 들지 않는구나
이건은 미진하다는 이야기인데
미진하지 않을 때까지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다.


4.
하루하루는 부질없고 의미없이 흐르는데
세월은 가지 않고
생체시계는 쏜살같이 흘러간다.


5.
그나마 사람들을 만나니 다행이다만
나는 사람들을 1주일에 한 번만 만난다.
그것도 정해진 사람들 외에는 보지도 않는다.
이러고 산다는 게 어찌보면 대단하긴 한데

꼭 심산유곡에 들어가야만 세상하고 인연이 끊기는 게 아니더라.


6.
읽는 것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면
쓰는 것에 대한 흥미도 반감되는 법.

지친건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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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서 사업하는 사업주를 만나겠다고 아침부터 일찌감치 서울을 나서 고속도로를 탔는데

70년대에는 고속도로인 지 모르겠는데
요즘은 아침이건 저녁이건 6.25 사변때 피난가는 행렬이나 진배없으니
내가 빠른지 우마차가 빠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동탄까지는 졸면서 가도 운전할 수 있는 지경이니
차라리 내가 황영조나 이봉걸..아니 이봉주의 심폐만 있었어도 그냥 배낭메고  뛰는 것이
훨씬 건강이나 경제나 지구환경이나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있던 찰나에
"형님, 차라리 국도를 한번 타 봅시다" 라는 N군의 말에
차를 국도로 몰고 빠지기로 했다.

오, 이런 풍경이?
얼마나 돌아가는 지는 계산하지 않았는데. 하여간 차가 붕붕 달린다.
게다가 양 옆에 푸르른 신록이 우거지니 가히 드라이브 아닌가.
사내 둘이 하는 칙칙 음울한 그린 드라이브!

이러저러 광고주를 만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아까 일도 있고, 분명 고속도로는 대박집 점심시간만큼이나 메어터질테니
다시 국도로 타고 올라가자는 심산이 들었다.

그렇게 잘 가고 있었다.
네비게이션 교차로 하나 놓치기 전까지는.

교차로 하나 잘못 탔더니
갑자기 키로수가 10km이상 늘면서
나는 생전 가볼 일도 없고 가본 적도 없는 통탄 시내를 횡단해서
역시나 연고도 없고 볼 일도 없는 수원시내를 관통하기 시작햇다.

"이게 뭣이냐! 쓸데없이 길만 뱅뱅 돌아가지 않는가!"

"그러게 왜 교차로를 놓치신겁니까!"

"시끄러 임마 누가 이럴줄 알았어?"

"아이 참 어쩌구 저쩌구"

"시끄러 시끄러"

둘이 투덜대면서 차를 몰고 오는데 빗방울까지 후두둑
그렇게 음울하고 칙칙한 그레이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앞에 성곽이 보이더라

음? 이건 교과서에서만 봤던 수원 화성인가?

"야, 이게 수원 화성인가보다."

"나도 책에서만 봤지 처음 보는데"

"야, 잘 지어놨구만"

"이것이 정약용의 기중기로 만든 바로 그 성이오"

"기중기가 아니라 거중기여"

"머 어쨌거나...아~ 이쁘구만"

"아~ 이쁘구먼~"

갑자기 두 사람은 신이나서
여기저기 기웃기웃

그렇게 다니면서
경수산업도로를 타고 의왕을 지나 과천을 넘어 남태령 옆의 우미관..아니 우면산터널까지 지나
허위허위 십몇 키로를 돌아 사무실까지 도착하고 말았다.

"야~ 오늘 구경 잘했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국도 타는거 재미있네."





...이러니 돈을 못 벌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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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8소사

작은 방 한담 2010. 8. 8. 20:31
1.
주일학교 고등부 교사가 되었다.
아직까지는 무임소 보직. 
하긴, 내 성향을 담당목사님이 아는데 애들에게 바로 덜컥 붙여주실리도 만무하고.

그나저나, 나는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라서
수능이 어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지도모른다. 
자식있는 어른들이라면 자식때문이라도 정보가 있을텐데 난 그런것도 없으니
이를 어쩜 좋단 말이냐


2.
내가 우리 집 고양이를 대하는 걸 보면 난 참 엄격한 인간이구나 싶다.
고양이도 절절 매는데 사람이라면 좀 버겨내기 힘들지도.

둘째 고양이를 들일까 생각중이다.
사람하고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고
어차피 다른 생명을 보듬어 안고 가는게 인생의 무게라면
사람이나 고양이나 별 다를 것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제 별반 미련이 안 남네.


3.
인생에 멱살잡히지 않을 정도의 자본만 있다면
사람들의 인생은 얼마나 여유로와질까.
Posted by 荊軻
,
1.
알던 후배놈이 알던 선배라고 사무실에 놀러왔다.
아, 여자애다.
아무리 남초현상에 찌든 인생역정이라지만 그래도 가끔 귀엽거나 이뻐보이는 후배 하나 정도는 있는 법이다.
40 가까이 살면 말이지.
(이거 써 놓고 보니까 무지하게 우울한 멘트로구나)

하여지간 놀러왔는데
뭐랄까나

세상은 국방부시계처럼 건전지빼도 돌아가는 와중인데 모여서 이야기하면 왜 과거의 기억들이 현실을 지배하고 나이를 먹는 줄 모르는 건지 모르겠다. 꿈속의 꿈인가. 젠장. 어디 물속에라도 떨어져야 하는건가.


