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에 해당되는 글 155건

  1. 2010.03.01 어울리지 않음 2
  2. 2010.03.01 2010.2.28 2
  3. 2010.02.25 게으름에 대한 소고 2
  4. 2010.02.20 밝은 날 3
  5. 2010.02.17 time, time, time 6
  6. 2010.02.17 궁즉악(窮卽惡) 2
  7. 2010.02.13 2010.02.13 6
  8. 2010.02.11 할 일을 찾아 걸어간다는 것은 6
  9. 2010.02.10 2010.02.09 잡담 7
  10. 2010.02.08 그녀의 딸은 세살이예요 2

어울리지 않음

투덜투덜 2010. 3. 1. 20:23
모임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는 이들의 모임이었다.

가지 않았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다른 것이라면 내가 그들과 처한 상황이 좀 다르다는 것 뿐이다.
어차피 아는 이들이니 내 편의를 봐줄 것이리라.
편의를 봐 주기 싫어도 가식으로라도 봐 줄 사람들이리라.

하지만 모두가 무언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자리에 결핍한 요소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쓸데없는 주목받음이나 소외가 싫다고나 할까.

사람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공통된 것을 가지고 말하게 되는 법인데
그 자리에 혼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고 싶지도 않았고
그걸 좋다고 감내할 성질도 아니다. 그래서 난 사람들하고 만날 때 둘 이상은 솔직히 껄끄럽다.

여하튼간에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들끼리의 모임도
이제 나이를 먹으면서 처지가 달라지니
영 꺼림직한 분위기를 스스로 느낀다니.

자괴감이라 불려도 좋겠지만
아마 난 오늘 갔더라도 당연히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전화조차 한 통 오지 않는 처지에 언필칭 친구라니.
그건 호사로세.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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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28

작은 방 한담 2010. 3. 1. 00:30
2월의 마지막은 그렇게 유야무야 오지 않았던 것처럼 와서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1.
사람은 살겠다는 생각만 있으면 어디에 가던 살기는 한다.


2.
저녁까지 동네 후배와 집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했다.
둘 다 40년 가까운 인생을 매몰비용으로 때려넣고 있는 중이다.

이미 내 나이또래의 아이들은 모두 하나씩 아이들을 가지고
나름대로 불안정하다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사회인으로 살고 있다.
물론 나도 사회인이지만 
난 지금까지 늘 주변인이었다. 
규격에 맞게 살고 싶어도 튕겨져 나오는 아웃사이더라는 것은 결코 낭만적이거나 호전성을 고취시키지 못한다.

둘은 한창을 커피를 마시면서 별 말이 없었다.
40년을 때려부은 매몰비용.

경제학에서는 매몰비용을
[다시는 쳐다보지 말아야할 비용]으로 산정한다.
회수가 불가능 하므로.


3.
무언가 계속 쓰고 있다.
쓰다보면 난 꼭 누군가를 작살내고 있더라.


4.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수술 받은 뒤에 집에만 계시더니
가슴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라고 하신다.
이러다 오래 못 살 것이라고 늘 한탄하신다.

사실
자식의 입장에서 카산드라의 예언같은 건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5.
주량이 늘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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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동물은 무모하다. 
지상의 모든 생명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먹고 살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유일하게 인간은 자신의 안분자족이 삶의 원동력보다 앞설 수 있는 생물이다. 하루에 2/3를 자는 나무늘보도 자신의 생존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안위책이 있다지만 사람은 게으름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의 생을 불확실한 미래에 던져버릴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옛 중세에는 나태함을 죄악이라고 규정지었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사람은 현재 순간의 안락함이 보장된다면 미래를 기꺼이 포기할 정도의 게으름을 누구나 지니고 있다. 좀더 눈자 좀더 자자 하면 빈궁이 도적처럼 들어온다고 써 있는 성경의 말도 여기서 연유할 것이며, 지역사회를 괴상한 신정합일정치단체로 만든 칼뱅역시 이런 것을 생각하고 일을 벌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 의미에서는 맞다. 게으름은 죄다.

참으로 모순적인 이야기지만 게으름을 이겨내는 것은 욕망이다.
어찌보면 세상을 더 황폐하게 만들어내는데 일조하는 욕망의 강인함에 의해 인간은 게으름을 극복한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의 나태함보다는 불학실한 미래를 위한 치열함에 모든 것을 건다. 궁극적으로는 언제올지 모르는 미래의 나태함을 위해 현재의 욕망을 들쑤셔 지피는 것일테지만 실제로 우리들이 오늘도 잠을 자지 않고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욕망의 소산이다. 만약 욕심이 없이 치열하게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성인이고 해탈한 자일 것이다.

개인적인 황폐함을 게으름은 가져오고, 어쩌면 개인의 범주를 넘어서는 황폐함을 욕망은 가져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뭐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게으른 자가 흥할 수도 있고, 욕심넘치는 이가 세상을 부흥시킬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방은 40이 넘도록 길거리에서 건달짓거리를 하다가 중국의 황제가 되었고 덕천가강은 그 욕심만큼이나 탐욕스레 살아서 일본의 안정된 중세를 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반대이다. 게으르면 망하고 욕심이 많으면 주위에 누를 끼친다.