2.
다들 그러고 산다.

나는 나이를 먹지않을거야
그래도 이래뵈면 동년배에 비해서 젊어보이지 않나
아직 기회는 있어
언제든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얻을 수 있을거야

아마 환갑진갑미수백수 다 지낼때까지 사람들은 이러고 살 것이다.


3.
하루하루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내 일을 할 때는 짧고 남의 일을 할 때는 길다.


4.
진심이 통하는 세상이라는 게 존재했다면
아마 현실은 이렇게까지 일그러져 있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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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일을 하다가 예이츠의 싯구 몇 소절을 번역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들어서
예이츠에 대한 서적을 한 3권 정도 샀다

읽다보니 켈트신화에 대한 접점이 하나도 없어서
켈트신화에 대한 책을 3권샀다(집에 한권 있지만 뭐...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으니)

읽다보니까
점점 더 모르겠다. ㅠㅠ

번역본이 많고 연구가 잘 되어 있어 접근성이 좋은 그리스 로마 신화나 게르만신화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끄는 영국의 기사도 무훈집같은 것들은 DB가 괜찮은 반면

인도, 중동, 켈트, 슬라브쪽은 아예 번역자체가 별로 없다.
하긴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다.
[롤랑의 노래]를 싯구 그대로 바꿔서 번역해 놓은 책도 국내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그냥 산문동화처럼 바꿔서 만들어놓은 것들은 있어도.

(그래서 [거웨인과 청기사]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책이었다. 번역교수님께 만수무강을!)

종종 일본을 욕하긴 하지만 일본은 번역에 있어서는 세계 top랭킴에 들어가는 선진국이다.
네덜란드인들이 개항하던 시절부터 난학서적을 번역하면서 생긴 노하우가 백년이 넘어가는거다.
세계각국의 책들이 번역되어 들어오는 것은 원래 일본을 통해서고, 우리는 대부분 일본책을 번역해서
보는 것 아니었는가.차라리 일어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쉬울지도 모르겠다. 

하긴 영어만 잘하면 만사형통으로 알고 있는 나라에서 뭐 많은 걸 바랄까.
인문학과 언어학, 뭐 이런거 어디에도 쓸 수 있는 곳이 없다.
하긴, 이 나이에 켈트신화 파고있는 나를 보면 사람들이 참 한심하다고 할거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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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7.25 소사

작은 방 한담 2010. 7. 25. 22:38
1. 토요일에 아깽이 Kaka를 중성화 시켰다.
   아침에 병원에 데리고 나가려는 데 이 놈이 폴짝 무릎에 올라와서 양옹양 거리더라.

   "세상에 고양이나 사람이나 쉬운게 없구나"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들은걸까. 그냥 좀 서글펐다. 어쩌다가 사람 손을 타게 되어서 이런 수술을 받는고.
   
   중성화를 하지 않으면 수컷은 집에서 기르지 못한다. 집안 여기저기에 영역표시를 하고 다니니.
   암컷은 발정이 나면 괴로와한다고 한다. 계속 울어대고. 역시 집에서 기르기 힘든 것이다.

   아버지가 흘러가는 소리로 들으시곤 넌지시 이런 말을 하신다.
   "자연을 거스르는 짓은 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갖다 버려"

  마지막 첨언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이 사람으로써 가진 생물적 우위를 가지고 다른 생물을 학대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같이 살기 위해서 생식력을 없앤다니. 내가 만약 애완동물인데 누가 날 거세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더러웠다. 그런데 어찌하누. 애초에 사람사는 지붕 아래 태어나서 야생에서 살아갈 능력 하나 없고,
  모래에 발만 닿아도 놀라면서 탈탈 털어대는 이 꼬마를 집 밖으로 방사한다고 해 봤자 그 삶이 몇달이나 되겠는가.

  사실 그 몇달의 삶이 더 가치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가치있는 일인지 안타까운 삶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객관적인 수치로 접근할 뿐이지 고양이가 되어 생각할 도리는 없다. 더 오래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
  마치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면 몇 달 내에 죽으니 치료합시다. 라는 어조.
 
 인생은 그렇게 수치로 평가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묘생도 그럴진대 난 왜 이걸 선택한걸까.
 답을 선뜻 낼 수가 없었다. 그냥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뿐.

  수술을 위해 병원에 맡기고 몇 시간 후 데리러 갔다.
  날 보더니 엉엉 운다. 아팠던게다. 당연히 아프겠지. 
  내가 옳은 일을 한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 봤다.
  하지만 어쩌랴. 떨어진 것을 다시 붙일 수도 없는 노릇.
  퍼져서 골골대는 놈을 데리고 집에 들어왔는데

  오늘 아침엔 팔팔 거리고 잘만 돌아다닌다. 확실히 고양이들의 치유력은 경이롭다. 
  이 녀석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냥 지금처럼만 오래오래 살아라. 

  서시나 양귀비가 살아돌아와도 데리고 살아줄테니까.
  그게 내 도리고 책임이겠지.
  

2. 교회 고등부 선생직을 맡기로 했다.
   언젠가는 갈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2년 정도 늦어진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일들을 천천히 하고 있고
   인생의 방향을 그렇게 꾸려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들을 하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3.
  덥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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