사람이란 그래서
나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하는 것인데...

이를 누가 알려줄 수 있을까.

좋은 스승 하나 만날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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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날

투덜투덜 2010. 2. 20. 01:34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볕 좋은 날
아무 생각없이
아무 동행없이
그냥 걸어갈 수 있을 만큼
내 발이 허락하는만큼
죽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침에 해가 떠서
저녁에 질 때까지
그 짧디짧고
장구한 시간동안
내 그림자 하나 벗삼아서
해가 걸어가는 만큼
나도 죽 걸어갈 수 있었음 좋겠다

해가 지면
사람은 쉬고
해도 쉬고
내 생각도 쉬는데
혼자 마음만 뛰어노는 것이
참으로 보기 안스러웠다

그래
해가 들지 않는 방에서
하루종일 앉아있으니 그런거야
그래서 정작 집에 가서
창밖을 열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탈이 난 게지

계속 해를 보면서
몸에 충분히 햇살 그득 찰 때까지
걷고 걸어보는거야
그러면서 토닥토닥 
마음을 달래주면
알아주겠지
내가 그러고 싶지 않음을

햇빛이 올라오는 길에
혼자 가만히 걸으면
어느 순간
내게 
내 마음이 이야기하겠지

이제 괜찮아
집에 가자
아마 그러겠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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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time, time

작은 방 한담 2010. 2. 17. 23:54
1. 
천하에 둘도 없는 악인이라 생각했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천박함이 있다 생각했었다.

가슴속으로 칼을 갈았던게 10년이고, 죽을 때까지 응보하지 못하면
한 순간이라도 더 오래 살아서 죽기 전에 무덤에 칼이라도 꽂고 죽겠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어느 날,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참으로 깃털처럼 소소하게 스치다가 만나서
경우에 맞지 않게 인사를 하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양 안부를 묻고 형식이야 어쨌건 화해를 하였다.

10년 간 속에 갈아왔던 칼이 순간 바람든 무 하나 잘라버리지도 못하고
훅 하니 사라져버렸다. 

세월의 유구함이
상처의 우툴두툴함도 갉아버리고 흉터도 낡게 만들어버렸던 것인가.


2.
시간은 모든 것을 무위로 돌리고 반본환원할 수 있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아니하다.
오디세우스처럼 흉터는 아무리 낡아도 타인에게 보이고
무엇보다 짊어진 사람에게는 영원히 남는다.

단지 기세가 사라질 뿐이고, 상처의 반대급부가
무기력함에 의해 속으로 갈무리될 뿐이다.

시간도 없애지 못하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특히나 그것이 가슴 속 상처라면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3.
쉽게들 말한다.
잊어라 잊어 잊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다.

그렇게 위로하는 사람들도 물론 안다.
잊으라 말한다 한들 그것이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그때 입은 손해와 아픔이 가신다 하더라도
사람이 예전처럼 무탈하게 돌아다니지 못한다는 것도
다들 잘 안다.

인생의 흉터를 없던 것처럼 매만져주는 성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그저
상처와 사람을 둘 다 깎아내버릴  뿐이다.

만약 시간이 망각을 일으켜 
그 사람에게 엣 아픔을 더 이상 기억나게 해 주지 않는다 한들
옛 추억 무게만큼의 허망함 또한 삶에 들어온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미 안다.


쓰구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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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즉악(窮卽惡)

수련장 2010. 2. 17. 16:50
사람은 유한한 능력을 지녔을테니
언젠가는 힘과 기가 다 해서 사면초가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보통있는 절망이야 시간이 지나면 손 툭툭 털고 쓰린가슴 부여잡으면
그냥저냥 대충 잊고 살아갈 수 있다지만
앞이 정말 캄캄할 정도로 삶의 벽에 부딪힌다면
사람 맘 속 깊은데 감춰진 검은 것이 뭉글뭉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인지 모른다.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라 하는 성악설을 따른다 해도
사람이 사람과 어울려 사는 동네에서 그 속내를 보이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정말 어려우면 생존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그 치부가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사람이 궁해지면 통한다고 하는 궁즉통이라는 옛 말도 있지만
어쩌면 그만큼 악해지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난 희망한다.
즐거움에 빠져 어려웠던 적을 잊지 않기를 희망하며
동시에 너무 지난하게 힘들어
사람의 길이 아닌 명부마도를 걷지 않을 것도 희망한다.

사는 것이란 정말 그 자체로써 수련이고 고행이고
내가 생의 끝까지 인간성을 놓치지 않는 노력의 연속인듯 하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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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3

작은 방 한담 2010. 2. 13. 22:04
1.
제수씨가 조카를 데리고 처음 아버지집에 왔다.

확실히 조부모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과 다른 법인지라
내리사랑이 아닌 무조건적인 시혜만이 존재할 뿐이다. 
내 아버지가 저런 사람이셨던가? 참 좋아하시는 걸 보면서
동생이 큰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지금 난 후사에 대한 별다른 생각도 없고
결혼해서 애 낳으라는 말을 듣는게  아인슈타인의 통일장이론 듣는 거하고 
별 다른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지라...
그래도 내일 다시 한번 정도는 가족의 풍파가 밀려오긴 하겠지.


2.
그래도 조카라고 내가 한번 안아올려봤더니
웅? 하는 소리를 지르면서
백일도 안 지난놈이 내 얼굴에 원투스트레이트 소나기 펀치를 먹였다.

싫다는거 알겠는데
계집애가 뭐 이러누


3.
진짜 모 님의 말처럼
이번 음력이 지나면
소띠 삼재가 끝나는 것일까?

하긴 할 일도 많고
하고싶은 일도 많고
개인적인 욕심도 있는데

더도말고 덜도 말고
순리에 맞춰서 이뤄질 것들은 이뤄졌으면 좋겠다.

노력과 정성과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 모두 잘 되었으면.

Posted by 荊軻
,
그동안 무언가를 해야 할 일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비단 호구지책에 대한 염원 뿐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가고 싶다고 생각한 일에 대해서 매진할 것을 찾고 있었는데
아주 어렴풋이 그 길로 가는 초입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든다.

쉬운 일도 아니고, 전혀 가 보지 못한 길을 찾아가는 것이리라.

뒤돌아 생각컨대, 내 그동안의 짧은 살아온 길에서 내 스스로 정해서 갔던 길 중
끝까지 걸어가서 무언가 성과를 얻어내었다 할 만한 것은 지극히 적고 손에 꼽을만한 것이었다.
그 중 몇몇은 정말 천운이 닿지 않아서 중간에 관둔 것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내 심기가 불안하고
겁에 질려 도중에 관두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지내온 삶이 앞으로 살 날만큼이나 차 오른 뒤에야
또 다른 길을 하나 또 발견하였다.

늘 새로운 길을 가는 삶이라는 것은 언제나 앞이 어둑어둑하고
초행길에 대한 외로움과 두려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야겠다 마음먹었으면 또 가야하는 것이 인생 아닐까.

좀 더 유하게 지난 날을 살펴보면, 그 동안 엎치락 뒤치락 헤메며 걸어왔던 길이
결국 이 길을 가기 위해 둘러왔다 생각해보니 그리 나쁜 여정은 아니었던 셈이다.

비단 이 일뿐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내 삶에는 빈 자리가 많고 그것들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남은 삶일 것이다. 그 동안 두들기고 두들겨서 나름대로의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모양을 잡고 오롯하게 남은 것들을 담아낼 시간인 것이다.

안 보이더라도 끝까지 가 봤으면, 그리고 그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얻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내 스스로 먹고 살 일에 대해서도 하루빨리 해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욕심을 하나 더 내 보자면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손잡고 같이 갈 이 하나쯤 있어도 좋으리.
Posted by 荊軻
,
1.
사람이 사람을 판별할 때 가진 것이나 성취한 것이 아닌 
교분을 가진 친구로 만나 그 사람의 인격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어찌 축복이 아니랴.


2.
모든 이의 생활과 고난을 하나의 글로 축약한다면
그 가운데 있는 수 많은 평지풍파를 뭐라고 쓸 수 있을까?

지구 상에 사는 모든 이의 삶은 소설로 쓰기 족하고
그것들은 모두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룰 것이라는 데 한 표.


3.
읽을 책은 산더미 같은데 사람의 생은 유한하구나.


4.
좋은 것을 듣고 좋은 것을 보고 사는게 장부의 삶이라고 말했던 양소유는
결국 모든 것을 해탈하고 불가에 귀의하였다 하지만서도
그 모든 것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렇다면 해탈하지 못하는 것일까?

욕심에 대한 어느 정도의 만족이 있은 다음에야 
사람은 스스로가 가진 절대고독을 마주하게 되는 것일까.

아직 가지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욕심많은 인생인지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한다.


5.
졸리면 자고
깨면 일하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과연 득도할수 있을 것인가.

그 가운데서 깨달음을 얻은 선사가 더 용하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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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이 노래 누가 불렀더라? 가물가물 하네
N: 015B
H: 아 그랬나
N: 이 노래 이후 정석원은 사랑노래를 못 부르는듯
H: 정석원이 작사한 거냐?
N: 그 노래 이후 뭐...
H: 아예 붓을 꺾었냐?
N: 그런 거 같은데...
H: 절절하구만.
N: 긍까...
H: 어디서 만났나부지?
N: 누가 제보했을지도.
H: 사람 사는 게 참 그렇고 그런거야 그거보면
N: 그런 거 같애요.

몇 년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확실히 조금 지난 노래들을 듣다보면
멜로디가 아니라 속의 감성이 사람의 심정을 격동시키는 게 있는데.

요즘은 뭐 그냥저냥...사랑은 물끓은 뒤 면발이 익기전에 넣는 스프련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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